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48화 (49/172)

혹성강호. 48. 여기가 끝이 아니기에.

48. 여기가 끝이 아니기에.

아침부터 하늘을 종횡으로 날아다니기 시작한 샤크들의 비행에 모두가 겁을 먹었다.은빛의 저 건쉽은 무서운 화력을 가진 전투병기다.속도를 낼 때는 날개를 접는다. 그 모습이 상어 같다고 해서 샤크라고 한다.

‘날개를 펴도 가오리 같다고 하기엔 쌔끈한 놈.’

하늘을 보며 박준은 과거를 더듬었다.대륙전쟁 당시에 적들이 운용하던 샤크에게 공습 당하던 기억은 끔찍하다.아군이 공습한 자리도 마찬가지, 지옥이었다.샤크에 달린 벌컨기관포 사격은 지상을 초토화한다.

‘여기에 계속 머무르는 건······’

미간을 깊게 좁히고 박준은 생각하고 생각했다.어차피 동생 박현의 로봇다리를 구하자면 대륙으로 가야 한다,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었다.그런데다 이곳 샹그릴라는 이제 위험해졌다.결행의 날은 빠를수록 좋다.

‘혹들이 달려 있는 게 문젠데.’

불안한 얼굴로 하늘을 보며 뒤뜰 텃밭을 왔다 갔다 하는 여인들, 홀 청소를 하고 있는 명희를 비롯한 아이들, 저들이 문제다. 애초에 맡지를 말았어야 했는데 이렇게 됐다. 저들의 안전을 어떻게 할 건지가 문제다.

‘하, 답답하네. 흑성이 이 자식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여인들을 어떻게 할 건지 강흑성은 딱 부러진 답을 내놓지 않았다.

‘뭐 아직 그런 이야기까지 하진 않았지만.’

이후의 대응을 이야기 했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무엇보다 박준 자신의 박현을 위해 행동할 내용도 강흑성은 아직 모른다.그렇게 되면 강흑성도 어디로 갈지 모르겠다.그런 부분들을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하는데 정찰대의 움직임이 닥쳐왔다.우선은 이 문제를 넘겨야 한다.

‘이제 들이닥칠 때가 됐는데.’

애초 계획대로 모르쇠로 뭉개고 넘어가야 한다. 최소한 한번은 돼야 한다.

‘피할 수 없는 일이니까.’

찌푸리듯 좁힌 미간으로 박준은 하늘을 응시했다. 그 눈길에 화답하듯이 북쪽에서 샤크가 날아왔다. 샹그릴라 상공을 선회하더니 마당에 내린다.수직 착륙하는 샤크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수림에까지 퍼져가 수목들을 흔든다.매끈하고 위협적인 샤크의 동체가 열리고 정찰대가 나온다.게틀러 탑승인원과 같이 스무 명 한 팀의 정찰대, 살기등등하다.

“아이고 어서들 오십시오.”

박준은 버선발로 뛰어나가 서방을 맞이하는 색시처럼 환대했다. 누추한 곳을 찾아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는 듯 연신 굽신거리며 손을 비빈다.

“고생들이 많으십니다. 우선 시원한 물로 갈증부터 푸시죠.”

박준이 뒤돌아보자마자 그렉이 카트를 밀고 왔다.스무 개의 물 잔에 우물에서 퍼 올린 시원한 물을 가득 채웠다.그런데 정찰대는 차갑게 본다. 물 따위를 마시러 온 게 아니라는 걸 확실히 하는 섬뜩한 기세다.

“이곳에 상주하는 모든 인원을 확인해야겠다.”

차가운 살기가 꿈틀대는 눈으로 말하는 정찰대 팀장, 전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이다.당연히 서부지구나 동부지구 인물이다.왜 저러는지 알기에 박준은 부러 더 두려운 얼굴을 보였다. 고갤 숙이며 허둥거렸다.

“아이고 무슨 일로다가 이렇게, 아니, 예예, 알겠습니다요.”

