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강호. 41. 사신의 숨결, 무형지독.
41. 사신의 숨결, 무형지독.
좌측 숲, 저격라이플을 가진 사장 박준의 사격이 분명하다. 정확하게 정찰대원의 머리통을 터트렸다. 그리고 그건 그렉 자신도 마찬가지다. w-2000 소총을 발사해 정찰대원들을 쓰러뜨리고 있다. 이게 황당하다.
‘흑성이가 독을 뿌렸기 때문이지만······!’
정찰대는 대부분 피를 토하며 쓰러지고 있다.헬멧을 착용하고 움직이는 놈들은 세 놈뿐이다.게틀러 옆에 엄폐한 저놈들이 안으로 못 들어가게 해야 있다.벌컨을 발포한다면 상황은 바로 반전, 숲이 초토화 된다.
‘미치게 무서운 독이구나······!’
새삼 두려운 마음으로 그렉은 거칠어진 숨을 내뿜었다. 강흑성이 만든 독이 대체 어떤 건지 모르지만 이 결과를 보면 사신의 숨결이라고 해야 한다. 전혀 대비하지 못하는 사이에 목숨줄을 움켜쥐고 끊어버린다.
‘그것도 그거지만 사장은 역시 보통사람이 아니야.’
허술한 것 같으면서도 치밀한 면모가 있다.강흑성이 움직일 때 건넨 문자전용수발신기가 단적인 예다.과거에 군대에서 사용했다는 물건이 분명하다.지금은 구할 수도 없는 골동품이다. 그런 걸로 연락을 취했다.감탄을 삼키며 소총을 발사하던 그렉은 눈을 치떴다.
‘어! 저거 뭐야!’
게틀러, 그 후미의 장갑이 열리며 벌컨포신이 돌출하고 있다.
* * *
“갈아 마실 놈들! 가루로 만들어 주마!”
게틀러 바퀴 아래 엎드린 브라이튼은 격노를 뿜어내며 손목의 멀티폰을 조작했다.벌컨의 원격조종이다.금지돼 있는 것이지만 이런 상황에서 의미 없다.서른세 명의 부하들은 중에 자신과 둘만이 아직 살아 있다.
‘이걸로 쿠데타를 벌이진 않아!’
원격조종이 금지된 이유는 그거다.이십오 년 전 일어났던 쿠데타, 치안총국의 전신인 정찰총국의 수장이 총통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치하려고 했다.그때 쿠데타 군은 수십 대의 게틀러를 원격으로 조종했었다.총통의 화성궁은 게틀러에게 포위돼 벌컨의 집중포화를 받았다.화성궁은 형상을 잃어버릴 정도로 파괴됐다.그렇지만 총통은 몸을 피했고, 쿠데타는 실패로 끝났다.그때부터 게틀러의 원격조종은 법으로 금지됐다.
‘그따위 멍청한 법을 만들어 놓고 뭘 어쩌자는 거야!’
정말로 멍청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조치다. 많은 군사장비와 무기들은 원격조종이 기본으로 돼 있다. 그런데 유독 게틀러만 안 되게 한 거다.이전에 생산돼 운용하던 게틀러들은 원격제어시스템을 들어냈고, 이후 생산되는 장비들엔 아예 달지 않았다. 총통의 분노를 달래려는 조치였다.
‘바보 같은 놈들!’
그렇지만 그건 화성의 이야기, 흘러간 과거다.지구라는 이 현실상황에선 적용이 달라야 한다.그래서 정말 어렵게 원격조종장치를 구해 달았다.그 효과를 지금 보는 거다. 부하들은 쓰러졌지만 게틀러는 살아 있다.
“뒈져라 개자식들아!”
벌컨 포신이 돌출하는 것과 같이 브라이튼은 맹렬하게 소리쳤다.
* * *
무형지독의 효과는 역시 대단하다. 산초를 일정비율 이상 섞자 경화했다. 그 덩어리를 꺼내 손바닥 사이에 넣고 비벼 가루로 만들어 날렸다.바람을 타고 날아간 분말은 무색무취, 정찰대원들의 호흡을 파고들었다.
‘세 놈.’
