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55화 (56/172)

혹성강호. 55. 남도의 제왕.

55. 남도의 제왕.

‘응?’

기감이 확 다가오는 강렬한 느낌에 강흑성은 의자를 밀고 일어섰다. 그 움직임을 본 무슬란과 박현이 미간을 좁혔다가 이내 기감을 느끼고 눈썹을 세웠다. 창고 안으로 강렬한 기운을 뿜어내는 존재가 들어온 것이다.

“뭐야? 왜 그래?”

상황을 인지한 박준이 긴장한 얼굴로 물었지만 강흑성은 대답 없이 창으로 다가갔다. 현재 넷이 눕거나 앉아 있던 창고 내부의 숙소, 그 밖인 창고 안으로 들어오는 자가 보인다. 가죽경갑주를 걸친 팔척의 사내다.

“무인이다······!”

곁에 선 무슬란의 긴장한 눈동자와 음성.강흑성은 그 이유가 되는 존재들을 응시했다.일곱 명의 사내다.중앙의 팔척거한을 중심으로 양족에 셋씩 벌려 섰다.하나같이 패도적인 기운을 흘려내고 있는 무인들이다.

“저놈들이 샤크를 거래하려는 놈들이지? 젠장, 만만해 보이지 않는데?”

박준의 긴장한 모습 옆으로 박현도 깡총걸음으로 다가와 밖을 봤다.

“여기 놈들하고는 비교도 안 되게 강한 놈들이야.”

상당한 수준까지 무공을 익혀 행사하는 놈들이란 말, 모두가 공감했다. 단 일곱 명이 왔다는 것은 자신감의 방증, 모두가 등에 쌍도를 지녔다.

“저놈들 칼이 생소한데?”

이어 나온 박준의 의문에 강흑성은 생각나는 것을 말했다. 이 순간 기억으로 떠오르는 것, 아버지가 경험하고 겪은 것이다. 저 칼은 벽도다.

“벽도문(霹刀門)입니다.”“응? 벽도문?”

그게 뭐냐는 박준의 눈은 박현과 무슬란도 마찬가지, 강흑성은 이야기했다.

“십대문파 만큼은 아니지만 위명을 떨쳤던 문파입니다.”

강흑성의 길지 않지만 명료하게 이야기는 이어졌다. 벽도문의 성명무기인 저 쌍도가 움바바족이 쓰는 작두칼과 유사한 이유, 작게 줄여놓은 것 같은 형태는 저들의 무기를 본 따서 만들어서라는 숨겨진 비사다.

“뭐? 정말 그렇다고?”

황당한 표정인 움바바족 두 사람보다 박준이 더 놀란 얼굴로 반응했다.

“과거의 이야깁니다.”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강흑성의 음성은 핵심을 이어냈다.

“벽도문의 도법은 벼락처럼 빠르고 강한 것이 특징입니다. 등에 착용한 두 자루의 칼로서 펼치는 기예죠. 저들의 합격진은 더 무섭고 강합니다.”

박준은 침을 삼키며 눈동자를 응축했다.

“그래도 흑성이 네가 독을 뿌리면 되잖아? 그렇지?”

밖을 보며 즉답을 안 한 강흑성은 박현과 무슬란의 시선까지 받고 대답했다.

“싸우지 말고 거래를 해야죠.”

어 그러네, 하는 소리로 표정을 찡그렸던 박준은 강흑성처럼 밖을 봤다. 야마구치란 놈이 벽도문 놈들을 맞아 연신 굽신거리고 있는 광경이다.

* * *

아침 해가 밝아오고 있다.아직은 환해지지 않았지만 여명이 스며들고 있다.평택항으로 가는 거리에도 마찬가지다.그 속에 밤을 보낸 자들의 모습이 보인다.이 도시에 붙어 있지만 이슬을 피할 집이 없는 자들.

‘언제 악머구리로 변할지 모를 자들.’

그렉은 차분하게 걸음을 옮기며 주변을 살폈다.불을 피워 놓고 모여 있는 자들의 기세, 눈빛은 흉흉하다.인간과 야수족들, 다양하다.낯선 존재인 그렉 자신을 대놓고 응시한다. 타이그란족이지만 여차하면이다.

‘가진 게 없더라도 죽여 놓고 보겠지.’

경험으로 아는 현실, 자신을 바라보는 거리의 무리들 속으로 그렉은 대담하게 걸음을 냈다. 해볼 테면 해보라는 움직임, 그래선지 변화가 없다.

‘그래, 그게 너희 목숨을 보존하는 길이다.’

호랑이족의 강한 눈빛을 뿌리며 그렉은 빠르게 걸었다.

‘떠났으려나.’

목적지인 해동컴퍼니 창고는 이제 멀지 않지만 마음이 조급하다. 강흑성 일행이 이미 떠났으면 헛걸음을 한 게 된다. 아직 안 떠났기를 바란다.

‘음?’

