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강호. 53. 언젠가는.
53. 언젠가는.
연기마저 사라진 잿더미, 샹그릴라란 이름의 주점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던 우란테는 하늘로 시선을 올렸다. 밤하늘을 가르며 샤크들이 날고 있다. 자신들 퓨리엔트족의 종적을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음이다.
‘노력 해 봐라, 그래도 얻는 건 없을 거다.“
차가운 미소를 입가에 피워낸 우란테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림을 흘려냈다.
“우린 과거의 우리가 아니다.”
독백 뒤로 주먹을 움켜 쥔 우란테는 사부님의 말씀을 떠올렸다.살아남기 위해선 싸워야 하고 이겨서 쟁취해야 하며 지키기 위해선 강해져야 한다는 말씀.그 길을 이뤄가고 있다. 이 시작의 끝은 창대할 것이다.
‘언젠가, 우리가 세상의 주인이 되는 그 날이 오면······!’
부르르 진저리를 치듯 전율을 털어낸 우란테는 다시 샹그릴라로 시선을 던졌다.재만 남은 저곳에 그가 있었다.북부지구정찰대장 브라이튼과 자신의 싸움을 지켜본, 정찰대의 숨통을 쥐어뜯은, 젊은 인간무인이다.
‘샹그릴라······’
부지 간에 소름이 돋아 올라 우란테는 고갤 흔들었다.정말이지 아무 것도 몰랐다.샹그릴라가 이처럼 위험한 곳이었던가를 생각하니 거듭 소름이 오른다.이곳의 사장 얼굴을 안다, 여기서 술과 음식을 먹었었다.
‘전혀, 먼지만큼도 몰랐어.’
인지하거나 예감하지 못했다.샹그릴라는 그냥 술집이었다.수완 좋은 장사꾼이 경영하는, 위험지역의 조그만 완충지대 같은 공간이었다.그런데 그게 아닌 거다.이곳에 있던 자들이 정찰대를 후려치고 사라졌다.
‘모든 흔적을 지우고.’
마지막까지 그냥 가지 않았다.동부와 서부지구에서 온 정찰대 중 한 팀을 몰살하고 갔다.그들은 재수 없게 샹그릴라를 건드렸다.정체를 몰랐으니 당연하다고도 하겠다. 하지만 독배를 잡은 거였다. 그걸 마셨다.
‘무시무시한 독을 사용하는 자야.’
이젠 그렇다는 걸 확연히 안다. 수림에 남은 흔적, 독에 오염돼 레드존이 된 곳은 그의 작품이다. 북부지구정찰대 3팀을 독으로 쓸어버렸다.
‘브라이튼을 따르던 귀신대가리 놈들도 독으로 죽었어.’
그 자리에서 분명히 봤다.천산마갑슈트만 남기고 핏물로 녹아버린 죽음들이다.다시 생각해도 등골에 오한이 든다.그런 능력을 가진 자가 여기 있었다. 술과 음식을 팔며, 아무도 모르게 정체를 감추고 있었다.
‘샹그릴라, 너희는 대체 뭐야?’
이를 물고 뜨거운 숨을 흘려내던 우란테는 다가오는 기척을 들었다.
“총사.”
부관 아란이 긴장한 숨을 흘려내며 현황을 보고한다.
“정찰대의 샤크와 게틀러들이 여전히 기동중입니다. 날이 밝을 때까지도 쉬지 않을 걸로 판단합니다. 형제들은 명령하신대로 대기 중입니다.”
흉터가 굵은 선처럼 흘러내려간 아란의 얼굴을 우란테는 느릿하게 돌아봤다. 맹수족답게 흉맹한 눈동자를 강하게 빛내는 얼굴, 명령을 기대하고 있다. 숨어서 대기하고 있는 다른 형제들처럼, 공격명령을 기대한다.
“아란.”
이름을 불리자 아란은 어깨를 꿈틀하며 반응했다.
“명령만 내리십시오.”
