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강호. 38. 흐름을 타고.
38. 흐름을 타고.
놀라고 겁에 질려 있던 제나와 진숙이가 기어이 울음을 터트렸다. 명희와 샤이닌이 달래는 가운데 그렉은 여자와 아이들을 진정시키며 숙소로 들여보냈다. 그러고 나와 보니 강흑성이 무장상태로 움직이는 중이다.
“야, 뭐하려고?”
물어보나 마나한 물음이란 걸 그렉은 뱉어 놓고 깨달았다. 이미 정찰대 한 팀을 몰살한 마당, 귀신대가리 전체를 해결해야만 하는 처지다.강흑성은 그 일을 하려는 거다. 조금 전 떠난 정찰대를 추적하려는 거다.
“갔습니까?”
밖으로 나온 무슬란이 긴장한 모습으로 상황을 묻는다.그 바람에 그렉은 기대할 수 없던 대답을 듣지 못했다.그렇다, 아무도 대답 못할 일이다.지금 이곳의 모두가, 자신도 원치 않았던 휘말림 속에 있는 상황이다.
‘시작했으니 닥쳐온 흐름······!’
그렉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흑성을 보던 사장 박준이 무슬란의 물음에 답했다, 다 함께 품은 목적으로, 간단명료하게 현황을 말했다.
“갔다. 흑성이가 놈들 뒤를 밟을 거다.”
강흑성을 돌아보는 무슬란의 눈동자가 반짝일 때 박준은 미간을 잔뜩 좁혔다.
“그런데 저것들이 갑자기 왜 저러는 거지? 어째서 저렇게 놀란 자이언트레빗처럼 돌아간 거지? 분명히 사달이 난거 같은데? 그놈 눈이 그랬어.”
그놈, 정찰대장 브라이튼이다. 그가 왜 그렇게 긴장하고 분노한 얼굴로 돌아섰는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듣고 있던 무슬란이 짐작을 말한다.
“크리듐 광산에 무슨 일인지 생긴 걸지도 모릅니다.”“크리듐 광산?”“소요산, 거길 차지하기 위해서 놈들은 우리 마을을 공격했습니다. 퓨리엔트족을 비롯한 야수족들을 몰살했습니다. 거기 일이 생긴 겁니다.”
박준은 차가운 눈빛을 강렬하게 흘려냈다.
‘그렇구나······!’
무슬란의 짐작이 맞다.반화성조직의 준동을 제압한 거라고, 그러고 있다고 떠들고 있지만 그게 진실이다.브라이튼을 위시한 북부지구 정찰대가 삼켜버린 크리듐 광산, 놈들이 감추고자 하는 욕심에 탈이 생긴 거다.
“흑성아.”
강흑성을 부르며 돌아본 박준은 뒷말을 내지 않았다.이미 앞뒤 정황을 다 인지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정한 얼굴과 눈동자여서다.그렇다, 강흑성이란 존재는 염려를 말하거나 첨언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누구보다도 잘 할 놈.’
이젠 그걸 확신한다. 의구심을 가질 이유가 하나도 없다. 무시무시한 독을 만들어 정찰대 한 팀을 허무하게 몰살한 존재다. 강흑성이 잘 할 거다.
“갔다 오겠습니다.”
어둠이 내려앉는 하늘을 향해 강흑성이 돌아서는 그때였다. 삼백이가 언제나처럼 장총을 들고 따라나선다. 강흑성은 멈춰 서서 담담히 말했다.
“정찰대가 송골매나 진돗개를 풀면 네가 포착될 수도 있다.”
군사용 로봇은 다른 로봇에 내는 작동신호를 가장 먼저 포착한다.그러니 이 일은 강흑성 자신 혼자서 해야 한다는 결론, 삼백이는 총을 내렸다.그렇게 바로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삼백이를 두고 강흑성은 떠났다.밤이 내려앉는 수림사이 길로 강흑성이 사라지는 걸 숙소 앞에서 카이오가 바라봤다. 그녀가 눈감고 두 손 모아 기원하는 걸 어둠이 더듬었다.