수림 북쪽에서 일어난 화염들을 봐서 대강은 짐작한다는, 그래서 이런 일이 재수 없게 닥쳤구나 하는, 그렇지만 살자면 어쩔 수 없지의 반응이다.박준과 샹그릴라의 사람들은 누가 봐도 그런 표정으로 행동했다.

“어서들 모여, 어서 어서.”

박준의 다급한 손짓을 따라 모두가 모였다. 그렉과 삼백이가 모였고 명희와 샤이닌과 제닌과 진숙이를 비롯해 그 엄마들과 여자들이 한데 모였다.뒤늦게 뒤뜰에서 강흑성이 걸어왔다. 여태 뭘 했는지 알고 있다.

‘흑성이가 만든 독으로 이놈들까지 다 쓸어버릴 수 있을까?’

속마음을 삼키며 박준은 헛웃음도 삼켰다. 정말 황당무계한 생각이어서다.저렇게 천산마갑슈트를 완전 착용한 상태로는 소용이 없다고 했다.독이 주효했던 것은 그럴만한 때와 장소에서 암격을 가했기 때문이다.

‘귀신대가리, 이것들은 이미 독에 대해 파악했어.’

브라이튼의 정찰대가 당한 원인 중에 독이 있다는 걸 모를 리 없을 거다. 그래서 저런 대응인 거다. 슈트로 전신을 다 가린 상태, 총만 겨눈다.

‘총구를 겨눈 건 아니지만 언제라도 쏴버릴 태세.’

차가운 한기를 침과 함께 삼킨 박준은 정찰대 팀장의 고글을 응시했다. 투명한 상태로 얼굴과 눈이 보인다. 기묘한 빛으로 꿈틀거리는 눈알이다.

“여자들은 뭐야?”

여러 가지 뜻이 든 물음이다. 박준 등의 배우자 같은 존재로 보기엔 숫자가 너무 많은 거다. 캐리언 아이들도 있다, 뭔가 아귀가 안 맞는 거다.

“아 예, 브라이튼 대장도 알고 계신 내용입니다만······”

박준은 손을 비비며 이야기했다. 츄란족 노예사냥꾼들에게서 구해낸 이야기, 그렇게 샹그릴라에 머물게 됐고 서로 도와 일하며 지낸다는 내용.

“브라이튼 대장이 알고 있었다고?”“예, 그렇습니다. 인신매매는 금율(禁律)이 아니겠습니까? 중부지구 사령관이신 그리샴 장군께서 아주 격노하시는 일이라고 압니다. 어기는 자는 가혹하게 처벌한다고 하더군요. 브라이튼 대장도 그 뜻을 존경하는······”“됐고.”

차갑게 박준의 말을 자른 정찰대 팀장은 다시 샹그릴라 식구들을 훑어봤다. 그렉과 강흑성에게 눈길이 머무를 때 서늘한 빛을 냈다. 이내 움직여 그렉과 강흑성의 손목을 잡았다. 내력을 흘려 넣어 반응을 체크한다.

“무공을 익혔나?”

강렬한 정찰대 팀장의 눈을 감히 마주 보지 못하는 태도로 그렉은 대답했다.

“저 같은 놈이 감히 그렇겠습니까, 잡스러운 권각술을 아는 정도입니다.”

정찰대 팀장은 강흑성에게 시선을 줬다가 다시 물러났다. 완맥을 잡아 내력을 흘려 넣어 본 결과 아무 반응이 없기도 하고, 내력이 있는데 속일 정도라고 생각할 수 없는 대상들이다. 그냥 완력정도만 있는 자들이다.

“어젯밤에 일어난 일에 대해 아는 게 있다면 말해라.”

박준을 응시하는 정찰대 팀장의 눈동자는 차갑게 응축해 있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는 상황, 폭발과 화염을 모를 수가 없는 터, 묻는 거다. 털끝만큼이라도 관련된 정황을 포착한다면 쓸어버리겠다는 의지다.

“아 그것이······”

두려움에 가득한 반응을 보이며 박준은 입을 열었다.

