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37화 (38/172)

혹성강호. 37. 언제나 같은 일, 죽느냐 죽이느냐.

37. 언제나 같은 일, 죽느냐 죽이느냐.

‘지독한 독.’

수림의 거대수들이 독에 말라죽은 현장이다. 슈트의 헬멧을 내고 바이오웨폰대응기능을 작동하지 않으면 접근조차 할 수 없는 레드존이 됐다.

‘여기서 무슨 일인지 벌어졌어, 그 후에 임진강으로 게틀러가 이동된 거고.’

악마족 특유의 눈동자를 번득이며 브라이튼은 전후를 짐작했다.쉬타이너의 3팀이 마지막으로 통신한 것은 5팀이다.임진강까지의 정찰임무를 수행하던 3팀은 이곳을 지나 샹그릴라로 간 것이 마지막 행적이다.

‘청수통을 채우기 위해서.’

그 일을 마치고 돌아 나와 임진강으로 이동하던 중에 당한 거다.그런데 공격주체가 누구냐가 핵심이다.괴수 간을 삶아먹지 않은 이상 정찰대를 공격한다는 건 꿈도 못 꿀 일이다.그 일을 누군가 했고 몰살했다.

‘이렇게 만들 능력이 있는 누군가가.’

새삼스럽게 소름이 돋고 털이 곤두서는 걸 느끼며 브라이튼은 고개를 흔들었다. 크게 숨을 들이마셔 감정을 추스른 후 다시 냉정하게 생각했다.과연 누가 이렇게 한 것인지, 지금 어떤 위험을 더듬고 있는 것인지.

‘크리듐, 그것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보는 게 맞아.’

가장 합리적인 개연성이다.위험하긴 하지만 이런 일이 생길 배경이 없는 곳이 북부정찰대의 관할이다.그런데 생겼다. 정찰대 한 팀의 몰살이란 커다란 사건이다.크리듐을 확보하고 난후에 생긴, 우연이 아닌 거다.

‘움바바족 공격당시에 살아남은 잔당들이?’

역시 합리적 추론이다. 그렇지만 무리한 가설이다.몇몇이 살아남았다고 해도 그들의 능력으론 이렇게 할 수 없다.천산마갑슈트를 착용한 정찰대 스무 명을 몰살했다.시체도 안 남았고 슈트만 게틀러 안에서 불탔다.

‘천산마갑 슈트는 왜 안 취한 걸까?’

강력한 의문의 또 다른 하나는 그 부분이다.

‘신병이기까진 아니라 해도 누구나 탐내는 전술무기가 바로 슈트, 그런데 왜?’

착용자에게 맞춰 프로그램 돼 있는 게 천산마갑슈트다. 그러니 아우르지 못할 자에겐 무용지물이다. 하지만 블랙시티의 블러드마켓을 통하면 그런 것쯤은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슈트 스무 기를 게틀러와 같이 태웠다.

‘필요 없다? 그 정도다?’

그렇게 강한 무력을 가진 존재 혹은 세력이라면 정말로 위험에 직면한 거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럴만한 적이 누가 있는지 더듬어지지 않는다. 한 가지 떠오르는 거라면 단혈보검을 취해 사라진 마인이다.

‘그런 자라면······!’

카슨팀이 샹그릴라에서 벌인 전투영상을 봐서 안다.단혈보검을 마검으로 변하게 한 붉은 엘프의 무력은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였다.빔줄기를 검으로 잘라내는 무력인 거다.그런 존재와 싸운 자가 바로 마인이다.

‘만에 하나 그자가 개입된 거라 해도 왜?’

이유를 모르겠다.크리듐에 대해 인지하고 차지하기 위해서라는 게 가장 근리한 해석이지만, 마검을 취해 도주한 자가 다시 나타나 이런다는 건 무리지 싶다.무엇보다 그자는 부상을 입어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흔적조차 찾지 못한······’

새롭게 돋아나는 불안의 짐작을 삼키며 브라이튼은 샹그릴라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독에 오염돼 레드존이 돼 버린 이 수림 지나 저편에 그들이 있다.음식과 술을 파는 샹그릴라, 이번에도 그것들이 신경에 거슬린다.

‘어째서 사건이 일어나면 너희들과 이어지는 거냐?’

