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45화 (46/172)

혹성강호. 45. 하프퓨리엔트 우란테.

45. 하프퓨리엔트 우란테.

“어떻게 됐어?”

다급하게 묻는 동생 박현을 보면서 박준은 물을 벌컥거리며 마셨다. 그사이 그렉은 백지장 같은 얼굴의 무슬란을 부축해 내려와 침대에 눕혔다.

“무슬란!”

상태가 심각함을 안 박현이 더 놀라 눈을 치떴고 무슬란은 힘겹게 웃었다.

“괜찮아.”

물컵을 내려놓은 박준이 동생 박현의 곁에 붙어 설명했다.

“흑성이가 지혈하고 응급조치는 해 놨다.”

그렇게 박준은 상황을 간략하고 명료하게 이야기했다. 귀신대가리들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대장 브라이튼의 목을 무슬란이 어떻게 잘랐는지.

“그놈을······ 죽였구나······!”

저절로 떨림이 일어나는 몸과 마음의 흥분을 주체하지 못해 박현은 눈을 감았다.자신을 이 지경으로 만든, 마을을 몰살한, 정찰대를 후려친 거다.그들의 대장 브라이튼을 죽였다. 무슬란이 모가지를 잘라버렸다.

“퓨리엔트족이 정찰대를 유인해서 공격한 게 우리한테는 기회가 됐던 거야.”

박준은 다시 입을 열었다. 눈길은 여자와 아이들을 다독이며 데리고 나가는 그렉을 보면서다. 두려움과 강흑성에 대한 걱정으로 차 있는 가여운 사람들이다. 이제 다시 숙소로 들어가지만 강흑성이 와야 안심할 거다.

‘우리도 마찬가지지.’

강흑성에 대한 염려를 삼키면서 박준은 다시 이야기를 이어냈다.

“그놈들을 이끄는 우두머리가 하프퓨리엔트라고 하더라.”“하프퓨리엔트?”

놀란 반응의 동생 박현을 응시하고 박준은 강흑성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그 특별한 존재가 퓨리엔트족을 세력으로 규합해서 정찰대를 유인 공격한 것이라는 결론이다. 새삼스럽게 놀람과 충격을 삼키게 한다.

“그래서 그놈들이 그렇게······”

박현은 깨달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자신들도 겪은 퓨리엔트족의 변화, 이젠 확실한 원인과 이유를 알았다.그들의 지도자가 변화를 만든 거다. 그 지도자는 하프퓨리엔트다.퓨리엔트족은 과거와는 달라진 거다.

“그나저나 흑성이가 무사해야 할 텐데.”

걱정을 중얼거린 박준은 다시 들어온 그렉을 돌아봤다. 탕약이 든 텀블러를 가지고 왔다. 강흑성이 시킨대로다. 돌아가면 박현이 복용하던 탕약을 무슬란에게 먹이라고 했다. 무슬란은 찡그린 얼굴로 받아 마신다.

‘일단은 성공한 건데······’

현황을 더듬으며 박준은 위험요소가 뭐가 있는지 점검했다.자신들이 정찰대를 공격한 흔적과 정황은 없다. 이대로 여기 있던 사람들인 거다.오늘 결과로 정찰대가 오든 군대가 오든 모르쇠로 잡아떼야 한다.

‘지프도 태워버렸고 이동한 바퀴자국은 흑성이가 없애버린다고 했으니까.’

혹여 남아 있을지 모를 수림 안의 흔적은 모르는, 샹그릴라와 상관없는 걸로 하는 거다. 그러니 2창고로부터의 흔적만 확실히 지우면 된다.

‘꾸물거리면 안 되지.’

동생 박현과 무슬란과 그렉을 돌아본 박준은 바로 밖을 향해 움직였다. 계단을 잡고 올라가는 동안 염원하게 되는 것은 강흑성의 무사뿐이다.

