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35화 (36/172)

혹성강호. 35. 결행.

35. 결행.

흑청빛 안광이 섬뜩하게 뿜어져 나오는 눈으로 강흑성은 게틀러가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봤다.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바로 돌아서 움직였다. 숙소에서 마검 패쳔마혈을 챙겨 나왔다. 그 모습에 박준 등은 당황했다.

“뭐하려는 거야?”

그렉이 놀란 얼굴로 물었지만 강흑성은 대답하지 않았다.활과 화살 통을 챙기고 텀블러에 만들어 놓은 투명한 독액을 채워 넣었다.그 모습이 바로 대답.박준과 그렉이 서로를 돌아보는데 무슬란이 뛰쳐나왔다.

“무슨 일입니까?”

당황과 경직 속에 있는 박준과 그렉을 본 무슬란은 강흑성의 행동과 차림새를 보고 미간을 확 좁혔다. 로봇삼백이가 t=rex장총을 챙겨들고 선 것도 봤다. 정찰대의 게틀러가 왔다가 떠난 걸 아는 마당, 사달이 났다.

“그렉, 애들 나온다, 가서 단도리 해라.”

박준의 말에 그렉은 숙소를 휘뜩 돌아봤다.무슬란이 지하밀실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명희와 엄마를 비롯한 여자들이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나오고 있다.저들에게 이 상황을 알게 할 필요 없다. 적어도 아직은.

“아 명희야. 나오지 말고, 귀신대가리들이 아직 주변에 있다.”

겁주는 말로 달래며 그렉은 아이들과 여자들을 숙소 안으로 몰고 들어갔다. 그사이 강흑성은 준비를 마쳤고, 박준은 강흑성의 눈을 보며 물었다.

“치려는 거냐? 지금?”

왜, 라는 말이 박준의 눈과 얼굴에 있다.어째서 이렇게 황당하고 무모한 짓을 지금 이 순간 하려는 건지다.카이오가 잡혀가서 라고 생각되지만 그것으로 답이 부족하다.그런데 그게 답이다. 춘천행도 그랬었다.

“너 대체 무슨 이유로······”“곤란해지지 않겠습니까?”

강흑성의 대답 아닌 대답, 박준은 미간을 확 찌푸리고 눈 밑을 가늘게 떨었다.

‘그리샴장군을 언급한 소리가 헛소리란 걸 알게 된다면······!’

정말로 곤란해진다.브라이튼은 진위확인여부보다도 그러한 일로 생길 다른 여파를 계산하고 물러섰다.그런데 쉬타이너란 놈은 그리샴장군의 부관으로 형이 있다고 했다.그 루트로 진실이 드러나면 정말 엿 된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인 걸로 압니다.”

이어 나온 강흑성의 말에 박준은 안면을 꿈틀거렸다.어차피 해야 할 일.맞는 말이다. 복수, 해야 한다. 맹세 헸다. 그런데 이렇게는 아니다.

“네 말이 맞다. 해야지, 그런데 이런 식으로는 아니야. 저들은 정찰대다, 치밀한 계획을 세워도 승산이 부족한 상대다. 넌 지금 죽으려는 거다.”

강흑성은 흑청빛 안광을 번득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계획의 반을 만들었습니다. 나머지 반은 행동하는 것뿐입니다. 시기를 정하지 않았을 뿐 그게 결론이죠. 그 시기가 먼저 닥쳐온 것뿐입니다.”

계획의 반을 만들었다, 독이다. 강흑성이 독을 만들었다.무지막지한 독, 정찰대의 바이어오웨폰 대응기능조차도 무력하게 만들 독이다.그런 무기가 있으니 해 볼만 하다.그런데 적용이란 부분은 전혀 다른 거다.

“하.”

고개를 숙이며 깊은 한숨을 내쉰 박준은 다시 고개를 들고 강흑성의 눈을 응시했다. 한 치의 미동도 없다. 견고한 산처럼 깊고 무거운 눈동자다.

‘이 자식 정말로 하려는 건데, 도대체 왜?’

다시 치솟는 의문을 말하려는 데 무슬란이 입을 열었다.

“가능할 것 같습니다. 게틀러 안으로 독액만 살포해 넣을 수 있다면요.”

살기로 번득이는 무슬란의 눈을 돌아본 박준은 미간을 좁혔다.그럴듯한 말이어서다. 정말로 게틀러 안에 독만 넣을 수 있다면 일은 된다.그런데 그렇게 할 방법이란 게 따로 없다는 게 문제다.그걸 어떻게 할까.

“할 수 있습니다.”

강흑성의 담담하지만 단호한 음성, 박준과 무슬란은 눈을 꿈틀했다.

“게틀러 안이 아니라 밖이어도 상관없습니다.”

결론을 말하듯이 이어 말한 강흑성은 주머니에서 작은 뭔가를 꺼냈다. 명회와 제닌이 먹던, 사탕과 껌이 든 플라스틱 용기 뚜껑을 열고 환약을 건넸다. 이게 뭔가 하고 받아든 박준과 무슬란에게 설명을 던진다.