* * *
“전속력으로 달려!”
격하게 소리쳐 명령하며 브라이튼은 송골매가 보내오는 현장 영상을 봤다.소요산 계곡 사이에 위치한 광산, 동굴이라고 할 수 없이 광맥을 파들어 가던 곳이다. 그곳을 경비하던 5팀을 퓨리엔트족 놈들이 공격중이다.
‘갈아 마실 야수족 놈들이······!’
가슴을 태울 것 같은 분노 때문에 브라이튼은 숨이 가빠졌다.
‘저런 하등한 족속 따위가······!’
용납 못할 일이다. 감히 정찰대의 영역을 침범공격하다니. 아니 데바족의 재산에 손을 대려하다니, 이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야수족은 지배하던 것들이다. 위대한 데바족의 치하에서 순종하던 것들이다.
‘하찮은 것들이 감히······!’
참기 힘든 분노로 브라이튼은 손을 부들거렸다.데바족인 자신의 종족이, 데바인들이 노예로 부리던 존재들이 야수족이다.저들의 별을 침공해 정복했고, 저들의 유전자로 다른 이종족들도 만들어 낸 게 데바족이다.그러니 주인이고 상전이다. 야수족은 하인이고 노예인 거다.그러했던 일이 지구를 정벌하려다 실패한 육백년 전이라고는 하지만, 이제는 세상이 이렇게 되고 말았지만, 데바족과 야수족의 구분과 차이는 명확하다.
“벌레만도 못한 것들, 모조리 가루로 만들어 주마.”
심중의 결의를 브라이튼은 독백으로 흘려냈다. 치밀어 오르던 분노를 삭여내며 뱉은 가라앉은 음성, 그러나 게틀러 안의 대원들은 들었다.흠칫하며 실태를 깨달은 브라이튼은 게틀러 안의 부하들을 돌아봤다.
‘이런.’
스무 명 중에 절반이 야수족 출신, 라이피언족이 대부분이다. 강한 저들의 신체능력이 적합해서다. 게다가 라이피언 족은 친정부성향의 종족이다.
‘반골인 타이그란 족과는 다른.’
그런 라이피언족 부하들이 듣고 있는 가운데 실언을 했다.그렇지만 부하들은 적의만 번득인다.공격하고 있는 퓨리엔트족을 향한 살기다.브라이튼 자신이 흘려낸 말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다. 적을 향한 분노로.
“2분후 현장 도착합니다.”
게틀러 운전대를 잡은 부하가 던진 말에 브라이튼은 현실로 돌아왔다.2분후 도착, 이젠 피를 볼 시간이다.귀신대가리를 알려줄 때가 됐다.
“무장 점검한다. 정차와 동시에 전투에 돌입한다.”
결전의 명령을 내린 브라이튼은 소총을 움켜잡고 뜨거운 숨을 흘려냈다.
* * *
호흡을 가득 머금은 강흑성은 단전의 진력을 다리로 몰아 내렸다.그렇게 한다는 의념이 즉각 변화를 일으킨다.무원신풍보를 펼치는 몸의 밸런스를 맞추며 대지를 박차고 나가게 한다.그런데 힘이 지나치다.
‘읏, 근육이!’
다리의 근육이 터질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놀랍고 당황스럽다.여태 이런 적이 없었는데, 정찰대를 쫓아 수림을 헤쳐 나가는 지금 이 순간 이렇다.이전과는 다른 스피드를 내고 있다. 그래서 근육이 저항중이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호흡을 삼키며 강흑성은 속도를 늦췄다. 휙휙 지나가던 수림의 거대수들이 구분할 수 있는 속도로 달렸다. 그러며 의문을 품었다. 어째서 갑자기 무원신풍보가 진일보한 건지다. 그걸 근력이 못 받쳐주는 상황이다.
‘이정도면 사성의 성취.’
방금 전 펼친 스피드라면 그렇다.좋고 반가운 일이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이유를 알아야 한다.하지만 모르겠다. 굳이 찾아서 대라면 여태 무원신풍보를 펼치며 생사를 건 싸움을 했다는 것, 그 누적의 결과다.
