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강호. 42. 이변의 시작.
42. 이변의 시작.
엎드려 땅을 기어간 진류는 거대수 뒤에서 적들을 봤다.게틀러 세대에서 내린 자들, 퓨리엔트족이다.정찰대의 천산마갑 슈트를 입었다.저 게틀러의 주인들에게서 뺏은 거다. 벌컨을 발포하며 함성을 지르고 있다.
‘저것들이!’
황당한 충격이다.사냥꾼무리에 불과한 퓨리엔트족이 정찰대를 공격하는 거다.이미 브라이튼정찰대장과 다섯 개 팀을 해치운 거다.저들이 타고 온 게틀러와 정찰대의 장비들이 그 증거다.있을 수 없는 일이다.
‘브라이튼의 보고서가 사실이었구나······!’
야수족의 준동, 반화성의 기치로 위험한 움직임이 있고 그걸 제압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천리안으로 부르는 예견프로그램 결과와도 부합한다.
‘정말로 일이 일이 진행되고 있었던 거야······!’
뒤늦었지만 현실을 봤으니 인정이다.그러나 천리안의 그 결과치는 북부지구정찰대 자체의 변질 가능성도 포함됐었다.그리샴장군의 말도 그랬다.정확하게 어떻다고 말한 건 아니지만 지구라는 한계환경의 현실이다.
‘어!’
거대수에 몸을 숨긴 채 진류는 눈을 부릅떴다.퓨리엔트족의 공격을 받던 정찰대가 드디어 반격한다.세대의 게틀러 중 선두가 하늘상어에 파괴된 터, 남은 게틀러를 운용하는 게 아니라 다른 거다.빅풋이 일어선다.
‘그래!’
진류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고 환호했다.3미터의 커다란 몸을 가진 전투로봇이 바로 빅풋이다.그 몸뚱이가 벌컨포화를 맞으면서 일어서고 있다.더 커도 안 되고 작아도 안 된다는 크기, 차량에서 이탈한다.
‘빅풋! 이제 네 힘을 펼쳐라!’
블루마운틴을 모델로 만든 무기다. 더 크게 만들 수 있었지만, 3미터가 가장 전투에 적합하다는 결론을 얻는데 만도 많은 시일이 걸렸다고 한다.
‘블루마운틴이 그렇고 움바바족이 그 신장인 데는 이유가 있는 거지.’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완성한 전투로봇 빅풋, 아직까지 지구에서 사용한 적 없는 무기가 드디어 움직인다. 정찰대도 보급 받은 후로 창고에만 있던 무기를 이제 시험하는 거다. 그동안은 사용허가가 안 나와서다.
‘최종오류를 수정했다니까! 어서 쓸어버려!’
간절한 마음으로 진류는 주먹을 움켜쥐었다.사흘 전에 최종사용허가가 떨어진 신형병기다.군대에는 이미 배치가 완료됐다.굳이 저런 무기가 필요한 적이 있는 건 아니지만, 대륙전쟁을 겪고 이루는 대비책이다.
“헛!”
자신도 모르게 헛바람 소릴 내며 진류는 납작 엎드렸다.빅풋의 왼팔에서 섬광이 터져 나와서다. 그것이 벌컨을 발포하는 적의 게틀러를 강타했다.게틀러는 폭발과 함께 붕 떠올랐다가 다른 게틀러 위로 떨어졌다.
‘그래!’
환호 속에서 진류는 빅풋이 사용한 무기가 뭔지 알았다.하늘상어의 미니버전 로켓이다.이름 하여 빅킬, 빅풋의 이름을 딴 거다.소형미사일인 그것을 날렸다.게틀러를 단번에 파괴하며 저렇게 장난감처럼 뒤집었다.
‘야수족놈들!’
