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강호. 57. 가기 전에 해야 할 일.
57. 가기 전에 해야 할 일.
조엘놈들이 타고 온 장갑차량은 역시 개조한 것이다. 게틀러를 모방했지만 십분의 일도 따라갈 수 없는, 그렇지만 아주 유용하고 강력한 이동수단이다. 일곱 놈이 타고 왔던 그 안에서 텐박스의 금화를 찾아냈다.
“이놈들이 텐 하프텐도 아니고 이것만 가지고 왔던 거네.”
처음 제시했던 금화 천오백개도 아니고 천개만이라고 박현은 눈을 부라렸다. 돈을 보여줘야 할 상황이면 이것만 선수금명목으로 보이려 한 거다.
“개수작을 부리려다 뒈진 거네, 개자식들.”
결국은 거래 상대방을 죽이고 차지하려한, 흉악한 계산을 숨기고 온 놈들이다. 하지만 해치웠다. 그렉이 제법 심하게 부상당했지만 이결과는 만족스럽다. 돈도 이만큼 확보한 결과라서 박현은 흡족함을 드러냈다.
“샤크는 그대로고 돈만 챙겼으니 손해 본 장사는 아니네, 그지 형?”
차안을 정밀하게 살피던 박준은 동생 박현을 돌아보고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래서 답답한 거다. 샤크를 처분했어야 했는데 이젠 그럴 수가 없어.”
그게 문제다. 샤크를 처분할 만한 곳을 다시 알아보는 건 어렵다. 할 수는 있겠지만 그럴 시간이 없다. 차라리 샤크를 파괴하고 떠다는 게 낫다.
“샤크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건 역시 안 되겠지?”
미간 좁힌 박현의 물음에 박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바다는 달라. 군대의 이목에 바로 걸릴 거다. 그렇게 되면 피할 방법이 없어.”
그렇다. 바다와 땅은 다르다. 한반도의 거의 전부가 거대수들이 이룬 수림으로 뒤덮였다. 일행이 도망쳐온 지상처럼 스텔스기능을 이용해 저공으로 이동하는 길이 아닌 거다. 샤크를 타고 바다에 드는 순간 걸릴 거다.
“결국은 시간문제다, 어디 있어도 어떻게 피해도 마찬가지야. 이렇게 있다간 꼬리를 잡힌다. 떠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도 샤크를 해결해야 해.”
심각한 박준의 목소리 뒤로 무슬란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놈들한테 전투식량이 있는 데요?”
차 안으로 불쑥 머리를 디민 무슬란, 돌아보는 형제에게 은박의 작은 밀폐용기를 내민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것, 군대의 전투식량이다.
“어 정말이네?”
박현의 작은 놀람을 곁에 두고 박준은 무슬란의 손에 있던 전투식량용기를 잡았다. 상하좌우를 자세히 살피고 나름의 짐작으로 고갯짓했다.
“7군단에서 흘러나온 거다.”
어떤 경로인지는 말 안 해도 모두가 짐작하는 바, 부정한 뒷구멍이다.
“잘 됐다. 챙겨가자.”
박준은 차에서 내려 무슬란이 앞서는 창고 구석으로 갔다. 화성박스에 담겨 있는 전투식량을 그대로 차에 실었다. 여섯 박스를 싣고 더 실을까 고민하는데 강흑성이 돌아왔다. 그렉을 위해 약초를 구해 돌아왔다.
“구해야 하는 건 다 구한 거냐?”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인 강흑성은 준비돼 있는 장작과 솥을 향해 움직였다. 이 창고엔 전기시설이 돼있어 인덕션을 사용할 수 있는데도 장작을 준비하게 했다. 솥은 창고 안 물품들 속에서 찾아낸 것, 준비는 됐다.
“밤까지 시간은 충분합니다.”
약재들을 배합하며 강흑성은 박준을 돌아봤다. 그 눈을 보고 중요한 말이 있음을 박준은 직감했다.
