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강호. 60. 살아남은 도시.
60. 살아남은 도시.
빌딩들이 존재하는 모습에 강흑성은 놀람을 삼켰다.상해가 이런 모습일거라곤 상상해 보지 못했다. 물론 온전한 모습은 아니다.삼백 년 전 대전쟁 때 도시는 파괴됐다.하지만 반이라도 남은 빌딩들은 살아있다.
‘이정도면 전쟁 피해를 안 입었다고 해도 되겠어.’
도시의 반은 사라졌고 반은 살아남았다. 그렇게 보인다. 그래도 완전히 폐허로 변한 다른 도시들에 비하면 온전하다고 할 수 있다. 이 도시에 사는 자들이 이룬 도심은 밤을 맞으면서 화려한 빛을 풀어내고 있다.
“워, 야시장이네.”
박현이 연신 눈을 돌려가며 신기해하는 걸 박준은 못 마땅하게 흘겨봤다. 하지만 박현 뿐만 아니라 무슬란과 그렉도 신기해 하기는 마찬가지다.
“저거 대왕개구리 튀김이잖아?”
기름 냄새를 풍기며 비 쏟아지는 소리를 퍼트리는 점포 앞에 박현이 멈춰 섰다. 맛있는 냄새와 달리 비쥬얼은 적잖이 충격적인 대왕개구리가 큰 대자 모양으로 널려 있다. 야수족들이 서서 정말 맛있게 먹고 있다.
“야 이 자식아, 너 자꾸만 그런데 얼쩡거릴래?”
박준이 돌아서 타박했지만 박현은 침만 삼킨다.
“와 이거 정말 침 넘어가네. 야 무슬란 우리 이거 좀 사먹을까?”
무슬란도 넋을 놓았기는 매한가지다.
“야야 저거 봐라, 샤피란 통구이다.”
샤피란은 맹독을 가진 중형 뱀이다. 껍질을 벗겨 통째 구운 그것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그것만이 아니다. 각종 야시장 음식들이 지천이다.
“오우, 여기 천국이다, 천국!”
감탄을 연발하는 박현의 정강이를 박준이 걷어찼다. 뭐야 하고 눈을 부라리며 돌아본 박현은 형 박준의 화난 얼굴을 보고 안면을 일그러뜨렸다.
“아이 씨, 하나 남은 다리를 그렇게 차야 되냐?”“정신 안 차리냐 자식아!”“내가 월 어쨌다고 그러냐?”“아 이게 증말! 야! 지금 여기서 먹을 거 보고 침 흘릴 때야! 우리가 여길 왜 왔어!”
박현은 할 말이 없기에 인상만 구긴 채 시선을 회피했다. 그런데 그사이 그렉이 음식을 샀다. 대왕개구리 하나를 들고 정말 맛있게 뜯는다.
“우오, 증말 맛있다, 냠냠.”
그렉을 돌아본 박준은 폭발하기 직전의 얼굴로 붉게 변했다. 하지만 그전에 궁금했다. 저놈이 돈이 어디서 나서 저걸 산걸까 하는 의구심이다.
‘여자들 준돈에서 쌔빈 거냐?’
확신으로 박준은 결국 폭발했다.
“그레엑!”
일행의 주변에 있던 야시장내 모든 이들이 시선을 돌릴 때 그렉은 손을 들었다. 그러지 말라고, 절대 아니란 듯이, 한손을 들고 당당하게 말한다.
“내 돈 내 산.”
들었던 손을 품에 넣었다 뺀 그렉은 돈주머니를 흔들었다. 짤랑 거리는 소리가 금화나 은화가 든 게 분명하다. 이어내는 말은 출처가 분명하다.
“월급 받은 거 모은 겁니다. 지난달 월급 밀린 거 아시죠? 폐업했다는 소리로 떼어먹을 생각 마십쇼. 내가 다시 돌아온 이유가 바로 그거라고요.”
