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강호. 34. 계획과 준비.
34. 계획과 준비.
탕약을 달이듯이 불앞에서 안 떠나는 강흑성을 그렉과 박준과 무슬란도 지켜봤다. 계속해서 풀뿌리 같은 걸 끓이고 붉은 암석을 부숴 넣고 야무치의 어금니 속을 파내 독을 넣고 하는 과정이었다. 그게 끝이 났다.
“된 거냐? 독을 만든 거야?”
박준이 침지 못하고 강흑성의 곁으로 다가가 물음을 던졌다.시간은 이제 겨우 아침 8시.오늘 오전 안으로 완성될 거란 강흑성의 말을 듣고 기다린 거다.강흑성의 말대로 솥 안에는 투명한 액체가 고요히 고여 있다.
“이게 그 독이야? 정말로 귀신대가리들의 장비에 탐지 되는 않는 단 말이지?”
거듭해서 물음을 던지는 박준, 그 마음을 알기에 그렉이 곁에 붙어 입을 연다.
“시험해 보면 되잖아요? 화생방 탐지 장비 없습니까?”
없으면 얼른 블랙상인을 통해서 구하고, 란 그렉의 얼굴이다.
“아, 그래, 예전에 하나 구비해 놓은 게 있긴 있지.”
눈동자를 반짝이며 박준은 바로 창고를 향해 달려갔다.그런 박준을 응시하던 무슬란은 강흑성에게 시선을 돌렸다.뭔가 할 말이 많은 시선, 그렇지만 아무 말도 내지 않는다.그렇다는 걸 그렉은 곁눈질로 인지했다.
“독성이 어느 정도인거야?”
화제를 돌리듯 그렉이 묻자 강흑성은 준비한 화살을 솥에 담갔다 꺼냈다. 투명한 액체가 발라진 화살촉은 아무런 티도, 냄새도 나지 않았다.
“눈으로 확인하죠.”
덤덤한 한마디를 내고 강흑성은 활을 잡고 걸어갔다. 샹그릴라 앞 공터를 지나 진출입로 사이 수림이 시작되는 곳까지 이동했다. 뒤따라오는 그렉과 무슬란의 시선을 등으로 받으며, 그들을 달고 계속 걸었다.수림의 속으로 들어선 강흑성은 멈춰 섰다. 활에 화살을 쟀다. 눈을 감고 석상처럼 고요히 서 있다가 활을 들었다. 왼쪽으로 돌며 화살을 날렸다.피잉.날카로운 현의 울음소리를 뒤로 두고 날아간 화살은 수림의 안으로 사라졌다.무엇을 맞춘 건지, 어디로 날린 건지 모를 행동.그런데 반응이 바로 나왔다. 수풀을 헤치며 커다란 삼목늑대가 튀어나왔다.
“어! 화살!”
그렉의 외마디 반응과 무슬란이 치켜뜬 눈앞에서 눈 세 개 달린 맹수인 삼목늑대는 고꾸라졌다. 사지를 부들거리며 피거품을 게워냈다. 그러다 녹기 시작했다. 흐물흐물 진흙반죽처럼 뭉개진다. 혈수로 녹아버린다.
“미친······!”
다시 나온 그렉의 경악한 반응, 무슬란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런 둘의 뒤로 박준이 달려왔다. 뭐냐고 묻기 전에 본 광경으로 얼어붙었다.
“제대로 됐습니다.”
역시 담담한 강흑성의 목소리.박준과 그렉과 무슬란은 뜨거운 침을 삼켰다.제대로 됐다, 무심한 저 말이 주는 강도가 이렇게 강력한 것일지 몰랐다.화살촉에 묻힌 독으로 이 커다란 삼목늑대를 핏물로 녹여버린 거다.
“시베리아 샹그릴라······!”
떨리는 음성으로 욕인지 감탄인지 모를 말을 흘려낸 박준은 손에 든 계측기를 들었다. 계기판의 숫자가 제로를 드러내고 있는 것, 결과를 말한다.
“바이오계측기에 아무 반응도 안 잡혔다.”
