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51화 (52/172)

혹성강호. 51. 거래, 그리고 예정된 이별.

51. 거래, 그리고 예정된 이별.

수림의 고요하지만 위험한 숨결을 카이오는 여실히 느꼈다. 거대수들이 우거져 만든 이 세상의 수림은 어디를 가나 이렇게 펼쳐져 있다. 그 덕분에 지금 당장은 몸을 숨기고 안전하지만, 수림은 언제나 위험한 곳이다.어디선가 악마새들이 우는 소리에 흠칫한 카이오는 두 손 모아 기원했다.

‘부디 어느 곳에서든 무사하시기를.’

강흑성의 안전을 기원하며 눈을 감았던 카이오는 잠이든 아이들을 돌아봤다.명희와 제닌과 진숙이와 샤이닌, 제 엄마들 품에서 곱게 잔 잔다.천사 같이 고운 그 얼굴들 너머로 그들이 보인다. 무슬란과 박현이다.

‘저들은 몸도 성치 않은데······’

움바바족 용사 무슬란은 샤크의 외부 동정을 경계중이다. 기체의 모든 시스템을 껐기 때문에 창을 열었다. 바깥 소리를 듣고 기척을 감지하기 위해서다, 박현이란 움바바족은 출구에 누워 있다. 총을 움켜잡고서다.

‘사장님과 형제라는 이······’

지금도 옅은 황당함을 주는 부분이다. 저 손에 잡은 총의 모양새처럼.

‘저 총 이름이······’

t-rex라고 한 것 같다. 거대괴수사냥총이라고 들었다. 그래선지 생김새가 크고 강력해 보인다. 그런데도 움바바족이 잡고 있으니 장난감 같다.

“어?”

어깨를 치는 감각에 놀라 돌아본 카이오는 삼백이임을 알고 미소 지었다.붉은 눈을 반짝이며 내미는 건 물 잔이다.정말로 고마운 마음을 가졌다.로봇에게 그런 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습지만 삼백이는 그렇다.

“고마워 삼백아.”

물 잔을 받아든 카이오는 진정으로 고마운 미소를 지었다.삼백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선다.뼈만 남은 해골 같은 모습의 저 로봇이 은인 강흑성과 교감한다는 걸 안다.강흑성은 삼백이를 볼 때 진정으로 웃는다.

‘그 분을······ 이제 다시는 볼 수 없겠지······’

물 잔을 두 손으로 쥔 카이오는 물이 아닌 슬픔을 삼켰다.이제 곧 강흑성과 헤어져야 하는 거다.그는 자신이 꿈에서 본 붉은 눈을 찾아 대륙으로 간다.태산, 그곳으로 가는 거다.그곳엔 아주 위험한 존재가 있다.

‘그게 뭔지 몰라, 그냥 무섭고 사악하다는 것만 알아.’

강흑성에게 패천마안에 대해 이야기 해주고 난후에 꾼 꿈이다.정확하게 형상을 보지 못한 존재다.패천마안이 붉은 눈을 빛내는 곁에 있다는 것만 봤다.그 존재의 목적이 지키는 건지 가지려는 건지도 모른다.

‘태산에 가면 그 무서운 존재와 싸우게 될 텐데······!’

강흑성을 걱정하며 카이오는 눈썹을 떨었다, 숨을 떨었다. 여태 보아온 강흑성이라면 어떤 위험도 헤쳐 나갈 거라고 믿지만, 꿈에서 본 사악한 존재는 형용하기 어렵게 두려움을 준다. 그걸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어떤 위험이 있다고 해도 가실 분이야······!’

강흑성의 눈에서 그 의지를 분명히 봤다.그 누구도 그가 결정한 의지의 행보를 막을 수 없다. 그러니 이렇게 기원하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그러나 무엇보다 슬프고 두려운 건 이제 헤어진다는 거다.

‘언감생심, 이런 마음을 품은 것부터가······’

고개 숙인 카이오는 입술을 물었다.강흑성에게 연모의 마음을 품은 자신을 원망했다.이렇게 가슴이 아플 줄은 몰랐다.아니 애초에 강흑성을 향한 마음이 이렇게 커다래질 줄을 몰랐다.마음이란 참으로 요물 같다.

