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강호. 64. 원하는 걸 얻는 방법.
64. 원하는 걸 얻는 방법.
“아 그들이라면 왔습니다. 하지만 곧 갔지요.”
하진은 공손한 태도로 대답했다. 자신을 찾아온 자들이 상해 삼대세력 중 한곳인 황금대호방의 무인들이라는 걸 알기에 시종 웃는 얼굴로 답했다.
“예, 그랬습니다. 사이보그레그에 대해서 물어 보더군요. 하지만 그런 물건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구할 수도 없을뿐더러, 있다고 해도 무용지물 아니겠습니까? 신경접합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저는 해당이 안 되지요.”
비굴한 웃음을 흘려낸 하진은 고갤 주억거리다 돌아서는 황금대호방 무인들을 향해 인사했다.
“살펴들 가십시오.”
의원 문밖에까지 나와 허리를 접어 인사한 하진은 골목을 살피고 얼른 의원 문을 닫았다. 피곤한 얼굴로 퇴근준비를 하는 접수대 여직원을 보니 눈치 채진 않았다. 움바바족 일행을 내보냈지만 뒷창고로 들인 일이다.
“어 그래, 어서 들어가. 내일 보자고.”
인사하고 퇴근하는 접수여직원까지 보내고 하진은 문을 걸었다. 그 순간 내실에서 간호사가 나왔다. 환자들이 뚱녀라고 부르는 간호사, 아내다.
“당신 정말 감당할 자신 있는 거예요?”
긴장한 눈으로 묻는 아내, 뚱녀에게 하진은 담담한 얼굴로 대답했다.
“나만 믿어.”“아니, 믿기야 믿지만, 이게 일이 보통일이 아니잖아요?”
그렇다, 보통일이 아니다. 황금대호방과 단천문과 금혈방에서 동시에 경고통신을 해온 일이다. 확실치 않지만 천지도 상패천이란 자로 인한 사건과 연관이 있는 거다. 그자를 잡으려고 삼대세력이 흑산에서 충돌했다.
‘그러니 정말 보통일이 아니지. 잘못되면 모가지가 잘려나갈 일인 거야.’
그렇지만 돈이 필요하다, 계획하는 일을 이루자면, 원하는 걸 얻자면 걸어야 한다. 이게 목숨을 건 도박이 될지언정 하는 거다. 저들에겐 돈이 있다.
‘움바바족 한명이 끌고 온 카트에 담긴 돈, 금화 텐박스······!’
그 돈에다 일행의 리더인 자가 흔든 크리듐주머니까지면 시작할 수 있다. 죽기 전에 하는 거다. 이렇게 골목에 숨어서 삶을 마감할 순 없다.
‘숨기고 있던 사이보그레그도 처분해야 하니까.’
어금니를 힘주어 물었다 푼 하진은 일행이 숨어 기다리는 곳으로 몸을 돌렸다. 아내이자 간호사인 뚱녀가 뒤따르며 계속 걱정과 두려움을 말한다.
“천지도 상패천이란 자가 천지문의 비급을 훔쳤다던데, 저들은 그자와 연관이 있는 자들이잖아요? 그렇죠? 그런 일에 얽혔다가 잘못 되면 우린······”
걸음을 멈춘 하진은 아내 뚱녀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고 말했다.
“천지도 상패천은 천지문의 비급을 훔친 게 아니야. 삼백 년 전 문주 뇌인걸의 무공을 찾아낸 거지. 그게 팩트고, 저들이 상해천과 관계가 있는 진 확실치 않아. 방금 다녀간 황금대호방 놈들의 눈치로는 다른 거야.”“달라요? 뭐가 다른데요?”“나도 몰라, 그건 물어봐야 알겠지.”
다시 몸을 돌린 하진은 일행이 기다리는 창고 문을 열었다. 본채와 연결된 창고로 은밀히 들어가 기다리라고 한 결과, 저들은 총칼을 잡고 기다렸다. 자칫하면 잘못될 수 있는 상황이지만, 증거를 보고 감수한 거다.
