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62화 (63/172)

혹성강호. 62. 지하수로에서.

62. 지하수로에서.

“사, 살려 주십시오!”

두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또 비는 자, 튀김좌판 주인사내의 뒷덜미를 무슬란이 움켜잡았다.

“헉!”

기겁하며 안색이 파랗게 변하는 주인 사내의 앞에는 절명한 자들의 시신이 있다. 수족으로 부리던 수하들 여섯이 뭉개진 고깃덩어리로 죽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아들과 아내는 피투성이 몰골로 구석에 처박혀 있다.

‘건드리면 안 될 자들을 건드렸어······!’

마원은 뒤늦은 후회를 삼켰다. 이제 한해만 넘기면 육십인데, 그 세월을 잘 살아왔는데 오늘 이렇게 됐다. 숨을 거두는 마지막 날까지 조심해야 하는 건데, 용하게 처신하며 잘 살고 있다는 자만이 만든 결과다.

‘미친 세상을 우습게 본 대가야······!’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 이젠 되돌릴 수 없는 일이다.돌아와서 이들에게 제압됐고 아내와 아들의 공포에 젖은 이야기를 들었다.저들의 대화 중에 흑도패를 처리한 이야기가 있는데, 그게 혈랑패 같다는 거다.

‘스무 명이나 되는 혈랑패를 처리한 자들인 줄 알았으면······!’

혈랑패는 상해 바깥에서 노략질을 일삼고 살상을 유희로 즐기는 놈들이다. 정찰대의 편제를 본 따 스무 명이 한패로 횡행하는 놈들은 큰 배후가 뒤에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떠하든 건드리면 안 되는 놈들이다.

‘그런 놈들을 상대한 자들을······!’

후회와 죽음의 공포를 삼키는 마원에게 박준의 목소리가 날아갔다.

“어떻게 해 줄까?”

이제 본격적으로 죽음의 유희가 시작된다는 걸 마원은 느꼈다. 자신을 제압해 아내와 아들의 곁에 집어던져 놓고 저희끼리 숙덕거리더니 시작이다.분명히 고통과 치욕을 주고 죽일 거다. 피할 방법이란 없다.

“부, 부디, 고통 없이 죽여주시길 바랍니다······!”

간절한 음성으로 마원은 애원했다. 이제 모든 게 끝나는 마당, 그것만을 바랄뿐이다. 그런데 박준이라고 자신을 밝힌 저자의 눈은 웃고 있다.

“빨리 죽여 달라고?”

차가운 미소로 되물음을 던진 박준은 마원에게 바짝 다가갔다. 얼굴이 맞닿을 정도로 가까이다. 흔들리는 마원의 눈을 응시하고 으르렁거렸다.

“우릴 죽이고 돈을 강탈하려고 한 놈을 너 같으면 고통 없이 빨리 죽여주겠냐? 개미지옥 같은 이 모텔로 유인해서 약을 먹인 후에 난도질 하려고 한 놈을? 여태 그렇게 장사했지? 전부 고통 없이 빨리 죽여줬냐?”

마원은 박준의 눈을 마주보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장사를 마치고 모텔로 돌아와 제압당했을 때, 곁으로 다가온 이 남자는 자신의 이름을 귀에 대고 속삭였다. 마치 저승사자가 자신의 신분을 밝히듯이다.

“눈 떠 개자식아.”

박준의 서리품은 음성이 마원의 피부를 파고들었다. 흠칫하며 마원은 눈을 떴다. 그 시야에 들어온 것은 움바바족이 내민 커다란 작두칼이다.

“네가 먼저가 아니다.”

섬뜩한 미소를 흘려내며 박준은 무릎을 세우고 일어섰다. 그렉을 돌아봤다. 강흑성의 탕약과 조치로 심각한 상태에서 벗어나곤 있지만 아직 온전하지 않은 얼굴, 모텔놈들과 싸우느라 무리한 까닭에 안색이 나쁘다.

