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58화 (59/172)

혹성강호. 58. 바다를 건너.

58. 바다를 건너.

“아고.”

머리를 또 부딪친 무슬란을 박준이 돌아보고 혀를 찼다. 벌써 몇 번째인가, 박현은 다리 때문에 앉아 있는 덕분인지 한 번도 그러지 않았는데 무슬란은 계속이다. 거구를 배 안에서 움직이기가 여간 고역이 아니다.

“너 웬간하면 그냥 자빠져 있어라.”

혀 차던 박준의 말에 무슬란은 심통 난 얼굴을 했지만 불안한 심정으로 물었다.

“레이더에 다른 거 없습니까?”

군대의 함정이나 해적선등, 서해바다의 위험이다. 다행히도 현재까지 반잠수정의 레이더에 잡히는 게 없다. 반경 1km가 감지범위의 한계지만.

“읎다. 이대로 조용히 가는 거다.”

후미 쪽에 드러눕듯이 기대앉은 박현이 입을 열었다.

“어때 형? 지금쯤이면 정찰대놈들이 들이닥쳤으려나?”

박준은 미간을 좁히고 동생 박현을 돌아봤다가 그 옆에 누운 그렉을 응시했다. 창백한 안색의 그렉은 강흑성이 만든 탕약을 먹고 깊이 잠들었다.

“그랬을 거다. 여섯 시간이나 지났으니까.”

자정이 되기 전에, 10시에 출발했다. 6시간이 지나 이제 새벽 네시다. 대륙은 이제 얼마 안 남았다. 정찰대놈들은 폭발화염을 찾아 왔을 거다. 송골매를 날려 맹렬히 뒤지던 터였을 것, 그만한 화염열기면 찾았다.

“살려둔 놈들에게 던져 둔 미끼를 물었으면 남쪽으로 갔겠지.”

이어 나온 박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박준과 무슬란은 선수의 미니건 사수 자리에 있는 강흑성을 응시했다. 해동컴퍼니에 똘마니들을 살려둔 이유가 그거였다. 남쪽의 거제도로 간다는 말을 놈들이 듣게 한 거다.

‘치밀해.’‘냉정해.’

무슬란과 박현의 속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흑성이 뜻밖의 상황을 알린다.

“전방에 뭔가 보입니다.”

박준이 미간을 확 좁혔다.

“뭐가 보인다고? 레이더엔 잡히는 게 없는데?”

무슬란과 박현이 둘을 번갈아 바라보는데 박준이 날선 음성을 뱉었다.

“제길! 배가 다가오고 있다!”

박현과 무슬란은 놀라 눈썹을 곤두세웠다.

“무슨 소리야? 레이더에 아무 것도 없었다면서?”“배가 갑자기 왜 나타납니까?”

박준은 찡그린 미간을 가늘게 떨면서 대답했다.

“레이더에 안 걸리는 배다. 파도 속에 숨어서 이동하는, 우리 같은 반잠수정이야.”

이어지는 말에는 모두 뜨겁게 이를 물었다.

“그런데 우리 같은 소형이 아니다, 대형이야. 이것들, 해적이다.”

이제는 확실하게 화상으로 잡히는 괴선박, 대형반잠수정은 수면위로 정체를 드러내고 다가오고 있다. 말로만 듣던 서해해적, 군함도 공격하는 놈들이다. 범고래와 같은 시커먼 형체가 충돌하려는 듯 맹렬이 다가온다.

“저놈들, 우릴 깔아뭉개려는 수작이다!”

박준이 분노하며 방향을 바꾸는 순간 강흑성이 말했다.

“정면으로 가야 합니다.”“뭐?”“해적선과 정면충돌할 것처럼 속력을 높이십시오.”“야 무슨······”

미니건을 잡은 강흑성은 강하게 소리쳤다.

“충돌직전에 우현으로 도는 겁니다!”

강흑성은 미니건을 발사했다.어둠의 바다를 흔드는 굉렬한 소리가 퍼져나갔다.그보다 먼저 터져나간 빔탄자들이 해적선을 강타했다.화려한 불꽃이 피어났다. 하지만 해적선의 합금장갑을 뚫기엔 부족한 화력이다.

“지금!”

강흑성이 외친 순간 박준은 우현으로 키를 돌렸다. 그야말로 아슬아슬하게 해적선의 선수를 스치며 배는 지나갔다. 그렇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후미로 붙어야 합니다!”

