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52화 (53/172)

혹성강호. 52. 거래를 이루는 법.

52. 거래를 이루는 법.

“야 안 돼!”

무슬란이 다급한 긴장으로 소리죽인 외침을 터트렸다.삼백이를 향한 목소리다.샤크의 원형창으로 총구를 내민 삼백이가 트라이울프를 겨눠서다.삼백이는 돌아보고 고개를 끄덕인다. 안 쏘니까 걱정 말라는 듯이.

“햐, 저 쇳덩이 자식 정말······”

박현이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무슬란을 돌아봤다.무슬란도 비슷한 표정을 짓는다.로봇인데 로봇 같지 않은 삼백이의 기묘한 존재감 때문이다.그런 걸 느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지만, 지금은 더욱 더 그렇다.

“우리가 아니라 저자식이 우릴 돌보는 것 같지 않냐?”

무슬란은 옅게 찡그린 미간으로 물었고 박현은 다시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딱히 대답을 기대한 물음이 아니란 걸 알기에 이 현실만 곱씹었다.지금 눈앞의 이 현실을 망라한, 정찰대의 샤크를 훔쳐 타고 숨어 있는, 불구자가 된 박현 자신을 위해 대륙으로 가려는 형과 강흑성의 일이다.

‘나 때문에 형은 모든 걸······’

샹그릴라를 버렸다.형 박준이 대륙전쟁에서 돌아와 이룬 터전이다.위험한 곳에서 하는 위험한 장사였지만 형은 잘했다.그 삶을 즐겼고 그곳을 아꼈다. 형에게는, 그 마음이 의지하고 뿌리내리던 곳이었던 거다.

‘다시 찾을 수 없어······’

그런 곳을, 삶의 의미를 버렸다.박현 자신을 위해서다.목숨을 걸고 정찰대와 싸웠다. 그래서 이렇게 도망중이다.이제 로봇다리를 구하기 위해 대륙으로 가려한다.형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이렇게 짐이 됐다.

‘형······!’

박준을 생각하며 뜨거움 숨을 삼킨 박혁은 뒤이어 떠오르는 강흑성이란 존재를 더듬었다. 불가해하다는 말로밖에는 설명하기 힘든 놈이다.샹그릴라에 처음 나타난 이야기부터 그렇다. 정찰대를 몰살한 놈이다.그 일은 퓨리엔트족이란 돌발변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지만, 어쨌든 결과를 만들어 낸 거다. 행운도 잡을 수 있어야 행운이다. 강흑성은 위기를 제 의지대로 이용했다. 그런 일은 바라고 생각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대륙에 가려는 이유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태산이 목적지다. 그곳에 찾아야 할 것이 있다고 했다.그 일엔 캐리언족 여자 카이오가 얽혀 있다.강흑성에게 그곳에 대해 이야기 하는 걸 들었다.무서운 존재가 있다고, 가지 말란 의미였다.

‘강흑성을 좋아해.’

카이오란 캐리언족 아가씨가 그런 마음을 가졌다는 걸 안다. 아무리 남녀관계에 대해 모른다고 해도 그녀가 강흑성을 바라보는 눈빛을 보면 안다. 샛별을 품은 사파이어 같은 눈동자에 가득한 감정을 품고 있다.

‘강흑성 그놈은 알면서 그러는 걸까?’

카이오가 품은 감정, 애모의 마음을 강흑성은 외면하고 있다. 모르는 척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 짐승처럼 잡혀서 살았다는 놈, 그 마음속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런 이유로 타인과의 감정교류를 차단하는 걸까.

‘형의 말로는 그건 아닌 것 같은데······’

강흑성이 샹그릴라에 처음 나타났을 때는 독 오른 짐승 같았다고 했다. 그런데 차츰 나아졌다는 거다, 그렉과 말도 제법하고 웃기도 했다는 거다. 그랬는데 최근 들어 과묵한 돌덩이처럼 변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도검을 만들려고 쇳덩이를 두드리고 담금질 하는 것처럼.’

형 박준이 예로 든 말이 그렇다.강흑성을 보면 그런 느낌이란 거다.그런 건지 어쩐 건지 모르지만 강흑성은 특별한 목적이 있다.그걸 위해 대륙으로 가는 거다. 그 일을 함에 다른 어떤 것도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냉정하고 단호한 놈이야.’

카이오 같은 미녀의 마음을 외면할 정도다. 보통 남자라면 절대 그렇게 못한다. 그건 강흑성의 마음에 품은 목적과 의지가 그만큼 크다는 거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고 만다는.’

그 눈동자를 보면 확연히 느낀다.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무슨 일이든 할 놈이다.그 자신의 목적과 의지가 최우선인 거다.그런데 기이하고 이해 못하겠는 건 지금까지의 일이다.여자들을 구한일, 정찰대를 공격한 일.

‘자살수행임무나 다를 바 없는 일을 왜?’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박현은 생각하고 생각했다. 츄란족 노예사냥꾼들을 공격해 여자와 아이들을 구한 일, 그게 과연 어떠한 마음과 동기였을까다. 그 자신의 경험으로 인한 분노와 정의감만은 분명히 아닐 거다.

