혹성강호. 33. 괴수사냥.
33. 괴수사냥.
동생 박현의 곁에서 물수건을 갈아주며 간병하는 박준을 무슬란은 말없이 응시했다.새삼스럽게 이 현실을 곱씹었다.마을이 몰살당하고 박현은 다리가 잘린 채 누워 있는 현실, 그 위에 인간족 형님까지 더듬었다.
‘죽일······!’
정찰대를 향한 원한과 분노는 제어하기 힘들다. 그런 위세 이 기묘한 현실상황이 당혹을 준다. 박현의 형 박준에게로 와야 한다는 본능적인 선택은 잘한 것이었다. 족장님과 원로들이 신뢰하던 유일한 인간이다.
‘그놈이 정말로 그런 결과를 만들 수 있는 건가?’
강흑성이란 이름의 젊은 인간놈.아무리 봐도 풋내기에 불과한 그놈을 박준은 믿고 있다.정찰대를 공격할 치명적인 독을 만들어 준다는 이야기다.그건 여자와 아이들을 보호해주는 것에 대한 대가였다는 걸 안다.
‘코웃음 칠 이야기여서 믿지도 않았는데······’
모든 게 다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고 상황흐름이었다.츄란족 노예사낭꾼들에게 잡혀 팔려가던 여자와 아이들을 강흑성이란 그놈이 구했다는 거다.그 과정에서 블루마운틴을 죽였다는 거다.웃기는 헛소리였다.
‘정말이었던 거지······!’
박준과 그렉이란 타이그란족의 이야기는 거짓이 아니었다.강흑성이란 놈은 그 후로 카이오란 캐리언족 아가씨를 살리기 위해 블랙시티 춘전엘 다녀왔다.침을 구해 병을 고쳐줬다.그 아가씨는 지금 걸어 다닌다.
‘현, 저 친구도 마찬가지.’
열에 시달리며 인사불성이던 박현을 강흑성이 치료했다.혈도를 타통하고 무슨 약인지 탕약을 만들어 먹게 했다.의원이나 무공고수 같았다.신뢰하기 힘들었던 마음을 비웃듯이 그 결과로 박현은 좋아지고 있다.
‘놀라운 놈인 건 분명한데······’
미간을 찌푸리듯 좁힌 무슬란은 박준의 뒷모습과 누워 있는 박현을 눈에 넣고 강흑성에 대해 더 깊게 더듬었다.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했는가다.
‘아무 관계없는 여자와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 걸고 싸웠다?’
정말 황당한 이야기다. 공감이 전혀 안 되는 이야기다.이 흉악하고 비정한 세상에 누가 그럴 수 있을까?그런 마음을 모래알만큼이라도 품은 사람이 있을까?제 목숨 건사하고 살기에도 힘든 세상, 웃기는 소리다.
‘그놈 눈을 보면 그런 놈이 아니야.’
서늘하게, 아니 차갑게 가라앉은 강흑성의 눈동자엔 인정 같은 건 없다.미래란 이름의 반화성조직에 오년동안 잡혀 있던 놈이라고 했다.그래서 잡힌 사람들을 보고 그렇게 했을 거란 짐작도 그놈 눈엔 안 보인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거 같은데······’
그게 뭔지 모른다.정말로 강흑성의 심중에 여자들을 구하겠다는 마음이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어떻든 강흑성은 그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박준과 거래를 했다.춘천에 다녀오는 동안 여자들의 보호 대가를 주기로 했다.
‘정찰대를 공격할 수 있는 독을 정말로 만들 수 있단 말이지?’
그런 게 어떻게 가능한지의 황당함은 지금 따질 게 계제가 아니다.강흑성은 이미 캐리언족 여자를 낫게 했고 박현도 마찬가지다.블루마운틴을 잡은 것도 사실이다.약속을 지키려 독의 재료를 구하려 나갔다.
‘정말로 되기만 한다면······!’
이 악문 숨을 뜨겁게 흘려내며 무슬란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러는데 박준이 돌아보고 부른다.
“야 무슬란.”
반사적으로 고갤 든 무슬란은 박준이 던지는 말에 인상을 구겼다.
“그러고 있지 말고 밖에 나가서 장작 좀 패라.”“에?”“에는 뭐가 에야? 현이 탕약다리자면 장작이 더 필요하다고. 나가서 패.”“아니 형님 나는······”“너는 뭐? 여기서 뭐 할 거 있어? 그렇게 장승처럼 서 있을 거잖아?”“허, 형님 무슨 말을 그렇게······”“너 밥은 아주 잘 먹더라? 그렇게 많이 처먹으면 밥값은 해야지. 나가.”
야멸치게 말하고 다시 박현을 돌아보는 박준, 그 등을 노려보던 무슬란은 부글거리는 숨을 다스렸다, 으이그 하는 소릴 내면서 몸을 돌렸다.
* * *
뭐라고 형용해야 할까, 야무치는 거대하다.거대수의 몸통만한 크기다.그렇게 커다란 뱀형상의 괴수가 흉악한 아가리를 벌리고 모든 걸 삼킨다.삼백이를 삼켰고 붉은 혓바닥 원숭이들을 삼킨다.움직임이 번개 같다.
