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43화 (44/172)

혹성강호. 43. 어둠의 수림 속에서.

43. 어둠의 수림 속에서.

“헉헉헉.”

거친 숨소리를 내며 그렉은 수림을 헤치고 달려갔다.뒤따르는 박준과 무슬란을 돌아보면서다.두 사람도 자신처럼 흔적이 남지 않도록 움직이고 있다.수림 속 괴수와 뱅수들이 다니는 이동로다. 이건 복불복이다.

‘블루마운틴 같은 놈하고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감수하고 움직이는 거다.괴수가 이동하는 길은 바닥이 암반이다. 발자국이 남지 않는다.괴수들이 다녔기에 나뭇가지 등에 접촉할 일이 거의 없다.유일한 위험은 괴수다.

‘제길, 이런 건 위험도 아니야!’

심중으로 소리치며 그렉은 소총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마치 눈앞에 적이 있어 당장이라도 발사할 기세다. 이 순간의 감정은 강흑성을 생각해서다.

‘뒤로 붙을지 모를 위험을 자르려고······ 흑성아, 네가 하는 일이야말로 정말 위험하지. 무사해라.’

간절한 기원을 삼키며 그렉은 수림 속을 달려갔다. 그런데 박준이 부른다.

“그렉! 야 그렉!”

달리던 몸을 멈춘 그렉은 뒤를 돌아봤다.무슬란이 주저앉아 있다. 박준은 당황한 눈을 빛내며 맹렬히 손짓한다.딱 봐도 알 수 있는 상황, 무슬란이 더 달릴 수 없는 상태가 된 거다. 그러니 정말 위험이 닥쳤다.

“심각합니까?”

두 사람 곁으로 돌아간 그렉은 바로 물었다. 더 움직일 수 없냐는 물음이다.

“한 시간은 괜찮을 거라고 했는데······”

무슬란이 힘겹게 대답했다.한 시간, 강흑성이 그렇게 말했다는 소리다. 그런데 아니게 됐다.아무래도 강흑성이 인지 못한 다른 원인이 있다.

“팔극대력을 사용한 게 잘못된 것 같습니다······”

점점 더 창백해지는 얼굴로 이야기 하는 무슬란, 그렉과 박준은 내막을 들었다. 박현을 비롯한 움바바족 용사들이 익히고 수련하는 무공은 팔극권이다. 오성의 경지에 이르려면 팔극대력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제대로 익히지 못한 그걸 사용해서라고?”

박준이 심각하게 좁힌 미간으로 물었고 무슬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부작용에 대해 들었습니다. 무리하게 무공을 펼칠 수는 있지만, 그 후에 심각한 부작용이 온다고 했습니다. 혈도와 경맥이 막힌다고······”

무슬란은 거기까지 말하고 숨을 헉헉거렸다.더는 말하기도 힘겨워 하는 모습, 그렉과 박준은 눈을 맞췄다.이제 무슬란은 기동불가인 거다.

“방법은 하나다, 우리 둘이 업고 가는 수밖에.”

박준의 이 악무는 얼굴을 보며 뜨거운 숨을 내쉰 그렉은 바로 움직였다. 무슬란의 앞에 쪼그려 앉아 등에 업었다. 박준은 당연히 놀란 반응이다.

“야 뭐하는 거야?”

너 혼자서 3미터 거구의 무슬란은 업을 수 있겠냐는, 설사 업는다고 해도 얼마나 가겠냐는 거다. 그런데 그렉은 거뜬히 일어서서 바로 움직인다.

“어?”

앞서 나가는 그렉을 보고 박준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무슬란을 업었는데 그렉은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 어두워서 잘못 본 게 아니라면 혼자 달려 갈 때보다 쉬워 보인다. 마치 속았던 것 같은 느낌이다.

‘속였었구나!’

그랬다는 걸 박준은 이제 깨달았다.그렉은 지금 보이는 저 모습이 참모습인 거다.저건 분명히 경공보법의 움직임, 당연히 그렉은 무인이다.