박준은 이제 강흑성의 의도를 알았다. 해전석의 바로 곁에서 기동하려는 거다. 그러면 놈들이 중화력을 퍼부을 수 없다. 애초에 거리가 있는 상태에서 혈상어 같은 수중미사일을 발사했다면 끝장이 났을 일이다.

“이 자식들아, 우릴 받아놓고 털어먹으려고 했다만, 어림없다!”

박준의 날선 음성 속에서 강흑성은 해치를 열고 나갔다.밤바다의 거친 바람과 파도가 몰아치는 속에서 흑청빛 안광을 빛냈다.한순간 도약하며 해적선 위로 올라갔다.해적선에선 이미 해적들이 나오고 있었다.

“잠수해요!”

강흑성의 외침이 배안으로 파고든 순간 박준은 수면 아래로 진입했다. 해적들이 발사하는 개인화기가 선체에 충격을 줬지만 견딜 수 있는 수준이다. 최대잠수 깊이인 1미터까지 내려가니 충격은 훨씬 무디어졌다.

“형, 충돌하지 않게 조심해!”

박현의 긴장한 음성과 무슬란의 경직한 시선을 받으며 박준은 배를 운전했다.속도를 높인 상황에서 해적선의 곁을 달리는 중, 자칫하면 충돌한다.그런데 그보다 걱정인 건 강흑성이다. 혼자 해적선에 올라갔다.

‘원체 황당한 놈이긴 하지만······!’

긴장과 걱정과 두려움이 섞인 숨을 삼키던 박준은 해적선의 속도가 느려지는 걸 인지했다. 레이더와 외부카메라가 잡은 화상도 확실히 그렇다.점점 더 느려지더니 아예 서버린다. 이렇게 될 이유가 뭐가 있을까.

‘멈춰서 전면공격을 하려······ 아니! 흑성이!’

강흑성을 생각하며 눈썹을 세운 박준은 배를 수면 위로 띄웠다.화면으로 보니 해적선 위에 움직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분명 해적들이 강흑성이 올라간 순간 배 밖으로 나왔었는데, 어둠속에 보이는 건 없다.아니 하나가 보인다.

‘저놈!’

강흑성이다. 거친 바닷바람을 맞으며 손짓한다.더 가까이 배를 대라는 신호다.저놈 혼자만 보인다는 건, 저렇게 한다는 건 의미가 명확하다.해적들을 끝장낸 거다. 시간은 얼마 지나지도 않았다. 혼자서 처리했다.

“하.”

황당한 충격의 숨을 뱉어낸 박준은 강흑성의 손짓대로 배를 더 가까이 댔다. 올라갈 때처럼 휙 뛰어내린 강흑성은 애초의 미니건 사수자리로 들어왔다. 해치를 닫는다. 그 모습은 방금까지 아무 일도 없었던 같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무슬란이 참지 못하고 물음을 냈다. 박현도 같은 눈빛을 던졌고 박준은 입술을 혀로 핥았다. 말은 안했지만 무슬란보다 먼저 물어보고 싶던 거다.미니건 자리의 투명한 내부 차폐막이 스르르 열렸다. 닫혀 있어도 대화엔 지장 없지만, 방금처럼 강흑성이 해치를 열고 나가면 잠수나 이동시 물이 들어오는 걸 막아주는 거다. 별일 없던 것처럼 강흑성이 말한다.

“독을 썼습니다.”

박준과 박현과 무슬란은 흠칫했다. 경직 속에서 기억을 떠올렸다.정찰대가 어떻게 당했는지, 그들의 최후가 어땠는지다. 야마구치놈들이 어땠는지다.그렇게 했다는 거다. 이유도 알겠다. 이목을 안 끌려고 해서다.

‘해적선이 폭발한다든지, 하다못해 작은 불이라도 난다든지 하면······’

군대가 찾아 올 거다. 그렇게 하지 않기 위해서 강흑성은 해적선 안으로 들어간 거다. 독을 뿌려 놈들을 무력화 시켰다. 이결과는 독이 만능키와 같은, 요술방망이처럼 여겨지게 한다. 하지만 그건 절대로 아니다.

‘이런 결과가 될 수 있도록 만든 거야, 강흑성이란 존재가······!’