이곳까지 도주해온 서른세 놈 중에 세 놈만이 움직이고 있다. 정찰대장 브라이튼과 부하 둘, 나머지 놈들은 피거품을 게워내며 육신이 뭉개졌다.그 과정에서 마지막 저항을 보이는 놈들은 빔에 맞아 터지고 있다.
‘무형지독이 왜 당문 최고의 무기인지 제대로 보여줬구나.’
뿌듯한 심정으로 강흑성은 결과를 지켜봤다.이건 정말로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다.정찰대 3팀을 해결할 때도 그랬지만, 적들은 초토화한다. 물론 무방비상태일 때다.정찰대가 헬멧을 착용하고 있었다면 달랐다.
‘만에 하나 무형지독의 해독약을 만들어 낸다면······’
미간을 깊게 좁힌 강흑성은 그 가능성을 더듬었다.온갖 독과 바이오웨폰 대한 대응능력을 가진 곳이 화성이다.그곳의 능력이면 가능할 걸로 예상된다. 정말로 그렇게 되면 무형지독은 더는 최강의 무기가 아니다.
‘무형지독도 신외지물, 결국은 내 육신과 정신이 최강의 무기.’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는 결의를 강흑성은 새삼 삼켰다. 그런데 그 순간 이상현상이 눈에 들어온다. 게틀러 후미장갑이 열리고 포신이 나온다.
‘벌컨!’
귀를 파고드는 욕설의 외침은 브라이튼이다. 벌컨이 불을 뿜는다.
* * *
수림을 울리며 퍼지는 소리, 이게 뭔지 무슬란은 잘 안다.
‘벌컨!’
눈부신 섬광이 저 앞에 보인다.저 무시무시한 불벼락이 마을을 휩쓸었다.여자와 아이들을 포함한 마을 사람들 모두가 저것에 흩어져 날렸다.
‘죽일 놈들!’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몸을 떤 무슬란은 전력을 다해 달렸다. 이미 전투가 벌어진 상황, 동료들을 도와야 한다. 그런데 벌컨 빔줄기가 날아온다.
‘헉!’
봤다고 인지한 순간 몸을 강타한 빔, 소총 따위와는 비교자체가 안 되는 위력이다. 무시무시한 그 힘이 몸을 휘돌린다. 팽그르 돌아 땅에 처박혔다.
“컥!”
엎어진 무슬란은 몸을 훑고 지나가는 충격에 전율했다. 동시에 빔을 맞은 가슴을 살폈다.
‘안 뚫렸다!’
흔적은 남았다. 빔이 때리고 비껴나간 자국이 검게 탄 자국으로 선명하게 남았다.
‘야무치 비늘을 호신갑처럼 착용하지 않았으면 죽었어!’
벌컨의 빔줄기를 막아준 것, 가슴에 흉갑처럼 착용한 건 그라운드 웜 야무치의 비늘이다.강흑성이 가지고 온 것이다. 그중에 제일 큰 걸로 골라 착용했다.소문처럼 야무치 비늘은 화성최고급품 방탄장갑이상이다.
‘제길, 죽다 살았구나!’
몸에 남은 충격을 털어내며 무슬란은 일어섰다. 아니 허리를 펴진 않았다. 수림을 쑤시고 날아가는 벌컨의 빔줄기 아래로 포복하듯 전진했다.
* * *
“무슨 일인지 당장 말해!”
전술차량으로 게틀러 뒤를 따라가며 진류는 소리쳤다. 더는 두고만 볼 수 없는 상황, 그렇지만 세대의 게틀러에 탄 정찰대원들은 무시중이다.
‘이놈들이!’
눈썹을 비틀어 올리던 진류는 게틀러 상부에서 치솟는 비행체를 봤다.
‘송골매.’
진류는 즉시 멀티폰을 작동했다. 송골매가 곧 상공에서 본 것을 전송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건 북부지구 정찰대가 아니면 안 되는 거지만, 저들의 통신 패스워드를 알고 있다. 도착하자마자 그것부터 파악했다.
‘브라이튼의 통합데스크를 뒤지는 일 같은 건 식은 죽 먹기지.’
그렇게 알아낸 통신 패스워드를 입력하자 멀티폰은 이내 송골매의 영상을 수신한다. 야음을 뚫고 보는 적외선촬영, 전방에 화기작동광이 있다.