* * *

어둠을 찢어발기는 비룡편의 포효, 그 짜릿한 피와 죽음의 감각 속에서 진류는 소름을 삼켰다. 전율을 만끽했다. 이것이 진정한 싸움, 얼마 만에 손에 피를 묻히는 것인지 모른다. 이런 싸움을 얼마나 갈구했던가.

“고맙구나 버러지놈들아! 으하하하!”

대소를 터트리며 진류는 퓨리엔트족을 휩쓸었다.검은 바람처럼 비룡이 수림을 가를 때마다 퓨리엔트족의 형상이 흩어졌다.빔소총으로 무장했지만 무용지물, 비룡편의 궤적 안에 든 그들은 부서지는 인형일 뿐이다.그러나 진류의 그 움직임은 가로막혔다.하프퓨리엔트, 그가 검을 후려쳤다.

‘이놈이!’

대검이 벼락처럼 갈라오는 걸 보며 진류는 비룡편을 휘감아 돌렸다. 회오리와 같이 휘도는 창이 된 비룡편은 상대의 대검을 휘감고 들어갔다.

‘손목을 날려주마!’

회심의 쾌재를 삼킨 진류는 결과를 의심치 않았다. 자신의 비룡이십사식은 절기 중의 절기, 평생을 피땀 흘려 고련한 무공이다. 심즉생의 경지는 아니지만, 마음이 일면 비룡편이 따라 움직인다고 자부할 정도다.그런데 그 자부가 깨지는 결과가 보인다.상대의 검이 비틀림으로 비룡을 밀어낸다.아니 털어낸다. 그 검극이 소용돌이치며 목으로 들어온다.

‘헛!’

당황 속에서 진류는 신형을 뒤로 날렸다.

* * *

수림을 전력으로 헤치고 나가며 강흑성은 냄새를 찾아냈다. 동시에 놈의 강렬한 기감을 포착했다. 바람이 불어오는 저 앞, 블루마운틴이 있다.

‘거대수로 둥지를 만들었겠지.’

블루마운틴들은 그렇게 한다, 거대수를 돌도끼를 찍어 거처를 만든다. 새들이 둥지를 만드는 것처럼이다. 조악하면서도 짜임새 있는 거처다.

‘확실히 다른 짐승들과는 다른 놈.’

지구에 원래 살던 유인원과의 짐승과 유사한 존재가 블루마운틴이다. 그래선지 놈들의 지능은 상당하다. 돌도끼와 몽둥이를 무기로 사용하는 것이 단적인 예다. 팔이 네 개인 놈들의 무지막지한 공격은 경험해 봤다.

‘너를 본 따 만든 로봇을 소개시켜 주마.’

흑청빛 안광을 어둠 속으로 뿜어내며 이동한 강흑성은 무원신풍보의 속도를 늦췄다.일부러 기척을 숨기지 않았다.이 행보는 블루마운틴을 깨우기 위한 것이다.자정부터 새벽까지 안 움직이는 놈들, 불러내야 한다.

‘제법 잘 만들었네.’

둥지 앞에 멈춰 선 강흑성은 옅은 겸탄을 삼켰다.그냥 나무들을 베어 쌓은 게 아니라 제법 목책처럼 꾸며놓았다.인간들이 만든 걸 보고 한 거다.중앙에 드나드는 빈공간이 문처럼 있다. 그 앞에 서서 안을 봤다.

‘그래, 냄새를 맡았으면 일어나라.’

잎이 무성한 잔가지들을 침대처럼 쌓아 놓고 블루마운틴은 자고 있다. 그런데 코를 움찔거린다. 바람이 부는 방향이 바뀌어 놈에게로 가고 있다.강흑성 자신의 냄새가 맡아질 것은 당연, 피냄새가 놈을 깨우고 있다.

“크워?”

흉악한 숨소리를 짧게 내며 놈이 눈을 떴다. 뒤룩거리는 눈알이 이편을 본다.

“그만 자라.”

강흑성은 덤덤한 얼굴로 그 말을 던졌다. 블루마운틴은 바로 반응했다.

“크워어!”