‘너 괜찮냐?’‘문제없습니다.’

눈빛으로 대화를 주고받은 후 그렉이 밟고 있던 아들놈을 잡아 일으켰다.

“으헉! 살려주십쇼!”

발작하듯 반응하는 아들놈을 그렉은 지하실 중앙으로 끌고 가 패대기쳤다.아비와 어미는 부릅뜬 눈으로 아들을 보며 경련한다.먼저가 아니란 말을 알겠다. 이렇게 보는 앞에서 아들을 먼저 죽이겠다는 소리다.

“제, 제발! 협사님들! 제 아들을 살려주십시오!”

마원의 간절한 외침이 지하실을 울렸다. 그런데 그 말 중에 든 협사란 말에 박준을 비롯한 일행은 미간을 좁혔다. 한반도에선 못 들어본 말이다. 하지만 박준은 기억하고 있다. 대륙전쟁 때 ‘신중화’가 외치던 말이다.

‘돌아오니 저 말을 다시 듣는 군.’

대륙, 중국으로 불렀던 이 땅의 문화가 만들어낸 오랜 전통의 단어다.반화성의 기치로 전쟁을 벌인 자들, ‘신중화’는 자신들을 그렇게 불렀다.협사는 강호를 질타하는 자다.불굴의 의지와 무공으로 행사하는 자다.

“저놈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다 제가 시켜서 한 일입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거듭 외치던 마원은 경직했다.왼다리가 없어 강철목발을 짚은 움바바족이 아들에게 다가가서다.그의 손엔 역시 작두칼, 그날이 아들 목에 닿았다.

“씹어 먹을 놈아. 네 아들 목숨은 그렇게 소중하단 말이지?”

박현은 흉악한 움바바족의 눈을 부라리며 마원에게 거듭 살기를 던졌다.

“니들 목숨이 그렇게 소중한데 우리는 버러지냐?”

박현의 눈동자에서 살기가 응축했다가 터졌다.그 찰나에 작두칼이 도광을 뿌렸고, 마원의 아들은 왼다리가 떨어져 나갔다.그냥 순간이었다.

“크악!”

뒤늦게 비명을 터트리는 아들,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 모습을 본 마원은 숨을 멈췄다. 아내가 거품을 물고 혼절하는 것도 알지 못했다. 그냥 이 순간 떠오르는 기억을 받아낼 뿐이다. 이곳에서 죽인 사람들이다.

‘몇이나 될까······’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겠다. 최소 백 명은 넘은 것 같다. 마원 자신이 오늘 이자들처럼 흑산 야시장에서 유인해 온 자들, 그 중엔 가족도 있었다.

'어린 아이와 부부······ 그들도 나처럼 애원했었지······‘

기억난다. 그들의 얼굴이 생생하다. 아이만은 살려달라고 빌던 그들을 죽였다.아이는 팔아넘기려 했다가 후환이 꺼려져서 죽였다.그들의 시신을 지하수로에 던졌다. 여기서 죽인 자들 모두 그랬다.전부 기억난다.

‘나는······!’

부르르 진저리를 치며 경련하는 마원에게 박준이 다시 다가갔다.

“살고 싶지?”

부드러운 박준의 목소리에 마원은 현실로 돌아왔다. 박준의 미소를 보고 부질없는 줄 알면서도 희망의 끈을 잡았다. 아직 아들은 안 죽은 거다.

“제발, 아들만 살려주신다면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쯧, 갸륵하네, 짐승보다 못한 악인의 가슴에도 자식을 향한 마음이 이렇게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 뭐 그래서 사람이란 게 알 수 없는 존재지만.”“사, 살려만 주시면······”“몇 가지 물어볼게 있다.”

다시 차가워진 박준의 눈동자와 음성에 마원은 입을 닫고 침을 삼켰다.

“로봇다리를 취급하는 곳을 알고 있나? 사이보그레그 말이야?”

