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강호. 61. 흑산의 모텔.
61. 흑산의 모텔.
황금의 섬광으로 화한 창이 번쩍하는 순간 상패천을 강타했다.눈부신 불꽃이 튀는 그 찰나를 강흑성은 똑똑히 봤다.상패천이 장도도 창을 받아쳤다. 그는 휘청거리며 세 걸음을 물러났고, 창은 허공으로 치솟았다.
‘저!’
황금창이 휘도는 광경을 보고 강흑성은 눈을 치떴다.상패천이란 인물이 방어할 것이라고 당연히 예상했기에 놀랄 게 없는 광경이었다.그런데 지금 저건 다르다.황금창이 저 혼자 비행한다. 주인에게 돌아간다.
‘팔목의 저것······!’
황금룡이란 자의 팔목에서 비구가 빛을 내고 있다. 그 빛에 조응하듯 황금창도 마찬가지다. 자루 끝에서 그 빛을 방출하며 방향을 조절했다.그건 마치 미사일이 목표를 향해 균형을 맞추며 비행해가는 것 같다.
‘기계장치.’
그런 부분이 안배 돼 있는 창이란 것을 강흑성은 깨달았다.때문에 황금룡이란 자가 저렇게 마음 놓고 창을 던졌다.이기어창의 묘리를 부리듯 창을 회수하기 때문이다.저런 무기를 본적 없다. 황당하고 놀랍다.
“저게 뭐야?”“허, 창이 새처럼 날아서 돌아갔잖아?”“뭐 저런 개수작이 다 있어?”
그렉과 무슬란과 박현의 황당한 반응 뒤로 박준의 반응이 뒤따랐다.
“군부의 병기다······!”
뜨거운 숨으로 가늘게 떨려나온 말, 일행은 박준을 일제히 돌아봤다. 그게 무슨 소리냐는, 뭘 알고 있냐는 눈길들이다. 박준은 아는 걸 말했다.
“세상이 알고 있듯 군부는 삼월문의 무공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무공이란 게 아무리 대단한 무기를 가졌어도 개인의 욕구를 아우르지 못하지······”
더 강하고 높은 경지로 나가고자 하는 개인의 욕망.무공을 익힌 자들의 숙명이다.그래서 군대의 무인들은 무공의 성취를 위해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그러나 무공이란 게 원하는 대로 계단을 계속 밟아 오를 수 없다.필연이 가로막는 벽.그 한계를 넘기 위한 몸부림은 다른 방편들을 생각하고 취하게 했다.그 중엔 무기의 개량도 있는데, 황금창과 같은 것이 그것이다.궁극의 이기어창과 같은 경지를 모방해 비행창을 만든 것이다.
“내부의 크리듐 에너지를 소형로켓처럼 이용해 조종하는 거지. 분명 대단한 거긴 하지만 명확히 한계가 있다. 무기를 조종하는 자에게서 일정한 거리를 벗어나면 무용지물이야. 사용자의 능력에 따라 결과도 다르고.”
박준의 이야기가 마무리로 가는 동안 접전은 치열하게 얽혀 돌아갔다. 천지문의 파문제자 상패천과 황금대호방의 황금룡이란 인물은 장도와 창으로 장막을 만들며 싸우고 있다. 둘에게로 아무도 접근하지 못한다.
“대단한 자들이구만······!”
무슬란의 감탄하는 음성 뒤로 박현이 날선 음성을 냈다.
“저놈들이 포위하고 있으니까 승부는 뻔한 거야.”
황금대호방의 무사들 이십 명이다. 두 인물의 접전을 원형으로 포위했다. 기회가 보이고 명령만 떨어지면 뛰어들어 상패천을 도륙할 기세다.
“황금룡이란 자가 황금대호방의 어떤 위치에 있는 잡니까?”
박준이 튀김좌판주인에게 물었다. 일행은 일제히 주인을 돌아봤다.
“아 황금룡은······”
머뭇거리던 주인은 뭐 어때 하는 얼굴로 뒷말을 냈다.
