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49화 (50/172)

혹성강호. 49. 피와 죽음으로 여는 길.

49. 피와 죽음으로 여는 길.

벼락같은 형상으로 강흑성이 움직였다.그 찰나에 그렉은 내력을 전력으로 발산하며 함께 움직였다.카이오의 곁에 서서 계속 눈길을 주고 있는 정찰대원 놈에게 쇄도했다.눈 부릅뜨는 놈의 고글에 주먹을 박았다.

철권(鐵拳).

평생을 연마해온 진신무공이다. 내력을 실은 그 주먹을 힘껏 내질렀다.콱, 고글을 부수고 들어간 주먹이 놈의 안면까지 박살냈다.숨기고 참아왔던 무공이 분노의 불을 타고 터져나간 힘이다.짜릿한 쾌감의 전율이 피를 터고 전신에 퍼진다. 그런데 놈들의 반격은 바로 들어온다.

“엎드려!”

대호의 포효 같은 소릴 터트리며 그렉은 소총을 겨누는 놈에게 나아갔다.그 순간 카이오의 외침으로 여자들은 쓰러지듯 엎어졌고, 빔소총이 겨누는 총구를 향해 간 그렉은 총신을 쳐올렸다. 빔은 하늘로 터져나갔다.쾅, 천산마갑슈트의 흉부장갑을 철권으로 강타한 그렉은 뒤로 밀리는 정찰대원 놈을 따라 붙으며 철산주(鐵山肘)를 후렸다. 해머 같은 팔꿈치가 고글을 깨뜨리고 안면을 박살냈다. 바로 그 순간 외침이 터졌다.

“움직이지 마라!”

그렉은 누구의 외침이고 무슨 의미인지 눈으로 봤다.정찰대 팀장의 곁에 서 있던 대원 놈이 터트린 외침이다.경직한 놈의 눈알이 고글 안에서 흔들리고 있다.마찬가지 눈과 얼굴을 한 다른 놈들이 빔소총을 내린다.

‘흑성이!’

강흑성이 해 냈다.그야말로 촌음 간에 벌어진 상황, 강흑성과 그렉 자신은 반격을 했다.그러자고 짜지 않았지만 텔레파시처럼 통했다.강흑성은 정찰대팀장을 공격했고 저렇게 제압했다. 다른 놈들이 총 쏘기 전에다.

‘육장으로 공격한 것 같은데······’

좁힌 미간으로 그렉은 어떻게 된 결과인지를 더듬었다. 강흑성이 번개처럼 정찰대 팀장을 덮치던 순간, 자신도 공격하느라 제대로 보지 못했다.

‘팀장놈의 슈트흉갑이 우그러졌어······’

그것만이 아니다. 오른 손목의 멀티폰이 파괴됐다.그 때문인지 팀장 놈의 헬멧은 슈트 안으로 들어갔다.고통과 경악과 수치와 분노로 얼굴이 벌겋다. 그렇지만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태다.목에 단도가 붙어 있다.

‘저 단도······’

강흑성에게 소중한 물건이다. 어머니의 유품이라고 했다.이제는 저것이 브리틀합급으로 만든 대단한 물건임을 안다.저것에 목을 찔렸었다. 아무리 철갑기공을 익혔지만 브리틀단도, 무인의 공격이었으면 죽었다.

‘그때는 정말 힘없고 보잘 것 없는 아이의 몰골이었는데······’

새삼스러운 마음으로 그렉은 강흑성을 바라봤다.저렇게 정찰대의 팀장 목에 단도를 들이대고 있다. 스무 명의 정찰대를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다 죽이라는 명령이 떨어진 순간, 그 말을 헛소리로 만들어 버렸다.

‘놀랐을 거다 개자식들아.’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 다는 말이 맞을 일이다.강흑성은 행동을 개시하지 마자 정찰대 팀장을 저렇게 제압했다. 다른 정찰대원 놈들이 학살을 하기 위해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려는 찰나다.다들 충격 먹은 눈알이다.