퓨리엔트족이 휘날리는 모습을 보며 진류는 전율의 쾌재를 삼켰다. 파괴된 게틀러와 같이 가랑잎처럼 날린 놈들은 형상을 알아보기 힘들다.남은 두 대의 게틀러 중 한 대만이 가동 가능한 상황, 놈들은 당황했다.그들에게 빅풋이 달려간다. 그 움직임과 스피드에 진류는 경직했다.
‘저렇게 빠르다니!’
상승무공을 익힌 고수의 경공술처럼 빅풋은 움직인다.퓨리엔트족들과의 거리를 삽시간에 좁혔다.천산마갑 슈트처럼 등에 장착된 검을 뽑았다. 도약과 같이 게틀러를 향해 내리친다.시릿한 섬광이 뇌전처럼 작렬한다.빅킬에 맞아 파괴된 게틀러, 그 차체가 얹힌 상태에서 빠져나오려던 게틀러가 갈라졌다.정확하게 중간이 두부처럼 쪼개졌다.게틀러의 바이탄합금장갑을 생각하면 저건 거짓이다. 브리틀함금과 대등한 합금인 거다.
‘저!’
충격과 놀람으로 커진 눈을 진류는 제어하지 못했다.빅풋이 펼쳐내는 검의 위력, 저것은 무공이다.삼월문의 삼월검법이다.그 초식으로 퓨리엔트족을 동강내고 있다. 놈들의 육신과 남은 게틀러를 갈라버린다.
“허······”
허탈한 숨과 동시에 진류는 부르르 진저리를 쳤다.그렇게 깨달았다.빅풋의 최종사용허가, 그것은 오류를 수정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는 것을.
‘저렇게 만들려고, 오류수정이 아니라 업그레이드 하려고 했던 거야.’
소름을 털어내며 진류는 엎드렸던 몸을 일으켰다.
* * *
“흐윽.”
어깨가 쩍 갈라져 선혈을 흘려내고 있는 무슬란, 전신이 피투성이가 됐다.그렇지만 손을 부들거리며 움켜쥐고 있다.브라이튼의 수급이다.악마형상과도 데바족 머리, 그 뿔을 움켜잡았다. 달려오는 박준에게 내민다.
“형님, 원수를 갚았습니다.”
부들거리는 얼굴로 미소 짓는 무슬란, 그가 내미는 브라이튼의 머리가 아니라 박준은 상처부터 살폈다. 팔다리가 다 갈라져 혈인이다. 제일 큰 상처는 왼 어깨다. 브라이튼의 검을 받아내고 끝내 모가지를 잘랐다.
‘팔이 잘린 상태에서도 무슬란을 이 지경으로 만들다니······!’
동생 박현과 함께 움바마족 마을 최고용사인 무슬란이다.이 모습을 보니 새삼 두렵고 화가 치밀어 박준은 숨이 막혔다.정말이지 무슬란의 싸움은 처절하고 위험했다.삼월검법을 펼치는 브라이튼의 무공은 역시 고강한 수준, 매 순간이 위험했다.그러나 무슬란은 제 몸을 던져 승리했다.
“안 죽은 게 천운이다.”
경직한 음성으로 무슬란에게 그 말 한마디를 던진 박준은 지니고 온 구급약품으로 지혈을 했다. 그러나 무슬란의 상처는 그런 걸로 어쩌기엔 너무 크다. 그래도 상관없단 얼굴로 무슬란은 웃고 있다. 복수했으니까.
“현이가 알면 좋아할까요, 아니면 화를 낼까요?”
창백해진 얼굴로 낸 무슬란의 말, 박준과 그렉은 알아들었다.복수를 했으니 분명 기뻐할 테지만, 제 손으로 브라이튼의 목을 자른 게 아니니 화를 낼지도 모른다.무슬란은 그걸 말하면서 저렇게 실실 웃고 있다.
“위험해 보입니다.”
무슬란의 상태가 그렇다는 그렉의 판단, 박준은 다급하게 강흑성을 돌아봤다. 화염이 피어난 수림저편을 응시하면서 움직이지 않는 강흑성이다.