골목길로 접어든 그렉은 걸음을 멈췄다. 앞을 막고 선 놈들 때문이다.지름길이라 생각하고 골목으로 들어섰더니 변화가 왔다.여태 주시하기만 하던 놈들이 움직였다. 저 눈들은 돈보다도 피를 갈구하는 분노다.

‘그렇군.’

분노, 세상에 대한 분노, 가지지 못한 분노, 언젠가는 비참하게 거리에서 죽을 삶이란 것의 자각에서 피어나는 원천의 격노, 그 눈동자들이다.그렉은 지그시 주먹을 움켜쥐고 무리에게 말했다.

“지금 내가 가진 건 죽음 밖에 없다. 덤비면 그걸 갖게 될 거다.”

그렉은 걸음을 내디뎠다. 부디 그냥 물러나 주기를 바라면서다. 하지만 역시 바람일 뿐이다. 무리는 조악한 무기들을 손에 쥐고 일제히 공격한다.호목에 살기를 확 드러낸 그렉은 골목 벽을 차고 나갔다.휘도는 돌개바람처럼 무리의 속으로 뛰어들었다.거친 톱날과도 같은 칼날이 목을 후리자 철권으로 받아쳤다.칼 주인의 안면에 두 번째 쇠주먹을 박았다.콰흑, 기음으로 머리통이 터진 츄란족 놈을 시작으로 피바람이 골목을 채웠다. 인간 셋에 야수족 여섯, 무기를 휘두른 그들은 타이그란 족의 손과 발에 부서지고 박살났다. 그 비참한 최후가 골목길을 타고 흘렀다.

* * *

곁에 선 강흑성을 힐긋 돌아본 야마구치는 마주앉은 사내를 응시했다.남도의 제왕에서 연락을 받자마자 보낸 자다.이 자의 이름이 조엘이란 것도 안다.벽뢰도 조엘, 지니고 있는 저 쌍도를 휘두르면 벼락이 친다.

‘킹크랩상사가 저들 일곱에게 공격당해 몰살한 건······!’

유명하고 무서운 사건, 새삼스레 마주 앉은 상대의 존재감을 느낀 야마구치는 뜨거운 침을 삼켰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아랫배에 힘을 줬다.

“연락드린 대로······”“거간꾼이 아니라 물건 주인과 말하겠다.”

야마구치는 흠칫하며 경직했다.말을 꺼내자마자 잘라버린 조엘의 시선은 자신의 곁으로 가고 있다.누구를 보는지 모를 수 없는 상황, 역시 저들은 이 거래의 핵심을 꿰뚫어봤다.샤크의 주인이 누군지 알고 있다.

“해동컴퍼니에서 못 보던 자로군.”

이어 나온 조엘의 차가운 음성, 시선을 받는 강흑성이 아니라 야마구치가 오한을 삼켰다. 자신의 조직원들 면면을 다 파악하고 있단 소리다.

“각설하고, 증거를 봐야겠다.”

조엘은 강한 살기를 풀어냈다. 샤크를 갖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를 보이란 거다. 아니면 이곳까지 헛걸음하게 한 대가를 치르게 될 거란 눈이다.야마구치가 불안한 눈으로 돌아보자 강흑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야마구치는 즉시 샤크를 촬영한 수림의 영상을 홀로그램으로 테이블에 띠웠다.

“호, 조작이 아닌데?”

조엘은 감탄성을 냈다. 화상인지 뭔지 모를 흉터로 귀 옆의 머리를 싹 밀어버린 모습, 스포츠머리의 두상 이마가 꿈틀거리면서 반응할 정도다.

“대단한데?”

조엘은 강흑성을 응시하며 진심의 미소를 지었다. 레드스콜피온 마크가 선명한 정찰대의 샤크다. 이런 물건을 손에 넣은 수완에 감탄함이다.

“가격제시부터 하지.”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연 강흑성을 조엘은 날카로운 눈길로 바라봤다. 건장한 체격에 한 치의 흔들림 없는 눈동자와 등에 멘 낡은 철검까지.

“묵직한 맛이 제대로인 친구로군.”

고개를 끄덕이며 차가운 미소를 흘려낸 조엘은 답을 냈다.

“텐 하프텐.”

금화 천개와 오백 개, 천오백 개를 제시했다. 야마구치가 예상한 가격에서 오백 개가 빠진다. 때문에 야마구치는 경색했고 강흑성은 고갤 저었다.

“곤란해.”

조엘이 칼날 같은 눈동자를 빛내며 바로 입을 열었다.

“곤란하다? 안 팔겠다는 건가? 우리 말고 다른 곳에서 그걸 소화할 수 있다고 여기나? 근방 어딘가에 숨겨놓은 모양인데, 그조차도 오래 지속할 수 없다는 걸 잘 알 텐데? 기회가 있을 때 넘기는 게 좋은 일일 거다.”

강흑성은 조엘의 강렬한 눈을 똑바로 응시하고 답을 냈다.

