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강호. 46. 짝퉁의 최후.
46. 짝퉁의 최후.
황당한 충격, 아니 경악으로 진류는 눈꺼풀을 떨었다.신병기가 무너졌다.3미터 거구의 신형을 비호처럼 기동하던 전투로봇 빅풋이 쓰러졌다.퓨리엔트족을 도륙하던 전투력이 거짓이었던 것처럼 허무한 결과다.
‘저놈이 대체 누구야?’
하프퓨리엔트 우란테와 본격적인 접전을 벌이려던 찰나에 저놈이 나타났다. 아니 그 직전에 블루마운틴이 튀어나왔다. 그렇다는 걸 기감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란테와의 대적상황이라서 반응하지 못했다.
‘이렇게 만들었다고? 저놈이?’
지금 이 순간 드는 생각은 그거다.젊고 건장한 체격을 가진 의문의 존재다.넉자길이의 붉은 빛이 도는 장검을 움켜잡은 저놈이 꾸민 일이다.
‘블루마운틴을 이곳으로 유인해 왔······!’
황당해서 부정하고 싶지만 결과가 그렇다.저 정체모를 젊은 놈이 블루마운틴을 끌고 온 거다.분명히 기감 속에 다른 것이 있었다. 그걸 블루마운틴과 구분하지 못한 거다.그건 저놈의 능력이 그렇다는 방증이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늘어뜨린 비룡편을 가늘게 떨며 진류는 주변을 돌아봤다. 아무도 없다.정찰대원들은 모조리 쓰러졌다.멀티폰으로 확인해 봐도 생명반응은 없다.그리고 그건 퓨리엔트족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결과는 엄연히 다르다.
‘정찰대가! 레드스콜피온이!’
견디기 힘든 분노와 살기가 치밀어 올라 진류는 커다랗게 소리 질렀다.
“우와아!”
수림과 어둠을 뒤흔드는 고함, 함성, 격노에 찬 기합.
크워어어!
반응한 것은 블루마운틴이다.팔 네 개 중에 두 개가 부러진 놈은 고통으로 소리 질렀다.분노의 고함이다. 성한 손으로 빅풋의 검을 움켜잡았다.피투성이 몰골이라 더욱 무시무시한 형상, 진류에게 달려간다.
“찢어 죽여 버린다!”
격노를 서릿발처럼 뿜어내며 진류는 비룡편과 함께 휘돌았다.벼락처럼 내리치는 블루마운틴의 검을 휘감았다.소용돌이에 휘말린 것처럼 검이 돌았다.블루마운틴의 팔도 돌았다.그 찰나 후에 뜯겨져 날아갔다.
크워어억!
고통에 찬 블루마운틴의 비명, 두 팔이 사라진 괴수에겐 더 강력한 공격이 들어갔다.돌개바람처럼 떠오른 진류의 형상에서 터져 나온 한줄기 벼락이다.천지비룡편의 정화 천지붕격, 일섬의 궤적이 머리를 쓸었다.두 개의 머리통이 몸통에서 이탈했다.블루마운틴을 상징하는 머리 두 개, 면도날에 잘린 포도송이처럼 떠올랐다.영문을 모르고 휘도는 사방을 보는 네 개의 눈알이다.땅에 떨어져 구르고서야 경련을 일으킨다.휘청, 두 걸음을 쿵쿵거리며 내디딘 블루마운틴의 몸뚱이가 쓰러졌다. 잘려나간 목으로 파란 피를 뿜어내는 괴수, 그 앞에 진류가 멈춰 섰다.
“괴수라고 해도 짐승은 짐승, 너 같은 놈에겐 옷깃도 허용 안한다.”
차가운 살기를 뱉은 진류는 경련이 잦아드는 블루마운틴에게서 돌아섰다. 좌측의 하프퓨리엔트 우란테와 우측의 정체모를 젊은 놈을 응시한다.
“혼혈종 놈의 이름은 들었고, 네놈이 누군지 알자꾸나.”
진류는 비룡편을 촤륵 소리 나게 뿌렸다. 현재 상황이 녹록치 않다는 것을 알지만 투지를 일으켰다. 하프퓨리엔트 우란테와 정체 모를 젊은 자가 연수할 수도 있는 거다. 그런데 속에서 투기와 살기가 끓어오른다.
‘이런 날을 기다렸어.’
정찰대의 감찰관이 되어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만 하던 생활, 무공을 품고 있지만 사용할 기회조차 없었다. 천지문의 제자라는 타이틀은 영광스럽고 상당한 지위환경을 안겨 주지만, 전공의 기회를 주는 것은 아니다.
‘공은 스스로 만들고 쟁취하는 것.’
그 기회가 지금 목전에 있다.예상하지 못했지만 닥쳐온 기회, 움켜잡아야 한다.북부지구 정찰대가 전멸한 대사건이다.그 원흉의 수괴를 잡는 거다.하프퓨리엔트 우란테라는 저놈을 잡으면 이 위기는 기회가 된다.