‘다른 누군가를, 남자를 이렇게 가슴에 품게 될 줄은······!’

가혹한 운명을 사는 존재들이 캐리언족 여자들이다.그렇기에 카이오 자신은 남자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아왔다.그런데 남자를 만났다.캐리언 족이기에 노예로 잡혀가던 걸 구해준 남자다.이 용모 때문에 처참해질 뻔했던 운명을 잘라내 준 남자다.그를 생각할수록 연모는 커져갔다.

‘매일매일.’

하지만 이뤄질 수 없다. 그를 잡고 거두어 달라고 사정할 수도 없고, 따라가겠다고 할 수는 더욱 없다. 그는 자신의 길을 가는 이다. 카이오 자신을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가 가는 길에 방해만 될 존재인 거다.

‘어디서든 무운장구 하시기를 신께 기도드리겠어요······!’

간절하고 애틋한 마음으로 카이오는 강흑성이란 존재의 그림자를 마음에서 밀어냈다. 그게 가능한지 되는 건지는 모르지만 그를 위해 했다.

“저것들이······!”

그 순간 귀를 파고든 무슬란의 숨죽인 목소리, 긴장한 박현이 몸을 세워 창가로 붙는 걸 카이오는 봤다. 삼백이처럼 바로 창을 통해 밖을 봤다.

‘트라이울프!’

삼목늑대, 열 마리가 넘는 무리가 샤크 주변을 돌며 어슬렁거리고 있다.

* * *

“도주행로가 어느 방향인 것 같나?”

로이어의 차분한 물음에 패튼은 미간을 좁혔다. 원래 주인들이 사라진 북부지구 정찰대의 전경을 창밖으로 내다보면서다. 지금 있는 곳은 브라이튼의 방이다. 이곳에서 브라이튼은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남쪽이겠지.”

뒤늦은 대답을 내자 로이어는 고개를 끄덕인다.

“역시 그렇겠지. 대전의 7군단, 그들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으로 갔을 거야.”“그래, 그래야 우리가 섣불리 움직이지 못할 테니까.”

애초에 동부와 서부는 자신들의 영역, 그러나 남쪽은 사정이 다르다. 7군단 그리샴장군의 막강한 영역이다. 그 근처로 이동하면 상황이 발생한다.

“있는 대로 말하고 협조를 구하는 건 역시 어렵겠지?”

로이어는 말하고 패튼을 돌아봤고, 패튼은 미간을 더 찌푸렸다.

“정찰대의 치부를 까발리는 일인데, 우리 단독으로 결정할 일이 아니지.”

대답하고 패튼은 로이어를 돌아봤다. 그걸 몰라서 하는 말은 아닐 텐데, 누구보다 영민하고 냉철한 로이어 네가 왜 그런 소리를 하냐는 눈이다.아니 왜 저런 소릴 하는지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반문한다.엷은 미소를 피워낸 로이어는 창밖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소득 없는 소모는 이제 정말로 그만할 때가 됐어.”

정찰대와 군대의 관계를 말함이다.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견원지간으로 지내는 건 부질없다는 거다.서로를 인정하고 협력해야 더 나은 미래를 만든 다는 거다.로이어가 주장해온 거다. 그런데 현실은 난망이다.

“이상만으로 돌아가지 않는 게 현실이니까.”

시선을 돌려 창밖을 보며 패튼은 냉담하게 결론을 뱉었다.그렇다, 패튼 자신이 겪고 도출한 결론이다.군대와의 화합은 물에 기름을 섞는 거다.

“박준이라는 자는 형세를 제대로 알고 이용할 줄 아는 자야.”

화제를 돌리듯 패튼은 도망자들을 거론했다.

“그래 맞아, 그래서 드는 생각은 군대 경험이 있는 자가 아닌가 하는 거지.”

로이어가 동의하자 패튼은 고갤 끄덕이며 다시 목소릴 냈다.