“샤크를 숨겨뒀던 장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동굴이 있습니다.”“동굴?”“샤크의 날개를 접은 상태로 들어갈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박준은 물론 박현과 무슬란도 눈썹을 세웠다.
“지금 다녀오면 될 것 같습니다.”
숙소 안 침상에 눕혀 놓은 그렉 쪽을 돌아보고 강흑성은 결론을 말했다. 박준은 알아들었지만 불안과 의구심이 든 눈으로 재차 확인을 했다.
“그러니까. 샤크를 숨겨놓자 이거지? 나중에 다시 써먹을 수 있게? 그렇지만 동굴을 가려놔야 할 텐데? 아무리 수림속이라지만 드러날 가능성이······”“없애자는 겁니다.”
명료한 강흑성의 말, 박준은 흠칫했다. 어차피 팔수 없다면 파괴해야 하는 거다. 강흑성은 지금 그걸 하자는 거다. 파괴해도 그 흔적을 정찰대가 찾아낼 테니 최대한 시간을 벌수 있게, 동굴 안에다 넣고 하자는 거다.
“아까운데······”
무슬란이 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을 중얼거렸다가 얼른 입을 닫았다. 그런데 그 마음은 박준과 박현도 비슷하다. 하지만 그런 생각할 때가 아니다.
“이대로 계속 끓이면 됩니다.”
강흑성은 박현에게 말했다. 탕약을 맡으라는 소리다.거부할 수 없는 그 지시 아닌 지시를 박현은 받았다.무슬란은 내외를 경계해야 하는 거다.해동컴퍼니 창고에 변고가 있어난 것을 오늘밤까지 숨겨야 하는 거다.
“가시죠.”
말하고 돌아서는 강흑성, 박준은 당혹스런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고 따라나섰다. 샤크를 파괴하러 가는 길이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정말 아깝다.
* * *
답이 왔다. 치안총국 수뇌부의 결정이다.
“결국······”
통합데스크에 뜬 명령문을 응시하며 패튼은 무거운 숨을 내쉬었다. 마주 앉은 로이어의 푸른 눈동자도 같은 감정을 품었다는 걸 인지하면서다.
“반화성세력의 반란이군.”
차가운 냉소가 든 로이어의 목소리에 패튼은 고개를 끄덕였다.이곳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치안총국의 결론이다.북부지구 정찰대는 퓨리엔트족을 중심으로 기치한 반화성세력의 테러에 의해 전멸한 비극인 거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도망친 놈들을 추적하는 게 아니라 은폐하는 거로군.”
이어 나온 로이어의 냉소 섞인 말, 패튼은 어금니를 물었다가 풀었다.
“그래, 샤크를 탈취당한 일은 함구해야 하는 거지. 군부에서 알지 못하도록.”
당연히 그런 짓을 한 자들에 대한 추적은 안 하는 거다. 그런 일 자체가 없었으니 하면 안 되는 일이다. 그런데 그래선 안 되는 일이 이일이다.
“샹그릴라에 있던 놈들은 강력한 독으로 정찰대 팀을 몰살한 놈들인데, 그런 잠재적인 위험을, 아니 이미 드러난 위험분자들을 묵인하라는 건가?”
어처구니없다는 패튼의 자조에 로이어는 푸른 눈을 빛내며 대꾸했다.
“정치공학이 도출한 결론이지, 우리 같은 자들이 어찌할 수 없는.”
의자를 밀고 일어선 패튼은 창가에 섰다. 남쪽으로 펼쳐진 하늘 저 멀리로 시선을 던졌다. 분명히 저 하늘 아래 놈들이 있는데, 멀지 않은 곳인데, 추적해 가면 잡을 수 있는데, 그걸 못하는 현실을 뜨겁게 삼켰다.
“성과를 내라는 마지막 지시문구가 오늘처럼 화가 나긴 처음이군.”
등 뒤에서 날아온 로이어의 분노를 패튼은 공감했다. 반화성조직의 테러로 규정하고 대외에 공표한 화성의 치안총국은 결과를 내라고 한다.
