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50화 (51/172)

혹성강호. 50. 누구인가.

50. 누구인가.

게틀러의 으릉거리는 소리와 샤크의 날카로운 비행음은 오늘도 변함없다. 괴수의 울음 같다. 저 소리들을 듣고 있노라면 피 끓는 흥분이 솟는다.그런데 오늘은, 지금은 아니다. 서늘한 열패감의 분노가 타오른다.

‘누구냐······!’

게틀러를 등 뒤로 두고 선 패튼은 잿더미로 변해가는 샹그릴라를 바라봤다.뜨거워진 숨을 달래며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모든 것이 불타 재가 됐다.잦아드는 마지막 불길 속에서 찾아낸 것은 천산마갑슈트다.

‘10팀 전원을 몰살했어······!’

화염 속에서 폐기물이 돼 버린 천산마갑 슈트는 스무 개다.10팀장 요아힘과 함께 대원들 모두가 죽임 당했다.사체는 남지 않았다.기이한건 아무리 강한 화염속이라도 해도 아직 유골정도는 남아 있어야 한다.

‘그 정도 시간이 흐른 건 아닌데 뼈도 안 남았다는 건, 다른 원인이 있다는 소리.’

그게 바로 바이오웨폰임을 패튼은 직감했다.북부지구 정찰대가 공격당한 흔적, 독이다.누군지 모를 존재가 강력한 독으로 10팀마저 죽였다. 그래놓고 저 안에 몰아넣고 불을 질렀다.그런데 그게 이해가 안 된다.

‘슈트를 완전무장상태로 유지하라고 특명을 내렸는데 왜?’

아무리 생각해도 짐작이 안 된다.헬멧으로 두부를 감추고 신체 어느 곳도 드러나지 않게 밀폐기동하라고 했는데 독에 당한 거다.과연 어떻게 당한 걸가?슈트의 기밀(氣密)을 뚫고 독이 침투하는 게 가능한가?

“이걸 보셔야겠습니다.”

1팀장의 경직한 목소리에 반응하며 패튼은 돌아섰다.불속에서 꺼낸 슈트다. 잿더미를 제거하고 식별한, 팀장 요하임의 슈트다.그런데 가슴 흉갑이 우그러져 있다.저절로 저렇게 됐을 리가 없으니 외부공격이다.

‘무인!’

눈썹을 확 세운 패튼은 무릎을 접고 앉아 슈트의 흔적을 살폈다.확실히 무공의 결과다. 강력한 권력이나 장력이다.천산마갑슈트를 이렇게 만드는 건 일정 수준의 내가무인이라면 가능하다.하지만 결과를 내는 건 다른 이야기다.정찰대팀장을 이렇게 만들었다는 것, 전혀 다른 거다.

‘누가?’

눈썹을 가늘게 떠는 패튼의 곁에서 1팀장이 나직이 말한다.

“10팀 대원 중 일인의 생명신호가 꺼졌었다고 합니다.”

패튼은 무릎을 펴고 일어섰다. 이젠 불길이 거의 사라진 샹그릴라란 주점의 잿더미를 바라보며 서늘한 숨을 흘려냈다. 1팀장의 말을 되뇌었다.

“생체신호가 꺼졌다······”

금번 기동에 나서면서 서부지구 정찰대 전원의 생명신호를 발신케 하고 확인하도록 했었다. 그런데 이곳 샹그릴라에 온 10팀 중에 신호가 꺼진 일이 생긴 거다. 그건 누군가 죽였다는 증거, 이제 결과가 잡힌다.

‘독으로 먼저 제압한 게 아니야······!’

그렇다, 그게 아니다.무인으로 짐작되는 누군가, 혹은 무리가 10팀을 무력으로 제압했다.어떻게 그런 상황과 결과가 이뤄졌는지 이해도 짐작도 안 되지만, 그들의 무장을 해체시키고 독을 사용한 거다.그렇게 시체조차도 남기지 않았다.그 위에다 불을 질렀다.저렇게 다 태웠다.

