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강호. 36. 후속행동.
36. 후속행동.
임진강.장구한 세월을 흘러왔고 흘러갈 강 앞에서 박준은 게틀러를 돌아봤다.핏물로 녹아버린 정찰대 3팀.그들이 착용했던 천산마갑슈트만 저 안에 있다.저걸 취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위험하단 강흑성 말이 맞다.
‘이제부터가 더 중요하니까.’
정찰본대는 이 결과를 알게 될 것이다.그러니 절벽에 매달려 끊어지기 직전의 줄만 겨우 잡고 있는 꼴이 됐다.정찰본대가 내막을 알아채고 공격하기 전에 끝장내야 하는 거다.그런데 그건 불가능에 가깝다.
‘지금 현재로서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시간만 있으면 놈들을 죽이는 게 가능하다.저 게틀러가 답이다.황당한 결과, 강흑성이 만들어냈다.이건 뭐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일, 생각할수록 황당하고 충격적인 결과다.하지만 해 냈다.
‘우선은 시간을 벌고 정찰본대를 제대로 칠 계획을 짜야 해.’
강렬한 안광을 번득이며 박준은 게틀러로 다가갔다. 이두마차에 쓰는 마차바퀴만한 커다란 바퀴가 좌우로 네 개씩 여덟 개로 굴러가는 장갑차다. 최고시속 백키로로 돌진하면 괴수들도 도망치는 강력한 무기다.
‘제대로 했어.’
내부를 들여다보며 박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통신기록과 주행기록을 포함한 모든 흔적을 제거하고 제어부를 파괴했다. 이제 불을 붙이면 된다.
‘메인제어장치가 파괴되는 순간 정찰본대에 신호가 떴겠지.’
그러니 시간이 없다. 연료탱크를 폭발시키고 이곳을 떠야 한다.크리듐 에너지로 차 있는 연료탱크는 커다란 폭발로 화염을 낼 거다.그 불을 끌어 지나온 길, 이동한 흔적들을 지워야 한다.이제부턴 뛰어야 한다.
“무슬란, 준비해라.”
돌아보며 무슬란을 향해 마지막을 말한 박준은 흠칫했다.임진강을 바라보고 서 있는 무슬란의 모습에서 슬픔과 분노를 느껴서다.그렇다, 이 강 너머에 동생 박현과 무슬란의 부족마을이 있었다.그들은 이제 사라졌다.
‘죽일······!’
새삼스럽게 치미는 살기와 분노를 삼키며 박준은 무슬란을 다시 불렀다.
“불붙일 거다!”
힘 실은 목소리로 외치듯 말한 박준은 무슬란이 느릿하게 돌아서는 것을 보고 움직였다.도화선이라고 부르는 수림의 덩굴에 불을 붙였다.연료탱크해치를 열고 t-rex총의 탄환을 분해해 부어넣은 화약에 이어져 있다.치지지, 소리를 내며 정말로 도화선처럼 타들어가는 덩굴로부터 박준은 물러났다. 게틀러로부터 빠르게 물러났다. 준비 중인 무슬란의 등에 점프해 업혔다. 그러며 보니 강흑성이 지나온 길에 덩굴들을 뒤덮고 있다.
‘게틀러에서 시작된 불이 수림으로 확실하게 번져 들어오겠구나.’
뛰기 시작한 무슬란의 빠른 움직임에 감탄하며, 강흑성의 모습이 보였다 안보였다 반복하는 것을 응시하며, 박준은 등 뒤의 폭발소리를 들었다.
* * *
“지프는 처분안하는 게 낫다고요? 바퀴자국 같은 건 어쩌려고요?”
불안과 의문으로 가득 찬 그렉의 눈을 돌아본 박준은 맥주를 한 모금 넘긴 후에 대답했다.
“놈들을 독살한 수림 속 현장도 말끔하게 치웠다. 흑성이가 독을 뿌려서 전부다 녹여버렸어. 거긴 이제 접근하기만 해도 중독돼서 죽을 거다. 산초를 독에 섞으면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 솥에 담겨 있을 때랑 다르지.”“그래요? 그건 알겠는데 거기까지 샹그릴라에서 이동한 지프바퀴 자국은요? 그것도 다 지웠다는 소립니까? 그게 돼요? 전부 불태웠단 소립니까?”
그건 아니잖아, 하는 눈으로 그렉은 수림 쪽을 돌아봤다.검은 연기는 북쪽 저 멀리, 임진강부근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흑성이 말이, 뭔지 모르지만 엄청나게 강한 독을 가진 괴수 같은 게 데빌그라운드에서 나왔다는 거지. 그 독기운으로 수림이 이상해져서 우리가 지프를 타고 나갔던 거고. 게틀러 바로 옆에까지 접근했던 건 아니니까.”
그렇게 주장하자는 거다. 그러니 바퀴자국 따위야 얼마든지 설명 가능하다는 박준의 얼굴, 그렉은 옅은 황당황과 동시에 그럴듯한 이해를 품었다.