“퓨리엔트족과 정찰대가 싸운다는 건 대강 알고 있었습니다······”

* * *

“귀신대가리들······!”

작두칼을 움켜쥐고 계단 아래 선 무슬란.창백한 그 얼굴을 보고 천장을 응시한 박현은 이가는 숨을 흘려냈다.무슬란의 저 분노보다 더한 것이 속에서 꿈틀거려서다.당장이라도 달려 나가 칼을 휘두르고만 싶다.

‘죽일 놈들······!’

주먹을 쥐고 치를 떤 박현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흥분하면 안 돼.’

어느 때 보다도 냉정하고 침착해야 한다.복수는 성공했다. 그렇지만 이제 먼지만큼이라도 꼬투리를 보이면 끝장이다.이 위기를 잘 넘겨야 한다.

‘제발, 아무 일도 없기를······!’

간절한 기원 속에서 박현은 지하밀실 밖의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 * *

불안한 얼굴로 이야기 하는 박준과 다른 이들을 예리한 눈으로 주시하며 듣던 정찰대 팀장은 손을 들었다. 들으나 마나한 이야기, 그만하란 거다.박준은 뻘쭘한 얼굴로 입을 닫았고, 정찰대는 수색을 시작했다.

‘저놈들!’

정찰대가 슈트의 바이오웨폰기능을 발동했다는 걸 박준은 알았다.독을 찾으려는 거다.브라이튼의 정찰대가 당한 현장으로부터 불거진 대응행동이다.독에 오염된 그 현장을 만든 존재와 원인을 찾으려는 거다.

‘흑성이!’

바로 이어지는 생각은 강흑성이다.여태도 뒤뜰에서 독을 만들고 있었던 걸로 안다.아니 정확하게 독인지 탕약인지 모르지만 그럴 걸로 짐작했다.강흑성과 뒤뜰에서 독의 흔적이 반응하게 된다면 정말 큰일이다.

‘제기랄!’

박준은 당황과 불안으로 눈 밑을 떨었다.그런데 강흑성의 표정이 너무 태연하다. 그걸로 알았다. 이미 조치를 한 거다.그렇다, 이런 일이 생길 걸 예상 안 했을 리 없다.저 치밀하고 냉철한 놈은 흔적을 없앴다.

‘당연한 건데, 내가 너무 흥분하고 불안에 사로잡혀 있어.’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냉정을 품은 박준은 정찰대의 행동을 지켜봤다. 샹그릴라 홀 안팎을 뒤지고 게스트하우스 숙소와 창고를 뒤지고 있다.

‘그래봐야 나올게 하나도 없을 거다.’

이 귀신대가리새끼들아, 하는 말을 침과 함께 삼킨 박준은 순간 흠칫했다.

‘가만, 이놈들이 만일 화풀이를 한다면······’

최악의 상황이 갑자기 예감처럼 상상된다.북부지구가 전멸한 분노를 품은 놈들이다. 샹그릴라를 아무상관 없는 이들이라고 결론 낸다고 해도 그냥 물러가지 않을 수 있다.무법과 폭력의 야만세상, 가능성은 크다.

‘우릴 학살해서 분풀이 할 생각이라면, 그런 생각을 조금이라도 품는 다면······!’

우르르 소름을 털어낸 박준은 다른 이들을 돌아봤다.제 엄마 손을 꼭 잡고 두려워 떨고 있는 명희와 진숙이, 역시 같은 모습인 샤이닌과 제닌, 얼굴을 제대로 안보이려 고개를 깊게 숙인 카이오와 다른 여인들.

‘전부 정찰대 손에 죽을 수도 있어······!’

생각할수록 강하게 곤두서는 불길한 생각에 박준은 숨이 거칠어 졌다. 흔들리는 시선을 돌려 그렉과 강흑성을 응시했다. 그렉은 이미 비슷한 생각을 한 얼굴이다. 그런데 강흑성은 뭘 생각하는지 돌덩이 같다.