‘두 놈이 연수해 합공한다고 해도 버틸 수 있어.’
그렇다, 이기는 건 어렵다.버티는 거다. 서부지구와 동부지구에서 지원이 올 거다.북부지구 본부를 나설 때 지원발신을 했다. 건쉽을 동원한 화력이 도착할 거다.그때까지만 버티면 성공, 전공을 세우는 거다.
“우리 셋만 남았는데 이름 정도는 알려줘도 되지 않나?”
다시 입을 연 진류, 태연하고 여유롭게 미소까지 입가에 문 그 언행의 진의를 우란테가 지적한다.
“시간을 끄는 수작이군.”
진류는 미간을 꿈틀했고 우란테는 이어 말했다.
“서부지구나 동부 지구에서 이미 출발했겠지. 샤크를 타고 비행해 오면 시간이 얼마 안 걸릴 거야. 그때까지만 뭉개고 버티면 된다는 생각이야.”
거칠게 곤두서는 미간을 억지로 다스리며 진류는 뜨거움 숨을 토했다.
“네놈들의 목숨은 이미 끝난 거다. 발버둥 쳐 봐야 죽음 밖에는 없다. 그래, 혼혈종 네놈 말대로다. 곧 지원이 도착할 거다. 너희를 찢을 것이야.”
섬뜩한 살기로 물든 미소를 피워낸 진류는 남은 말을 뱉었다.
“네놈들의 배후에 있는 것들 전부, 씨도 안남기고 모조리 갈아버릴 것이다······!”
진류의 살기가 퍼트린 여운이 채 흩어지기도 전이다.
“그러고 있을 건가?”
강흑성은 말했다. 밑도 끝도 없는 말, 시선은 우란테를 향한다.
‘무슨?’
우란테는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 무슨 의미인지 몰라서다.그런데 이내 깨닫는다. 시간이 없다는 걸 알면 싸워 죽여야지 왜 그러고 있냐는 거다.
“어쩔 건가?”
강흑성에게 되물음을 던진 우란테, 강흑성은 답을 던졌다.
“난 상관없어.”
우란테는 심유한 표범족의 눈을 서늘하게 빛냈다. 그렇기는 진류도 마찬가지다.강흑성의 답, 상관없다는 말이 가진 함의다.난 이 자리에서 누구편도 아니니 너희끼리 싸우라는 소리다. 그런데 방관한단 건 아니다.
“지켜보다가 누구든 등을 찔러버리겠다는 거냐?”
진류가 차가운 살기로 으르렁 거렸다. 우란테의 눈빛도 비슷하다.
“그게 걱정되면 둘이 손잡고 날 먼저 공격하든가.”
덤덤한 얼굴로 툭 말하는 강흑성, 진류와 우란테는 순간 서로의 눈을 응시했다. 그러나 바로 미간을 찌푸린다. 한 순간이나마 신뢰할 대상이 아니다. 그건 오히려 기회를 주게 된다. 죽고 나면 모든 게 끝이다.
“네놈은 도대체 누구야?”
살기로 점철된 진류의 시선과 물음을 받으며 강흑성은 뒤로 걸음을 물렸다.
“시간이 없어.”
진류는 움찔하며 반응했고 우란테는 대검을 움켜잡았다. 어떠하든 명백한 상황과 현실, 우란테는 진류를 죽여야 하고 진류는 제지해야 한다.
“이놈!”
강흑성을 향해 진류가 소리치는 순간 우란테가 움직였다. 싸늘한 검광을 은하수처럼 일으키는 검법, 태백문의 태백대력검이 바람을 불어냈다.
* * *
잠이든 무슬란을 응시하며 박현은 무거운 숨을 내쉬었다.피로와 고통에 지켜 신음 같은 숨소리를 내고 있는 무슬란이 가엽다.아니 미안하다.저 지경이 되도록 싸웠는데 자신은 이렇게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못했다.
‘목숨까지 위태로워 질줄 알면서도······’
무슬란은 팔극대력을 사용했다.온전히 익히고 체화하지 못한 무공이다.오성이 넘어서야만 가능한 내력의 조화지력, 그 때문에 저런 꼴이다.물론 강흑성이 돌아오면 치료가 가능할 거다. 그런데 아직 무소식이다.
‘무사해야 할 텐데.’
무슬란을 다시 돌아본 박현은 눈을 감고 간절하게 기원했다. 강흑성이 무사하게 귀환하기를, 오늘밤의 일로부터 모두가 무사하기를.
* * *
“후아, 됐다.”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박준은 2창고 안을 바라봤다. 1창고 안의 박스들을 옮겨 놓고 보니 그럴 듯하다. 지프를 숨겨뒀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거대수 수액을 뿌렸으니 배기가스 냄새도 걱정 없어.’
킁킁거리고 2창고 안 냄새를 맡아본 박준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뭐가 그렇게 좋습니까? 흑성이도 안 돌아 왔는데요?”