‘갈라버린다!’
흑청빛 안광을 뿜어내며 강흑성은 무원신풍보의 바람이 됐다. 아직은 모든 무공이 일천하기 그지없지만 이전의 자신과 비교했을 때는 하늘과 땅차이만큼 운동능력, 그 기세로 도약해 올랐다. 야무치의 몸통을 갈랐다.
‘무원진격!’
금석을 갈라버리는 베기, 천지를 동강내는 의지로 내리쳤다.그런데 야무치의 몸통에서 검이 튕긴다.내리친 부분의 비늘이 곤두선다. 그것이 튀어나온다.이런 광경을 봤다. 이종이라고 말한 캐리언족 사내에게서다.
‘흣!’
안면으로 폭발해 나오는 비늘, 반월형의 커다란 도끼날과 같은 그것을 강흑성은 검으로 받아쳤다.불꽃이 튀는 것과 동시에 휘돌았다.충돌한 힘이 강해서고, 그 힘을 흘려내기 위해서다.그런데 꼬리가 덮쳐왔다.
‘이!’
허공에서 휘돌던 강흑성은 야무치의 거대한 꼬리가 강철채찍처럼 후려쳐 오는 걸 분명히 봤다.그야말로 벼락이 치는 것 같은 찰나에 닥쳐온 공격.이 순간 할 수 있는 건 없다는 걸 깨닫고 몸을 공처럼 말았다.그때처럼이다.블루마운틴이 양손바닥으로 공격하던 순간처럼, 야무치의 꼬리 후려침을 그렇게 받았다.엄청난 충격은 나중, 대포알처럼 날아갔다.거대수둘과 연속해서 부딪치면서, 몸통을 부수면서 날아가 박혔다.
‘흐.’
돌멩이가 날아가 진흙 속에 박힌 것과 같이 강흑성은 거대수에 박혔다.가늠하기도 힘든 충격 속에서 꿈틀거리며 놈을 봤다.그라운드 웜 야무치, 놈이 흉악한 아가리를 벌리고 다가온다.저 입은 마치 동굴 같다.
콰르르르!
야무치의 머리 양쪽 구멍에서 소름까치는 소리가 난다.영혼을 찢어발기는 것 같은 소리.강흑성은 흐릿한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늦었다.야무치가 거대한 입으로 물어뜯었다. 거대수와 같이 놈의 입에 뜯겨 들어갔다.
‘어억!’
엄청난 충격과 고통으로 강흑성은 눈을 치떴다. 야무치의 흉악한 이빨에 물린 감각, 암석에 짓눌리는 것 같은 힘과 압력에 전신이 뭉개진다.
‘이 죽일 놈이······!’
강흑성은 몸부림쳤다. 하지만 야무치의 이빨 사이에서 그저 씹힐 뿐이다.그런데 몸뚱이가 버틴다. 잘려지거나 으스러지지 않고 있다.환골탈태를 이뤘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야무치는 머리를 흔들며 씹는다.
‘으어어!’
영혼으로 소리치던 강흑성은 허공을 날았다.야무치가 뱉어버린 거다.씹히지 않는 먹이에 놀라고 화가 났다. 다른 것들처럼 그냥 삼켜버리지 않은 이유는 공격을 당해서다. 그래서 물어뜯었는데 정말 이상하다.
콰르르르!
머리 옆 귓구멍인지 뭔지로 끔찍한 소리를 뿜어낸 야무치, 놈의 눈알이 새카맣게 빛을 내는 걸 강흑성은 똑똑히 봤다. 그런데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야무치가 거대한 몸통으로 휘감아 조이는 걸 막지 못했다.
“커헉!”
강흑성은 처음으로 입 밖으로 소릴 냈다. 피를 토하면서다. 그야말로 산이 조이면서 갈아서 뭉개버리는 것 같은 고통, 의식은 점점 흐릿해진다.
‘이렇게 죽는다고······?’
강흑성은 부정했다.
‘아니야······! 나는 안 죽어······!’
피를 게워내는 입으로 강흑성은 소리쳤다.
“우아아아!”
괴성, 그 소리와 함께 함께 강흑성의 전신에서 혈광이 퍼져 나왔다. 동시에 패천마혈이 반응했다. 땅에 떨어진 검은 섬뜩한 혈광을 발산했다.
“으워어어!”