‘애초에 무모한 자살미션이었던 게 맞는 건가.’

정찰대가 이렇게 닥쳐 올 거고 예상한 했지만, 지금 맞닥뜨린 저들의 눈을 보고 새롭게 깨닫는다. 귀신대가리들이 분풀이로 무고한 이들을 죽일 수도 있다는 걸, 저놈들은 지금 앞뒤분간 없는 격노에 차 있다는 걸.

‘대륙전쟁을 겪어본 놈이 이런 예상을 못하다니······!’

처절한 지옥이었던 전쟁, 그 속에서 구르며 온간 것을 다 보고 겪었다.그런 상황을 상정했어야 했다. 정찰대의 대응이 어디까지 갈수 있는지 예견해야 했다. 그런데 여기서 술장사를 하며 보낸 시간이 무디게 했다.

‘어?’

박준은 눈썹을 확 세웠다. 정찰대 팀장이 홀로 급히 들어가서다.이유가 보인다. 바 뒤의 바닥, 비밀금고가 발각됐다.카슨을 겪으면서 더 은밀하게 해뒀다. 발각될 리 없는데 드러났다.그 이유가 뭔지 눈에 보인다.

‘크리듐!’

정찰대 팀장이 손에 쥐고 홀 입구로 나온다, 크리듐 조각이 든 주머니다.저것의 에너지가 슈트의 감지기에 반응한 거다.차폐기능이 있는 금고인데 이상하고 놀랍다.이유는 저거다, 멀티폰의 바이오웨폰기능이다.

‘크리듐을 생화학물질로!’

정찰대 팀장의 손목에서 붉은 빛을 명멸하는 멀티폰의 반응은 분명 그렇다.크리듐계측기능이 아닌데도 저렇게 반응해 찾은 거다.멀티폰이 저렇게까지 기능할 줄은 몰랐다. 분명 최근에 업그레이드 된 게 틀림없다.

“이게 뭔지 설명해 봐라.”

섬뜩한 안광을 투명한 고글 안쪽에서 쏟아내는 정찰대 팀장, 그 무서운 살기 앞으로 박준은 허둥지둥 나갔다. 겁에 질린 얼굴로 변명한다.

“그, 그것은, 브라이튼 대장 이전에 이곳을 드나들던 카슨 팀장이 맡겨놓은 물건입니다. 카슨 팀장이 사고를 당해 후송되었습니다만, 처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가지고 있던 것입니다. 절대로 제 것이 아닙니다.”“그래? 금고 안의 돈도 카슨이 맡겨 놓은 건가?”

흠칫 시선을 들었던 박준은 정찰대 팀장의 눈을 얼른 회피하며 이를 악물었다.저들이 지금 금고문을 파괴해 찾아낸 돈, 그건 그동안의 피땀이다.그걸 고스란히 뺏기게 생겼다. 그러나 그보다는 사는 게 급선무다.

“그, 그렇습니다.”

정찰대 팀장은 살기로 번득이는 안광을 풀어내다 고개를 끄덕였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반응, 그 옆으로 대원하나가 다가가 수색결과를 말한다.

“빔소총과 화약총을 비롯한 무기 몇 정 외엔 별다를 게 없습니다.”

재차 고개를 끄덕인 정찰대 팀장은 박준을 응시하던 눈을 돌렸다. 타이그란 족인 그렉을 웅시하고 겁에 질려 떠는 여인들을 바라봤다. 그 시선은 강흑성을 지나 로봇 삼백이에게서 끝났다. 그렇게 결론을 뱉어낸다.

“다 죽여라.”

비정하고 잔혹한 결정이 나온 그 순간.강흑성이 움직였다.여자들의 뒤에 석상처럼 서 있던 형상이 바람처럼, 번개처럼 나아갔다.무원신풍보를 전개한 그 신형은 정찰대 팀장이 눈을 치뜨는 순간 이미 손을 뻗었다.무원신장.강흑성이 몸통을 뒤틀며 터트린 그 손이 팀장을 강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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