새삼 등골을 조이는 오한과도 같은 전율의 느낌에 박준은 가늘게 어깨를 떨었다.

“머뭇거릴 시간 없습니다, 가죠.”

덤덤히 나온 강흑성의 말을 좇아 박준은 다시 배를 움직였다.

* * *

동이 터오는 부연 동쪽하늘을 응시했던 패튼은 불탄 동굴로 시선을 돌렸다. 샤크가 폭발해 화염이 퍼져 나온 흔적은 아직도 검은 연기로 피어나고 있다. 동굴 앞은 연소될 만한 것이 없도록 수목들을 잘라버렸다.

‘어떤 놈인지 냉철하게 계산했어.’

샤크 자체의 폭발화염을 숨길 수는 없겠지만, 이차연소물들을 제거함으로서 화재발생 시간을 줄인 거다. 불길이 크게 번져 지속되면 눈길을 더 확실하게 끌 것이어서다. 어쨌든 이곳을 발견할 거란 걸 알면서 했다.

‘남쪽으로, 거제도로 갔다는 건······’

그놈들의 은밀히 주고받은 대화내용이 그렇다고 했다.해동컴퍼니 창고에 죽지 남아 있던 놈들의 진술이다.샹그릴라 놈들, 정찰대의 샤크를 탈취해 도망친 놈들, 그놈들은 대담하고 교활하다.트릭일 가능성이 있다.

‘남쪽이 아니라면······’

미간을 좁히고 꿈틀거리던 패튼은 하늘로 다시 눈길을 돌렸다. 로이어가 탄 샤크가 착륙하고 있다. 놈들을 갔다는 남쪽을 수색하고 온 거다.

‘수확이 없겠지.’

확신어린 예감을 삼키며 패튼은 한숨을 내쉬었다.이곳을 포착하고 도착하자마자 평택항을 뒤졌다. 그렇게 찾아낸 것이 해동컴퍼니란 조직이다.평팩항을 거점으로 한 3대 조직 가운데 한곳, 그런데 모조리 죽었다.

‘샹그릴라 놈들······!’

그놈들의 같은 수법이었다. 독에 의해 시체조차 남지 않은 결과였다.조직 보스 야마구치라는 놈을 포함해 부하들 전부가 핏물로 변했다. 그 현장에서 브라이튼의 부하들이 당한 것과 같은 성분의 독을 발견했다.

‘남도의 제왕까지······!’

정말로 놀랍고 충격적인 일이 그거다. 창고에 결박돼 남아 있던 놈들이 아홉이나 있었다. 놈들을 통해 샹그릴라 놈들이 남쪽으로 갔다는 것을 알았고, 그 전에 해동컴퍼니에 남도의 제왕 조직원들이 온 걸 알았다.

‘그들이 타고 온 장갑차량과 무기만 남았다는 건, 죽은 거지.’

남도의 제왕, 그들의 시신 역시 찾지 못했다.독으로 처리한 거다. 하지만 개조한 장갑차량과 그들을 상징하는 무기인 쌍도가 남아 있다.그들은 껍질만 남기고 죽은 거다.샹그릴라 놈들은 알면 알수록 놀랍다.

‘샤크를 처분하려다가 일이 틀어진 거야.’

그래서 이련 결과인 것임을 패튼은 확신했다.놈들은 끝내 샤크를 폭파시켰다.살려둔 놈들에게 남쪽 거제도가 목적지인 것처럼 흘리고 떠났다.이제 로이어가 돌아왔으니 답을 알게 되겠지만, 금선탈각의 희롱이다.

“종적이 있던가?”

다가오는 로이어에게 패튼은 물음을 던졌다.로이어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전혀, 남행하는 선박들을 모조리 추적하고 검문했지만 아니었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깊게 끄덕인 패튼은 시선을 한곳으로 돌렸다. 수림 너머 서쪽, 서해바다가 펼쳐진 그 너머, 대륙을 머리에 그렸다.

“놈들은 서해를 건너갔어.”

로이어는 동의의 고갯짓을 했다.

“거기겠지.”

패튼의 시선을 따라 서쪽을 응시하던 로이어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 결과는 우리의 부담을 없애주는 게 맞군.”

이렇게 확인했으니 그렇다는 거다. 화성의 치안총국에선 진실을 덮으라고 했고, 탈취당한 샤크를 결국 찾은 것이니 사안이 종결된 거나 같다.