“황금대호방의 방주 아래 삼인의 고수가 있는데, 그중에 막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라오. 보다시피 무공이 뛰어나고 손속이 매섭기로 정평이 난 자요. 원래 군부에 있던 자라는 소문이 있는데, 나도 오늘 처음 봤소.”“그래요? 그런데 황금룡이란 걸 단번에 아시던데?”“그거야 저 창을 보고 알았지. 저자의 성명무기라오.”“아, 그렇군.”
고개 끄덕이는 박준에게 주인은 안 물어본 것까지 이야기했다.
“이 야시장을 중심으로 반경 1키로의 지역을 흑산이라고 부른다오. 황금대호방과 단천문과 금혈방이 우발적인 충돌을 막기 위해 묵인한 곳이지. 여기 사는 자들은 세 세력의 주요인물들을 볼 기회가 거의 없소.”
말 그대로 우발적인 충돌이 생길 수 있기에 그런 인물들을 출입자체를 안한다는 소리다. 그런데 오늘 황금대호방이 저렇게 출몰했다. 상패천 때문이다. 그런데 천지문에 비빌 기회라고는 하지만 부족한 느낌이다.
“상패천이란 자를 잡겠다고만 나선 게 아닌 것 같은데?”
그렉이 호목을 꿈틀거리며 짐작을 말하자 무슬란과 박현도 강한 눈빛을 냈다.
“맞아, 다른 세력과 전면전이 될지도 모를 도박이잖아?”“그래, 그래도 해야 할 계산이 충분하다면 모를까.”
박준이 정리하듯 결론의 짐작을 말했다.
“상패천이란 저자에게 뭔가 다른 게 있는 거라면 얘기가 달라지지.”
박준의 눈을 가늘게 하며 짐작의 빛을 흘렸다.
“그런 게 있으니까 저런 무리를 하는 거야. 그게 뭘까, 아는 놈들로 하여금 침을 흘리게 하는 뭔가 인데······ 저놈들이 이빨을 드러내게 만든.”
모두가 공감하고 수긍하는 속으로 강흑성이 목소릴 던졌다.
“황금대호방만이 아닐 겁니다.”
이건 또 무슨 말이야 하는 반응을 일제히 보인 일행은 바로 깨달음의 표정을 만들었다. 황금대호방이 안다면 다른 세력들도 그럴 것이어서다.
“맞아, 흑산이란 이 지역은 완충지대다. 황금대호방이 침범해 들어온 걸 모를 리가 없다. 단천문과 금혈방이란 놈들도 지금 달려오고 있을 거야.”
박준의 말이 끝나자마자 답이 나타났다.야시장 거리의 동서에서 두무리가 맹렬하게 달려왔다.동쪽은 붉은 빛의 슈트를 장착한 무리, 서쪽은 그레이컬러의 슈트를 착용한 자들이다.주인은 바로 기함하며 반응했다.
“아이고! 금혈방과 단천문이 왔구나!”
야시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동서에서 달려온 두 세력의 무인들이 접전에 충돌해 들어갔고, 혼전은 야시장을 파괴하며 사방을 휩쓸었다.
* * *
모텔이라고 부르는 숙소들이 즐비한 골목은 음산한 기운을 풍겼다. 도발적이고 색정적인 조명으로 간판을 내건 모텔들, 골목 안쪽엔 매음굴이 있었다. 쉬지 않고 드나드는 사내들의 발걸음이 모텔 앞을 거쳐 갔다.
“제길, 위치가 영 그런데?”
박준은 불만에 찬 한숨을 내쉬었다. 보지도 않고 이곳에 숙소를 정한 건 자신, 늦은 후회다. 튀김좌판 주인에게 금화를 던져주며 호기롭게 한 짓이 바보짓이었다. 이제 와서 환불해 달라고 해도 내 줄 리가 없다.
“창문 열어 놓기도 그러네.”
골목을 내려다보며 박현은 불만을 드러냈다. 건너편 건물과 빤히 바라보이기도 하고, 골목을 지나고 배회하는 자들의 소음이 고스란히 들린다.
“와 이 수건 좀 봐라, 이게 수건이야? 걸레지?”
그렉이 비치돼 있는 수건을 손가락에 걸어 올리고 황당해 했다. 그 뒤에서 무슬란이 화장실에서 나왔다. 같은 표정으로 같은 황당함을 말한다.