밀린 월급 받으려고 라는 말, 박준은 썩은 무를 씹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고 박현과 무슬란은 황당한 표정을 만들었다. 그렉이 돌아온 이유는 들어서 알고 있다. 아이들과 여자들을 대전까지 돌보지 못한 상황이다.
“그렉, 돈 좀 빌려주라.”
그거 그거고 어쨌든, 이란 얼굴과 눈으로 박현이 그렉에게 손을 내밀었다. 무슬란도 바로 그랬다. 그렉은 심드렁한 얼굴이다가 주머닐 열었다.
“꼭 갚아야 해.”
계산 흐리게 하는 거 정말 싫으니까 란 말을 이어내며 그렉은 둘에게 은화를 줬다. 생사고락을 함께 하며 친구처럼 말을 놓게 된 셋은 그렇게 다시 음식좌판으로 붙었다. 박현과 강흑성은 잊은 듯이 게걸스레 먹는다.
“야 잉어탕 국물 정말 죽이는데?”“그러게? 여기 어디서 잉어를 잡을 데가 있는 모양이야?”“지천이겠지, 여긴 대륙이잖아?”
와르륵짭짭 대는 셋의 뒤에서 박준은 분노가 아닌 허탈한 숨을 내쉬었다.
“내가 저런 것들 데리고, 하아.”
상황을 지켜보던 강흑성은 흐릿한 미소를 피워내다가 음식좌판 한곳으로 갔다.팥앙금이 든 도나쓰와 꽈배기 튀김을 파는 곳이다.보는 순간 알았다. 떠올랐다.아버지의 기억 속에 있는, 도넛이 아니라 도나쓰다.
“와 이거 진짜 도나쓰네?”
어느새 곁으로 온 박준이 그 이름을 말한다. 사라졌던 유물을 본 것 같은 눈이다.
“어머니가 해주시던 건데······”
이어진 목소리는 중얼거림으로 작게 흘러나왔다. 깊은 감정을 실은 음성이었다. 어머니란 존재를 기억하는 마음, 강흑성은 고요히 숨을 삼켰다.
“주인장, 한반도 사람이슈?”
박준이 물음을 건네자 장년의 튀김좌판 주인은 고개를 저었다.
“배운 거요. 한반도 사람한테.”“아, 그러시구만.”“사먹을 거요 말거요? 아니면 장사 방해 말고 다른데 가슈.”
못마땅해 하는 주인의 반응에 박준은 눈썹을 세웠다.
“어라, 이 양반 장사 잘하시네? 돈 없으면 가라 이거요? 이거 다 얼마요?”
나 돈 있고 좌판에 있는 전부다 사먹을 능력 있단 박준의 호기, 주인은 슬그머니 미소를 입가에 문다. 튀김에 여념 없던 손을 문지르고 말한다.
“뭐 얼마하겠수? 되는 대로 드시고 내면 되지. 그래, 돈은 먼저 내셔야지?”
박준은 금화 한 개를 손가락 사이에 끼고 흔들었다.
“우선 먹겠시다. 맛있는지 알아야 얼마나 먹을지 정하지.”“아 뭐, 그, 그러시구랴.”“야, 흑성아 먹자.”
강흑성에게 권하며 박준은 도나쓰와 꽈배기를 먹기 시작했다. 등 뒤에서 박현과 무슬란과 그렉이 그러는 것처럼 게걸스럽게 먹어댔다. 강흑성도 하나씩을 먹었다. 아버지가 기억하는 그 맛, 정말로 맛있는 맛이다.
“후아.”
배불리 먹었는지 입에 묻은 기름과 설탕을 닦은 박준은 여유롭게 물음을 던졌다.
“밀가루하고 기름 같은 식재료를 구하기가 어렵지 않은 모양입니다?”
시종일관 박준의 손가락 사이 금화를 힐끔대며 주인은 대답했다.