꿈틀거리는 박준의 눈동자는 이내 커다란 웃음으로 바뀌었다.
“으하하하하!”
그렉이 따라 웃었고 무슬란은 긴 숨을 내쉬었다.
* * *
탕약을 달이던 강흑성은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에 반응해 고개를 돌렸다. 지금 달이는 탕약을 복용해야 하는 존재, 카이오가 조심스레 다가온다. 창백한 얼굴로 수줍은 미소를 짓고 있다. 앞에 멈춰서 인사를 한다.
“목숨을 구해주신 은혜, 뒤늦게나마 감사 인사를 올립니다.”
카이오는 고개를 조아리며 절을 했다. 바닥이 맨땅이건 진흙 밭이건 똥밭이건 개의치 않고 할 의지, 은인을 향한 절절한 고마움으로 조아렸다.그런 카이오를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던 강흑성은 문득 의문을 품었다.
‘캐리언 족이 절하는 풍습은 어째서 인간이 하는 것과 같을까?’
이미 육백년이란 시간을 함께 살아서가 아니다.절하는 풍습은 서양인들에겐 없고 동양인들에게만 있던 것이다.그런데 저 종족은 원래부터 저런 인사예절을 가지고 있었다.그런 야수족들이 있다. 신기한 일이다.
“정말로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살며시 고개를 든 카이오는 강흑성의 묵직한 눈동자를 마주보지 못하고 바로 시선을 내렸다. 입술을 잘근 물더니 품고 온 말을 어렵게 낸다.
“제가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은인께서 원하신다면 평생 수발을 들면서 살겠습니다.”
대부분의 남자란 족속들이 캐리언족 여자에게 품는 욕망, 그걸 카이오는 말하고 있다. 정말로 강흑성이 원한다면 그렇게 할 마음이어서다.
“애초에 노예로 잡혀 어떻게 됐을지 모를 목숨이었습니다.”
그러니 강흑성 당신에게 바치겠다는 소리.
“관심 없습니다.”
차갑진 않지만 정말로 무관심한 목소리의 대답.카이오는 고개를 들었다.그렇게 강흑성의 눈을 보고 알았다. 저 남자는 정말 원치 않는 다는 걸.
“원하는 건 따로 있습니다.”
덤덤한 뒷말을 이어내고 강흑성은 다시 탕약으로 시선을 돌렸다.
* * *
“하. 이젠 정신이 아주 분명해. 형, 이 탕약이 정말 보통약이 아닌 것 같아.”
빈 탕약그릇을 내려놓고 침대에 기댄 박현, 그 얼굴에 드리운 생기를 보며 박준은 환하게 미소 지었다. 동생은 정말로 부상을 밀어낸 것이다.
“그래, 흑성이 그놈이 정말로 신통방통한 놈이다.”
박준이 다시 말하려는데, 두 사람의 곁에 있던 무슬란의 툭 끼어들었다.
“독을 만들었다. 무시무시한 독이야.”“독?”
미간 좁히고 무슬란을 돌아본 박현은 형 박준에게 눈길을 돌렸다.
“그래, 이젠 얘기 해 주마.”
그동안의 과정, 있었던 일을 박준은 이야기했다.박현은 놀람으로 눈썹을 꿈틀거렸다.
“흑성이가 정말로 독을 만들어 줬다고?”“그래, 엄청난 독이다. 삼목울프가 화살 한방에 핏물로 녹아버렸어.”
놀람으로 경직한 얼굴의 박현을 향해 박준은 감탄으로 이야기했다.
“바이오계측기도 전혀 반응하지 않더라. 내 평생 그렇게 무시무시한 독은 처음 봤다. 그 독만 있으면 귀신대가리놈들 처바르는 건 일도 아니다.”“그, 그래? 그 정도란 말이지?”
흥분해서 당장이라도 일어설 것 같은 박현의 어깨를 무슬란이 내리눌렀다.
“냉철하게 하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 거다.”
휘뜩 고개를 올려 무슬란을 본 박현은 눈썹과 악문 입술을 부들거리다 고개를 내렸다.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정찰대를 공격하는 일, 생각과 의지만 가지고 되는 일이 아니다.치밀하게 계획해도 성공하기 어렵다.