우란테는 아란을 응시하던 시선을 거두고 다시 샹그릴라를 바라봤다.
“여기 있던 자들이 누군지 알겠나?”
아란은 흉터의 얼굴을 꿈틀거리며 샹그릴라의 잿더미를 응시했다.
‘여기는······’
안다, 여기 와서 술도 마시고 밥도 먹었다. 사장은 비굴하게 웃으며 장사하던 자였다. 수완이 좋아 많은 야수족과 이종족들이 이곳을 이용했다.그게 아는 내용이다. 그런데 그건 아는 게 아니었다. 여긴 호굴이었다.
‘정찰대를 후려치고 사라진 자들······!’
그런 존재들이었다는 걸 전혀 몰랐다. 타이그란족 직원 놈이 있었는데, 정말로 호굴이었던 거다. 뒤늦은 그 인지로 총사는 이곳을 보고 있다.
“우리가 보고 판단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다시 입을 연 우란테는 담담이 말을 이었고 아란은 귀 기울여 들었다.
“무엇이든 결행을 할 때는 준비가 필요하다. 치밀하게 계산하고 많은 걸 알아내고 냉철하게 행하는 거다. 그래도 결과는 계산하고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지. 예상치 못한 것, 변수와 운이란 것이 끼어들게 돼 있어.”
아란은 시선을 내린 채 된숨을 내쉬었고 우란테는 계속 말했다.
“운조차도 내 것으로 만들고 이용할 줄 안다면 정말로 무서운 것이 없을 거다. 우리가 그러하다면 말이야. 그런데 우린 그렇지 않아. 그러니 더욱 치밀하고 냉철하게 행동해야 하는 거다. 감정은 절대 다스려야 한다.”
시선 내린 고개를 꿈틀하고 반발처럼 들려던 아란은 그 행동을 제어했다. 감정을 다스려야 한다는 총사 우란테의 말이 진정 핵심임을 알아서다.
‘이기기 위해서는, 언젠가 우리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래야 한다, 이순간의 감정을 다스리고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거다. 북부지구 정찰대를 깬 이결과에 흥분해서, 이 작은 승리에 취해서 대사를 망치는 건 바보짓이다. 레드스콜피온, 정찰대는 절대 쉬운 상대가 아니다.
‘샹그릴라, 이곳에 있던 자들이 개입해서 이뤄진 결과.’
총사는 그것을 말하고 있다. 우리의 힘만으로 만들어낸 승리가 아닌 거다. 그러니 더 확실하고 큰 승리를 위해서 웅크리고 숨어야 한다는 거다.
“달려 나가기 위해선 기어서 물러날 줄도 알아야 한다.”
귀를 파고든 총사 우란테의 결론에 아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뒷말을 들었다.
“언젠가는, 우리가 염원하고 꿈꾸는 세상을 우리 손으로 만들 것이야.”
가슴을 울리는 총사 우란테의 말, 벅찬 희열을 안겨주는 그 날의 도래를 바라며 아란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자신처럼 형제들은 그날을 꿈꾸며 총사의 뜻을 따르고 있다. 총사야말로 그 날을 이뤄낸 희망이다.
‘흩어져 스러져 가던 퓨리엔트족을 하나로 만들어 가는 분.’
뜨거운 눈길을 던지는 아란에게 우란테는 현실을 말하며 돌아섰다.
“형제들에게 돌아가자.”
어둠이 내리덮은 수림 속으로 두 그림자는 소리 없이 사라졌다.
* * *
수풀을 헤치며 나가는 버스, 아니 개조된 장갑차량의 후방, 수풀이 없는 길을 내준 어둠은 칠흑 같다. 그 속을 응시하며 그렉은 박준에게 말했다.
“흑성이가 다시 먹인 독이 무서워서라도 딴 짓은 안하겠죠?”
운전대를 잡은 박준은 뒤를 힐긋 돌아보고 냉소하듯 대답했다.