괴성을 지른 놈이 벌떡 일어선다. 팔 네 개로 바닥을 짚으면서, 돌도끼와 몽둥이를 움켜잡으면서다. 강흑성은 가볍게 손을 흔들며 돌아섰다.

“따라 와.”

수림 속으로, 온 길을 다시 달려가는 강흑성을 쫓아 블루마운틴은 미친 듯이 달렸다.

* * *

턱밑을 스치고 간 상대의 검을 노려보며 진류는 뜨거운 숨을 삼켰다.상대는 강자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예상보다 더 강한 존재다.지금 이 한수의 나눔으로 여실이 절감한다. 자칫했으면 턱이 갈라질 뻔했던 순간이다.

‘네놈도 놀랐겠지.’

하프퓨리엔트, 상대의 어깨 옷깃이 갈라졌다.비룡비격, 진류 자신이 펼친 비룡편의 한 수가 만든 결과다.놈의 어깨를 후비지 못한 것이 아쉽다.

“제법 감탄할 만한 재간을 가졌구나.”

서늘한 살기가 흘러나오는 안광으로 입을 연 진류는 상대를 거듭 자극했다.

“하프퓨리엔트라니, 혼혈종 따위가 정찰대를 공격하는 일이 생길 줄은 정말로 예상 못했다. 칭찬할 만 하다만 어떠냐? 수하들이 죽고 있구나?”

이렇게까지 만든 건 정말로 놀랄 일이지만 끝까지 성공하겠냐는 물음, 비웃음이다. 진류의 말대로 퓨리엔트족들은 로봇에게 죽임당하고 있다.

“수하들이 아니다.”

하프퓨리엔트 사내의 반응, 대답이 나왔다.수하들이 아니라고 한다.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진류는 알아들었다.빅풋에게 도륙당하는 자들, 퓨리엔트족은 수하가 아니란 거다.그렇다면 뭔가, 그 대답이 담담히 나온다.

“우리는 동료이고 형제다.”

미간을 꿈틀한 진류는 대검을 가슴 앞에 세우는 상대에게 다시 물었다.

“네놈의 무공, 근원이 무엇이냐?”

대답대신 하프퓨리엔트 사내는 행동을 이어냈다. 등에 가로 멘 검갑을 풀어 검자루에 연결했다. 그렇게 장병기를 만들어 느릿하게 휘돌렸다.

‘응?’

번뜩 떠오르는 것이 있다. 그런데 그것은 다시 볼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 거다.

‘태백문의 태백대력검!’

마지막 문주 하늘검 이경명과 함께 사라진 검, 그것이 바로 저러하다고 알고 있다. 검자루에 검갑을 연결해 장병의 검을 이루어 펼치는 검.

“알아보는 모양이구나.”

다시 입을 연 하프퓨리엔트, 그가 자신의 이름을 말한다.

“내 이름은 우란테다.”

귀를 파고드는 상대의 음성, 이름을 말한 의도가 뭔지 진류는 알았다.

‘이놈이!’

진류 자신을 죽일 자가 그 이름이란 거다, 알고 죽으란 소리다.

“벌레만도 못한 혼혈종 놈이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구나!”

대기가 찢어지는 소리를 일으키며 비룡편이 휘돌았다. 그 분노와 살기로 진류는 걸음을 냈다. 이젠 확실한 승부를 낼 때, 상대를 죽일 때다.

“천지문의 무예가 어떤 것인지 죽음으로 알게 해 주마!”

진류는 비룡편을 휘감아 돌리며 나아갔다. 마치 작은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는 것처럼, 토네이도가 된 것 같은 형상과 기세로 우란테에게 향했다.목숨보다 고귀한 사문의 무공, 천지문의 천지비룡편을 무섭게 펼쳤다.

크워어어!

수림을 흔드는 소리가 울린 것은 그때였다. 빅풋과 퓨리엔트족에 엉겨 붙은 곳, 수림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그건 블루마운틴이었다.