“그래, 더 할 수 있는 게 없지. 할 이유도 없고.”

허탈한 숨으로 심정을 흘려낸 패튼은 문득 미간을 좁혔다.

“그런데 남도의 제왕도 그럴까······”

로이어는 패튼에게 눈길을 돌렸다. 흰 엘프족의 상징 같은 신비한 푸른 눈동자를 빛냈다. 패튼의 말이 뜻하는 바가 뭔지 알고 예감하기 때문이다.도주한 자들, 샹그릴라놈들의 정보를 남도의 제왕에게 주는 거다.

“그럴 필요가 있을까?”

집착하지 말라는 로이어의 눈길, 패튼은 차가운 미소를 피워냈다.

“어떤 일이든 시작이 생겼으면 끝도 마찬가지야. 이건 끝이 아니지.”

이어지는 작은 중얼거림을 로이어는 분명히 들었다.

“레드스콜피온은 이렇게 물러서지 않아. 절대로.”

* * *

레이더에 잡힌 고깃배들의 위치를 확인하며 박준은 조심해서 배를 몰았다.산동반도를 확인하고 나서 남하한 시간이 두 시간, 날은 벌써 밝았다. 목적지인 상해는 이제 지척이다. 자칫 항주만으로 들어가면 안 된다.

“남통이란 데가 우리가 배를 댈 곳이다. 거기서 내려야 안전해.”

이미 한 얘기를 또 하는 박준, 긴장한 심정을 알기에 일행은 고개를 끄덕였다. 남통은 상해의 위쪽이다. 상해로 바로 들어가는 건 무리가 있기에 그곳에서 하선이다. 상해는 큰 블랙시티, 과거의 명성을 잇고 있다.

“경험자인 형님이 다 알아서 하시겠지만, 상해엔 정말로 온갖 잡놈들이 우글거리지 않겠습니까? 그 속에서 로봇다리와 의사를 찾아내기가······”

무슬란의 염려를 박준은 대번에 일축했다.

“그래서 안 어려운 거다. 네 말대로 세상의 잡것들이 다 모여 있는 곳이 상해지. 돈만 있으면 되는 거야. 단, 돈을 지킬 줄 알아야 하지만 말야.”

본능적으로 미간을 꿈틀했던 무슬란은 자신도 모르게 강흑성을 돌아봤다. 거의 동시에 기묘한 소름을 털어냈다. 혼자 나가서 해적선 하나를 해치운 존재다. 아니 그 이전에 귀신대가리 정찰대를 해치운 놈인 거다.

“다 왔다······!”

박준이 뜨거운 숨으로 종착을 말했다. 무슬란과 박현도 눈으로 봤다. 외부카메라가 보여주는 화상, 파도가 치고 있는 갯바위지대의 광경이다.

“으.”

그 순간 들린 그렉의 숨소리에 가장 먼저 반응한건 강흑성이다. 미니건 사수자리에서 나와 그렉의 맥을 살핀다. 바로 혈도를 치고 탕약을 먹인다.

“그렉, 정신이 좀 드냐?”

박준이 걱정가득한 눈으로 물어보곤 바로 화면을 보며 신경을 집중했다. 이제 배를 대야 하는 거다. 그런데 갯바위지역이라 바로 충격이 온다.

“아이쿠야!”

암초에 충돌한 충격이 반잠수정을 흔들었다. 그렇게 배는 더 움직이지 않았다.

“나가죠.”

강흑성은 주저 없이 다음을 말하고 움직였다. 반잠수정을 폭파시킬 준비를 하는 거다. 바닥의 연료탱크해치를 열고 도화선 덩굴을 집어넣는다.그 행동을 본 박준은 바로 그렉을 부축했다. 무술란은 박현을 맡았다.네 사람은 그렇게 배를 나가 해안으로 이동했다. 다시 돌아와 필요한 식략과 무기와 금화박스를 챙긴 후 서둘러 대피했다. 강흑성이 도화선 덩굴에 불을 붙여서다. 그렇게 모두가 해안에 닿은 순간 반잠수정이 터졌다.

“앞장서시죠.”

역시 강흑성의 종용, 박준은 작게 한숨 쉬며 눈을 째린 후 일행의 선두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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