“그놈들이 뒈지고 싶으면 그러겠지. 뭐, 돈도 이미 줬는데.”
그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죠, 크리듐 주머니를 두 개나 줬으니까요.”
몸을 돌린 그렉은 운전석의 박준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역시 사장님, 그런데 그동안 그렇게 딴 주머니 챙기고 있던 거네요? 동생한테 크리듐 판매대금을 다 주고 한 푼도 안 먹는 것처럼 하고서요?”
박준은 어깨를 순간 경직하더니 눈썹을 확 세운다.
“뭐래는 거야! 이 호랭이 새꺄!”
그렉은 피식피식 웃었고 박준은 흥분해 차가 휘청거렸다. 그러는데 누군가 차 뒤에서 달려왔다. 혹시 모를 미행에 대비해 움직인 강흑성이다.
“흑성이가 옵니다.”
그렉이 말하자 박준은 차량을 세웠다. 강흑성은 이내 올라탔다. 아무 이상 없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고, 박준은 멈췄던 버스를 다시 움직였다.
“혹시 차에 추적기 같은 게 있는 건 아니죠?”
그렉이 다시 물음을 던졌다. 그런 게 없다는 걸 확인해 알면서도 하는 도발이다. 출발 전에 차에 대한 지식을 자랑하며 박준이 확인했다.
“너 이 자식 차 세우고 보자!”
독 오른 박준에게 실실거리는 웃음으로 더 약을 올린 그렉은 강흑성과 시선을 맞췄다. 해야 할 말이 많은 것 같은데 갑자기 말문이 막혀버린다.
‘오늘밤 이후로는······’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필경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니 지금이 얼굴을 보는 마지막이다. 안타깝고 서운하고 가슴이 복잡하다.참 낯선 감정, 별스럽고 거북한 마음이다. 살면서 이래 본적이 없다.
“흑성아······”
이름을 불러놓고 그렉은 뒷말을 내지 못했다. 그런 그렉을 덤덤히 바라보던 강흑성은 고개를 깊게 숙였다.
“감사했습니다.”
진심을 담은 말 한마디, 그 안에 든 모든 것을 그렉은 읽고 받아 들였다. 그렇게 봤다. 강흑성이 엷은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을, 오랜만의 미소다.
“자식, 그래, 그렇게 웃어라, 좀 보기 좋냐?”
그렉은 마주 미소 지었고 강흑성은 말했다.
“언젠가, 다시 보게 되면 좋겠습니다.”
웃는 얼굴에 더 진한 웃음을 피워내며 그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자. 언젠가는.”
운전하던 박준이 둘의 대화를 깨는 듯이 끼어들었다.
“다 왔다!”
소리치듯 낸 박준의 말대로 목적지에 다다랐다. 수림 안 샤크, 거대수 사이에 숨은 건쉽은 이 장소를 아는 자가 아니면 찾을 수 없게 교묘하다.기척을 인지한 삼백이가 바로 달려 나온다. 여전히 장총을 들고서다.
“그래그래, 사장님이 수고하신 걸 너는 아는구나.”
박준이 환대해 다오 하듯 두 팔을 벌렸지만 삼백이는 무시하고 지나쳤다. 그렉과 내린 강흑성에게 다가가 해골 같은 팔을 들어 어깨를 두드린다.
“아 저 쇠스끼 정말.”
주인도 못 알아보는 놈, 하며 박준은 돌아섰다.
“어 너희들은 왜 나와?”
샤크에서 무슬란이 박현을 부축해 나온다. 그런데 그 뒤로 카이오가 다급히 나왔다. 뜨겁게 흔들리는 큰 눈이 바라보는 건 역시 강흑성이다.
“어, 저기······”
박준은 인상을 구겼다. 카이오도 삼백이처럼 자신을 무시하고 지나가서다. 그런 박준의 곁으로 그렉이 다가왔다. 혀를 차며 작게 중얼거린다.
“쯧, 저렇게 뭘 모를까.”