“정찰대가 운용하는 샤크에는 시스템강제가동장치가 없다는 것도 알았을 공산이 크지. 군대에서 우리가 운영하는 샤크에 대한 인지를 차단하기 위해서 그 부분을 제거한 것을 말이야. 이렇게 추정만 하고 있을 거란······”“엄밀히 말하면 우리는 방관하고 있는 거지.”

로이어가 뱉은 차가운 결론에 패튼은 눈썹을 꿈틀하며 세웠다.

“치안총국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 모르지만, 보고와 즉시 행동명령이 내려오지 않는 이 상황이 그런 거야. 그들은 정치적 계산을 할 테니까.”

세웠던 눈썹을 스르르 내린 패튼은 창밖 저 멀리 보이는 남쪽하늘로 시선을 던졌다. 샹그릴라에서도 보던 저 하늘은 이제 석양이 물들고 있었다.

* * *

평택항을 품어 안은 도시, 많은 사람들과 이종족 야수족들이 몰려들어 저마다의 살길을 열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곳이다. 평온한 가운데 활기차 보이는 이 도시의 내면은 역시 위험하다, 그것이 공기로 느껴진다.

‘박준사장은 여기에도 선이 있는 건가.’

거침없이 걸음을 내는 박준의 뒤를 따르며 강흑성은 세삼 박준이란 존재를 다시 인지했다. 이제 가려는 땅에서 일어났던 비교적 최근의 전쟁, 대륙전쟁에서 돌아온 사람인 거다. 저 남자의 경험과 의지는 무공과 같다.

“항구는 어디나 더러운 놈들이 득시글거린다, 조심해야 해.”

뒤돌아보며 경고의 말을 한 박준은 그렉이 어깨를 으쓱하자 못마땅한 얼굴을 했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이 우선이란 듯 인상을 한번 쓰고 말았다.

“제일 크고 번듯한 창고를 찾아.”

항구의 바닷내음이 바람에 밀려드는 곳, 물류창고가 밀집한 곳을 향해 박준은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그렉과 강흑성은 뒤따라갔다.

“무작정 찾는 겁니까? 아는 놈이 있는 거 아니었어요?”

그렉이 묻자 박준은 파리를 쫓듯 손을 휘젓고 계속 걸었다.

“아니 뭐야? 잘난 체는 혼자 다해놓고?”

이모든 행동계획을 말하고 실행하는 이가 박준이다. 당연히 거래선도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보니 그게 아니다. 맨땅에 헤딩하는 거다.

“저기다, 가자.”

박준이 걸어가는 거대한 창고건물을 눈에 넣으며 강흑성은 걸음을 냈다.그렉이 투덜거리는 소릴 들으며 걷다가 문득 뒤를 돌아봤다.평택이라는 도시에 밤이 되어가자 불이 들어오고 있다. 그 빛이 하늘로 퍼진다.

‘대전의 영향하에 있는 블랙시티.’

박준이 말한 평택은 그런 곳이다. 지구가 망하기 전부터 항구도시로서 오랜 역사를 가진 곳이다. 그 유용성을 취해 살려는 존재들이 몰려들어 다시 도시를 이뤘다. 이 도시에 사는 이들의 삶은 어떠할지 궁금하다.

‘어디나 같겠지, 약육강식.’

그것이 이세상의 철칙이지만, 저 불빛 속에 안온함을 느끼며 사는 이들이 있을지 궁금하다. 저녁 식탁에 모여앉아 오늘 하루의 일을 이야기 하며 서로를 향해 미소 짓는 가족이 있을지, 단 한집이라도 있을 런지.

“해동컴퍼니? 이름은 그럴싸하네.”

그렉의 냉소를 들으며 강흑성은 걸음을 멈췄다.창고건물 입구에 붙은 간판에는 정말 그렉이 말한 상호가 있다.그 아래 초병처럼 두 남자가 서 있다.좌측은 인간이고 우측은 블랙엘프다. 둘 다 흉악한 눈빛이다.