‘다른 뭔가, 강흑성 그놈의 그렇게 움직여야 했던 뭔가가 있지 않았을까······’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을 곱씹던 박현은 문득 카이오를 돌아봤다. 그렉과 형 박준의 말에 의하면 캐리언족 무녀의 자질을 가진 것 같다는 아가씨다. 저 아가씨가 강흑성에게 꿈 이야기를 했다. 무녀의 가능성이다.

‘혹시, 처음부터 그런 거였다?’

카이오가 꿈을 통해 인지한 무엇, 대륙의 태산에 있다는 무엇.그것을 강흑성이 알고 행동한 것인지 모른다.그게 뭔지 모르지만 강흑성에 아주 중요한 것인 거다.그것 때문에 여자들을 구한 거라면 말이 된다.

‘카이오가 정찰대에게 잡혀간 직후에 바로 공격을 한 것도······!’

아귀가 맞는다. 카이오를 통해 원하는 걸 찾아야 하기에 그런 거다.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드는 그 일을 주저 없이 감행한 이유다. 그런데 정말 맞나? 진정 그런 이유로 강흑성이 여자들을 구했고 지금도 이러고 있다고?

‘애초에 어떻게 알고?’

카이오가 캐리언족 무녀이고 꿈을 통해 태산의 무엇에 대해 안다는 것을 강흑성은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그러니 이 가설은 허점투성이다. 그런데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설명이 안 된다. 생각할수록 머리만 아프다.

‘모르겠다. 강흑성 그놈이 속에 뭘 품고 있는지 모르겠어.’

깊고 무거운 숨을 내쉬는 박현의 귀에 무슬란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트라이울프들이 돌아간다.”

* * *

강흑성은 추호의 주저함 없이 검을 후렸다.칙칙한 철빛이 고철검이라고 말해주는, 마검 패천마혈을 움켜쥐고 무원진격의 베기를 갈라 내렸다.빔소총을 막 들어 올리던 흑랑성 검은늑대족 놈을 정수리부터 쪼갰다.촤악, 한 박자 늦은 피분수가 퍼지는 순간 강흑성은 이미 옆 놈을 공격했다. 팽이처럼 몸을 돌리며 무원비천류의 회선각을 머리통에 후렸다.블래엘프족의 안면이 박살나며 그 몸도 휘돌았다. 그 순간 그렉이 나섰다.크워엉, 하는 호랑이의 포효 같은 기합을 터트리며 쇄도해 나간 그렉은 장도를 휘두르는 놈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철권의 강력한 일격을 상대의 심장에 때려 넣고, 뒤로 물러서는 다른 놈에게 철각을 내질렀다.

“잘한다!”

핸드건을 쥐고 박준은 소리쳤다. 강흑성과 그렉이 해동컴퍼니라는 이곳의 잡놈들을 때려잡는 걸 보며 흥분을 발산했다. 열세명이나 되는 놈들은 파죽지세로 나가떨어지고 있다. 저희들 속이라 총도 제대로 못 쏜다.

“그, 그만!”

창고를 울리는 외침.오척단구의 사내 야마구치는 눈을 치뜨고 손을 들었다.오른 손을 위로 높이 들고 그만하라고 외친다. 눈엔 경악이 들었다.부하 열셋 중에 이미 여덟이 쓰러진 상황, 곧 전부 박살날 광경이다.

“뭘 그만해, 좋은 구경하고 싶었던 거 아닌가?”

비웃음을 풀어내며 박준에게 야마구치는 살기어린 눈을 부라렸다. 하지만 참았다. 지금은 절대 열세의 위기, 우선은 물러나야 기회가 생긴다.

‘저 두 놈에게서······!’

창고밖엔 이미 부하들이 몰려들고 있다. 이놈들은 이곳에서 절대 나가지 못할 것이다. 그건 정해진 일이다. 지금 상황은 잘못 판단한 미스다.그런데 그 오판이 오판이 아니란 예감이 든다. 이놈들은 아주 위험하다.

“실례를 범했다! 인사는 이만했으면 됐으니 거래 이야기를 하자!”

야마구치는 힘준 목소리로 상황을 모면하려 말했다. 그 눈을 보며 박준은 미소 지었다.

“인사 같은 소리 하네, 시간을 벌어서 기회를 다시 노리겠다고?”

야마구치의 얼굴이 경직하는 걸 바라본 박준은 창고 문을 돌아봤다.

“밖에 몇 놈이나 불렀는지 모르겠지만 소용없을 거다.”

박준의 눈을 따라 창고 출입구를 응시한 야마구치는 미간을 경련처럼 꿈틀거렸다.

“고철검을 가진 저놈 보이지? 저놈은 지옥에서 온 저승사자야. 이미 너희 목숨을 움켜쥐었어. 웃기는 소리라고? 그럼 숨을 크게 들이마셔 봐라.”

이건 무슨 개소린가 하는 얼굴이던 야마구치는 놀라운 광경을 목도했다.

“크억!”

부하 한 놈이 갑자기 고꾸라져 발광한다. 입으론 피거품을 흘려내고 있다. 그런데 그게 그놈만이 아니다. 남은 놈들이 다 엎어져 부들거린다.