“갔소. 자, 이제 다시 진지하게 이야기해봅시다.”
하진은 오른 팔 소매를 걷으며 일행의 눈빛을 확인했다.역시 강렬한 눈빛으로 반응한다.사이보그암, 이 오른팔을 보여줬기에 저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기다린 거다.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다.
“말이 통하는 의사양반인데, 우리도 물건을 확인합시다.”
박준이 나서며 예리한 안광을 번득였다. 그 눈과 다른 이들의 시선을 받은 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서 창고 구석의 바닥을 들어낸다.잡다한 물건들을 잔뜩 쌓아 놓은 바닥은 아주 오래돼 보인다. 하진이 그걸 치우고 뚱뚱한 간호사가 불안하게 서성대는 동안 그렉이 속삭였다.
“저들이 부부라는 게 왜 이렇게 괴상한 느낌이지?”
박현이 민대머리를 손바닥으로 쓸며 입을 열었다.
“여긴 상해잖아. 뭐든 이상할 거야.”
이번엔 무슬란이 끼어들었다.
“의사는 육십은 됐을 거 같고 간호사는 뚱뚱하긴 해도 젊잖아? 서른쯤? 인간들 나이로 그렇지? 뭐 많이 차이나긴 해도 사랑에 장애는 없으니까.”
딴에는 작게 속삭인다는 소리였지만 움바바족의 목소리는 창고를 울리고 남는다. 당연히 뚱뚱한 간호사는 눈을 째렸고 하진이 움직이며 말했다.
“맞소, 사랑엔 국경도 장애도 없지. 우린 그런 사이요. 환자와 의사로 만나서 서로 뜻을 합쳤지. 이상해 보여도 부부니까 그런대로 넘기시구랴.”
하진의 말에 이어 박준이 고개 돌려 셋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으이그 이것들을 데리고 내가······!”
욕을 삼킨 박준은 요지부동 침착한 강흑성을 보고 위안을 삼았다. 자칫하면 위험해질 이곳의 상황을 감수한 것도 강흑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이 안돼서 다행이긴 한데.’
세 세력에서 자신들 일행에 대한 탐문과 발고를 경고하던 상황이다.분명히 진송의원이란 곳의 의사 놈이 원인이다.그놈을 죽였으면 탈이 없었을 테지만, 다니는 의원마다 다 죽이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결국은 일행의 종적과 의도가 드러날 일이었다.최종에는 세 세력 중 사이보그레그를 가진 곳과 접촉한다는 생각이었다.이곳에서 모험을 한 근원이다.그런데 다행히도 이곳 의사가 사이보그레그를 가지고 있었다.
‘다행이야.’
대륙에 발을 들인 이상 걸음마다 위험일건 각오한 일이다. 고향이라고 부르기 뭐하지만 떠나온 땅에서도 그러했긴 마찬가지, 이세상의 얼굴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일행이 힘을 합쳐 왔다. 원하던 것을 찾게 됐다.
“자, 이거요, 와서들 확인하시오.”
의사 하진이 물러선 자리, 바닥을 들어낸 곳으로 일행은 다가갔다.커다란 관 같은 것이 묻혀 있다. 덮개는 비스듬히 열려 있다.그 안에 로봇다리가 들어 있다. 박현에게 딱 맞을 것 같은 대형 사이보그레그다.
“이거네!”
그렉이 환호하듯 반응했고 무슬란도 그랬다. 박현은 경직한 얼굴로 입술을 물었고 박준은 눈썹을 가늘게 떨었다. 그 속으로 강흑성 목소릴 냈다.
“수술,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박준이 후드득 고개를 털며 현실로 돌아봤다. 강흑성이 말한 내용이 핵심인 거다. 동생 박현에게 저 로봇다리를 붙여야 한다. 빠를수록 좋다.
