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63화 (64/172)

혹성강호. 63. 다리를 찾아서.

63. 다리를 찾아서.

무슬란은 흉악한 눈동자를 빛내며 작두칼을 내리쳤다.썽둥 목이 잘렸다.마원이란 자의 머리통이 몸에서 떨어져 데구르 구른다.그렇게 멈춘 곳은 지하실 구석의 오래된 소나무장, 문을 두드리듯이 부딪쳐 멈췄다.

“퉤, 더러운 새끼. 지옥에 떨어져라.”

침을 뱉으며 저주하는 무슬란의 심정은 일행 모두의 것이다.마원과 그 아내와 아들의 목을 모두 쳤다.어차피 해야 할 일이었지만 아무 갈등 없이 그렇게 결론내린 것은 소나무장 안에서 찾아낸 희생자들의 흔적이다.이들은 정말로 많은 사람들을 살해했다.살해한 이들의 작은 소지품을 컬렉션처럼 모아뒀다.그 속엔 어린아이들의 물건도 있었다. 그걸 본 그렉과 박현과 무술란은 참지 못했다.부부와 아들의 머리통을 잘랐다.

“너희가 죽인 이들처럼 뒈질 줄은 몰랐을 거다.”

그렉은 아들의 시신을 지하수로 통로로 차 넣었다. 박현은 마원 아내의 시체를 집어 던졌고, 무슬란은 마원의 몸과 머리통을 쑤시듯 던졌다.

“야, 나머지 것들도 다 처넣어.”

박준이 분노를 삼키는 음성으로 말하자 그렉과 무슬란은 마원의 부하놈들 시체도 처리했다. 찡그린 얼굴로 바라보던 박준은 무겁게 중얼거렸다.

“흑산, 찾아오긴 제대로 찾아온 건데······”

마원이 죽기 전에 털어놓은 말에 의하면 이곳 흑산에 사이보그레그를 시술하는 의사가 있었다는 거다. 흑산이란 통칭 야시장을 말하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야시장을 중심으로 한 지역, 상해의 폐부인 거다.

“여기가 세 곳의 세력들이 자리 잡기 이전부터 상해의 중심이었다는 건 옛날 말이고, 결국 황금대호방이나 단천문과 금혈방을 통해야 되잖아요?”

그렉의 말이 현실이다. 사이보그레그를 구할 방법은 그것뿐이다.세 세력이 화성으로부터 밀수한 물품들을 독점하고 있기에 다른 방법은 없다.마원이 말한 건 그가 알고 있던 옛 일, 이제는 사라져 버린 자취다.

“제길, 헛수고 한 건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무슬란은 흠칫했다. 박현의 다리를 구하려고 온 이 행보가 부질없었다고 말한 것이어서다. 박준과 박현 앞에서다.

“아니, 내 말은 그게······”

당황한 얼굴로 변명을 내려고 허둥대는 무슬란에게 박현은 희미한 미소로 다독거렸다.괜찮다고, 안 되는 일이면 포기하면 되는 거라고.그런데 박준은 아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내고야 만다는 의지를 뱉는다.

“황금대호방이든 단천문이든 금혈방이든, 그들이 사이보그레그를 가지고 있다면 접촉해서 구한다. 할 수 있어. 우린 돈이 있고 능력도 있다. 이제 와 포기할 순 없어. 절대로 안 돼. 아직 희망은 사라진 게 아니야.”

단호한 결의의 기세를 뿜는 박준의 시선을 받으며 무슬란은 고개를 강하게 끄덕였다. 그렉도 마찬가지, 그런데 강흑성이 담담히 길을 말한다.

“숨어 버린 자를 찾는 게 먼저입니다.”“어? 그게 무슨 말이냐?”“마원이 말한 대로 의사가 있었다면 그를 찾아야 합니다.”“그렇긴 한데, 지금은 어디 있는지 모르잖아?”

반문하면서도 박준은 눈빛을 예리하게 빛냈다. 강흑성이 섣불리 말하는 존재가 아님을 알기에 그렇고, 자신에게도 모종의 예감이 들어서다.

“의사니까 아직도 의료행위를 하고 있을 겁니다.”

박준이 눈동자를 번득이는 가운데 강흑성은 뒷말을 이어냈다.

“시류에 희생되지 않으려고 숨었지만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만 숨 쉬고 있을 걸로 생각됩니다. 흑산에서 의료행위를 하는 자들을 확인하면 자취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떠난 게 아니라면 그 중에 분명히 있습니다.”“맞아, 침술사건 탕약사건 접골사건, 의료행위를 하는 자들은 모조리 찾아서 확인하는 거야.”

그렉이 주먹까지 쥐고 공감하자 무슬란도 동의했다.

“그래, 흑산이란 이곳의 바닥을 훑는 거지.”

동생 박현의 눈을 응시하던 박준은 어금니 무는 숨으로 결론을 말했다.

“그래, 그거다. 그게 안 되면 그 다음이고.”