“흑성아!”
박준은 더 지체할 상황이 아니어서 소리쳐 불렀다.그 소리에 반응해 돌아선 강흑성은 바로 다가와 무슬란의 상처를 살폈다.즉각 혈도를 봉쇄했다. 위험하게 흘러나오던 피는 바로 멈췄다.박준은 정말 신기해했다.
“그게 혈도를 치는 거지?”
박준이 묻자 그렉이 아는 체 하며 입을 열었다.
“부상부위의 혈맥을 봉쇄하는 겁니다. 전신혈도에 대해 아는 무림인 이어야 가능한 거죠. 게다가 저렇게 정확하고 깔끔하게 하려면 수준이······”“야, 너 뭐 알고 지껄이는 거야?”“예?”“그렉 네가 무공을 알아?”“아니 뭐, 그거야 상식으로······”“상식 같은 소리하네, 너도 나하고 같잖아? 나야말로 그 정도 상식도 없어서 물어본 거 같냐?”“아니 왜 쌍심지를 세우고 그럽니까?”
고조된 목소리를 박준은 빽 뱉었다.
“쥐뿔도 모르는 게 아는 체하니까 그렇지!”
그랙도 마찬가지.
“아 증말!”
때와 장소에도 불구한 둘의 투덕질을 강흑성이 잘랐다.
“이곳을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흠칫한 박준과 그렉은 강흑성을 돌아보고 뜨거운 숨을 내쉬었다. 정찰대장 브라이튼을 목 자른 현장, 강흑성의 말대로 한시 빨리 벗어나야 한다.
“그런데 저건 무슨 상황일까?”
그렉이 화염이 솟구친 방향을 보며 물었고 강흑성은 대답을 냈다.
“브라이튼이 말한 정찰대의 지원병력입니다. 퓨리엔트족의 공격에 당하고 있는 겁니다.”
눈을 크게 뜨는 박준과 그렉과 무슬란에게 강흑성은 말했다. 크리듐광산에서의 일, 박준에게 이미 알린 내용 말고 핵심이다. 그들의 변화다.
“하프퓨리엔트 사내가 그들의 수령입니다.”
그렉과 박준과 무슬란은 눈 밑을 경직했다. 그렇게 깨달았다.강흑성이 입에 담지 않았지만 저절로 알아지는 배경, 퓨리엔트족이 정찰대를 친 일이다.하늘상어까지 입수해 공격한 그들의 중심엔 그 존재가 있음이다.
“본부에 남아 있던 정찰대 병력이 전부 출동한 겁니다.”
깨달음을 심키며 입을 연 그렉은 입술을 혀로 핥으며 뒷말을 이어냈다.
“이차 지원이 움직일 것까지 계산하고 공격한 겁니다.”
그렇다, 이건 그런 결과다.퓨리엔트족은 이렇게 엄청난 일을 만들었다.그들이 이곳에 올 거다.정찰대장 브라이튼을 확실히 죽이기 위해서다.
“지프를 게틀러 옆에 대십시오.”
강흑성은 박준에게 그 말을 하고 바로 돌아섰다. 게틀러 내부로 들어가 연료탱크 해치를 열었다. 이미 한번 해 본일, 도화선덩굴을 연결했다.
“아 이거 이렇게 버려야 하는 건가.”
정말 아쉬운 얼굴로 박준은 지프를 게틀러 옆에 댔다. 그 얼굴을 무시하고 그렉이 연료통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 강흑성이 건넨 덩굴을 넣었다.
“야 살살해라!”
자신도 모르게 목소릴 높였던 박준은 이내 눈을 질끈 감았다. 없애기로 한마당에, 그래야만 하는 현실에서 다 부질없는 거다. 정말 미련을 버려야 한다. 지프는 이제 불태우는 거다. 그런데 무슬란은 어찌하나.