“온수가 안 나오는데?”
거구의 움바바족이 둘이라서 머리를 세울 수 있는 방이라야 한다고 했더니 배정해준 5층의 끝방이다. 층고는 높아 괜찮은데 다른 건 엉망이다.
“아무래도 여긴 원래 룸이 아니었던 것 같다. 창고 같은 걸 개조한 거야.”
박준의 한숨 섞인 짐작 뒤로 그렉이 입을 열었다.
“다른 데로 옮기죠?”
돈이야 걱정할거 없잖습니까, 란 그렉의 눈빛에 박준은 눈을 째렸다.
“네 돈이냐?”“어거 수전노처럼 굴지 말고 이왕 쓰는 거 쓰자고요.”“뭐 새꺄!”
여느 때처럼 박준과 그렉이 얽히려는 데 강흑성이 목소릴 냈다.
“상황이 가라앉을 때까지 두드러지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상황, 상패천이란 인물을 두고 세 세력이 충돌한 상황이다. 그들의 싸움은 이제 시작했다. 상패천은 혼전 중에 도주했고 그들이 쫓고 있다.
“그래, 흑성이 말이 맞다. 황금대호방과 단천문과 금혈방이란 놈들, 그것들 싸우는 여파가 어떻게 미칠지 알 수 없다. 최대한 은인자중해야 해. 맘에 안 들어도 우선 여기서 쉬자. 우리가 여기 관광 온 게 아니잖아.”
박준의 결론에 더 이상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았다.
“그런데 그자들 어떻게 됐을까요? 아니 뭘 노리고 그런 걸까요?”
무슬란의 의문은 실상 모두의 의문이다. 과연 상패천이란 자에게 무엇이 있어서 그러한 일이 벌어진 건지다. 그렇게 되기까지의 내막도 그렇다.
“아 몰라, 우리가 신경 쓸 일 아니다. 우린 우리 목표가 있어. 그것만 생각해.”
짜증내듯 잘라버린 박준을 무슬란과 그렉이 은근히 흘겨보는 가운데 박준은 계속 말했다.
“로봇다리, 사이보그 레그를 거래하는 곳을 찾아야 해, 그걸 찾으면 시술하는 의사는 자연히 찾게 될 거야. 돈이 얼마가 들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우리가 가진 텐박스면 차고 넘치겠죠.”
박준의 말을 잘라 말한 그렉은 윙크하며 웃었다. 그 얼굴을 본 박준이 못 볼 걸 본 사람처럼 안면을 구겼고, 무슬란이 나름 진지하게 말했다.
“조심해야 할 겁니다. 상해로 들기 전에 들에서 만든 그 들개 같은 놈들, 흑도패놈들은 어디나 있습니다. 본능적으로 돈 냄새를 맡는 놈들입니다. 물론 그런 일이 생기면 그놈들처럼 도륙을 내겠지만, 조심해야죠.”“여기 그런 놈들이 있겠어?”
박현의 되물음은 상해 안에서 그렇겠냐는 거다. 세 곳의 세력이 균형을 이루고 경쟁하는 곳이라는 데 그런 잡놈들이 얼씬거리겠냐는 거다.
“어디나 쥐구멍은 있고 쥐새끼들은 넘쳐나는 거다.”
박준이 역시 결론 내듯 말했다. 그 눈은 이제 새로운 걱정으로 빛을 냈다.목표로 한 사이보그 레그를 구해고 수술하는 일, 알아봐야 한다.그런데 강흑성을 문득 보니 미간을 찌푸리고 있다. 왜 저런 얼굴인 건가.
“뭐야? 왜 그래?”
박준이 묻자 일행 모두가 강흑성에게 시선을 돌렸다.전부 같은 물음을 던지는 눈, 강흑성은 손을 들었다.일행은 모두 침묵했다. 그 속에서 강흑성은 분명히 들었다.모기가 날개를 위잉대는 것 같은 미세한 소리.
“그래도 시장 음식 맛은 좋지 않습니까?”