깊게 찌푸린 미간으로 브라이튼은 상상했다.샹그릴라의 사장 박준이 정체를 숨긴 반화성조직의 수괴라든지, 진면모를 감춘 테러범죄단인지다.그런데 이렇게 저렇게 갖다 붙여 봐도 어울리지 않는 그림일 뿐이다.

‘기분 나쁜 놈이긴 하지만, 돈만 밝히는 장사꾼이야.’

중부지구 사령관 그리샴을 거론하며 턱을 세웠던 놈, 그놈이 정의감에 여자들을 구했다는 건 웃기는 개소리다. 분명 다른 목적과 이익을 위해서다. 그놈의 눈알 깊은 곳의 속셈을 다 알 순 없지만, 그런 놈이다.

‘그런 놈 계산 따위 알 바 아니지만.’

때가 되면 손을 봐주리라 마음먹은 놈이다. 하지만 놈이 정말로 그리샴을 안다면 정말 골치가 아파진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블러핑 같다. 그냥 장사꾼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지난 몇 년간 지켜본 결과다.

‘어쨌든 네 얼굴을 다시 봐야겠구나.’

샹그릴라로 갈 마음을 먹은 브라이튼에게 팀장들의 보고가 들어왔다.

“주변에 많은 동물들이 죽어 있습니다. 트라이울프와 자이언트레빗, 심지어는 블루마운틴도 있습니다. 독에 중독돼 절반은 녹은 상태입니다.”

현장 주변 보고를 들은 브라이튼은 새삼 한기를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바로 다른 보고가 왔다. 이번 결과는 정말로 놀랄 노자다.

“테스라들이 죽어 있습니다.”

보고한 팀장을 따라 브라이튼은 바로 움직였다.거대수들이 녹아 작은 공터가 된 레드존을 벗어나 50m 정도를 이동한 곳이다.땅이 파헤쳐진 곳에 테스라들이 기어 나와 죽어 있다.맹독을 가진 이놈들도 죽은 거다.

‘미친······!’

중첩된 충격과 놀람으로 브라이튼은 눈썹을 떨었다.정황을 보니 테스라 중의 한 놈 혹은 몇 놈이 독에 접근했다가 돌아와 다른 놈들까지 죽은 거다.도대체 얼마나 강력한 독이길래 이정도인지 보고 있지만 무섭다.

“대원들에게 해독제를 이차로 투여해라.”

이 악문 숨으로 명령을 내린 브라이튼은 샹그릴라를 향해 몸을 돌렸다.

* * *

‘죽느냐 죽이느냐.’

어머니의 말씀, 그것을 심중으로 되뇌며 강흑성은 운기조식을 마쳤다.환골탈태를 한 몸은 아무런 막힘없이 기운이 전신 혈맥을 치고 달린다. 그렇지만 아직 내공화후는 일천한 경지, 끊임없이 연마하고 닦아야 한다.

‘적과 싸우는 일은 어제나 같은 것. 죽이지 않으면 죽는 것.’

오직 그것뿐이라고 어머니는 말하셨다.이 가혹하고 비정한 세상에선 그런 거다.인정이나 사랑이니 하는 것은 사라진 세상이기에 그렇다.죽임 당하지 않기 위해선 싸워야 하고, 죽이는 자가 되어야 하는 거다.

‘그렇기에 패천마안을 찾아야 해.’

마검의 힘을 흡수한 존재가 강흑성 자신이다.그 힘이 어느 정도이고 어떠한 것인지 짐작이 가면서도 모른다.환골탈태를 한 몸이지만 야무치의 이빨에 씹히고도 무사한 것은 그 때문이 맞을 거다.마검의 마력이다.

‘패천마혈과 몸 안의 마력이 공명하기 시작하면 정말 힘들어.’

그렇지만 다스리고 있다. 마검의 힘에 영혼이 먹혀 버릴 뻔한 처음이후로다. 야생마처럼 날뛰던 마검의 힘은 거칠지만 순응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정밀하게 그 힘을 사용할 수가 없는 것이 현재의 처지다.

‘제어하고 있는 선을 넘어가면 어떤 일이 생길지도 알 수 없고.’

방법은 강흑성 자신의 순수함 힘을 기르는 거다.더 크고 강하게 단련해 나가는 거다.마검의 힘을 아우른다면 더 강한 존재가 될 것이다.그렇게 하기 위해서 패천마안이 필요하다.그것은 마검의 정화다.