‘징검다리를 하나씩 건너다보니 두개씩 뛰어넘게 된 것처럼.’
그런 게 아닐까 짐작하지만 정확히는 모르겠다.중요한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이 못 따라간다는 거다.무원신풍보라는 절기는 그런 거다.환골탈태로 재구성된 몸이지만 절정으로 가자면 단련된 몸이 필요한 거다.
‘두드려 담금질한 무쇠처럼.’
환골탈태로 재구성 됐기에 더욱 그런 과정이 필요하다.명검을 만들자면 그만한 공을 들여야 하는 법이다.환골탈태라는 좋은 쇠를 두드려야 한다.그러한 일을, 운기와 수련을 매일하고 있지만 더욱 매진해야 함이다.
‘몸이 견딜 수 있는 최대한으로 달려보자.’
무원신풍보의 속도를 높이며 강흑성은 수림 속을 달렸다. 그 질주에 놀란 수림의 맹수와 괴수들이 놀라 울음을 터트렸고 어둠은 깊게 내렸다.
* * *
‘인원이 더 모자라는 것 같은데?’
창밖의 정찰대 전경을 보며 진류는 미간을 좁혔다. 어둠이 완전히 내린 시간, 정찰대 본부인 이곳에 남은 대원들은 눈에 띄게 작은 숫자다.제대로 본 게 맞는지 모르지만 두 팀 사십 명 정도가 전부인 것 같다.
‘음, 브라이튼대장이 끌고 나간 다섯 팀 외에 정찰임무를 수행하는 팀들이 있겠지.’
나름의 짐작으로 수긍의 고갯짓을 하며 진류는 핵심을 다시 더듬었다.
‘문제는 브라이튼이 다섯 팀이나 데리고 나간 이유가 뭐냐야.’
보고서대로라면 이 지역에서 준동한 반화성조직 때문이다.그래야 말이 된다.퓨리엔트족의 조직화 세력화라는 이상현상과 더불어 여타 야수족들과의 연합을 통한 저항조작의 결성, 정말 그래야 앞뒤가 맞는 거다.
‘그게 진실인지 우선 가려내는 게 첫 번째.’
서늘한 눈동자를 빛내며 진류는 대전의 그를 떠올렸다.대륙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 그리샴장군, 그와 대면해 나누었던 이야기는 뼈를 때렸다.
‘정찰대의 대부분이 부패하고 현지화하고 있다는 소리.’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치안총국에서도 인지하고 있다. 그래서 진류 자신 같은 감찰관이 활동하는 거다. 그런데 이건 정말로 한계가 있다.
‘유배지나 다름없는 지구에서 활동하는 이상은.’
군대와 차별받는 정찰대다. 이등군대라고 말한다. 그 차별 속에서 험한 일을 해야 하고 대가를 바랄 수 없다. 정찰대는 독기와 분노만 갖게 됐다.
‘그 일만 없었다면 이렇게 까지 흘러오진 않았을 텐데······’
치안총국의 전신인 정찰총국, 그 수장인 정찰총국장의 쿠데타.
‘성공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미간 좁히고 문득 의문을 품었던 진류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무슨 생각을!’
정찰총국장과 그 세력이 벌였던 쿠데타는 제압됐다.대륙전쟁이 막 발발했던 이십년도 전의 일이다.총통은 정찰총국장을 사형시키진 않았다.
‘동생이니까.’
잡념을 털어내듯 다시 머릴 흔든 진류는 차가운 숨을 들이마시 현실을 되새겼다.정찰총국이 치안총국으로 이름만 바꾸고 유지되는 현실이다.그건 필요에 의해서기도 하지만 균형을 맞춰 다스리는 총통의 통치술이다.
‘군대와 치안총국이 서로 견제하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다시 뜬 진류는 가라앉은 독백을 흘려냈다.
“브라이튼 대장, 그래서 당신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건가?”
* * *
“전진!”