“그래, 그놈들을 쳐죽이자면 그래야지.”
뜨거운 숨으로 독백처럼 신정을 뱉은 박현은 형 박준을 응시했다.
“계획이 있는 거야?”
박준은 가라앉은 눈동자를 서늘히 빛내며 입을 열었다.
“구체적인 건 아직 없다. 하지만 아우트라인은 잡고 있지. 우선은 그놈들이 우리를 인지하지 못하는 가운데 해야 한다는 거다. 그러자면 먼저······”“강흑성과 그렉은 참여하지 않는 겁니까?”
무슬란이 말을 자르며 던진 물음.박준은 미간을 찌푸렸고 박현은 눈 밑을 꿈틀했다.이 자리의 세 사람이 공통으로 품은 마음과 개별적으로 가진 생각의 결, 그 안에 그들이 있다.그 이야기를 이제 해야 한다.
“엄밀히 이건 우리 일이다. 그들에게 함께 하자고 할 일이 아니야.”
가라앉은 숨으로 낸 박준의 말에 무슬란은 반박의 입을 열었다.
“그럼 누구랑 어떻게 할 겁니까? 형님하고 나하고 둘이서요?”
박준은 동생 박현을 응시하며 어금니를 물었다. 무슬란의 말대로 불구자가 된 동생 박현이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결국 둘이다.
“왜 둘이야?”
박현이 거친 반발로 반응했지만 무슬란은 냉정하게 잘랐다.
“너 때문에 형님하고 나까지 죽게 돼.”
박현은 움찔하며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그렇게 움켜쥔 주먹을 부들거리며 다시 고개를 떨궜다.엄연한 현실, 자신은 두 사람에게 짐이 될 뿐이다.그걸 말한 무슬란의 마음도 안다. 박현 자신을 염려하는 마음이다.
“그들에게 함께 하자고 해야 합니다. 같이 하도록 할 동기를 줘서라도 해야 합니다. 아니라면 우리는 기름 바르고 불로 뛰어드는 겁니다.”
결연하고 단호한 무슬란의 눈을 응시하며 박준은 더 강하게 이를 악물었다. 같이 하도록 할 동기를 줘서라도 란 말은 돈을 줘서라도란 말이다.
‘그래, 흑성이라면 정말로 큰 힘이 될 거야. 그렇지만······’
강흑성은 이후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공격에 필요한 강력한 독을 만들어 준다고만 했다.함께 복수하겠다는 생각 같은 건 그의 눈에 없었다.당연한 거다.그걸 욕하거나 탓할 수 없다. 그러니 돈을 주자는 거다.
‘그놈은 돈 같은 거에 휘둘릴 놈이 아니야. 그놈 눈을 보면 알아.’
대륙에서 이십년을 구르고 여태 살아오며 겪은 생의 경험이 말해 준다.강흑성은 단단한 강철 같다.그 단단함은 섬뜩한 차가움으로 이뤄졌다.
‘그런 놈이 여자와 아이들을 구했다는 건······’
지금도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그날 강흑성이 춘천에 가겠다고 할 때의 눈은 정말로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그 차가움 안에 뭔가가 있었다.
‘그래야만 할 이유······’
가늘게 뜬 눈으로 허공을 더듬던 박준의 귀에 그 순간 삼백이의 경고가 파고들었다. 바라바라밤 하는 소리, 지하밀실 스피커를 울리며 나온다.
* * *
새벽별쳐럼 반짝이는 눈동자에 의문을 품은 카이오, 그녀에게 강흑성은 말했다.
“패천마안.”
카이오는 동그란 눈을 커다랗게 떴다.자신이 꿈에서 보던 것, 그렇게 알고 있는 것, 그걸 강흑성이 말했다.어떻게 알고 말하는지 모를 일이다.
“그걸 어떻게······”
카이오가 물음을 내던 그 순간 삼백이의 경고가 울렸다.
빠라바라밤.