‘원래도 지프에 태우긴 힘들었는데.’
지프마저 없애면 어떻게 이동해야 하나, 걱정하며 눈을 뜬 박준은 강흑성을 보고 미간을 좁혔다. 무슬란에게 뭔지 모를 약을 먹이고 있다. 동시에 지혈했을 때처럼 혈도를 친다. 그러자 무슬란이 제 발로 일어선다.
“뭐야?”
놀란 반응을 내던 박준은 그렉의 단호한 음성을 듣고 바로 고개를 돌렸다.
“불붙입니다.”그렉은 도화선 덩굴에 시뻘겋게 달궈진 시거잭을 갖다 댔다.뭐라고 반응할 사이 없이 덩굴을 화르르 타들어가기 시작했다.후다닥 물러난 그렉은 이미 움직이는 강흑성과 무슬란에게로 달려갔고, 뭐하냐고 외친다.
“사장님 그러고 있을 겁니까!”
박준은 흠칫하며 몸을 떨고 돌아섰다. 이미 수림으로 들어간 강흑성과 무슬란과 그렉을 따라 달려갔다. 그 발을 잡으려는 듯 폭발이 일어났다.
* * *
폭발화염이 수림 위로 솟구쳤다. 비둘기 폭포 쪽이다.
‘저건······!’
치뜬 눈을 경직한 채 진류는 불길한 예감을 삼켰다.정찰대장 브라이튼이 있는 곳이다.저런 폭발화염이 솟구칠 게 없다. 저건 하늘상어의 폭발로 인한 게 아니다.저 검푸른 빛의 화염은 크리듐에너지 폭발이다.
‘게틀러 연로탱크가 폭발해야 저렇게······!’
이를 문 진류는 빅풋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어느새 퓨리엔트족을 몰살한 전투로봇은 다음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흉악하게 무섭지만 믿음직한 모습이다.게틀러에서 내린 팀장도 화염을 돌아본다. 그에게 소리쳤다.
“브라이튼 대장을 찾는다! 뭣들하고 있어! 어서 움직여!”
소리치며 달려간 진류는 게틀러에 올라탔다.팀장은 당황한 얼굴이다가 움직인다.남은 정찰대원들을 모두 태우고 두 대의 게틀러는 그렇게 움직였다.그 뒤를 더는 이동차량에 타지 않은 채 빅풋이 따라 달려갔다.
* * *
“흔적을 지우고 뒤 따라 가겠습니다.”
박준과 그렉과 무슬란의 불안하지만 신뢰하는 시선을 받으며 강흑성은 돌아섰다. 벗어난 현장으로 다시 돌아가는 행보, 멈춰서 일행을 응시했다.
‘한 시간.’
그렉과 박준의 부축을 받으며 무슬란은 잘 간다. 하지만 반 시진, 한 시간 정도다. 무원의경상의 묘리로 만든 결과, 잠력을 끌어내 움직이는 거다.
‘이제부터가 중요해.’
다시 고갤 돌린 강흑성은 전진했다.저들이 안전한 곳까지 이동하기 전에 뒤를 잡히는 일을 막아야 한다.저들이 잘못되면 샹그릴라도 그렇게 되고 카이오를 비롯한 여자와 아이들도 마찬가지다.그렇게 만들 순 없다.
‘내 필요에 의해 벌인 일, 내가 판단하고 행동한 결과. 비겁하게는 안 해.’
안전을 책임지기로 했으면 끝까지 책임지는 거다.그 일을 해야 한다.필경 퓨리엔트족이 닥칠 터, 그들의 수령인 하프퓨리엔트가 올 거다.
‘그들보다 조금 앞섰을 뿐, 시간상으로 거의 다 왔어.’
그들의 행동에 대응해야 한다. 혼자서 해야 한다. 어떻게든 해야 한다.
‘한다, 할 수 있어.’
흑청빛 안광을 뿜어내며 강흑성은 전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