“그야 뭐, 여긴 상해니까, 화성에서 오는 물건들도 있고 이렇게 저렇게 들어오는 물건들이 많지. 어디, 다른 곳에서 오신 양반들인가? 뭐 딱 봐도 그렇게 보이고 상해가 그런 자들로 넘쳐 나는 곳이지만, 그렇구랴?”
내말 맞지 하는 주인의 눈길을 무시하고 박준은 다시 입을 열었다.
“상해에선 못 구하는 물건이 없고 못 할 일이 없다고 하던데, 정말 그런 겁니까? 상해가 그렇게 대단한 곳이에요? 뭐 소문이란 게 대개 그렇지만.”
방금 전 낸 주인의 말투를 따라한 박준의 냉소에 주인은 눈썹을 세웠다.
“못 믿겠으면 직접 돌아보면 되지 뭘 그러시나? 그런데 말요, 상해에서 원하는 걸 얻자면 돈이 있어야 해. 돈 없으면 황이지. 당연한 거 아뇨?”
네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고 그런 게 있는지도 알바 아니지만, 지금 내가 한 말이 진리이자 철칙이란다, 하는 주인의 표정과 눈빛은 강렬하다.
“뭐 그렇구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한 박준은 다시 눈동자를 빛내며 물음을 던졌다.
“편하게 쉴 수 있는 숙소를 소개해 줄 수 있겠소?”
말을 던지며 박준은 금화를 다시 손가락 사이에서 굴렸다. 박준의 눈동자 보다 더 강렬하게 눈동자를 빛낸 주인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알다마다, 마침 내가 모텔을 운영하는 사람이라오. 정확하겐 집사람과 아들이 운영하지. 장담하는데, 거기만큼 편하고 좋은 곳은 못 구할 거요.”
주인의 은밀한 눈빛과 미소를 바라보던 박준은 금화를 휙 던졌다. 두꺼비가 파리를 낚아채듯 금화를 잡은 주인은 만족한 미소를 흘려냈다.
“뭐야, 이거 튀김이잖아?”
박현이 형 박준의 등을 밀며 다가왔다. 손에는 샤피란 구이를 들고서다.
“우와, 이거 엄마가 해주던 그거네?”
박현은 반색한 얼굴로 도나쓰와 튀김을 먹기 시작했다.그게 못마땅했지만 박준은 뭐라고 타박할 수 없었다.엄마란 말 때문이다. 그런데 오래 못 갔다.무슬란과 그렉까지 합세한 셋이 좌판의 튀김을 다 먹어치웠다.
“야이 샹노무자식들아!”
박준이 소리치고 주인이 황당한 얼굴을 하던 그때였다.야시장에 변화가 생겼다.왁자지껄하던 분위기가 삽시간에 얼어붙듯 조용해졌다.그 속으로 긴장한 술렁임이 퍼졌다. 그리고 그 뒤로 일단의 무리가 나타났다.황금빛합금갑주로 무장한 무리다. 한눈에 봐도 보통 갑주가 아니란 것을 알겠다. 정찰대의 천산마갑 슈트와 같은 무장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저들은?’
미간을 좁히며 흑청빛 눈동자를 번득이던 강흑성은 들었다.
“제길, 황금대호방에서 무슨 일이야?”
정체모를 무리의 이름, 황금대호방이다. 저들이 나타나자 야시장엔 긴장감에 팽배했다. 건드리며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른 풍선의 형국이다.이열로 걸음을 내는 저들의 숫자는 이십 명, 야시장내 모두가 길을 비킨다.
“무슨 상황입니까?”
박준이 낮은 소리로 묻자 주인은 역시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
“뭔지 모르지만 사달이 난 모양이우. 저자들은 황금대호방 방도들인데, 금혈방과 단천문과 경쟁하는 세력이라오, 그들이 상해를 셋으로 나눴지.”