* * *

진송의원이란 낡은 나무간판을 단 병원 아닌 병원에서 일행은 허탈은 표정으로 나왔다. 흑산 야시장 외곽에서 찾아낸 이병원은 벌써 여섯 번째다. 박현의 다리를 보이고 은근이 로봇다리를 말하자 대번에 고갤 저었다.

“돌팔이 놈이 눈치는 무지 빠르네, 퉤.”

그렉은 찡그린 얼굴로 침을 뱉었다. 눈으로 보는 이 거리의 더러움과 불우한 절망의 광경의 계속 침을 뱉고 싶은 충동을 주지만 참으며 삼켰다. 그나마 이 거리의 사람들에겐 저 돌팔이 의사가 화타편작인 거다.

“개자식이, 움바바족에게 맞는 다리는 없을 거라고?”

박준은 인상 쓴 얼굴로 걸으며 중얼거렸다.너구리를 닮은 얼굴과 눈빛의 의사놈은 일행의 의도를 눈치 채고 비밀스럽게 이야기했다.로봇다리를 구할 수도 없거니와 시술할 자는 더욱 없고, 사이즈가 문제란 거다.다 불가능하지만 가장 불가능한 부분이 그거라고 했다. 움바바족에 맞는 사이보그레그를 구할 수 없다는 거다. 맞는 말이다. 애초에 인간의 체형에 맞춰 제작했다. 그 뒤로 데바족을 위시해 야수족에게 맞는 거다.

‘3미터 거구의 움바바족······'

박준은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이를 물었다.대륙으로 넘어올 생각과 결심을 하면서도 그 부분을 생각 안했던 건 아니다.하지만 될 거라고 판단했다.자신이 전쟁 속에서 겪은 대륙땅이라면 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빅풋이라는 전투로봇이 있습니다.”

일행의 뒤에서 걷던 강흑성이 말했다. 박준을 필두로 모두가 돌아봤다. 강흑성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미 들어서 아는 내용, 정찰대와 싸울 때 겪은 블루마운틴 같은 전투로봇이다. 그게 의미하는 바를 깨달았다.

“그래! 그런 로봇을 만드니까 사이보그 레그도 있을 거야!”

일행은 다시 희망을 품은 눈으로 걸음을 냈다. 박준을 선두로 걸어가는 그 뒤를 따라가며 강흑성은 다른 생각을 했다. 자신에게 생긴 일이다.

‘내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어.’

지하수로에서 스며든 원혼의 에너지, 그것이 패천마혈로부터 흡수한 마기와 어우러져 꿈틀댄다. 어떠한지, 어떠할지, 가늠조차 안 되는 힘이다.

‘날 한순간에 재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그런 힘이란 걸 느끼고 있다. 그렇게 되면 제어한다는 건 생각에 불과하다는 걸 알겠다.그런데 꿈틀거리기만 할뿐 아무런 위기조짐이 없다.마치 맹수가 잠을 자는 것 같다. 거친 숨소리를 내지만 잠이 든 거다.

“어? 저건 뭐야? 저것도 의원이야?”

무슬란이 옅은 황당함으로 바라보는 곳을 일행 모두가 봤다.쓰러질 것 같은 낡은 단층 건물이다.입구에 나무판떼기로 ‘의원’ 이라고 써있다.무슨 의원이란 말도 아니고 그냥 의원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드나든다.

“가 보자.”

역시 박준이 가장 먼저 걸음을 옮겼다.

* * *

“제길······!”

인상을 구긴 염군은 애병 황금창의 자루를 응시했다.내부가 파괴돼 이젠 못쓰게 됐다. 이기어창과도 같은 비행이 안 되니 자루를 바꿔야 한다.이건 부품을 구할 수도 없다. 이렇게 만든 천지도 상패천을 죽일 거다.

“형님, 아무래도 상패천을 다른 조직이 확보해서 빼돌린 게 아닐까요?”

심각한 얼굴로 말하는 둘째 염해의 눈을 염군은 바라봤다. 자신이 황금룡이라 불리는 것처럼 황금수라는 별호로 유명한 친동생, 막내 염진이 황금강이라 불리며 황금대호방의 오늘을 이뤘다. 정말 고생한 세월이다.그 고생을 보상할 기회가 찾아온 거다.천지도 상패천, 천지문의 파문제자인 그자가 천지문 최고 기재였다는 삼백 년 전 문주 뇌준걸의 숨은 무공을 찾아낸 거다.그걸 손에 넣으면 남은 인생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

‘우리와 같은 생각을 단천문과 금혈방도 하고 있다는 게 현재의 문제지만······!’

그들이 상패천을 벌써 확보한 게 아니냐는 둘째의 생각이다.그런데 그건 아닌 걸로 생각된다. 두 조직이 저렇게 혈안이 돼 움직이는 게 그렇다.거짓으로 꾸미는 거라고 보기엔 무리다. 무엇보다 상패천이 다르다.

“천지도 상패천은 쉽게 잡힐 놈이 아니다.”

묵직한 숨으로 입을 연 염군은 생각을 이어냈다.