이게 갑자기 무슨 생뚱맞은 소린가 하던 마원은 시선을 박현에게 돌렸다.아들의 다리를 저 흉악한 칼로 잘라버린 움바바족, 저자의 다리가 없다. 그렇게 알겠다. 이들은 저자를 위해 사이보그레그를 구하려는 거다.

“그, 그것은······”“알아 몰라?”

마원이 떨리는 입술을 열던 그 순간 진동이 왔다. 일행의 발밑에서, 모텔의 지하실 아래서, 마원일당이 죽은 자들을 던진 지하수로에서다. 그곳엔 강흑성이 있다. 지하수로를 보자마자 눈을 빛낸 그가 들어간 거다.

* * *

터널처럼 이뤄진 지하수로는 사방으로 통로가 이어져 있다. 그렇지만 본류의 거대한 통로로 이어져 흘러간다. 지독한 악취가 독가스처럼 맡아지는 곳이다. 흘러가다 걸린 시체들이 해골로 남아 원기를 뿜고 있다.

‘이처럼 강렬한 원기와 악기라니······!’

수로에 발을 딛고 선 강흑성은 자신도 모르게 진저리를 쳤다.마원일당이 죽인 자들을 이 수로에 유기했다는 것을 알고 내려왔다.뭔지 모를 강렬한 예감과 호기심이 들어서다.이유를 알았다. 패천마혈이 울고 있다.

‘원한의 기운에 감응하고 있어.’

패천마혈은 미친 듯이 울부짖고 있다.이 지하수로에 던져진 무수한 사람들의 원혼이 만든 에너지에 동조하고 있는 거다.주파수가 맞아 공명하고 있는 거다.상해의 밑바닥인 이곳에 얼마나 많은 자들이 던져진 건가.

‘마원일당이 만든 죽음은 조족지혈.’

상해라는 도시가 만든 죽음들이다. 셀 수 없는 그 죽음들이 이곳에 던져졌다. 그 원한의 에너지가 요동친다. 패천마혈을 제어하기 힘들 정도다.

‘그만 나가야겠다.’

패천마혈을 강하게 움켜잡으며 강흑성은 몸을 돌렸다.그런데 순간 강렬한 예기가 뒷덜미에 박힌다. 본능적으로 몸을 돌리며 검을 후렸다.

‘뭐!’

강흑성은 놀란 눈을 치떴다.무원도법의 일격으로 가른 예기의 정체가 그렇게 만들었다.검은 안개다.갈라진 그것이 흩어졌다가 다시 형상을 이룬다.정확한 형상이 아니다.꿈틀거리는 악기와 원기의 덩어리다.

‘원혼의 에너지구나!’

그렇다는 걸 강흑성은 본능으로 깨달았다.저런 것이 갑자기 나타난 이유도 알았다.자신 때문이다. 아니 마검 페천마혈 때문이다.이 지하수로에 넘쳐나던 원혼의 에너지가 패천마혈이란 열쇠를 통해 열리는 거다.

‘시간이 갈수록 더 강해지고 커질 거야!’

역시 본능으로 이 상황의 흐름을 예측한 강흑성은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든 저것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또한 본능으로 확신한다.

‘이뤄지지 않았을 일이 나 때문에, 패천마혈 때문에서 이뤄진 것!’

이로서 일어날 다른 어떤 일들보다도 지금 강흑성 자신의 안위가 급선무다. 저 원혼의 에너지체에게서 느껴지는 가공할 힘이 털을 곤두세운다.

‘저런 것을 상대할 방법이······!’

강흑성은 생각을 잊지 못했다. 에너지체에게서 공격이 나왔다.검은 섬광, 찰나에 터져 나온 그것은 수십줄기의 창이자 화살이다. 전신을 파고든다.

‘무원진천하(武元震天下)!’