옆에서 불속 튀어나온 그렉, 불만스러운 얼굴을 본 박준은 인상을 확 구겼다.
“뭐 인마? 내가 언제 뭘?”“웃었잖아요? 지금요?”“무슨 개······”“개는 없어요, 호랑이지.”
인상 쓰던 얼굴을 박준은 일그러뜨렸다.
“으이그.”
내가 제 명에 못 죽지라는 얼굴로 한숨 쉰 박준은 바로 눈썹을 세웠다.
“너 왜 사람 속였냐?”
이건 뭔 소리래, 하는 눈을 했던 그렉은 의미를 깨닫고 시선을 회피했다.
“무공을 익힌 놈이 아닌척하고 여태 나를 물 먹였어?”“아, 물은 무슨 물을 먹였다고 그래요.”“무슨 죄를 짓고 도망치던 놈인 거냐? 나한테 피해오는 거 아니냐?”“어 참 적당히 하십쇼, 지금 이 상황에 그런 소리가 나옵니까?”
눈썹을 더 세우고 다그치려던 스르르 눈썹을 내렸다. 입맛을 쩝 다셨다.
“하긴, 죽을 동 살 동 하는 판국인데.”
그렉은 수림의 어둠을 응시하고 나직하게 말했다.
“흑성이가 돌아올 겁니다.”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그러길 간절하게 바라는 염원이다.
“시장할 텐데 먹을 거라도 준비하죠.”
그렇게 그렉이 돌아서는데 소리가 들렸다.샹그릴라 주방에서 들려오는 소리, 삼백이가 음식을 만드는 소리다.박준과 그렉은 피시시 웃었다.
* * *
하프퓨리엔트, 우란테라는 이름을 밝힌 자와 정찰대 지휘관과의 싸움은 무시무시하다. 고수들의 싸움, 마인 묘진위와 붉은 엘프 크라폰과의 접전 이후로 처음 보는 거다. 엄밀히 그들은 법술의 힘을 빌린 싸움이었다.그러니 지금 보는 저들의 싸움이야말로 진정한 무력의 충돌이다.보고 있노라니 속에서 피가 꿈틀댄다.저 싸움 속에 끼어들어 어울리고 싶다.그런데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 강흑성 자신의 무력이면 가능할지.
‘내 무위를 정확하게 몰라.’
환골탈태를 했고 마검의 힘을 흡수했다.그것만으로도 엄청난 기연이다.아버지의 기억과 경험으로 무공들을 깨닫고 체화하고 있다. 무원신공의 연마로 무원진력을 매일 쌓아나가고 있다. 나날이 발전하는 중이다.
‘패천마혈이란 신병의 이점이 있지만 정순하게 다스리지 내력은 문제가 될 수 있어.’
현재 상태가 그렇다.마검의 마력을 흡수했지만 그뿐이다. 내 것으로 소화해 낸 것이 아니다.내부에 깃든 그 힘은 호시탐탐 강흑성 자신을 노리고 있다.그렇다는 걸 알고 있다. 잠든 것 같지만 결코 잠든 게 아니다.
‘블루마운틴과 싸울 때처럼 반은 내정신이고 반은 마력이 준동한 상태로······’
그런 상태를 넘어가면 위험하다. 그렇다는 걸 예감한다.물론 그것도 겪어봐야 확실히 알 일이다.애초에 강흑성 자신이 마검을 움켜잡고 마력을 흡수한 것부터가 괴이한 일이다.어쩌면 아무 일 없을 지도 모른다.
‘확실하지 않은······’
강흑성은 생각을 잇지 못했다.정찰대 지휘관이 펼치는 무공 때문이다.무서운 선풍을 터트리고 있는 강철채찍, 저것이 갑자지 기억을 돋게 한다.
“철룡이십사식.”
부지 간에 그 이름을 말한 강흑성은 우르르 소름을 털어냈다.
‘아버지의 무공······!’
그것이다, 그 이름이 철룡이십사식이다.지금 정찰대 지휘관이 펼쳐내는 것과 유사하다. 그러나 진정한 위력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크다.아버지의 철룡이십사식은 천지를 찢어발긴다.그 무공이 천지문에 갔다.
‘그렇구나.’
어떻게 그렇게 된 건지 뚜렷한 기억은 안 떠오르지만 그렇다는 걸 안다. 아버지가 개요를 전해 준건지, 천지문에서 모방을 해 만든 것인지다.
‘어쨌든 저 무공의 원형은 아버지의 철룡이십사식.’
우르르 다시 한 번 어깨를 떨던 강흑성은 눈을 부릅떴다. 하프퓨리엔트 우란테, 그의 검에서 빛이 터져서다. 눈부신 빛, 대검이 부서진 빛이다.
‘파검술!’
우란테가 휘두르던 대검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그 파편의 폭풍이 정찰대 지휘관을 덮쳤다. 피하고 자시고 할 사이 없던 접전의 순간이다.강철채찍이 이뤄내던 선풍의 장막이 찢어졌다. 그 주인은 휘말려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