강흑성은 흑청빛 안광을 흘려내며 벌떡 일어섰다.카이오는 그 기세에 놀라고 경고음에 놀라 후드득 일어섰다.그렇게 둘은 길 쪽을 바라봤다.수림 사이로 난 진출입로, 그길로 정찰대의 게틀러가 굴러오고 있다.
‘저들이?’
강흑성이 게틀러를 바라보는 그때 게스트하우스 지하밀실에서 사장 박준이 튀어나왔다. 그렉도 홀에서 튀어나왔다. 그렇게 다 같이 바라봤다.
“여, 다들 잘 있었나?”
게틀러의 문이 열리고 나오는 금발사내가 환한 웃음으로 손을 든다. 정찰대의 팀장 중 한명인 쉬타이너란 놈, 박준은 알아보고 얼른 미소 지었다.
“아이고 3팀장님이 이런 시간에 웬일이십니까?”
점심시간이 막 지난 때, 정찰대가 시간을 정해 놓고 오진 않지만 이런 시간엔 드물다.
“아 물 좀 채워가려고. 여기 물이 시원하고 좋다던데? 카슨팀장이 여길 다주 드나들었지? 앞으로 내가 자주 오게 될 거야. 우리 친하게 지내자고.”
목적을 말한 쉬타이너의 뒤에서 정찰대원들이 벌써 움직이고 있다.게틀러에 장착했던 청수통을 굴려 우물로 간다. 그런데 그들의 시선이 모인다.팀장 쉬타이너의 시선도 마찬가지, 강흑성 옆에 선 카이오에게다.
“호, 여자들이 있다더니 그중 하난가?”
카이오가 본능적으로 강흑성 뒤로 몸을 숨겼다. 그러거나 말거나 쉬타이너는 카이오에게 다가가 얼굴을 들이민다. 수컷의 웃음을 흘리면서.
“흐흐흐. 캐리언족의 미모는 익히 알고 있지만 정말로 미인인데?”
쉬타이너는 카이오의 손목을 잡았다.반사적으로 카이오는 강흑성의 소매를 잡았다.자연히 쉬타이너는 강흑성을 응시했다.하지만 강흑성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런 강흑성을 쉬타이너는 차가운 비웃음으로 봤다.
“겁먹지 말라고, 해치지 않아.”
누가 봐도 욕심품은 미소를 풀어내는 쉬타니어너를 박준이 제지했다.
“중부지구 그리샴 장군께서 보호를 명하신 여자들입니다.”
쉬타이너의 표정이 확 변했다.
“뭐? 그리샴장군?”“그렇습니다. 함부로 대해선 안 되는 여자들입니다. 정찰대장께서도 알고 계십니다.”“대장도 안다고? 이게 무슨 소리야? 아니, 그러니까 중부지구 사령관이 이 여자들에 대해서 안다는 거잖아? 그렇지? 지금 그렇게 말한 거지?”
쉬타이너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렇게 높은 양반이 이런 험지에 있는 여자들은 안다? 어떻게? 대장이 연락해서 알렸을 리는 없고, 그럼 누구야? 천리안이야? 박사장 당신이 연락했다는 거야? 그리샴장군하고 연락하는 사이라고? 정말 그래?”
황당한 얼굴을 하는 쉬타이너의 눈동자가 거칠게 곤두섰다. 무슨 이유인지 브라이튼처럼 바로 먹히지 않는 저 눈빛과 기세에 박준은 당황했다.
“그건, 직접 연락해서 확인해 보십시오.”
쉬타이너의 눈동자에 강한 응축이 차갑게 꿈틀거렸다.
“그래, 연락해 보지. 거기 정보장교로 형님이 계시거든? 부관이야.”
박준은 안색을 경직했고 쉬타이너는 카이오의 손목을 강하게 잡아끌었다.
“츄란족에게 잡혀가던 처지라고 했지? 정확한 내용이 뭔지 정찰대로 가서 조사해 보자. 뭔가 이상한 점이 나온다면 다들 각오해야 할 거야.”
거친 기세로 쉬타이너는 카이오를 끌고 게틀러에 올랐다. 그사이 물을 채운 대원들도 탑승했고, 게틀러는 떠났다. 그 모습을 모두 지켜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