“해독약입니다.”

눈을 반짝이는 박준과 무슬란에게 강흑성은 이어 말했다. 이제부터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할지를, 두 사람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 * *

딱딱하게 구긴 인상으로 쉬타이너는 여자를 돌아봤다.미모의 캐리언족 아가씨, 보고 있어도 자꾸 다시 보게 하는 미모다.그런데 지금은 욕심보다도 염려가 앞선다.이게 자칫 동티가 나는 일이 아닌가 해서다.

‘대장도 안 건드린 걸 내가······’

정찰대장 브라이튼은 바보가 아니다.그리샴장군을 언급한 일의 진위를 밝히기에 앞서 여러 가지 다른 생각과 계산을 했을 거다.그런 건데 쉬타이너 자신은 이렇게 해버렸다.위세를 보이느라 그런 측면이 있다.

‘형님에게 연락해 보면 당장 알 일이긴 하지만······’

형님 루카스는 이런 걸로 연락하는 걸 싫어한다.그는 철저하게 군인이다.그리샴장군의 부관으로서 군인으로서의 명예와 긍지를 안고 사는 이다.때문에 동생인 쉬타이너 자신이 정찰대가 된 것을 수치로 여긴다.

‘제길, 내가 정찰대가 되고 싶어서 됐나? 군하고 정찰대가 견원지간 인 게 내탓이야?’

아니다. 이런 뭣 같은 곳에서 복무하고 싶지도 않았다.형처럼 공부하고 노력하지 못해서, 사고만 일으키던 존재였기에 그렇다.늦게라도 제대로 살아보려는 마음으로 정찰대에 자원한 거다.형과는 연락 한적 없다.

‘일단은 벌인 일이니까.’

수습하는 거다. 대장 브라이튼에게는 캐리언족 여자를 끌고 오며 뱉은 말처럼 수상한 내막은 없는지 밝히려고 라고 하는 거다. 대장이 보내라고 하면 보내면 된다. 그런데 솔직히 저 캐리언족 여자는 욕심이 난다.

‘본부로 데려가기 전에 어디서······’

욕심과 충동이 어우러진 생각을 삼키던 쉬타이너는 경고음을 들었다. 게틀러의 외부감지장치가 내는 경고, 그 순간 급정거 했고 충격이 왔다.

* * *

삼백이가 따라오지만 강흑성은 전력으로 무원신풍보를 펼쳤다. 게틀러가 아직 멀리 가진 않았겠지만 서둘러야 한다. 그녀에게 대답을 들어야 한다.

‘패천마안.’

심중에 그것을 품고 강흑성은 수림을 가로질러 달려갔다. 삼목울프를 비롯한 짐승들이 놀라 움직이는 기척을 인지하며 맹렬히 질주했다. 그러며 아쉬움을 삼켰다. 절정에 달한 무원신풍보라면 정말 바람이 될 터다.

‘거기구나!’

게틀러의 형상을 찾았다. 수림을 가로질러 온 계산이 맞았다.이젠 치는 거다.

‘거대수.’

게틀러가 나아가는 수림 사이 길을 앞으로 강흑성을 질러 나갔다. 느릿하고 여유롭게 진전하는 게틀러, 저 안에 있을 카이오를 생각하면서다.

‘지금.’

질주하던 신형을 멈춰 세운 강흑성은 흑청빛 안광을 뿜어냈다. 동시에 마검 패천마혈을 움켜쥐고 거대수를 갈랐다. 무원진격의 베기를 터트렸다.개틀러가 전진하는 수림 사이 길로 아름드리 거대수들이 우수수 쓰러졌다.

* * *

‘하, 이게 무슨 일인지, 제발 잘 돼야 할 텐데.’

샹그릴라를 뒤로 두고 달려가는 사장 박준의 짚차를 바라보며 그렉은 주먹을 움켜쥐었다.정말로 날벼락같이 생긴 일이다.정찰대가 들이쳐 카이오를 잡아가고 강흑성이 검을 쥐고 달려가고 박준과 무슬란도 갔다.

‘정찰대를 치는 일이······!’

사장 박준 형제의 복수는 언제고 있을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느닷없이 행동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 촉발이 카이오, 그리고 강흑성이다.

‘흑성이 놈,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정말 카이오를 좋아하기라도 하는 거야? 그래서 이런다고? 아니야, 그놈은 그럴 놈이 아니야.’

부정으로 그렉은 머리를 흔들었다.간간히 옅은 미소만 보일뿐인 놈, 여태 일하면서 강흑성이 소리 내 웃는 걸 본적이 없다.그렇다고 완전히 로봇같은 놈은 아니다.그렉 자신과는 대화도 잘 하고 스스럼없던 놈이다.

‘그렇지만 속을 알 수 없는 놈.’

강흑성은 그런 존재다.명희 같은 아이들에게만 웃는 얼굴을 더 보일뿐인 놈이다.그놈이 캐리언족 아가씨의 미모에 빠져 이런다곤 생각 안 된다.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는 거다,그런데 그게 뭔지를 전혀 모르겠다.