흑청빛 안광을 무시무시하게 뿜어내면서 강흑성은 몸을 꿈틀거렸다.조여드는 야무치의 몸통을 밀어냈다.그렇게 두 팔을 빼냈다.이 순간 떠오르는 무공, 무원신장의 무원신조를 양손으로 펼쳐 야무치 몸통에 쑤셨다.콱, 브리틀합금처럼 강한 야무치의 비늘을 뚫고 열 손가락이 박혔다.움켜쥐고 뜯어냈다.살과 함께 푸른 피가 뿜어져 나온다.거듭해서 무원신조를 박아 넣고 뜯어냈다.야무치가 고통과 분노로 몸부림치며 몸을 푼다.휘릭, 튕겨 나오듯 야무치에게서 떨어져 나온 강흑성은 허공을 돌아 착지했다.패천마혈이 붉은 빛으로 울고 있는 바로 앞이다.검을 잡았다.그 순간 야무치가 암흑의 눈을 빛내면서 돌진해 왔다.동굴처럼 거대한 입을 벌린 채, 흉악한 이빨들을 곤두세운 채다.그 잎을 향해 강흑성은 달려갔다. 아래로 늘어뜨린 검을 위로 그어 올렸다.지옥마검이다.번쩍, 혈광이 번개처럼 작렬하며 야무치를 강타했다.동굴이 둘로 갈라지듯 야무치의 아가리가, 머리가 갈라졌다.그 머릿속으로 들어간 강흑성은 계속 검을 휘둘렀다.이 순간 마검이 알려주는 마교의 지옥마검이다.혈광의 존재가 된 강흑성, 그 움직임 속에서 야무치는 해체됐다.거대한 몸통은 조각나 휘날렸다.그렇게 야무치의 뱃속에서 삼백이가 나왔다.점액질을 뒤집어쓴 모습, 그러나 아직 위산에는 녹지 않은 모습이다.검을 내리고 삼백이를 돌아본 강흑성은 휘청하면서 무릎을 접었다. 그렇게 몸을 부들거리는 동안 혈광이 잦아들었다. 흑청빛 안광도 사라졌다.
“후우.”
길게 숨을 뿜어낸 강흑성은 다시 무릎을 세우고 일어섰다. 쥐고 있는 마검 패천마혈을 한동안 응시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삼백이에게 말했다.
“야무치를 잡았다. 어금니 가지고 돌아가자.”
삼백이는 장총의 점액질을 씻어내면서 붉은 눈을 반짝였다.
* * *
해가 지고 있는 걸 바라보며 그렉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제 곧 어두워질 텐데 강흑성이 안돌아와서다. 오늘은 술손님들이 벌써 들이닥쳤다.홀과 주방일이야 어려울 것 없지만 강흑성이 무사한지가 걱정이다.
‘어디까지 갔길래 여태 안 오는 거야?’
찌푸린 미간을 꿈틀거리며 그렉은 걱정을 삼켰다.아까부터 자꾸만 드는 생각은 혹시나 하는 거다.강흑성이 데빌그라운드에 간 게 아닌가의 불안이다.늑대사슴도 잡아온 놈, 거기라고 안 들어가지 않을 거란 예감이다.
“하아, 내가 이러다 제명에 못 죽지.”
누군가의 걱정을 하며 이렇게 초조해 하는 일이 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그렇다고 생각하니 묘하게 기분이 안 좋다. 뭔가 손해 보는 기분이다.
“흑성이 이 자식······”
중얼거리는 그렉을 박준이 부른다.
“야 그렉 뭐하고 있냐! 테이블에 음식 내 가야지!”
언제나처럼 소리치는 사장 박준을 돌아본 그렉은 인상을 더 구겼다.
“제길, 동생이 아파서 걱정하던 인간 맞아?”
홀로 걸음을 들이던 그렉은 그 순간 들리는 소리에 다시 돌아섰다.
바라바랍바라밤.
삼백이다. 놈이 내는 소리다. 그렇다는 건 강흑성이 돌아온다는 거다.
“왔구나!”
그렉은 반색한 얼굴로 뛰어나갔다. 어둠이 내리고 있는 수림의 전경을 등지고 오고 있다. 강흑성과 삼백이다. 둘은 들것을 끌면서 오고 있다.
“뭘 가지고 오는 거야?”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사장 박준, 그의 의문과 같은 의문을 그렉은 삼켰다.강흑성과 삼백이가 들것을 만들어 끌고 오는 것, 들것에 실린 게 뭔지 모르겠다.궁금함을 물고 다가가 보니 반원형의 방패 같은 거다.
“이게 뭐냐?”
잘 다녀왔냐란 말 보다 먼저 나간 사장 박준의 물음.
“야무치 비늘입니다.”
덤덤한 강흑성의 대답에 그랙과 박준은 눈을 까뒤집었다.
“이, 이게 야무치 비늘이라고?”“무, 무슨 소리야? 이런 걸 어떻게?”
강흑성은 지고 있던 배낭을 내리고 그 안에 든 물건을 꺼냈다.
“야무치 어금닙니다. 이 안에 든 독이 필요했습니다.”
그렇다는 거다, 그래서 야무치를 잡았다는 거다. 그렇다는 데 황당한 충격이다.그렉과 박준은 아무 말도 못했다. 그냥 뜨거운 침만 거듭 삼켰다.
“씻겠습니다.”
숙소로 들어가는 강흑성을 따라가며 삼백이는 또 소리를 냈다.
빠라바라바라밤.
어둠이 들이치는 샹그릴라 앞에서 그렉과 박준은 석상처럼 움직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