‘샹그릴라, 이곳은 박준이란 이름을 가진 중년남자가 술장사를 하던 곳······’

북부지구 정찰대가 파악하고 있던 내용이다.그런데 그게 진실한 정체가 아니었던 거다.브라이튼의 부대는 퓨리엔트족과 싸웠다고 알고 있다.반화성의 기치로 세력화하는 야수족들을 토벌한단 보고서가 있었다.그런데 그 이면에는 또 다른 내막이 있었던 거다.이곳 샹그릴라라는 주점이 그렇다.북부지구 정찰대가 독에 당한 원인은, 흉수는 이들인 거다.이들이 퓨리엔트족세력과 연계된 건지 아직 모르지면 결과는 그렇다.

‘브라이튼, 제대로 하고 있었던 거냐?’

제대로 했다면 이런 일이 생기진 않았겠지, 라고 중얼거리며 이를 물던 패튼은 상공으로 고개를 돌렸다. 샤크 한 대가 날아와 하강하고 있다.

‘로이어.’

착륙한 사크에서 나오는 자를 응시하며 패튼은 미간을 옅게 좁혔다가 풀었다. 언제나 같은 모습, 흰엘프족의 귀족 같은 모습으로 로이어가 온다.

‘다시 보는 구나.’

동부지구정찰대장인 저 자를 이번 급변작전으로 다시 보게 됐다.블랙아웃이란 이름으로 명한 최상위기대응상황, 북부지구의 지원요청을 받아 온 거다.그 지원요청을 한 것은 감찰관 진류, 그 역시도 죽고 말았다.

“오랜만이군.”

로이어의 얼굴에 피어난 미소를 향해 패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주 미소 지었다. 그런데 속에선 반발이 치민다. 흰엘프족이 대개 그렇지만 로이어의 저 멋진 금발과 귀족 같은 외모를 대하노라면 공연이 반심이 든다.

‘인간의 세상에서 인간도 아닌 것들이.’

속으로 그런 생각과 감정들을 삼켜보지만 부질없단 걸 걸 안다. 야수족과 같이 이 세상에 흘러들어온 이종족들, 저들과 함께 산 세월이 육백년이다. 저들은 현 세상의 주요지도층에까지 퍼져 있다. 정말 귀족이다.

“결과가 신통치 않은 것 같은데?”

잿더미를 돌아보고 낸 로이어의 말에 패튼은 입을 열었다.

“10팀이 몰살당했지. 샤크를 타고 도주했어. 위치를 찾을 수 없게끔 조치하고 도주했어. 인비저블스텔스비행을 하고 있는 거지. 추적중이야.”

로이어는 패튼을 돌아봤다. 위치발신도 껐고 스텔스비행중인데 어떻게 추적한다는 거냐는 눈빛, 그렇지만 이어내는 말은 전혀 다른 것이다.

“브라이튼이 대단한 걸 숨기고 있었더군.”

이건 무슨 소리야 하며 미간 좁힌 패튼에게 로이어는 정말 뜻밖의 말을 던졌다.

“크리듐을 숨겨두고 있었어.”

패튼의 눈이 커지는데 로이어는 손짓했다. 그 신호를 받은 동부지구정찰대원들이 화성박스를 옮겨왔다. 세 박스, 개봉하니 검푸른 빗이 퍼져 나온다. 그 진실한 원인, 크리듐을 직접 본 패튼은 황당한 놀람을 보였다.

“이게······”“브라이튼이 보고하지 않고 숨겨둔 거야.”

로이어의 대답으로 패튼은 전후를 파악했다.브라이튼은 크리듐을 확보했다, 그런데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이유는 당연히 착복이다.그런데 세 박스의 양으로 그런 위험한 결정을 했다는 건 뭔가 부족하다.