‘뭐든······ 제발, 다들 무사하기를.’

그렉은 간절히 바라며 기원했다. 아끼던 지프를 타고 달려간 사장 박준도, 수림으로 달려 들어간 무슬란도, 혼자 앞서간 강흑성도 무사하기를.

* * *

“뭐야?”

눈썹을 확 곤두세우며 쉬타이너는 외부 카메라로 상황을 인지했다.거대수들이 쓰러져 앞길을 막았다.그중 하나는 게틀러의 앞을 치고 쓰러졌다.이런 일이 그냥 생기진 않는다, 자동반사적으로 명령을 내렸다.

“전투준비!”

스무 명의 정찰대원은 천산마갑슈트의 전투력을 높이며 빔소총을 움켜쥐었다.

“벌컨으로 전방부터 뚫는다!”

이어 나온 쉬타이너의 명령대로 게틀러의 전면부에 벌컨 포신이 돌출했다.투르르르르, 하는 굉음을 수림이 퍼트리며 빔줄기를 퍼부어냈다.쓰러진 거대수들은 터지고 분해되어 흩어졌다.길은 다시 훤하게 얼렸다.

“하차!”

쉬타이너의 세 번째 명령과 함께 게틀러의 후문이 열리고 정찰대들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소총을 견착하고 게틀러 주변에 낮은 자세로 붙었다.그들 속에 든 쉬타이너는 수림 사방을 주시하며 감지기를 확인했다.

‘뭐야 이거?’

멀티폰 열감지기엔 이렇다 할 것이 잡히지 않는다. 게틀러 주변에 온혈동물이 없다는 거다. 게틀러에 붙은 대원들만 붉은 점으로 감지된다.

“동서남북 훑어.”

쉬타이너의 명령대로 게틀러는 오토액션모드로 작동했다.외부의 카메라와 동작감지기가 사방을 훑었다.수상함을 포착하면 벌컨을 퍼부을 거다.그런데 그 순간 머리 위에서 뭔가가 떨어졌다. 빗방울 같은 것이다.

‘응?’

슈트와 머리에 떨어진 물방을, 수액방울인지 뭔지 모를 그것을 쉬타이너는 손으로 훑어냈다.그 순간 기이한 감각이 손을 타고 들어오는 걸 느꼈다.머리도 마찬가지다. 뭔지 모를 감각, 위험하다고 예감이 외친다.

“전원 헬멧과 장갑 착용한다!”

소리치며 헬멧과 장갑을 슈트에서 돌출시킨 쉬타이너는 늦었다는 깨달았다.

‘헉!’

손과 머리에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 피어났다.그걸 느낀 순간 슈트의 팔에 장착된 주사기를 꺼내 목에 박았다.용암과 빙산이 충돌하는 감각 속에서 전신을 부들거렸다.주사기 잡은 손이 녹아내리는 걸 봤다.

“크어어······!”

발작하는 모습으로 전신을 뒤틀며 쉬타이너는 봤다. 게틀러 주변의 대원들, 부하들이 자신처럼 경련하며 쓰러지는 모습, 녹아버리는 광경이다.

“크어······ 케르르······”

피가 끓는 소리를 흘려내며, 피를 게워내며 쉬타이너는 늘어졌다. 그렇게 또 봤다. 머리 위 거대수에서 내려온 사내, 샹그릴라의 직원 놈이다.

“느어······”

경련하는 눈동자로 피와 함께 마지막 말을 뱉어내는 쉬타이너, 그 목에 검이 박혔다. 샹그릴라의 직원, 젊은 사내의 장검이 쑤시고 갈라냈다.

* * *

짚차를 멈춘 박준은 얼어붙은 채 움직이지 못했다. 소총과 저격총, 차에 싣고 온 무기들은 사용해보지도 못했다. 이렇게 달려온 게 허무할 결과다.

‘혼자서······!’

강흑성이 끝장냈다.쉬타이너의 정찰대 3팀을 몰살했다. 놈들의 형상이 핏물로 녹아내리고 있다.보고 있지만 믿기 힘든,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헤에······”

누군가의 숨소리, 자신과 같은 눈을 한 무슬란의 것임을 박준을 알았다. 지프에 같이 탈수 없어서 수림을 헤쳐 달려온 그가 눈동자를 떨고 있다.이 황당하고 엄청난 일을 만든 자, 강흑성이 카이오를 데리고 다가온다.

“여기 흔적을 지우고 다른 곳으로 게틀러를 옮겨야 합니다.”

카이오를 넘기듯 돌아선 강흑성은 슈트만 남은 형상들을 조치하기 시작했다.바디캠을 파괴하는 일이다.박준은 후드득 정신을 차리고 같이 움직였다.게틀러 안에 들어가 통신내역을 확인하고 흔적을 지워나갔다.독 바람이 퍼지는 수림엔 그 어느 때보다도 고요한 적막이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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