그렇다는 거다. 세 곳의 세력이 상해를 지배하는 거다.치열하게 싸우면서 균형을 이룬 거다. 그런데 그중 한곳인 황금대호방이 나타났다.형세를 보고 짐작하건데 피를 볼 것 같다.그대상이 누구이냐가 궁금하다.
“대체 뭐야? 여긴 서로 안 들어오는 곳인데?”
이어진 주인의 말에서 박준을 비롯한 일행은 깨달았다.지금 발을 딛고 선 이곳, 야시장은 완충지대인 거다.그런데 암묵의 합의로 이뤄진 이곳에 저렇게 살기등등한 모습으로 걸음 했다.그래야 할 이유가 있다.
“어? 형!”
박현의 놀란 반응, 그 순간 일행은 모두가 그 광경을 봤다.국수를 팔고 있는 좌판 점포다.홀로 앉아 국수를 먹던 남자를 황금대호방 방도들이 공격했다.불문곡직 가차 없고 벼락같은 살수다. 그런데 실패했다.
“으하하하하!”
공격을 피해 바람처럼 물러난 사내가 대소를 터트렸다. 그를 황금대호방의 반도들 이십 명이 포위했다. 슈트에서 뽑아낸 전투대검은 황금빛이다.
“네놈들이 호간을 삶아 먹은 게 분명하구나!”
쩌렁하게 야시장을 울리며 외침을 터트린 자, 사내는 형형한 안광으로 다시 소리쳤다.
“감히 나 천지도 상패천에게 검을 겨누다니! 대가를 치를 것이다!”
사내는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그 이름이 야시장에 또 다른 술렁거림을 만들어 냈다. 튀김좌판 주인도 그랬다. 놀란 얼굴로 눈 밑을 부들거렸다.
“천지도 상패천······!”
주인의 신음 같은 목소리가 퍼질 때 접전이 시작됐다.스무 명의 황금대호방 무인들이 황금검을 휘두르며 공격했다.마흔이 안 넘었을 것 같은 자, 천지도 상패천은 장도를 마주 휘둘렀다.그 순간 박준이 물었다.
“저자가 누굽니까? 이게 무슨 일입니까?”
주인은 놀란 심정을 수습하며 대답했다.
“천지문의 파문제자라오.”“누가요? 상패천이라는 저자가 말입니까?”“그렇수다. 아다시피 천지문은 화성으로 옮겨간 십대문파 중의 한곳이 아니겠소?”
그렇다, 천지문의 화성의 핵심세력이다. 그런 곳의 제자라는 거다, 그런데 파문제자다. 그런 자가 여기서 뭐하는 거며 저 일은 무엇인건가.
“아마도 상패천의 위치를 안 누군가 발고한 모양이오. 상패천을 잡거나 죽인다면 화성의 천지문에 웃는 얼굴로 손을 비빌 수 있는 기회가 될 거요.”
그래서 저런 일이 발생한 거란 주인의 판단과 추측, 일행은 지켜봤다.
‘전력을 다하지 않고 있구나.’
강흑성은 천지도 상패천이란 인물이 그렇다는 걸 알았다. 고수다. 저러한 자를 아무리 슈트로 무장했지만 스물의 숫자만으로 제압하려 한다는 게 아귀가 안 맞는다. 그렇다는 것을 상패천이란 인물도 아는 것 같다.
‘다른······’
생각하는 찰나 강흑성은 눈썹을 확 세웠다.야시장의 저편에서 누군가 걸어온다.황금빛의 기다란 창을 등에 가로지르듯 지닌 자다.뒷짐 진 손으로 창을 잡고 걸어오는 인물, 그를 본 자들 모두가 썰물이 되고 있다.
‘역시.’
짐작하던 답을 본 강흑성의 귀로 주인의 신음 같은 음성이 들어왔다.
“황금룡이 나섰구나······!”
주인의 목소리가 퍼지던 순간, 황금룡이라고 불린 자가 황금창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