‘무공을 감춰왔었······!’

그렇다, 그렉은 무공을 사용할 줄 아는 무인이었던 거다. 여태 속여 온 거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 그랬다고 생각하지만, 심하게 짜증이 난다.

“야 그렉!”

수림 속으로 사라지는 그렉을 소리쳐 부른 박준은 흠칫하며 입을 닫았다. 블루마운틴 같은 놈들을 불러들일 수 있다. 지금 할 일은 달리는 거다.

“에잇, 시베리야 샹그릴라.”

작은 소리를 뱉어내며 박준은 그렉를 좇아 달렸다.

* * *

게틀러가 불타며 뿜어내는 열기와 빛이 대단하다. 박준 사장의 지프는 불속에서 형체도 보이지 않는다. 크리듐 에너지 탱크의 폭발을 촉발하고 사라졌다. 그냥 강철차체라 저 화염 속에선 용광로 속에 든 쇳덩이다.

‘바퀴자국이 더 혼란스럽겠지.’

샹그릴라로 이어진 자국은 이미 없앴다. 그러나 수림 속과 이곳 비둘기 폭포로 이어진 자국은 그대로다. 정찰대든 퓨리엔트족이든 그것이 더 혼란을 줄 거다. 그러나 그 전에 그들은 이곳으로 와서 서로를 볼 거다.

‘누가 먼저냐.’

크리듐 광산에서 이동해온 하프퓨리엔트 사내가 먼저인지, 본부에서 출동해 기습을 받은 정찰대 2차 지원병력인지다.그들마저 당했다면 퓨리엔트족의 승리다.그런데 그렇지 않을 것 같다.이 예감은 아주 강하다.

‘보이는 게 가진 전부가 아닌 자들.’

정찰대는 그런 존재들이다. 아니 화성이란 곳이 그렇다.이미 알고 있고 겪은 무기나 화력 외에 다른 것이 있을 거다.그럼 결과는 달라진다.

‘왔구나.’

생각을 잘라낸 강흑성은 흑청빛 눈동자를 빛냈다.거대수들이 수림으로 번지는 불을 막아주고 있는 공간, 게틀러가 불타는 현장에 그가 나타났다.하프퓨리엔트 사내, 혼자 모습을 보이고 무심히 불을 바라본다.

‘전후를 더듬어 보겠지만.’

과연 이게 무슨 일인지 하프퓨리엔트 사내는 알 수 없다. 자신들이 크리듐 광산을 공격해 정찰대를 유인한 작전, 그런데 누군가 끼어들었다.

‘찾았구나.’

브라이튼의 죽음, 하프퓨리엔트 사내는 걸음을 낸다. 무슬란이 자른 브라이튼의 수급을 잡는다. 머리 없이 쓰러진 육신을 확인하고 허릴 편다.사방을 돌아보는 하프퓨리엔트 사내의 눈이 서늘하게 빛난다.브라이튼의 죽음과 조금 거리가 떨어진 정찰대원들의 죽음을 살핀다.왜 그런지 슈트만 보여서다. 그런데 흠칫하며 물러선다.독에 당한 것을 알았다.황급하게 물러나 운기를 해 보는 하프퓨리엔트 사내.그가 다시 돌아보는 눈동자엔 칼날이 곤두섰다.추호도 예상 못한 돌발 상황이다.정찰대원들은 정말 슈트만 남기고 핏물로 변했다. 누가 이렇게 했는지 모른다.마치 거북이를 잡아 껍질만 남겨놓은 것 같은 결과, 그런 죽음이다.도대체 어떤 생화학 무기에 당한건지 형상이 다 사라졌다.절대독이다.이러한 독에 대해선 들어 본 적도 없다.도대체 누가 이렇게 만든 것일까.의문과 충격으로 당혹해 하는 하프퓨리엔트 사내를 향해 강흑성은 답을 던졌다.