“지금에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천지문의 파문제자가 되어 지구로 도망쳐온 것부터가 그놈의 의도가 아니었나 싶다. 천지문의 유적을 뒤져 뇌준걸의 무공을 찾아낸 게 답이라고 할 수 있겠지. 물론 그 비밀이 샌 게 그놈에겐 천추의 한이 되겠지만, 유적으로 길잡이 했던 자를 죽였어야지.”

그래서 자신들이 인지하게 된 것임을 상기하며, 복잡하게 치솟는 생각과 감정을 아울러 한 가지 결론으로 모으며, 염군은 황금창을 움켜잡았다.

“그놈은 우리가 잡는다.”

형님 황금창 염군의 눈동자가 강하게 빛나는 걸 응시하며 염해는 고갤 끄덕였다.

“그래요, 반드시 잡아서 우리 형제의 꿈을 실현하는 겁니다.”

형제의 꿈, 황금대호방이 아닌 그 이상을 향한 꿈이다. 방주 혁리추의 명령을 받는 삶이 아니라 만인지상의 인생이다. 그걸 이룰 기회인 거다.

“상패천은 내 공격에 금혈방주 위하문의 공격을 받아 부상했다.”

강렬한 안광을 풀어내며 염군은 이야기했다.

“절대 상해를 벗어나지 못했어. 분명 어딘가 숨어서 부상을 치료할 거다. 금혈방과 단천문이 찾기 전에 우리가 먼저 찾아내야 한다. 늦으면 만사휴의다. 화성에서도 천지문의 고수들이 오고 있을 터, 시간이 없다.”

둘째 염해는 황금빛으로 물든 두 손을 가볍게 쥐며 고갤 끄덕였다.

“형님 말대롭니다. 폐관수련에 들어간 방주가 나오기 전에 마무리 지어야죠.”“그래, 그래야지.”

형제가 서로의 눈을 보며 강렬한 안광을 풀어내던 그때다.

“형님들!”

막내 황금강 염진이 장대한 체구를 비호처럼 움직여 들어왔다. 황금대호방주 혁리추가 없는 사이 형님들이 차지한 방주집무실에 목소릴 울린다.

“흑산 뒷골목 의원들을 기웃거리는 수상한 놈들이 있다는 정봅니다.”“그래? 상패천과 관련이 있는 거냐?”“그건 아직 모르겠습니다만, 움바바족이 둘이나 낀 놈들이라고 합니다.”

황금강 염진은 알아낸 정보를 두형님에게 전했다. 사이보그레그에 대해서 염탐하는 것 같다는 부분, 상패천과 관련이 있을 거 같지 않은 내용이지만 때가 공교롭다는 판단이다. 생뚱맞지만 전에 없던 일인 것이다.

“그래, 상패천이 부상을 치료하자면 의원이 필요하지.”

눈썹을 곤두세운 황금창 염군은 의자를 밀고 일어섰다.

“뭐든, 흑산의 의원들부터 뒤진다!”

* * *

병들고 아픈 자들, 상해라는 거대한 블랙시티의 그늘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걸음은 무겁다. 그래도 희망을 품고 의원을 들고 나는 걸음이다.

“저게 뭘까?”

박현이 정말 궁금한 얼굴로 물음을 냈다. 의원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생선꾸러미나 계란을 담은 바구니 같은 걸 들었다. 돈은 없어 보이는 이들이다. 그래서 드는 생각은 치료비인데, 정말 그런 건지 모르겠다.

“들어가 보면 알겠지.”

박준은 거침없이 걸음을 들였다. 의자에 앉은 아픈 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인간과 야수족과 이종족이 다 있다. 뚱뚱한 간호사가 번호를 부른다.

“저 간호사, 사람들이 가져오는 걸 먹어서 저렇게 살이 찐 걸까?”

그렉이 생뚱맞은 의문을 말하자 박준이 돌아보고 눈을 부라렸다. 그 사이 강흑성은 접수대로 다가가 번호표를 받았다. 그렇게 일행은 기다렸다.지루한 시간이 흘러가고 환자들이 줄어들 즈음 순서가 됐다. 일행은 진찰실로 들어갔다. 움바바족 환자들도 있어선지 진찰실은 크고 넓었다.

“오, 움바바족은 오랜만이네요.”

의사가 웃는 얼굴로 일행을 바라봤다. 웃고 있지만 눈빛이 차갑고 예리하게 빛난다는 걸 일행은 알았다. 머리털이 주변으로만 남은 초로의 얼굴, 어디가 아프며 누가 환자인지 물어보려 한다, 그때 통신이 왔다.

-황금대호방에서 알린다, 낯선 무리가 의원들을 배회하고 있다. 수상한 자들을 고변하는 의원에게는 포상이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알린다······

박준을 비롯한 일행의 안색이 경직했다.그런데 통신은 그것만이 아니다. 단천문과 금혈방에서도 왔다.통합테스크의 그 통신이 울리는 동안 의사는 말없이 들었다. 그러다 고개를 들고 여전한 미소로 이야기 한다.

“많이 아픈 모양인데, 치료비는 넉넉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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