“흑성이가 그렇게······”
주억거리며 그렉은 불안과 충격과 의문을 뒤섞어 삼켰다.마치 준비해 놓은 일처럼 흐름을 만들고 있는 강흑성, 알지만 모를 그놈이 놀랍다.아니 놀랍다는 말로는 부족하다.이번에는 정찰대를 독으로 몰살했다.
‘한 팀 스무 명 뿐이었다지만······’
정찰대 한 팀이면 엄청난 전력이다.그들이 천산마갑슈트와 게틀러로 무장한 파워는 야수족 마을 몇 개를 쓸어버린다.그런데 핏물로 녹여버렸다.그 현장에 없어서 직접 못 봤지만 박준과 무슬란의 놀람을 공감한다.
“정찰본대에서 3팀의 결과를 지금쯤은 보고 있을 거다.”
북쪽의 검은 연기를 바라보며 박준은 무거운 숨으로 목소릴 이어냈다.
“이제부터가 정말로 중요해.”
스스로에게 경고하는 말을 뱉어낸 박준은 그렉을 돌아보고 눈빛을 누그러뜨렸다.
“원치 않는 일에 훠말리게 해서 미안하다.”
그렉은 당황했다.여태 겪어온 사장 박준은 미안하단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그런데 그 말을 냈다. 저 눈은 진심이다.이 일이 그런 일이다.
‘날벼락처럼 생긴 박현의 일처럼 난데없이 벌인 정찰와의 전쟁. 엄밀히 나하곤 상관없는 일.’
사장 형제의 복수, 그 일에 휘말린 거다.애초에 끼겠다는 의사를 낸 적 없으니 떠나면 그만이었다.이득은 없고 위험만 있는 일.정말로 떠날 생각은 없지만 각자의 처지와 냉정한 현실인식에선 그게 맞는 일인 거다.사장 박준도 그런 의미로 말하는 거다.그런데 이렇게 됐다. 이젠 빠지고 싶어도 빠질 수 없다.샹그릴라로 정찰대가 찾아 올 거다.타이그란 직원이 사라진 걸 수상히 여길 거다.이젠 어쩔 수 없이 한배를 탄 거다.
‘흑성이 놈이 행동하는 바람에.’
원인과 결과를 만든 강흑성을 생각하며 그렉은 의문을 말했다.
“흑성이가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정찰대 3팀을 뒤쫓아가 독으로 몰살한 이 엄청난 결과, 거듭해서 생각할수록 놀랍고 두려운 이결과는 짐작이 안 된다. 그런 그렉의 호랑이 눈을 마주본 박준은 시선을 다시 북쪽으로 돌리며 무거운 숨을 내쉬었다.
“나도 모르겠다. 그놈만 알겠지.”
정말 모를 일, 그렉처럼 강흑성도 박준 자신 형제의 복수와는 무관한 처지다. 동참을 권유하라는 무슬란의 의견에 솔깃할 때 일이 터졌다.
‘그 이유를 지금 이야기 하고 있는 거냐?’
카이오와 함께 숙소에 있는 강흑성을 생각하며 박준은 맥주를 벌컥대고 마셨다.
* * *
“몰살? 독으로?”
흥분으로 몸을 들썩거리는 박현을 무슬란은 진정시켰다. 그러며 자세히 이야기 했다. 강흑성이 정찰대 3팀을 어떻게 쓸어버렸는지, 놈들의 최후가 어땠는지다. 그 후에 이제부터가 정말로 위험하고 중요함을 말했다.
“정찰본대가 움직일 거다. 당황하고 분노한 놈들의 눈길 아래로 굽신대며 시간을 번다는 계획이다. 정찰본대를 정탐해 약점을 찾아내자는 거야. 그 후에 이번처럼 골로 보내자는 거지. 강흑성 그놈, 정말 대단하더라.”
감탄으로 마무리한 무슬란을 보며 박현은 몸을 떨었다.
“그것들을······! 귀신대가리들을······!”
죽인 거다, 팀 하나를 몰살했다.엄청난 일이다. 듣고도 믿기지 않는 일이다.그런데 사실이다.강흑성은 약속대로 독을 만들었고 그걸 사용했다.
‘블루마운틴을 죽인 놈······!’
불가해한 존재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모르겠다.형 박현의 말이 정말인 것 같다.환골탈태를 했고 마검의 힘을 흡수한 존재, 그게 강흑성이다.그런 배경이 없으면 말이 안 된다.이건 정말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지금도 모르겠는 게 그놈의 마음이다.”
귀를 파고든 무슬란의 묵직한 숨소리에 박현은 시선을 들었다.
“강흑성, 그놈이 왜 갑자기 그랬냐는 거지.”
전후를 들어 알고 있다.강흑성이 구한 여자들 중 카이오란 캐리언족 아가씨 때문이다.그 여자를 살리려고 강흑성은 춘천까지 다녀왔다. 그녀가 잡혀가자 그렇게 행동한 거다.이유라면 그건데 정확한 걸 모른다.
“카이오란 그 여자를 좋아해서 그랬다기엔······ 뭔가 부족하고 선명하게 설명이 안 된다. 강흑성이란 놈을 보고 있으면, 그놈 눈동자를 보면 뭔가······”
무슬란의 의문, 박현은 같은 의문을 품은 눈으로 말했다.