“그렉! 뭐하고 있냐!”

박준의 목소리에 그렉은 흠칫해 돌아봤다.어느새 움직이기 시작한 박준은 정찰대원들의 소총을 뺏고 있었다.삼백이도 가세했다.카이오는 여자들을 몰고 한쪽으로 물러나고 있다. 두려움 속에서도 냉철한 대응이다.

“중앙으로 모여! 어서!”

소리치며 움직인 그렉은 정찰대원들을 한데 몰며 무기를 빼앗았다.같은 순간 흑청빛 안광이 흘러나오는 눈으로 강흑성은 냉정하게 상황을 주시했다.

‘됐어.’

손에 쥔 단도를 정찰대 팀장의 목에 들이밀고, 멈추라고 다른 대원들에게 외친 놈이 총을 던지고 물러나는 걸 지켜봤다. 정말 제대로 했다.

‘첨의십팔질, 아니 유술, 주짓수.’

정찰대 팀장을 공격해 제압한 움직임을 강흑성은 되새김질 하듯 떠올렸다.무원신풍보를 전력으로 펼쳐 거리를 좁혔고, 무원신장의 일격을 상대 가슴에 박았다. 그 충격을 안고 떠밀리는 상대에게 붙어 팔을 잡았다.

‘아버지가 젊은 시절 서울격투장에서 투견처럼 살며 익힌 전투 기법.’

그 움직임을 재현했다.팀장 놈의 팔을 잡고 함께 돌며 부러뜨렸다.그 찰나에 멀티폰도 파괴했다.헬멧이 사라진 놈의 얼굴에 든 경악과 고통 속으로 단도를 들이댔다.팔이 돌아가 부러진 놈은 하얗게 얼어붙었다.

“쿨럭.”

기침을 하며 피를 흘려내는 팀장, 그 얼굴을 한데 모인 정찰대원들이 다 보고 있다. 어떻게 저렇게 됐는지도 다 봤다. 그래서 황당하고 허황되다.눈 깜짝할 새에 결과가 났다. 놀라서 대응하기도 전에 끝난 거다.이제야 그 순간들이 떠오른다.팀장의 목에 단도를 들이댄 저 젊은 놈은 무인이다.장력을 내질러 팀장의 슈트흉갑을 우그러뜨렸다. 팔도 부러뜨렸다.놀라운 그 이변의 순간상황에 멈칫거리며 대응하려는데 끝났다.

“슈트를 벗어라.”

강흑성은 무심한 목소리를 던졌다. 그런데 그냥 무덤덤한 게 아니다. 차가운 살기와 광포한 힘을 품은 단호한 통첩, 정찰대원들은 강하게 느낀다.그렉과 박준이 눈썹을 세우며 강흑성을 돌아봤다. 하지만 이내 한데 몰아세운 정찰대원들을 노려봤고, 빔소총을 겨누고 같은 말을 되풀이 했다.

“벗어 이 새끼들아!”“슈트 해제 해!”

두 사람의 뒤에서 삼백이는 어느새 t-rex장총을 찾아 들고 나섰다. 어린애 팔뚝만한 탄환을 삽입한 후 철컥하고 장전하는 소리를 울려냈다.정찰대원들은 황당한 충격 속에서 슈트를 벗기 시작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지 의심하고 반문하면서다.이미 겪었지만, 어떻게 시작했고 끝이 난건지 다 봤지만 부정하고 싶은 현실이다. 스무 명 한 팀의 정찰대가 한순간에 허수아비가 된 거다.

“네놈들······!”

피 흘리는 입을 연 팀장에게 강흑성은 시선을 돌렸다.

“이러고 무사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이가는 숨으로 분노와 모멸감을 뱉어내는 팀장, 협박하는 놈의 눈을 강흑성은 말없이 응시했다. 머리카락을 잡고 단도를 들이댄 상황이라 숨결이 느껴지는 거리다. 강흑성의 흑청빛 안광과 서늘한 숨은 동요가 없다.

“너 이 자식, 반드시······”

강흑성은 단도를 위로 올려 그었다.