‘지금 진행 방향이······’
멀티폰의 맵이 가리키는 곳은 비둘기폭포라는 곳이다. 정찰대는 그곳으로 가고 있다. 그곳에서 벌컨으로 추정되는 화기가 작동되고 있는 거다.
‘뭐야? 게틀러가 두 대?’
송골매가 보내오는 적외선 영상 속에 게틀러는 두 대다.북부지구 정찰대의 통신채널 상에서 표시되는 것도 그렇다.분명 다섯 개 팀이 나갔는데 왜 두 대뿐인가?그게 무슨 이유인지 보다 더한 것이 머릴 친다.
‘생체신호가!’
게틀러 주변에 정찰대의 생체신호가 있다.그런데 셋뿐이다.이게 뭔가?다섯 개 팀 백 명의 신호가 잡혀야 정상, 아니 두 대면 사십 명인데 뭔가?
‘나머지 게틀러 세대는 어디에 있는 거야?’
자동운전으로 바꾼 진류는 멀티폰을 다급히 조작했다.그런데 아무리 위치를 찾아봐도 다른 게틀러 세대가 안 잡힌다.이런 결과는 있을 수 없다.게틀러가 완전히 파괴됐거나 위치 발신장치만 따로 제거 됐거나다.
‘도대체 뭐······’
의문을 삼키던 진류는 그 순간 하늘에서 떨어지는 낙뢰를 봤다. 선두에서 질주하던 게틀러를 강타한 것, 그 폭발화염이 퍼지는 속에서 깨달았다.
‘하늘상어!’
위성이 없기에 접근하는 위험을 인지하는 방법은 송골매나 진돗개 같은 장비다. 그런데 하늘상어처럼 고공에서 낙하하는 무기는, 더군다나 송골매의 시야를 피해 떨어지는 것은 대비가 안 된다. 이렇게 당할 밖에.
‘헉!’
전술차량이 방향을 틀고 거대수를 들이받았다. 그 충격으로 차에서 튕겨나간 진류는 부들거리는 고개를 겨우 가눴다. 일어서려던 몸을 경직했다.
‘저!’
눈을 치뜬 진류는 이제 알았다. 사라진 게틀러 세대, 맹렬히 달려오고 있다.
* * *
움켜잡은 순간 웅웅, 하고 울음을 토하는 마검 패천마혈이다.그 섬뜩한 마기와 의지를 받아내며 강흑성은 숲 밖으로 튀어나갔다.흑청빛 안광을 발산하며 게틀러를 향해 달려갔다.무원신풍보를 온힘을 다해 펼쳤다.다리 근육이 터질 것 같은 감각을 무시한 강흑성은 검은 바람처럼 쇄도했다. 소총을 겨누고 발사하려는 정찰대원, 너무나 빠른 강흑성의 스피드에 눈을 치뜨는 놈이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이다. 검을 후려쳤다.무원진격.번개의 작렬 같은 검광을 받아낸 정찰대원 놈은 둘로 쪼개졌다.단 일검에 만들어낸 결과.그 의미를 곱씹을 사이 없이 강흑성은 게틀러를 박차고 넘어갔다.바퀴아래 엎드려 있는 브라이튼에게 낙하했다.상황을 인지한 브라이튼이 헬멧 속 눈을 부릅뜨고 몸을 굴린 것은 찰나.바닥에 둔 소총이 아니라 핸드 건을 겨눈다.그러나 강흑성의 검은 뇌전처럼 빨랐다.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왼팔이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크악!”
고통스러운 단말마를 지르며 뒹궁뒹굴 굴러가는 브라이튼.그 모습을 강흑성은 멈춰 서서 바라봤다.여전히 흑청빛 안광이 뿜어져 나오는 눈으로 응시했다.그 손에 잡은 마검 패천마혈로 잘린 팔의 멀티폰을 찍었다.파지직, 스파크를 내며 멀티폰의 빛이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게틀러의 벌컨이 멈췄다. 그러자마자 숲에서 무슬란과 박준과 그렉이 튀어나왔다.
“너, 너희 놈들!”
고통에 겨운 악마족의 얼굴을 더욱 악마같이 일그러뜨린 브라이튼.