‘나다.’

마음속으로 말한 강흑성은 흑청빛 눈동자를 빛내며 상대를 봤다.자신처럼 반은 사람 반은 야수족인 존재.하프퓨리텐트 사내의 용모는 준수하다. 특유의 줄무늬가 눈 밑에서 턱까지 내려온 얼굴, 자세히 기억했다.

‘혼자 모습을 보인 이유가 뭐지?’

짐작은 한다.게틀러의 폭발, 변수가 생겼다는 걸 알고 그런 거다.그렇지만 브라이튼은 마무리해야 하는 자, 돌발 위험을 상쇄하려 혼자 왔다.그리고 그건 그럴만한 능력이 있다는 거다.그런 거라면 역시 하나다.

‘무공.’

하프퓨리엔트 사내는 무인이다. 어느 정도의 무력을 가졌는지는 모른다. 그걸 알려면 직접 부딪쳐 보는 수밖엔 없지만, 저 서늘한 눈빛의 깊이로 짐작은 된다. 어쩌면 반박귀진의 경지일지도 모른다. 그럼 정말 고수다.

‘반박귀진, 정말 그런 고수일까······’

지금 보이는 기도와 눈빛의 깊이만을 가지고 판단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만에 하나 그런 무력이라면······’

일 갑자를 상회하는 내력을 가져야 그 경지에 이른다.그런데 육십년의 내력을 쌓는 다는 건 그냥 되는 일이 아니다.그 세월을 갈고 닦는 공이 필요하다.피땀 흘려 매진한다고 해도 이루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젊은 자인데······ 기연을 얻었다면 가능하겠지.’

하프퓨리엔트 사내를 응시하던 강흑성은 소리를 들었다.바람을 타고 오는 소리, 게틀러가 달려오는 소리다. 그리고 흉악한 위험의 예감이다.

‘이건?’

와락 미간을 좁힌 강흑성은 비둘기 폭포의 반대편을 봤다.불타는 브라이튼의 게틀러를 중심에 두고 하프퓨리엔트 사내가 있는 오른편 반대.무엇인가 맹렬하게 달려온다.커다란 그림자, 이젠 불빛에 보인다.

‘로봇!’

하마터면 귀식대법이 풀어질 뻔한 놀람을 강흑성은 삼켰다.

* * *

비둘기폭포라고 부르는 곳에 드디어 다다랐다. 빅풋은 불길의 근원을 향해 달려간다. 비호처럼 기동하는 저 모습은 간담이 서늘해질 지경이다.

‘무공을 프로그램해서 탑재하다니, 정말 대단해.’

진류의 새삼스러운 감탄 속에서 게틀러가 멈췄다.폭발한 게틀러가 풀어낸 화염 탓에 열영상으로 현장을 확인하는 건 부질없는 짓이다.송골매도 접근이 어려운 상황이다.이대로 들이쳐 적이 있다면 제압하는 거다.

“하차해서 빅풋을 지원하며 적을 분쇄한다!”

격하게 명령을 뱉은 진류는 게틀러 밖으로 나갔다. 어느새 브라이튼이 아닌 진류의 명을 따르는 정찰대원들, 두 개 팀 사십 명도 달려 나갔다.그렇게 진류와 함께 그들은 봤다. 빅풋이 공격하고 있는 한 사내다.

* * *

장벽처럼 불길을 막아주고 있는 거대수 뒤에서 강흑성은 경직한 숨을 흘려냈다.거대한 로봇이 검을 휘두르고 있다.하프퓨리엔트 사내를 동강내려 한다.저 형상은 블루마운틴과 닮았다. 머리와 팔이 모자랄 뿐이다.

‘블루마운틴 같은 전투로봇을 만들었구나······!’

저 커다란 덩치가 비호처럼 움직인다. 그런데 그게 놀라운 게 아니다.저놈이 무공을 펼치고 있다. 저건 분명히 삼월문의 삼월검법이다.군부의 무공이니 당연하다 하겠다. 충격인건 인간처럼 무공을 펼치는 거다.