이 순간 떠오르는 무공을 강흑성은 펼쳤다.무원도법으로 이루는 최강의 절초다.현재의 미숙한 내공과 완성하지 못한 도법 수준으로는 펼쳐낼 것이 아니지만, 이 순간 그래야 한다는 영혼의 울림으로 검을 펼쳤다.강흑성은 패천마혈과 하나 되어 휘돌았다.용선풍처럼 돌아가는 그 형상으로부터 수십 개의 패천마혈이 터져 나왔다.검은 창들은 그 검날에 갈라졌다. 하지만 뒤를 잇는 검은 창들은 수백 개다.그 힘이 덮쳤다.무시무시하고 가공할 광경.터널 같은 지하수로를 검은 기류가 채웠다.강흑성을 향해 폭발해 나가는 그 확산은 처절한 지옥의 비명과 울음을 동반했다.강흑성은 그 두 번째 공격을 막지 못했다. 그냥 휩쓸렸다.

* * *

“이거 뭐야?”

박현이 눈을 치떴고 무슬란은 바로 움직였다. 강흑성이 내려간 지하수로로의 통로로 달려갔다. 그렇지만 움바바족이 드나들 수 없게 좁은 통로다.그렉이 창백한 안색을 무시하고 움직였다. 무슬란을 밀치고 내려갔다.

“나도 가야겠다!”

박준이 그렉의 뒤를 따라 통로로 내려갔다. 그 뒤에 남은 박현과 무슬란은 불안한 시선을 맞췄다.

* * *

“흐윽······!”

가공할 충격 속에서 강흑성은 눈을 떴다. 하지만 일어날 수가 없다.지하수로의 더러운 하수 속에 처박혀 운신할 수가 없다.전신에서 피어나는 흉악한 통증은 몸 상태를 알게 해준다. 갈라지고 뚫리고 부러졌다.

‘이런 힘이라니······!’

블루마운틴 수십 마리가 한꺼번에 휘두른 주먹을 맞은 것 같다.아니 그 이상이다. 그런데 그게 저 힘의 전부가 아니라는 게 문제다.검은 원혼의 에너지는 계속 커지고 있다.패천마혈의 울음에 공명하고 모인다.

‘이렇게 이런 곳에서 죽지 않아!’

으스러지게 이를 악문 강흑성은 생각했다. 살 방법을, 저 원한의 에너지체를 박살낼 수를, 그렇게 떠오르는 건 하나다. 마교의 비전대법이다.

‘혼천무상대법!’

떠오른 순간 강흑성은 주문을 암송했다. 아버지의 기억이 전해준 혼천무상대법의 묘결을 읊었다. 그 소리가 퍼지자 패천마혈이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오른손에 움켜쥔 검은 손을 끌어올리듯 위로 떠올라 혈광을 낸다.

“패천무천 음양쌍교 천지무간 종극무간 삼천회천십이천래······”

강흑성이 주문이 퍼지는 가운데 패천마혈의 혈광에 검은 에너지체가 동조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흑룡이 용틀임하는 것처럼 회오리치며 강흑성의 주변을 돌았다. 영육이 흩어질 그 엄청난 압력 속에서 강흑성은 외쳤다.

“패천명!”

마지막 주문의 명이 터져나가자 패천마혈은 울부짖었다.폭발하는 그 혈광은 검은 에너지체로 파고 들어갔고, 지옥의 포효로서 뒤섞였다.상상도 못하겠고 형용도 못할 그 형상과 힘이 검으로, 페천마혈로 들어왔다.

‘어억!’

강흑성은 피투성이 눈을 치뜨고 경직했다.오른손에 잡은 패천마혈을 통해 들어오는 가공할 에너지를 느꼈다.그것이 온몸을 치닫는다. 세포 하나하나에 침투한다. 터질 것 같다.그런데 갑자기 고요히 가라앉는다.

“흑성아!”

지하수로를 울리며 다가오는 소리가 누구의 음성인지 강흑성은 알았다.그렉이다. 그 뒤로 박준이 부르며 달려오고 있다.그들을 향해 일어섰다.그렇게 알았다. 패천마혈은 원래 그대로고 자신 역시 그렇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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