“뭐야?”

블랙엘프가 언제 봐도 기분 나쁜 암흑의 눈동자로 살기를 뿜는다. 흑인보다도 저 새카만 저들의 피부는 붉은 엘프와 더불어 불가사의하다.

“거래 때문에 왔다.”

상대의 기세에 주눅 들지 않는 얼굴로 입을 연 박준은 주변으로 시선을 돌리며 뒷말을 냈다.

“그나마 제일 그럴듯해 보이는데, 실속 없이 겉만 번지르한 깡통은 아니겠지?”

블랙엘프는 바로 레이피어를 뽑았다.

“이 새끼가 뭐하는 수작이야!”

그 순간 그렉이 움직였지만 박준의 손의 더 빨랐다.

“윗대가리 보고 보자고 해라.”

박준이 내민 손에서 검푸른 빛을 내는 물건, 크리듐을 블랙엘프가 알아보고 멈칫했다. 한 발 뒤에서 핸드건을 쥐고 있던 인간도 눈을 치떴다. 하지만 이내 상황을 받아들인다. 돌아서 창고 안으로 후다닥 들어간다.그렉이 피식 실소하는 걸 본 블랙엘프가 눈을 부라릴 때 답이 돌아왔다.

“들어 와라!”

창고 입구로 다시 모습을 보인 인간 놈이 소리쳤다.블랙엘프는 옆으로 비켜섰고 박준과 그렉과 강흑성은 걸음을 냈다.그런데 창고 안으로 들어가자 더욱 험악한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무기를 든 놈들 십여 명이다.그렉이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그게 상대의 무장에 대한 위험을 인지한 긴장 때문인지, 아니면 가소로워하는 감정 때문인지는 확실치 않았다.그 곁으로 선 강흑성은 시종일관 무표정 한데 박준이 입을 열었다.

“누구와 이야기해야 되는 건가?”

박준은 눈앞에 선 자들에게 엷은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손에든 크리듐 주머니를 가볍게 던졌다가 받으면서다. 시선은 사내들이 아닌 그 뒤의 너머를 보고 있다. 너희 말고 진짜 거래책임자가 나오라는 듯이다.

“귀한 걸 가졌군.”

창고를 울리며 나온 목소리, 역시 앞을 막아 선 자들이 아니다.박준이 넘겨보는 뒤쪽에서 날아온 목소리다.그게 신호인 듯 사내들이 좌우로 벌려 섰다.그렇게 한 사내가 천천히 걸어온다. 체구가 작은 중년 사내다.

“이제 거래 할 마음에 생긴 모양이군.”

박준이 씩 웃음을 지어내며 주머니를 휙 던졌다.부지 간에 사내는 그걸 받았다. 놀람을 감추지 못하는 얼굴로 박준을 응시한다.당연한 일, 귀하디귀한 크리듐을 이렇게 건넬 줄은 몰랐다. 한방 맞은 느낌이다.

‘이놈들······’

오척단구의 중년사내, 해동컴퍼니라는 이 창고의 주인이자 평택항의 암거래상인 야마구치는 놀란 눈을 다스렸다. 냉철하게 상대방을 응시했다.

“확인해 봐도 그건 크리듐이야. 순도 80이 넘는 물건이지.”

팔짱을 긴 박준은 크리듐이 상대의 손에 있건만 제 손에 있는 자처럼 말을 이어냈다.

“그걸로 버스 한 대와 배를 구하고 싶은데, 능력이 되나?”

박준은 바로 본론을 말했다. 사족 따윈 늘어놓을 마음도 없고 시간도 아깝다는 듯이다. 그런 박준과 그렉과 강흑성을 야미구치는 말없이 바라봤다. 그 시간이 제법 길어져 박준과 그렉이 미간을 찌푸릴 때 답이 나왔다.

“얘들아, 손님 모셔라.”

빔소총과 도검으로 무장한 십여명의 부하들, 놈들이 살기를 풀어내며 움직였다. 그에 반응하며 강흑성도 움직였다. 마검을 풀어 손에 쥐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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