‘그랬구나! 3팀을 몰살한 것도 네놈들이었구나!’
뒤늦은 깨달음, 분노에 겨워 브라이튼은 몸을 떨었다.
‘3팀이 강력한 독에 당했다는 걸 알았으면서도 이렇게······’
똑같이 당했다.크리듐광산에서 퓨리에트족과 전투를 벌이고 퇴각하던 과정을 변명으로 말할 순 없다.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도 대응할 수 있어야 하는 거다.그러질 못했다. 독을 알고 있으면서도 당한 패배다.
‘내가 이 결과를 불러들인 거야······!’
부들거리며 브라이튼은 깨닫고 후회하고 자책했다.이 허황된 결과를 거듭 곱씹었다.자신이 이렇게 당해 왼팔이 잘린 이 결과다.믿을 수가 없다. 어처구니없다.삼월검을 수련해온 성취가 고작 이것이었던가.
‘아니야, 그게 아니야, 저놈이 달라서야······!’
그렇다는 걸 브라이튼은 전율로서 깨달았다.게틀러를 넘어 자신에게 검을 내려친 자, 아무리 창졸간의 상황이었다고 해도 일검에 팔을 잘랐다. 그 일검은 현묘한 상승의 경지가 아니었다.지독하게 빠르고 강했다.
‘저놈······!’
샹그릴라의 젊은 직원놈이다.저놈을 처음 봤을 때 기이했다.뭐라고 딱 꼬집어 말하기 어려운 희미한 예감.맞다, 그런 거였다.저놈이 검을 쥐고 있다.혈광을 내고 있는 검, 저걸 보니 떠오르는 건 하나, 마검이다.
‘단혈보검, 아니 마교의 마검······!’
그것이다.무인이 가지고 사라졌다는 마검이다.그건 거짓이었다.저렇게 눈앞에 있다.저놈은 마검을 가졌다.저놈도 마검처럼 특별한 놈이다.
‘상대 못할 고수, 그런 게 아니야, 내가 저놈에게 당한 이유는······’
브라이튼은 거기서 생각을 멈췄다. 누군가 자신을 불러서다.
“브라이튼!”
비둘기 폭포가 놀라 끊어질 정도의 강력한 외침.누가 그렇게 자신을 부른 건지 브라이튼은 봤다.3미터 거구의 움바바족이다. 칼을 겨눈다.
“씹어 먹을 놈아, 우리 마을을 몰살한 대가를 오늘 받아내겠다.”
외침과 달리 가라앉은 음성, 그래서 더욱 무서운 결의와 살기다.
“그랬나······ 역시 살아 있는 놈들이 있는 거지?”
브라이튼은 일어섰다. 왼팔이 잘렸지만, 총기는 없지만, 검이 남아 있다. 그것을 슈트 등으로부터 뽑아냈다. 그러며 적들을 향해 살기를 던졌다.
“곧 부하들이 달려올 거다. 빅풋도 같이 온다. 화성에게 보내온 최신무기다. 너희들이 한 번도 본적 없는, 그게 뭔지 깨닫는 순간 네놈들은······”
처절한 보복을 하리라던 브라이튼의 음성은 거기서 그쳤다. 수림 저편에서 폭발화염이 솟구쳐서다. 저만한 위력이라면 하나, 분명 하늘상어다.
‘뭐!’
헬멧 속 눈을 부릅뜬 브라이튼은 바로 깨달았다.본부에서 달려오던 부하들이 공격을 받았다는 것을.공격주체는 말하나 마나 퓨리엔트족이다.
“이!”
자신도 모르게 꿈틀하며 걸음을 냈던 브라이튼은 현실을 받아들였다. 이 순간 자신을 위해 달려올 부하들은 없다는 것, 혼자서 싸워야 한다는 거다.
“그래······! 해보자 버러지들아!”
전투대검을 움켜쥔 오른 손을 내밀며, 내력을 있는 대로 끌어올리며 브라이튼은 걸음을 냈다. 그에 맞춰 무슬란이 작두칼을 세우고 달려 나갔다.
“우와아아!”
무슬란이 터트린 함성이 폭포와 수림을 흔드는 가운데 두 그림자는 부딪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