* * *

접전현장으로 질주하며 강흑성은 다시 귀식대법을 펼쳤다. 경공을 펼치는 도중이라 잠깐밖에 가능하지 않은 상황, 그렇지만 이미 성공했다.

‘우란테.’

귀를 파고든 그 이름을 되뇌며 강흑성은 방향을 틀었다.열심이 뒤를 쫓아온 블루마운틴은 상대를 봤다.자신만한 크기의 로봇이다.본능적인 적개심으로 달려온다. 수림을 헤치고 나간다. 괴성으로 존재를 알린다.

‘어울려 봐라.’

거대수 뒤로 은신한 강흑성은 접전을 지켜봤다. 비호같은 도약으로 튀어나간 블루마운틴이 전투로봇의 머리를 몽둥이로 후려치는 광경이다.

‘빅풋.’

그 순간 정찰대의 지휘관이 낸 외마디를 강흑성은 속으로 되뇌었다. 밑도 끝도 없는 단어, 하지만 뭔지 알 것 같다. 로봇의 이름이 분명하다.

‘제대로군.’

흑청빛 안광을 흘려내며 강흑성은 옅은 경탄과 살기를 삼켰다.빅풋이란 전투로봇과 블루마운틴은 그야말로 무지막지 하게 얽혀 싸운다.돌도끼와 몽둥이는 다 으스러졌고 로봇도 검을 놓쳤다.서로 손을 맞잡았다.힘겨루기로 들어간 접전 상황, 로봇의 등에서 돌출한 야무치 몸통 같은 두 팔까지 합세해 양측의 팔이 다 얽혔다. 블루마운틴은 괴성을 지른다.딱 봐도 엄청난 힘을 쓰고 있는 모습, 그런데 빅풋의 눈알이 빛난다.

크워억!

블루마운틴이 괴성을 또 지른다. 뒤로 밀려가면서다. 그것만이 아니라 손목이 꺾이고 있다. 그 당황과 피어나기 시작한 고통으로 지른 괴성이다.

‘역시 그런가.’

강흑성은 고개를 미미하게 끄덕였다.예상은 했지만 빅풋이란 로봇이 더 강하다.블루마운틴 같은 놈을 모델로 만든 전투병기다. 더 강한 힘과 파괴적인 살상력을 가질 것은 당연하다.블루마운틴은 곧 쓰러질 거다.

‘지금.’

흑청빛 안광을 강하게 뿜어낸 강흑성은 일어섰다. 빅풋이 블루마운틴의 팔을 꺾어 주저앉게 만든 순간, 팔이 부러지는 걸 보며 달려 나갔다.

‘목.’

로봇의 공략점을 향해 강흑성은 무원신풍보를 무섭게 전개했다.

‘소용없다.’

로봇의 뒤통수 눈알이 번득이는 찰나에 강흑성은 도약했다. 갑작스러운 블루마운틴의 등장에 이어 로봇과의 싸움을 보느라 멈춰 서 있던 두 인물, 정찰대 지휘관과 하프퓨리엔트 사내 우란테의 치뜬 눈을 느꼈다.

‘무원일격.’

심중에 돋아나는 그 무의에 온힘과 의지를 실어 강흑성은 검을 찔렀다.콱, 강철장갑을 파고 들어가는 마검 패천마혈의 소름끼치는 울음을 들었다.넉자의 장검은 자루만 남기고 박혔다. 로봇의 중추부를 파괴했다.그 순간 야무치 몸통 같은 로봇의 두 팔이 돌아왔다.하지만 뒤늦은 반응, 로봇의 등을 밟고 차며 강흑성은 떨어져 나왔다. 허공을 휘돌았다.땅을 밟고 선 강흑성은 결과를 봤다. 스파크를 일으키며 휘청거리는 로봇 빅풋이다.운동능력을 상실하고 휘청거리는 놈에게 블루마운틴이 달려들었다.괴성을 지르며 부러진 팔로 마구 내려친다. 로봇은 우그러진다.강흑성은 느릿하게 그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자신을 보는 두 인물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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