‘무공 고수처럼······!’

3미터 거구의 로봇은 삼월검법을 물 흐르듯이 펼치고 있다.어설픈 수준이 아니다. 오래도록 삼월검을 수련한 고수의 움직임, 그런 무위다.그런데 그 무서운 공격을 하프퓨리엔트 사내는 피하고 있다. 놀라면서다.

‘나보다 더 놀랐겠지.

숨어서 지켜보는 강흑성 자신과 직접 싸우는 자의 강도가 다를 터다. 누구라도 저런 놈을 만나면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침착하다.

‘고수야.’

하프퓨리엔트는 유려한 신법으로 커다란 검의 궤적을 흘려내고 있다. 그래선지 로봇의 눈이 파랗게 빛을 내고 있다. 공격하는 움직임이 빨라진다.

‘기동력이 점점 빨라지는······ 엇!’

강흑성은 순간 눈을 치떴다.로봇의 검이 하프퓨리엔트 사내를 내려치는 찰나에 다른 공격이 터져나갔다.로봇의 등에서 튀어나온 벼락이다.쾅, 소리에 먼저 하프퓨리엔트 사내가 뒤로 날려갔다. 로봇의 등으로부터 폭발하듯 뻗어 나온 공격을 육장으로 받아서다. 피할 수 없어서다.

‘저건?’

부릅뜬 눈으로 강흑성은 로봇의 공격이 뭔지 확인했다.백팩처럼 등에 장착된 장갑 속에서 튀어나온 것이다.블루마운틴처럼 또 다른 팔이다.그런데 그냥 팔이 아니라 원통형 관절이 주름처럼 연결된 거다.마치 야무치를 축소해 놓은 것처럼 생겼다.역시 저놈의 팔은 네 개인 거다.

‘그렇구나······!’

뜨거운 숨을 내쉰 강흑성은 하프퓨리엔트 사내의 무사함을 응시했다.로봇의 예상치 못한 공격, 엄청나게 강력한 일격을 받아내고 무사히 서 있다.휘날린 낙엽처럼 휘돌아 나간 신형이 거대수의 몸통을 차고 착지했다.긴 숨을 뿜어내며 체내의 충격을 풀어내는 하프퓨리엔트 사내, 그가 움직인다.파란 눈으로 응시하던 로봇은 바로 후속공격을 퍼붓는다.두 개의 뱀 같은 팔에서, 집게 같은 손가락들이 벌어진 중앙에서 빔이 터진다.미니건, 로봇의 낭창거리는 두 팔이 토해내는 불벼락이 수림을 휩쓴다.하프퓨리엔트 사내는 로봇으로의 접근을 포기하고 달린다.수림으로 파고든 그 움직임은 공교롭게도 강흑성의 방향, 둘은 눈이 마주쳤다.하프퓨리엔트 사내가 바람처럼 곁을 지나갔지만 강흑성은 움직이지 않았다.거대수에 몸을 밀착하고 로봇이 지나가길 기다렸다.하프퓨리엔트 사내를 쫓아 놈은 괴수처럼 달려간다.비로소 강흑성은 몸을 움직였다.

‘이런!’

로봇의 뒤통수에서 파란빛이 나는 걸 강흑성은 봤다. 뭔지도 깨달았다.블루마운틴의 머리가 두 개인 것처럼 저놈도 그런 거다. 앞뒤로 붙었을 뿐이다. 감겨 있던 그 눈이 강흑성 자신을 포착했다. 바로 대응한다.야무치 몸통 같은 팔이 뒤로 돌아 미니건을 퍼부었다.그 불벼락을 피해 강흑성은 달리기 시작했다.그런데 뒤로 정찰대원들이 달려오고 있다.

‘그래, 끝장을 보자.’

흑청빛 안광을 뿜어내며 강흑성은 수림을 헤쳐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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