“크악!”

정찰대 팀장의 왼쪽 귀가 떨어져 나갔다. 슈트를 벗어내던 정찰대원들은 흠칫해 그 광경을 봤고, 그렉과 박준도 경직한 눈동자로 강흑성을 봤다.

“슈트의 바디캠하고 샤크 내의 통신장치를 손 봐야 합니다.”

강흑성의 차분하고 냉정한 무심의 목소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다. 팀장 놈은 귀에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건만 냉철하게 상황을 주도한다.

“알았다.”

박준이 강흑성의 의도를 인지하고 바로 움직였다. 샤크 내의 위치발신기를 끄는 거다. 그걸 위해 샤크로 돌아섰다. 하지만 이내 걸음을 멈췄다.

“흑성아. 그 일은 지금 바로 할 일이 아닌 것 같은데?”

돌아서며 낸 박준의 말에 강흑성은 흑청빛 눈동자를 반짝였다.맞는 말이어서다.상황이 이렇게 된 마당이다.이젠 빼도 박도 할 수 없다.이곳을 떠나야 한다. 빠를수록 좋다.위치발신을 끄는 건 그 일의 이후다.

“슈트도 바디캠만 지우자고.”

그렉의 이어진 목소리, 강흑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착용자의 생체파동과 동기화된 슈트의 생명신호를 그대로 두는 거다. 그래야 정찰대의 본진에서 이상 없음으로 인식한다. 먼저 손대면 도주할 시간이 촉박하다.

“이놈들 먼저 결박하자.”“그러죠.”

박준과 그렉은 정찰대를 묶기 시작했다.삼백이가 재빠르게 가져온 로프로 굴비두름 엮듯이 결박해 나갔다.정찰대원들은 암울한 분노만을 삼켰다.이 상황을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게 치 떨리게 화가 나고 황당한 거다.

“크흑, 내가 어쩌다가 너희 같은 놈들에게······!”

아직도 인정하지 못하는 분노, 치 떨리는 그 감정을 뱉어내는 정찰대 팀장에게 강흑성은 한마디 했다.

“오만해서다.”

부들거리던 고개를 휙 돌린 팀장은 강흑성의 무심한 음성을 들었다.

“죽이고 도륙만 해오던 너희가 이런 일을 당하리라곤 생각 못했겠지.”

팀장은 안면을 떨었다.

‘강력한 무장과 인원으로 서넛에 불과한 이놈들에게······!’

정말로 이렇게 당할 줄은 몰랐다.삼월문의 무공을 익힌 자신이 속수무책으로, 일격에 패한 결과다.아무리 방심해서라고 변명하고 부정해도 이결과는 냉혹하다.상대가 자신보다 강해서고, 오만했기 때문이다.

“너희가 귀신대가리라고 불리는 이유를 안다.”

흑청빛 안광을 꿈틀대는 시선을 팀장에게 돌린 강흑성은 뒷말을 이어냈다.

“제압한 자들의 머릴 잘라 위세를 떨치려는 수작, 그렇게 두려움을 퍼트려 다른 적들의 위축을 조장하려는 의도, 그건 엄밀히 말하면 너희가 약하고 비루하다는 걸 감추려는 것이지. 아니 열등의식이라고 할까.”

팀장은 눈가를 경련하며 반발했다.

“무슨 헛소리냐!”

강흑성은 무심한 목소리를 답을 던졌다.

“군대를 향한 열등감, 이등 군대라는 모멸의식.”

팀장은 안면을 경직했다가 부르르 전신을 떨었다.그 순간 변화가 생겼다.결박을 당하던 정찰대원 한 놈이 반격했다. 그런데 하필 그렉에게다.바람처럼 공격을 피하며 물러났던 그렉의 발이 떠올랐다.철각(鐵脚), 바위로 부수는 그 힘이 정찰대원의 안면을 강타했다.머리가 부서졌다.

“우와!”

박준의 감탄성은 목소리로 이어져 나왔다.