“뭐든 무슨 상관이냐. 어쨌든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된 거잖아.”
원하는 대로, 강흑성과 그렉을 참여케 하는 거다. 그렇게 이뤄졌다. 이젠 좋든 싫든 정찰대와 끝장을 내야 한다. 누구든 발을 뺄 상황이 아니다.
“그래. 우린 우리 목적대로 싸우면 되는 거지.”
고갤 끄덕이는 무슬란, 그러나 그 눈에도 마주 보는 박현의 눈동자에도 의문은 그대로 들어 있었다.
* * *
불길이 잦아드는 수림을 돌아본 브라이튼은 악마 같다는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펴지 못했다. 다시 바라보는 눈앞의 게틀러는 고철이 됐다.3팀이 사용하는 전술차량, 크리듐 연료탱크가 폭발해 수림까지 불태웠다.
‘단 한명의 생존자도 없이 몰살.’
어처구니없다는 말도 못할 결과다.3팀은 팀장 쉬타이너를 비롯한 전원이 사망했다.그들이 착용했던 슈트만 게틀러 안에서 불타고 있다.슈트의 바디캠과 기록장치는 모조리 파괴됐다. 게틀러의 장치도 마찬가지다.
‘누가? 어떻게?’
황당한 충격을 삭이지 못한 채 브라이튼은 이 결과를 악물었다.3팀의 몰살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본부에서 확인한 대원들의 생체신호는 사라졌다.그럴 일이 없기에 관심 없고 확인도 안하던 그 시스템을 확인했다.
‘이게 무슨 일인지 알아내야 해······!’
브라이튼은 이 가는 숨을 몰아 내쉬었다. 정말로 위기감이 엄습해서다.
‘크리둠 때문이라면······’
움바바족 마을을 없애고 차지한 크리듐광산의 기쁨을 만끽하던 중이다. 만에 하나 연관된 일이라면 사활이 걸린 거다. 어떻게든 수습해야 한다.
“3팀의 이동경로를 파악해라!”
소리쳐 명령을 내린 브라이튼의 머리 위에선 노을이 출렁이고 있었다.
* * *
티백이 든 찻잔을 두 손으로 쥐고 카이오는 숨결을 가다듬었다. 마주 앉은 강흑성으로 인한 심중의 동요를 제어하려고 거듭 숨을 들이마셨다.
‘나를 세 번이나 살려주신 분.’
강흑성은 그런 존재다.정찰대에게 끌려가던 자신을 구하기 위해 달려왔다.귀신대가리라고 부르는 그 무서운 자들을 몰살했다. 독으로 그렇게 했다.그런데 카이오 자신이 중독괴지 않은 건 강흑성의 피 때문이다.
‘처음 츄란족 노예사냥꾼들에게 구해주실 때······’
그때 강흑성의 피로 만든 해독약을 복용했다.그 피가, 강흑성이란 은인의 피가 이 몸에 흐르는 거다.그건 명희와 제닌을 비롯해서 다 마찬가지지만, 더욱 특별하고 귀하게 여겨진다.강흑성은 자신을 위해 싸웠다.
“말씀하십시오.”
카이오는 먼저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에 강흑성은 눈썹을 꿈틀하며 시선을 들었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한참동안 생각하던 눈동자에 힘을 싣는다.
“패천마안, 그것을 어떻게 알고 있는 겁니까?”
흑청빛 안광을 흘려내는 강흑성의 눈을 마주 보지 못하고 카이오는 시선을 내렸다.이 이야기를 하던 중에 잡혀갔단 것을 상기했다.그렇게 알아지는 것은 강흑성이 자신을 구한 이유다.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은인께서 그것을 어떻게 아는 지, 왜 묻는지, 아무 상관없어. 그것 때문에 나를 구한 거라고 해도.’
단단하고 소중한 마음을 가다듬으며 카이오는 입을 열었다.
“오래전부터 꿈을 꾸었습니다.”
잔잔한 목소리를 카이오는 이어냈다. 정확하게 언제인니 모르지만 잠이 들며 꾸게 되던 꿈이다, 붉은 눈동자의 꿈이다. 그것이 패천마안이다.그 이야기를, 카이오의 오래된 꿈을 강흑성은 말없이 들었다.의문과 다른 생각 따위는 밀어냈다.카이오란 캐리언족 여자가 왜 그런 꿈을 꾸는지 모를 일이다.들어도 이해 못할 거다. 마검처럼 들이닥친 일인 거다.아니 어쩌면 마검을 가지고 있기에 필연으로 찾아온 일인지도 모른다.헤아리지 못할 다른 인과가 있는지도 알 수 없다.알려고 하면 할수록 더 알 수 없는 일일 거다.그냥 받는 거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알아야겠다.
“그것이 스스로를 패천마안이라고 알려줬다는 건데, 어디에 있는지도 압니까?”
카이오는 샛별 같은 눈동자로 강흑성을 응시하고 대답했다.
“태산, 그곳에 있다고 했습니다.”
강흑성은 흑청빛 눈동자를 강렬하게 빛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