“뭐, 뭐야?”

놀라 뒤로 물러나던 야마구치는 뱃속에서 피어나는 격통에 헉 하며 주저앉았다. 우웩하며 토악질을 했다. 토사물 뒤로 피거품이 흘러나온다.

‘이, 이게?’

바닥을 짚은 손의 부들거림을 감당하지 못하고 야마구치는 엎어졌다. 그렇게 토해낸 것들에 얼굴을 묻고 경련했다. 그리고 목소리를 다시 들었다.

“해독약을 먹지 않으면 일이분 내로 뒈질 거다.”

박준은 차갑게 말했다. 엎어진 해동컴퍼니의 보스놈 머리맡에 쪼그려 앉아서다. 손에는 해독약이 든 약병을 쥐었다. 가볍게 흔들며 또 말한다.

“공짜로 달라는 것도 아니고, 거래하려고 온 손님에게 이러면 쓰냐?”

야마구치는 부들거리는 고개를 힘겹게 들어 애원했다.

“사, 살려주십시오······!”

* * *

해독약을 복용했지만 창백한 얼굴에 핏기가 돌아오려면 며칠을 걸릴 것이다. 그래서 더 처참한 감정을 삼키는 야마구치, 하지만 마주 앉은 자들에게 내색할 순 없다. 소리 없이 독을 살포한 자들, 게다가 무인이다.

‘어디서 이런 자들이 나타난 거냐.’

정말로 재수 없는 일, 똥 밟았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그런데 딱히 그런 것만은 아니다.이들은 정말로 대가를 지불하려 한다, 크리듐은 순도 80이 넘는 최상품이다.이 정도 양이면 물건 값으로는 차고 넘친다.

‘주먹만한 덩어리 하나만 해도 충분해.’

테이블 위에 놓인 크리듐을 응시하며 야마구치는 침을 삼켰다.

“야마구치라고 했지?”

박준의 목소리에 야마구치는 흠칫하고 시선을 들었다가 바로 고갤 숙였다.

“그렇습니다.”

명색이 평택항을 주름잡는 삼대조직 중 한곳의 보스가 취할 행동은 아니지만 야마구치는 주저하지 않았다. 이들은 건드리면 안 되는 자들이다.

“배하고 버스 값으로는 충분할 거야.”

그렉과 강흑성을 좌우로 두고 박준은 본론을 꺼냈다.

“정말로 큰 게 하나 있는데······”

야마구치는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고 박준은 예리한 눈빛을 내며 뒷말을 뱉었다.

“샤크를 처분할 능력이 되나?”

야마구치는 미간을 경직했다. 하지만 바로 좁히며 되물음을 냈다.

“샤크라면······ 그 샤크인 겁니까?”

박준은 심드렁한 표정과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샤크야.”

야마구니는 다시 안면을 경직했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그 샤크, 군대와 정찰대에서 쓰는 건쉽이다.탑승인원 스무 명의 전투비행체, 그걸 처분할 수 있겠냐고 묻는 거다.엄청난 물건, 그런 만큼 큰돈이다.

“가, 가능은 합니다만······”“애매한 소리 말고 된다 아니다로 말해.”“그, 그게······ 되, 됩니다.”

박준은 씩 웃음을 짓고 그렉과 강흑성을 돌아봤다.

“자 해결됐지?”

내가 했다, 란 표정으로 웃는 박준을 그렉은 한심하단 눈으로 봤고 강흑성은 무표정했다. 그 입에서 무심하지만 단호한 힘의 목소리가 나왔다.

“버스와 배를 봐야겠다.”

야마구치는 창백한 얼굴을 경직했다.요구한 물건들을 지금 봐야겠는 말, 그 요구를 하는 젊은 사내는 정말로 무시무시한 자다.등에 가로지른 고철검으로 수하들을 쪼갰다.저 검이 목으로 당장 들어올 것 같다.

“그, 그러시죠.”

박준과 그렉은 시선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강흑성의 의도를 알아서다. 샤크의 처분은 가장 마지막에 할 일, 우선은 버스가 최우선이다.

“밖에 준비됐습니다.”

의자를 밀고 일어서는 야마구치를 따라 일행은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피와 죽음이 흩어졌던 창고 중앙엔 중형버스가 한 대 놓여 있었다. 게틀러만큼은 아니지만 여섯 개의 바퀴가 달린, 강철장갑을 두른 버스다.

“그런대로 쓸 만한 물건입니다.”

야마구치의 겸양하는 말을 들으며 박준과 그렉과 강흑성은 버스를 살폈다. 내부좌석은 일행이 모두 타기에 충분했다. 연료탱크를 비롯해 운행장치와 시스템도 이상 없었다. 자세히 보니 무기를 달았던 흔적이 있다.

“원래 뭐하던 거야? 뭐, 그래, 이거면 되겠군.”

박준이 오케이 하자 야마구치는 얼굴을 환히 폈다. 그렇지만 다시 경직했다.

“배를 보자.”

강흑성이 뱉은 한마디에 바로 돌아선 야마구치는 창고를 앞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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