“남도의 제왕이라고 했나? 그게 최종의사라면 거부한다. 샤크의 처분이 어렵다면 파괴하겠다. 정찰대에 알리든 강제로 취하든 하고 싶은 대로 해라.”

그 무엇도 두렵지 않고 개의치 않겠다는 강흑성의 대답.

‘이놈이······!’

조엘은 어금니를 물었다.젊은 상대는 마치 단단한 금강석 같다. 저 눈을 보면 안다.거래가 안 되면 정말로 샤크를 파괴할 놈이다.이 놈의 동료들이 안쪽에 있다. 뭐하던 놈들인지 어디서 온 놈들인지 모르겠다.

‘그래, 어차피 죽일 놈들.’

결과는 그렇다는 걸 조엘을 살기품은 숨으로 삼켰다.담대한 이놈처럼 정말로 대단한 놈들이라고 해도 정해진 결론이다.정찰대의 샤크를 훔친 놈들이니 대단한 놈들인 게 맞다.그렇지만 우린 남도의 제왕이다.

“좋아, 텐텐으로 하자고.”

금화 이백 개, 애초에 야마구치에게 들은 가격이다.강흑성은 흑청빛 안광을 흘려내다 고개를 끄덕였다.거래성사다, 그런데 울상인건 야마구치다.중간에서 아무것도 남겨먹지 못하게 된 거다. 주장할 수도 없다.

‘이런 등신 같은 짓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를 쓰게 삼키던 야마구치는 그를 봤다. 열어놓은 창고 안으로 걸어들어 오는 자, 타이그란족 사내다. 젊은 놈의 동료다.

* * *

“어? 저거 그렉이잖아?”

긴장한 채 창고 안 거래를 지켜보던 박준은 반색한 얼굴을 했다.여자와 아이들을 데리고 떠난 그렉이 돌아온 거다. 그래서 바로 미간을 좁혔다.혼자서 저렇게 돌아온 이유가 뭘까 의문이어서다. 불안이 엄습한다.

“뭐야? 여자들은 어떻게 된 거야?”

자신처럼 반응하는 무슬란을 돌아봤던 박준은 동생 박현의 외침에 눈을 치떴다.

“저놈들이 그렉을 공격하잖아!”

* * *

“흑성아!”

강흑성을 발견하고 손을 흔든 그렉은 경직했다.테이블을 두고 마주 앉은 자가 누군지 알아서다.보는 순간 저 자도 자신을 알아봤다.모를 수가 없다. 한때는 동료였지만 원수가 된 자, 조엘이 벼락처럼 달려온다.

“그레엑!”

쌍도를 뽑아든 조엘은 푸른 벼락같은 도세를 터트렸다. 뒤로 물러나는 그렉을 난도질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벽도팔십이로의 물결이 터진다.

“동생의 원한을 네 피를 마셔 달랠 것이다!”

격노를 터트리며 조엘은 광풍 같은 칼바람을 플어냈다. 그런데 조엘만이 아니다. 수하들 여섯이 합세했다. 칼빛이 그렉의 형상을 집어삼켰다.

“움직이지 마라 개자식들아!”

창고 안쪽 숙소에서 나온 무슬란이 작두칼을 움켜쥐고 소리쳤다. 그 위세에 야마구치와 부하들은 주춤거리며 물러났고, 박준은 강흑성을 불렀다.

“흑성아!”

그렉이 부른 것과 같지만 의미가 완전히 다른 부름, 강흑성은 움직였다. 눈동자에 꿈틀대던 흑청빛 안광을 확 터트리며, 패천마혈을 쥐고 나갔다.

‘무원의 의지와 힘으로.’

심중에 돋는 깨달음과 같은 투기를 전신에 두르고 강흑성은 접전의 중앙으로 파고 들어갔다. 그렉이 철수공(鐵手功)으로 적들의 칼을 받아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벌써 핏물이 튀고 있다. 그 공격들을 후려쳤다.쉬카아악! 벼락을 가르는 뇌전이 강흑성으로부터 터져나갔다. 마검 페천마혈은 혈광을 풀어내며 울었고, 벽도문놈들의 칼날을 모조리 튕겨냈다.

‘뭐!’

조엘이 경악한 눈을 치떴다. 합격진을 수하들과 이룬 참이었다.그런데 젊은 놈이 사이를 파고 들어왔다.일검에 합격진의 도세를 튕겨버렸다.

‘어떻게?’

조엘은 순간적으로 뇌리에 들어차는 깨달음에 전율했다.상대가 자신들의 무공을 알고 있다는 거다.그 증거가 보인다.젊은 놈이 부하들을 치고 있다. 멱을 가르고 심장에 주먹을 박고 관자놀이에 발을 후린다.정해진 흐름과 움직임을, 벽도팔십이로를 아는 거다.그게 아니면 저렇게 타이밍을 맞춘 것처럼 박살낼 수가 없다.그런데 그게 어찌 가능한가.조엘의 경악한 시선 속에서 강흑성은 벽도문 육인의 형상을 흩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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