박준은 그렉의 멱살을 잡았고 무슬란과 박현은 둘을 말렸다.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강흑성과 카이오는 전혀 별개의 공간에 있는 것 같았다.
“기억해 주세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연 카이오는 강흑성에게 손을 내밀었다.고와야 하지만 고생으로 거칠어진 손, 그 안에 든 것은 마름모꼴 팬던트의 목걸이다.금속 팬턴트 한가운데 박혀 있는 것은 새카맣고 작은 돌이다.콩알만만 크기의 돌이 박힌 팬던트, 그것을 내밀며 카이오는 간절한 마음을 낸다.
“다시······ 다시 뵐 수 있기를 기원하겠어요.”
카이오의 큰 눈을 응시하던 강흑성은 펜던트 목걸이를 받았다. 느릿한 움직임으로 목에 걸었다. 그걸 보는 카이오의 눈물 진 미소에 답을 냈다.
“언젠가······ 다시 봅시다.”
카이오는 눈물을 떨궜다. 유리구슬 같은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 * *
“허.”
야마구치는 놀람을 숨기지 못하고 감탄의 숨을 흘려냈다.
‘진짜로 있었구나······!’
위치를 알려온 대로 찾아오니 정말로 있다.샤크, 정찰대의 상징인 레드스콜피온이 동체에 새겨진 기체다.이자들은 거짓말을 한 게 아닌 거다.
‘어떻게 이걸 손에 넣은 거지?’
황당한 충격과 놀람을 숨으로 삼킨 야마구치는 새삼 등골에 돋는 두려움을 느꼈다. 장갑전투차량으로 개조한 중형버스를 몰고 간 자들, 가기 전에 다시 독을 뿌렸다고, 해독약을 안 먹으면 죽는다고 엄포했었다.당해 봤기에 그 말을 의심할 수 없는 처지, 살기 위해선 하라는 대로 해야 했다. 미행할 생각은 추호도 못했고, 골동품 같은 문자 수발신기를 주며 위치를 알려줄 테니 찾아오라고 했다. 그 말대로 지금 여길 왔다.
“얼마 생각하나?”
박준이 기묘한 눈빛과 미소로 물음을 던졌다.야마구치는 흠칫해 입을 연다.
“글쎄요······ 얼마를 생각하시는지······”“견적을 말해 봐.”“음, 이런 물건은 솔직히 처음이라서······ 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조직을 알고 있기에 문제 될 건 없습니다. 그 점은 염려 마십시오. 그런데 아무래도 취급의 위험이 원체 큰 물건이라서요······ 가격흥정이 생각만큼······”“그러니까 말하라고.”
알고 있는 소리 지껄이지 말라는 박준의 옅은 짜증, 야마구치는 뒤에 웅크리고 있는 움바바족 두 인물의 커다란 형상을 눈에 넣고 침을 삼켰다.
“아 예, 텐텐은 족히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원래 정상가격에는 못 미치는 가격입니다만, 위험한 장물의 거래라 그 이상을 기대하가는 무립니다.”
텐텐, 금화 이천 개다. 샤크의 정상가격이 정확이 얼마인지 모르지만 그 두 배 이상은 될 거다. 그런데 지금 목적은 가격이 아니라 처분이다.
“좋아.”
박준이 흔쾌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야마구치는 오히려 놀랐다.
“그 가격에······ 하시겠습니까?”“어, 하자고.”
거듭 흔쾌한 대답을 던진 박준은 강흑성을 돌아봤다.그런데 강흑성은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그렉이 데리고 떠난 이들, 잠든 채 버스에 옮겨져 떠나는 줄도 몰랐던 아이들, 그 자취를 더듬고 있다.그렇게 보인다.
‘흑성이 네놈은······’
복잡한 숨을 넘기던 박준은 돌아보는 강흑성의 눈을 보고 현실로 돌아왔다. 차갑고 예리하게 날선 칼 같은 흑청빛 눈동자, 야마구치에게 말한다.
“항구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