‘대륙, 태산.’

그곳에 패천마안이 있다고 카이오는 말했다.그녀가 어째서 그런 꿈을 꾸었는지는 모르겠다.그녀의 말대로 캐리언족 무녀로 신내림을 받아서 인지 알 수 없다.기이한건 그런 그녀가 강흑성 자신과 만난 것이다.

‘운명처럼.’

단혈보검으로 알려진 마검 패천마혈이 찾아온 일과 같다. 마교의 힘을 모은 마검은 어떤 우주의 조화인지 강흑성 자신을 선택해 찾아온 거다.

‘헛소리일지라도 이 결과는 받아들이고 취하는 거야.’

그게 사는 거다.이기는 거고 죽이는 거다.다른 자의 손에 짐승처럼 죽임당하지 않는 거다.제물로 바쳐지기 위해 사육당하지 않기 위해서다.

“후우우.”

깊은 숨을 내쉬며 강흑성은 가부좌를 풀고 일어섰다. 그 순간 소리가 들렸다. 괴수의 울음 같은 게틀러의 주행음, 예상대로 정찰대가 왔다.

* * *

“작전 중이다?”

텅 빈 정찰본대장의 집무실을 돌아보며 진류는 흐릿한 미소를 입가에 물었다.북부지구정찰대를 감찰하라는 명령을 받고 온 행보.언제 온다고 통보 같은 건 하지 않았지만 대장 브라이튼이 부재한건 예상 밖이다.

‘다섯 팀이 나간 작전이란 말이지?’

저녁노을이 들이치는 정찰본대의 전경을 창밖으로 내다보며 진류는 턱을 쓸었다.북부지구 정찰대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예감이 곤두선다.화성에서 인지한 이곳의 누적된 이상상황과 합쳐진 예감이다.

‘치안총국의 예견프로그램에 의하면 분명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사건사고의 회수와 주변 환경에 대한 변화추이를 누계해 예측하는 프로그램이다. 화성정부의 정식허가를 받은 것이 아니지만 치안총국은 최근에 그걸 사용하고 있다. 그 결과를 토대로 하면 북부정찰대는 레드다.

‘그게 뭔지 알아보려고 왔더니 이렇게 손을 흔들어 주네.’

정찰대장 브라이튼이 다섯 팀을 끌고 나간 상황, 남아 있는 팀장들은 시선을 회피하고 피하고 있다. 대장 브라이튼이 돌아오면 물어보란 거다.당연히 그럴 테지만 이 분위기는 쎄하다. 분노와 살기가 충만해 있다.

‘날 향한 게 아니라 다른 대상이야.’

분명히 그렇다.아무리 예고도 없이 찾아온 감찰관이지만 살기를 뿌릴 정도는 아니다.정찰대의 이 기운은 다른 적을 향한 거다.그게 누군가?

“브라이튼 대장, 내가 온 걸 알 텐데. 빨리 오시길.”

창밖을 향해 중얼거림을 흘려낸 진류는 돌아서 테이블에 앉아 차를 마셨다.

* * *

“제길 이런 때에······!”

브라이튼은 또 이를 갈았다. 감찰관이 도착해 기다리고 있다는 보고다. 이렇게 빨리 올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시간상으로 화성에서 온 게 아니다.

‘어디 있다 왔든, 지금은 지금 할 일을 마치자.’

생각과 마음을 정리한 브라이튼은 게틀러가 멈추는 것과 동시에 밖으로 나갔다. 오면서 발견한 차바퀴자국을 생각하며 걸음을 빨리 내디뎠다. 어색한 미소로 당황을 보이는 샹그릴라 사장 박준이 다가오고 있다.

“대장님, 어서 오십시오.”

적당히 반갑고도 부담스러운, 또 적당히 두렵고 꺼려지지만 장사꾼이란 이런 얼굴을 해야 하는 거야라는, 누가 봐도 알 모습으로 박준은 웃었다.

“저녁식사와 술이 필요하신가 봅니다. 어, 그런데······”

브라이튼의 뒤를 본 박준의 장사꾼 미소가 경직으로 변하는 걸 브라이튼은 분명히 봤다. 게틀러 다섯 대가 멈추는 광경이기에 당연한 반응이다.

“여기서 육백미터 떨어진 거리의 수림 안쪽에서 사고가 있었다.”