“이 양이면 만 가구 정도의 전기 에너지를 충당할 수 있지.”

대단한 양이야, 하지만 이것만은 아닐 거야, 라는 로이어의 눈빛.

“퓨리엔트족과의 분쟁상황이 설마······”“난 이게 원인이라고 생각해.”

확신하는 로이어의 푸른 눈동자를 보며 패튼은 어금니를 지그시 물었다.

‘그렇구나, 어딘지 크리듐광맥이 드러난 거야.’

싸움은 그렇게 시작된 거다. 브라이튼은 크리듐을 차지하려고 했고, 야수족들은 쉽게 쓸어버릴 거라고 판단한 거다. 북부지구정찰대 무력이면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전혀 다르게 전개 된 거다. 당한 건 브라이튼이다.

“샹그릴라, 이곳은 어떤 곳인 것 같나?”

화제를 돌리며 묻는 로이어의 눈이 유난히 푸르게 빛난다고 패튼은 생각했다. 그 이유도 짐작한다. 로이어 역시 이곳의 특별함을 인지한 거다.

“모르겠군.”

짧게 반응한 패튼은 깊게 찌푸린 미간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북부지구에 남아 있던 정찰기록일지를 토대로 파악한 바에 의하면, 이곳은 박준이란 남자가 운영하던 주점이야. 숙소도 같이 운영했지만, 거의 전부가 술손님들로 기록돼 있더군, 근방의 다양한 종족들이 손님이지.”

그걸 묻는 게 아니잖아, 란 로이어의 눈빛에 패튼은 다시 목소릴 냈다.

“박준 사장 외에 그렉이란 타이그란족 직원 하나, 구형로봇 하나가 종사자의 전부였어. 최근에 젊은 남자 직원 하나를 고용한 걸로 돼 있더군.”“그런 자들이 이런 일을 만들었다?”“본신내막을 숨긴 자들이었던 거지.”

로이어는 고개를 끄덕였고 패튼은 현재까지 파악한 것들을 종합해 이야기했다.

“독을 사용한 자들이 이들이야······”

북부지구정찰대가 당한 일, 자신의 부하들인 10팀이 몰살한 전모, 퓨리엔트족세력과 연계된 건지 모호하지만 최소한 암묵적인 협력이었다는 결론.

“독을 사용하는 무인이라······”

나지막하게 중얼거림을 흘려낸 로이어는 잔불이 바람에 흔들리는 샹그릴라를 응시했다. 곁에 선 패튼은 푸른 하늘이 펼쳐진 상공을 더듬었다.

* * *

샤크가 저공비행을 하는 탓에 수림의 짐승들이 놀라는 게 보인다. 그 모양을 창을 통해 보는 명희와 다른 아이들은 어느새 재잘거리는 중이다. 두려움을 벗어던지고 웃는 얼굴들, 모두가 안도하며 바라보게 된다.

“평택에 가면 배야 구할 테지만, 어쩔 작정이십니까?”

그렉은 조종석의 박준에게 물었다. 은밀하게 작은 목소리로다.

“대전으로 보낼 거다.”

거침없이 즉답하는 박준, 이미 생각해둔 거다.여자와 아이들을 대전으로 보낸다는 계획, 어떻게 그렇게 할지를 다 생각해 둔 거다.그게 박준이 금화박스를 소중하게 챙긴 이유라는 걸 그렉은 듣지 않아도 안다.

“브로커들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걱정된 눈으로 그렉이 묻자 박준은 휙 돌아봤다가 답한다.

“누가 브로커들한데 맡긴 대냐? 네가 해야지.”“에?”

황당한 표정으로 반응했던 그렉은 이내 감정을 수습했다.이 상황에선 그래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사장 박준은 동생과 무슬란과 같이 대륙으로 넘어갈 거다.여자와 아이들을 맡을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

‘흑성이는······’

박준의 대륙행을 듣고 같이 가겠다고 말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무심한 얼굴로 덤덤하게 말한 그 진의는 모르겠다. 짐작컨대 가야 할 이유가 있다.