“그렉아! 너 아주 센 놈이었구나!”

박준이 헛소리한다는 표정으로 그렉은 정찰대원들에게 쇄도했다. 남은 놈들은 넷, 동료의 부질없는 최후를 본 그들의 몸통도 단단히 결박했다.

“정찰대, 너희가 사람들을 어떻게 죽여 왔는지 잘 안다.”

다시 입을 연 강흑성에게 팀장은 흔들리는 시선을 돌렸다.

“어머니에게 들어서 알고 숲에서 숨어서 봤기에 알지. 적호문에 잡혀 있다가 도망칠 때도 봤다. 움바바족 마을도 몰살했지. 여자와 아이들까지 단 하나의 생명체도 남기지 않은 너희······ 어떻게 해주는 게 맞을까?”

호흡까지 부들거리는 팀장의 눈을 돌아보고 강흑성은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무표정하던 얼굴에 생겨난 그미소가 팀장은 사신의 미소처럼 보였다.

* * *

“돈은 언제 이렇게 많이 긁어모았데요?”

금화박스를 돌아보고 말하는 그렉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박준은 무시했다.

“이게 어떻게 작동하더라? 하 옛날 기종하고는 정말 많이 다르네.”

샤크 조종석에 앉아 살피는 박준에게 그렉은 다시 물음을 던졌다.

“어디 따로 땅에다 묻어두고 그러진 않았습니까?”“뭐?”

확 돌아보는 박준, 쌍심지를 돋운 그 눈을 향해 그렉은 남은 말을 냈다.

“나중에 아무도 모르게 와서 파 간다든지 하는 거죠.”“야이 개······”“호랑입니다.”

으이그 하는 소리로 안면을 구긴 박준은 다시 계기판으로 고갤 돌렸다.

“헛소리로 정신 산란하게 만들지 마라. 이젠 정말 집중해야 한다.”

박준의 말이 맞기에 그렉도 이어 나오려던 농을 삼켰다.

“그런데 정말로 샤크 조종을 할 수 있는 겁니까?”“그래, 군에 있을 때 기본 교육을 이수했다. 파일럿들은 따로 있지만 비상시를 위한 교육이었지. 어려울 거 없어. 시스템만 켜면 자동으로 비행하는 거야. 문제는 위치발신장치를 끄고 스텔스모드로 비행하는 건데······”

미간 좁히고 세밀하게 살피던 박준은 이내 얼굴을 폈다.

“그래, 이거구나!”

계기판 제어부의 해당장치를 찾아낸 박준은 이내 전면 스크린에 띄우고 조작했다.샤크는 바로 가동음을 내며 진동했다.그 반응에 아이들이 겁에 질린 숨소리를 냈다. 여태 무시무시한 일을 겪은 어린 마음들이다.

“괜찮아, 이제 곧 떠날 거다.”

아이들에게 웃음을 보이며 다독인 그렉은 뒤쪽의 박현과 무슬란을 봤다. 무기 등의 화물을 싣는 뒤쪽에 기대앉은 둘의 눈은 밖을 보고 있었다.

‘흑성이.’

강흑성은 아직 샤크에 안 탔다. 홀에 있다.결박한 정찰대원들의 혈도를 집어 아주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그들을 홀에 몰아넣었다.거기 혼자 남아서 뭘 하려는 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안다.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어?’

샹그릴라 홀에 화염이 치솟는다. 그렉 자신처럼 박준이 눈을 치뜨고 창밖을 본다. 이 위험한 지역에서 장사를 해온 곳, 어떤 감정일지 모르겠다.

‘흑성아.’

마음속으로 강흑성의 이름을 부른 그렉은 그 모습을 찾았다. 게스트 하우스와 창고에도 불을 지른 강흑성이 걸어오고 있다. 등에는 검을 걸쳤다.

‘마검의 주인······!’

부르르 소름을 털어낸 그렉은 박준의 강한 음성을 들었다.

“이제 간다.”

강흑성이 올라타고 문이 닫히자 샤크는 하늘로 떠올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