브라이튼이 말하는 동안 정찰대원들은 소총을 겨누고 샹그릴라로 진입했다.그렉과 삼백이를 홀과 주방에서 몰아내오고, 강흑성과 여자들을 숙소에서 몰고 나왔다. 그 상황 속에서 박준은 두려운 눈동자를 흔들었다.

“무, 무슨 일로 이러시는 겁니까?”

경직된 목소리로 묻는 박준, 그 눈동자를 똑바로 응사하고 브라이튼은 말했다.

“차바퀴자국이 그곳에서 샹그릴라로 이어지던데?”

브라이튼이 다시 말한 순간 정찰대원들이 2창고 안의 짚차를 찾아냈다. 시동을 켜고 밖으로 끌고나온 그 차를 돌아봤던 브라이튼은 다시 물었다.

“수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겠지?”

흉악하게 번득이는 악마족의 눈동자, 박준은 감히 마주보지 못하고 고갤 숙였다.

“거, 거길 갔었던 건 맞습니다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는 모릅니다.”“모른다? 저 지프를 타고 거기 갔다 왔는데 모른다?”

슈트의 전투대검을 뽑아 당장이라도 후려칠 기세, 박준은 목을 움츠리며 입을 열었다.

“수, 수림에서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크게 퍼지길래, 혹시 또 위험한 일이 닥치는 건가 싶어서 가 봤습니다. 총기로 무장하고 가 봤더니 블루마운틴 한 마리가 몸부림치고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몸뚱이가 녹아버리고······”

이어지는 박준의 이야기를 브라이튼은 섬뜩한 데바족의 눈으로 응시하며 들었다. 헬멧을 쓰지 않아 너무나 잘 보이는 이마의 뿔은 더 흉측했다.

“독이란 걸 직감했습니다. 즉시 물러나며 보니 삼목늑대 같은 맹수들도 죽어나가고 있더군요. 더 황당한 건 테스라들도 죽고 있었습니다. 뭔지 모르지만 정말로 무서운 독이 퍼진 거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왜 정찰대에 신고하지 않았지?”

차갑게 말을 자른 브라이튼을 힐긋 본 박준은 침을 삼키며 대답했다.

“그러려고 했습니다만, 통신기가 고장 났습니다. 알릴방법은 직접 찾아가는 것뿐인데, 보다시피 차에 기름도 다 떨어진 상황이라서 이렇게······”

기회를 보고 있었다는 박준의 시늉, 브라이튼은 부하들에게 눈짓했다. 확인하라는 지시, 바로 결과가 나왔다. 차에는 정말로 기름이 없었고 통신기는 작동 불능상태다. 절로 미간이 찌푸려진 미간으로 주변을 봤다.

‘여기 샹그릴라, 이곳에 있는 이것들이······’

사장 박준과 타이그란족 직원과 인간 직원과 로봇 하나, 그리고 여자와 아이들, 이들이 뭘 어떻게 했을 거란 생각이 들 만한 게 없다. 가능성이 전혀 없다. 그래서 또 화가 난다. 박준이 그리샴을 언급하던 게 그렇다.

“그리샴장군에게 여자들에 대해 말할 땐 통신기가 잘 됐을 텐데?”

네가 그랬잖아, 그리샴에게 말했다고? 하는 브라이튼의 눈을 박준은 피했다.

“아시다시피 샹그릴라는 새로 지은 거나 마찬가집니다. 카슨 대장 사건 때 거의 다 부셔졌죠. 그때 통신기도 데미지를 입은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된 겁니다. 영상기록장치는 아직 새로 마련조차 못했습니다.”

브라이튼은 눈을 반짝였다.

“그래?”

샹그릴라 안팎을 보는 캠들이 없다는 말,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체크 할 수가 없다는 소리다. 쉬타이너가 다녀간 것도 그렇다는 이야기다.

“확인해 봐.”

브라이튼이 차갑게 명령을 뱉는 그 순간이다. 멀티폰의 비상신호가 명멸했다.

‘응?’

브라이튼은 눈을 치떴다.이 신호는 소요산에서 온 거다. 크리듐광산을 지키는 대원들이 보낸 신호다.공격을 당하고 있다는 신호, 가야 한다.

“전원 탑승!”

소리치며 브라이튼은 게틀러로 달려가 올라탔다. 그렇게 정찰대는 샹그릴라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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