갑자기 강흑성이 목소릴 내자 박준을 비롯한 모두는 더 의아한 표정을 했다. 분명히 뭔가 중요한 걸 생각하는 표정이었는데 저렇게 웃는 얼굴이다. 괜시리 너스레를 떠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눈빛은 안 그런데.
“꽈배기 맛이 일품이더군요. 그런 걸 먹게 먹게 될 줄 정말 몰랐습니다.”
박준이 가장 먼저 눈치를 채고 맞장구를 쳤다.
“맞아, 정말 튀김 맛이 좋았어. 야 정말로 상해해 오길 잘했다니까?”
그 순간 위치를 이동한 강흑성은 창 아래 협탁을 뒤집었다.
“여기 골목 풍경도 그런대로 봐 줄만 합니다.”
계속 엉뚱한 소릴 하며 강흑성은 협탁의 다리 사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박준을 위시한 일행은 그게 뭔지를 알았다.협탁 다리사이에 옹이 무늬처럼 박힌 거다. 그런데 나뭇결의 옹이가 아니라 초소형 도청기다.
‘이런 개신발 것들이!’
박준은 분노로 눈썹을 곤두세웠다. 이곳 모텔로 안내해 온 튀김 장수의 수작이다. 무인이라고 해도 제대로 감지하기 어려운 초소형도청기를 설치했다. 일행의 대화를 엿들은 거다. 당연히 텐박스의 돈에 대해 들었다.
‘흑성이가 아니었으면······!’
박준이 어금니를 물고 그렉과 무슬란이 강흑성처럼 너스레를 떠는 그때였다.노크가 들렸다.이미 계단을 올라오는 다가오는 기척을 모두가 듣고 있었다.그렉이 문을 열었다. 모텔 여주인이 다과를 들고 웃는다.
“좋은 음식은 아니지만 들어들 보세요.”
쿠키와 차다.
“아이고 뭘 이런 걸 주십니까.”“야 인심이 살아 있네요.”“감사합니다요.”
그렉이 받아들고 박현과 무슬란이 웃는 얼굴로 반색해 했다. 늙어가는 얼굴을 짙은 화장으로 메운 모탤 여주인은 강흑성을 응시하며 웃었다.
“호호호, 혹시 뭐 필요하신 거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음소가 분명한 웃음을 남기고 여주인은 돌아갔다.그렉이 내려놓은 소반 위 다과에 강흑성은 바로 손을 뻗었다. 쿠키를 먹고 차를 마셨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일행은 강흑성이 고개를 끄덕이자 다과를 먹기 시작했다.
“음음, 이 쿠키 맛있는데?”“어, 차 맛도 훌륭해.”“음 그런데 졸음이 왜 이리 오냐? 먼 길을 와서 너무 피곤한가 보다.”“그러게, 미치게 졸리네.”
강흑성을 포함한 일행은 하나둘씩 그 자리에 쓰러졌다.박현과 무 슬란이 코고는 소리를 요란하게 냈다.그러길 얼마 후, 문이 열렸다.다과를 내준 여주인과 그 아들이 다른 놈들과 들어왔다. 돈박스를 찾는다.
“이거다!”
아들놈이 침대 아래서 박스를 꺼냈다. 칼을 든 다른 놈들도 대번에 그리 몰렸다. 서둘러 박스를 연다. 금화가 내는 황금빛에 취해 침들을 삼킨다.
“좋냐?”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놈들은 흠칫하며 고갤 돌렸다.박준은 히죽 웃었다. 그 모습을 본 모텔 여주인과 아들과 다른 놈들은 눈을 치떴다.약에 취해 잠들었던 자가 일어난 거다. 이게 무슨 일인지 당황스럽다.
“뭐, 뭐야?”“멀쩡하잖아!”“저놈 하나만 그래!”“그럼 죽여!”
반응하는 모텔여주인 무리에게 박준은 차가운 살기를 미소로 던졌다.
“좋은 거 봤으면 값을 치러야지.”
박준은 핸드건을 겨눴다.
“어서 죽여!”
여주인과 아들을 비롯한 여섯 놈은 일제히 공격했다.핸드건이 겨누고 있지만 움직였다. 죽이든 죽든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그런데 그 순간 무슬란과 그렉이 일어났다.팔극권과 철권이 그들의 육신을 박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