‘카이오가 흑성이에게 한 말은······’

힐긋 뒤를 돌아본 그렉은 눈을 감고 있는 강흑성과 그런 강흑성을 바라보는 카이오를 눈에 넣었다.

‘태산에는 무서운 존재가 있다······’

카이오는 강흑성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다.그녀가 꾸었다는 꿈 이야기다.그게 무슨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강흑성은 태산이 목적지다. 그 행보가 비롯된 단초는 카이오의 꿈, 그런 이야기다.

‘대륙에 같이 가겠다고 할 처지도 아니고.’

지그시 이를 물었다가 푼 그렉은 결심했다.

‘누군가는 해야지.’

확고하게 마음을 품는데 곁으로 강흑성이 왔다.

“대전으로 가는 길은 안전한 겁니까?”

작게 말했는데 어떻게 들었지 하는 얼굴로 박준은 대답했다.

“대전의 7군단은 평택에 정기적인 왕래가 있다. 그들이 다니는 길은 안전하지. 그길로 가는 거다. 버스를 구해서 그렉이 운전하는 거야. 7군단 보급대가 돌아가는 뒤를 따라 가는 거다. 필요한 조치들을 할 거다.”

필요한 조치, 버스를 구하고 7군단 보급대 뒤를 따라갈 수 있는 명분을 만드는 일이다. 여자와 아이들이 노예사냥꾼들에게 잡혀가던 처지였음을 밝히고, 얼마간 돈을 쓴다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박준의 계획이다.

“돈은 충분하니까 걱정 마라.”

자신 있게 다시 입을 연 박준의 입가엔 진한 미소가 피어났다.

“샤크를 처분하면 버스하고 배를 구하는 건 문제도 아니야. 블랙상인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 들 거다.”

강흑성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렉은 서늘한 숨을 내쉬었다. 말이 그렇지 이게 보통 위험한 일이 아닌 거다. 정찰대의 샤크를 처분하는 일인 거다.

‘물론 블랙상인들은 전혀 다른 무기로 바꿔놓겠지만, 정찰대에서 만에 하나라도 꼬리를 잡아 추적해 온다면 끝장이야. 정말로, 제대로 잘해야 해.’

일의 순서를 그렉은 머리에 그렸다.우선 평택항 인근에 착륙에 샤크를 숨기는 거다.박준은 블랙상인들과 접촉하고 그렉 자신은 여자와 아이들을 따로 돌보는 거다.제일 중요한건 대전에 도착하기 전에 빠지는 거다.

‘현상금 붙은 내 정체가 드러나면······’

그래서 위험한 일을 하게 됐지만, 역시 그렉 자신 밖에는 할 사람이 없다. 이런 처지라는 걸 밝히고 회피할 수도 없다. 이건 해야만 하는 일이다.

‘다시 도망치더라도 더는 비굴하지 않게.’

명희와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웃음소릴 들으며 그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박준의 목소리가 나왔다 강흑성을 향한, 대륙행에 관한 물음이다.

“태산에 간다고 했지? 거기 뭐가 있는 거냐?”

흑청빛 안광을 깊게 흘려내던 강흑성은 대답대신 뒤를 돌아봤다.카이오를 향한 시선, 그녀가 크고 동그란 눈으로 마주 바라본다.간절한 마음을 담은 눈이다. 은인의 무사함만을 담은 간절함이 아님은 분명하다.무덤덤하게 다시 고개를 돌린 강흑성은 뒤늦은 대답을 냈다.

“필요한 게 있습니다. 반드시 찾아 가져야 할 물건입니다.”

박준은 더 묻지 않았고 그렉은 카이오와 강흑성을 번갈아 보다 무거운 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모두가 샤크의 고요한 비행 속에 남으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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