게틀러 밖으로 달려 나가며 브라이튼은 맹렬히 외쳤다.게틀러에서 떠오른 근두운들이 머리위로 지나가는 걸 보며 소총을 겨누고 달렸다.게틀러가 올라갈 수 없는 산비탈 위로 날아간 근두운들은 이내 공격한다.눈부신 빔줄기들이 계곡에 꽂히는 걸 보며 브라이튼은 다시 외쳤다.
“미니맘들은 앞서라!”
미니건을 잡은 사수들, 미니맘이라고 부르는 대원들이 슈트의 무서운 기동력을 발휘하며 산비탈을 차고 올라갔다. 이미 근두운의 공격에 우왕좌왕 흩어지기 시작한 퓨리엔트족들, 미니건의 화려한 울음이 강타했다.
트르르르르.
소형벌컨인 미니건의 무지막지한 빔줄기 세례에 퓨리엔트족들은 흩어졌다.팔다리가 떨려 나가는 인형처럼 춤을 추며 쓰러진다.참혹한 광경이다.그런데 그 누구도 참혹하다 생각 안한다.모두 살기로 소리친다.정찰대원들과 퓨리엔트족이 내는 전투괴성 속에 소요산은 흔들거렸다.
* * *
산사면을 비호처럼 차고 오르며 강흑성은 전투소리를 들었다. 지금 달려 올라가는 반대편 계속에서 나는 소리, 정찰대와 아수족이 접전 중이다.
‘퓨리엔트족.’
그들이다. 놀랍게도 그들이 정찰대의 크리듐 광산을 습격한 거다.애초에 움바바족을 공격하고 크리듐율 훔쳐가던 것도 퓨리엔트족이라고 했다.사냥꾼 대여섯이 일반적이었던 저들은 확실하게 변화하고 있음이다.
‘저건!’
머리 위를 지나가는 비행체를 발견하지 마자 강흑성은 바위틈에 스며들었다. 그렇게 비행체의 정체를 확인했다. 블랙시티 춘전에서 본 것이다.
‘근두운.’
원반형의 비행 드론, 십대초반 아이의 육신만한 크기다. 지상으로 퍼붓는 화력이 무섭다. 그런데 위로 솟구친 빔줄기에 맞았다. 그대로 폭발한다.
‘누군가 맞췄어!’
퓨리엔트족의 누군가다. 미친 듯이 빔줄기를 퍼붓던 근두운을 격파했다. 애초에 근두운이 강흑성 자신이 올라가는 반대편까지 이동한 이유다.
‘회피기동!’
위협적인 사격을 해대는 어느 누군가의 공격을 회피하던 거다. 퓨리엔트족 중에 그런 자가 있다. 그런데 정찰대의 저 무서운 화력엔 답이 없다.
‘이건 미니건 소리.’
맹수의 울음 같은 무기의 소리를 인지하며 강흑성은 다시 움직였다.얼마 안 남은 산사면을 차고 올라 계곡을 내려다 봤다.계곡 가장 안쪽엔 정찰대 십여 명이 방어 중이고 중간엔 퓨리엔트족, 입구엔 다시 정찰대다.
‘빠져나갈 수 없겠구나.’
아직 살아 있는 삼십여 명의 퓨리엔트족은 그런 처지다.중간에 갇힌, 독안의 신세다.당연히 정찰대의 대응이 있을 텐데 왜 저런 전술로 공격한 건지 모르겠다.지원이 오기 전에 치고 빠질 수 있다고 자신한 건가.
‘정찰대의 저 화력에 대응한다는 건 자살행위.’
흑청빛 안광을 꿈틀대며 강흑성은 전황을 살폈다. 미니건에 근두운만으로도 끝장은 정해진 거다. 그런데다 정찰대 다섯 개 팀 백 명이 달려왔다.
‘저들을 상대하려면······’
미간에 내천자를 그리던 강흑성은 그 순간 엄습하는 섬뜩한 기운을 감지했다. 반사적으로 머릴 들어 하늘을 봤다. 벼락이 내리꽂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