‘공표한 내용에 맞도록, 가시적이고 만족할 성과.’
주먹을 움켜쥐고 이 악문 숨을 흘려낸 패튼은 작게 중얼거렸다.
“한다.”
무슨 의미인가, 로이어가 던지는 시선을 받는 패튼은 남쪽하늘만을 응시했다.
* * *
힘겹게 동굴 안으로 샤크를 집어넣은 박준은 휴 하고 숨을 내쉬며 기체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보니 강흑성이 분주하게 준비한 것이 보인다.
‘어느새 도화선 덩굴을 저렇게 준비해 놨구나.’
그뿐만이 아니다. 샤크를 폭발시키면 화염이 동굴 밖으로 퍼져 나올 터, 가까운 거리의 수목들을 베어 넘긴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아름드리나무들이 쓰러진다. 대단하다, 나무꾼을 하면 큰돈을 벌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지금 무슨 헛생각을 하는 거냐.’
찡그렸던 얼굴을 편 박준은 강흑성에게 소리쳤다.
“대충 하고 밥 먹자!”
강흑성은 반응하며 움직임을 멈췄고, 박준은 가지고 온 전투식량을 개봉했다. 이중용기의 사이에 물을 붓자 열기가 퍼져 나온다. 1분을 기다린 후 열자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는 볶음밥이 됐다. 강흑성에게 내밀었다.
“먹자.”
전투식량 용기를 받아든 강흑성은 하늘을 올려다봤다.해가 중천에 뜬 정오다.이제부터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샤크를 파괴할 때, 여기서 돌아가는 시간과 배를 타고 바다로 드는 시간까지 고려해야 한다.
“시간은 충분해, 여기서 폭발화염이 치솟으면 누군가의 눈깔에든 띨 테고, 당연히 정찰대 놈들이 달려 올 테지만 절대 촉박하지 않아. 최소 반나절에서 하루는 걸릴 거야. 그 시간이면 우리가 서해를 건너고도 남는다.”
자신 있게 말하며 박준은 볶음밥을 퍼 먹었다. 그리곤 다른 말을 했다.
“너 많이 달라진 거 아냐?”
수저를 용기에 넣던 강흑성은 고개를 들었고, 박준은 조심스레 말했다.
“처음 널 봤을 때는 진짜 독 오른 짐승 같았다. 그랬는데 샹그릴라 식구가 정말로 된 것처럼 표정이 풀어지는 걸 봤지. 그렉하고 말도 제법하고 말이야. 그랬는데 여자들을 구하면서부터 다시 달라지더란 말이지.”
박준은 미간을 좁히고 뒷말을 냈다.
“뭐라고 해야 할까, 과묵하고 진중하면서 단호한 것이 마치 냉혈한 같은······”
강흑성의 눈을 응시한 박준은 갑자기 손을 내저었다.
“아 관두자, 뭐가 뭐든 무슨 상관이냐.”
밥 먹는 일에나 집중하자라는 박준의 표정과 눈빛에서 강흑성은 읽었다. 자신에 대한 걱정과 고마움이다. 그래서 하지 않은 말이 뭔지도 알았다.
“안 웃는 게 아닙니다.”“엉? 뭐?”“웃을 때를 찾고 있는 겁니다.”
모호한 말을 하고 강흑성은 밥을 먹었다. 그런 강흑성을 응시하며 박준은 어렴풋이 깨달았다. 강흑성에게는 자신에 짐작하지 못할 변화가 있고 그것은 진행 중이란 거다. 언젠가 환하게 웃을 때를 기다리는 거다.
‘그래, 이 무서운 세상은 편하게 웃을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니까.’
강흑성처럼 박준도 열심히 밥을 먹었다. 그렇게 시간을 조금씩 흘러갔다.
* * *
“이제 다 된 것 같은데?”
탕약을 살피던 박현의 목소리에 무슬란은 반사적으로 고갤 돌렸다.솥 안의 탕약은 정말로 진한 갈색으로 잘 우러난 것 같다.강흑성이 지어줘 먹은 것과 비슷하다. 저렇게 되면 그렉에게 먹이라고 강흑성이 말했다.
“그래, 이제 복용하게 해도 되겠다.”
박현에게 말하고 무슬란은 다시 창고 밖을 응시했다.
‘저놈.’
아까부터 시야에 거슬리는 놈이 있다. 분명히 창고 주변을 맴돌고 있다. 그렇다는 건 해동컴퍼니에 대해 알고 있고, 뭔가 낌새를 챘다는 거다.
‘주변을 드나들던 똘마니 놈인 거 같은데.’
눈에 힘을 준 무슬란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이제 해가 기울어 강흑성과 박준이 돌아올 시간이 됐다. 떠날 시간이다.그런데 저런 놈이 문제를 만들면 차질이 생길 수 있다.결론은 역시 하나, 처리해야 한다.
‘달려 나가서 두 동강을······!’
치미는 살기를 칼 잡은 손에 싣던 무슬란은 숨을 멈췄다.
‘응?’
기감 안에 들어온 놈들이 더 있다.모두 여덟, 창고건물 주변에 퍼져 있다.이제야 기감에 잡힌 것은 가까이 다가와서다. 놈들이 행동하는 거다.
‘이것들 봐라?’
가소로움 속에 불안을 함께 삼키며 무슬란은 칼을 세웠다. 그런데 그 순간 라이트 빛이 다가왔다. 장갑차량, 강흑성과 박준이 돌아오는 거다.
‘어?’
운전석에서 박준이 내린다. 무슬란 자신을 향해 손을 들어 보인다. 윙크도 한다. 자신이 이렇게 밖을 보고 있단 걸 알고 하는 행동이다. 그러니 바깥의 동태를 안다는 거다. 그렇다면 강흑성이 안 내린 이유는?그 순간 들려오는 소리를 무슬란은 들었다.타격음과 짧은 신음들이다.창고 주변으로 다가오던 놈들이 내는 소리다.이유가 뭔지도 알겠다.
‘강흑성.’
그가 차에서 미리 내려 저렇게 하는 거다. 여덟 놈의 기운이 사라졌다. 낮부터 시야에 들어와 어른거리던 놈은 상황을 인지하고 도망친다.그런데 거기까지다. 어느새 귀신처럼 앞을 막은 강흑성의 발이 휘돌았다.머리가 옆으로 돌아간 놈이 쓰러졌다.놈을 끌고 강흑성은 창고로 왔다. 내던지듯 창고 안으로 놈을 눕히고 다른 놈들도 전부 끌고 왔다.모두 아홉 놈, 해동컴퍼니를 들락거리던 놈들이다.박준은 단단히 결박했다.
“자식들아, 안 죽은걸 행운으로 알아라.”
무슬란은 기억을 떠올렸다. 강흑성이 정찰대원들을 어떻게 했는지, 야마구치 와 부하놈들을 어떻게 끝장 냈는지다. 그런데 이놈들은 안 죽였다.
“내가 부탁했다. 똘마니 놈들, 불쌍한 놈들은 봐주자고.”
박준이 속마음을 눈치 채고 답을 던졌다. 무슬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놈들 살려두는 건 크게 문제 될게 없겠지.’
그렇다, 이제 가면 된다. 이놈들이 일행의 행선지를 알 수도 없다. 알 놈들은 다 처리했다. 그런데 가기 위해 해야 할 마지막 일은 어찌됐나.
“형님, 샤크는······”
무슬란이 막 묻는 그 순간 어둠 저편이 환하게 솟아올랐다.
“음, 확실히 터졌네. 시한자폭장치가 있더라고. 그 덕분에 편하게 했다.”
박준이 설명하는 동안 강흑성은 창고 안 숙소로 향했다. 그 앞으로 박현과 그렉이 서로 부축하며 나왔다. 이제 확실히 떠나야 할 시간인 거다.
“가죠.”
강흑성은 돌아섰고 일행은 모두 그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