“당장 합시다. 돈은 다 주겠소. 크리듐을 포함해서요.”
수술비흥정이고 자시고 다 주겠다는, 그러니 제대로 빨리 해달라는 박준의 간절함이다. 하진은 아내 뚱녀의 시선을 곁으로 두고 미소 지었다.
“원하는 대로 합시다. 제대로 잘 찾아오셨소.”
흔쾌히 미소 짓는 하진 옆에서 뚱녀가 끼어들었다.
“애물단지처럼 가지고 있던 물건이 드디어 임자를 만났네요.”
하진은 웃던 얼굴을 흠칫했다, 이쪽의 약점이랄 수 있는 부분을 말해버린 꼴이다. 하지만 박준은 상관없다는, 다 안다는 미소로 고갤 끄덕였다.하진의 본래 출신이 뭔지 모르지만 이건 군대물건이다. 이런 걸 오래도록 가지고 있던 위험과 부담감이 상당했을 거다. 그걸 해소하게 됐다.
“언제 하는 겁니까?”
박준이 묻자 하진은 바로 대답했다.
“바로 합시다.”
* * *
수술대가 없어 창고에 임시수술대를 만들고 박현이 누웠다. 마취제를 투약해 잠이든 그 얼굴을 박준이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러다 하진의 수술시작으로 물러섰다. 수술은 순전히 수작업으로, 밤을 새워 이어졌다.지루함을 못 느낄 긴장의 시간이 새벽에 이른 즈음 하진이 마지막을 알렸다.
“자, 이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남았습니다.”
박현의 다리에 사이보그레그를 연결한 하진은 피 묻은 수술장갑을 벗으며 약병을 잡았다. 뭔지 모를 붉은 액체가 투명한 약병 안에 들었다.
“이게 환자의 다리를 완벽하게 붙여줄 겁니다.”
찰랑거리는 붉은 액체의 약병, 박준은 물었다.
“그게 뭡니까?”
하진은 눈동자를 서늘하게 빛내며 대답했다.
“혈고(血蠱)요.”“혈고?”
일행모두가 미간을 좁히는데 강흑성은 눈썹을 틀어올렸다.
‘혈고!’
마교의 비전에 등장하는 이름이다. 그들 교내에서도 주요인물들만 취급한 비전중의 비전이다. 하진이란 의사가 그걸 말했다. 아니 들고 있다.저것이 박현의 다리를 붙여줄 거라고 했다. 그 의미를 알겠다.
‘사지가 절단된 자들도 저것으로 치유했다더니······!’
혈고에는 많은 묘용이 있지만 핵심묘용은 피시술자를 통제하는 것이다. 그런데 저렇게 사지가 잘린 자들의 부상을 치유하는 기능도 있는 거다.
‘상처부위를 진흙으로 메우듯이.’
하진이 어떻게 할지를 생각하며 강흑성은 이어지는 말을 들었다.
“원래는 수술 마지막에 나노봇들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건 정말 구할 수가 없지요.”
그렇다, 화성이라면 얘기가 다르지만 여긴 지구다. 그래도 한때는 구하기 쉬웠다. 지금 박현이 장착한 사이보그레그도 대륙전쟁 때의 물건이다.
“나노봇이 없는데 신경접합을 어떻게 한다는 겁니까?”
박준이 항의하듯, 놀란 얼굴로 물었다. 사이보그레그가 있으니 당연히 그것도 있는 거다. 따로 분리된 게 아니라 한 셋트로 있는 거다. 그런데 지금 말을 들어보니 나노봇이 없다. 그 대신 혈고란 걸 쓴다는 거다.
“자, 흥분하지 마시고 잘 보세요.”
하진은 약병을 열고 붉은 액체를 박현의 다리에 부었다. 사이보그레그와 접합한 부위, 붉은 살과 기계부품과 선들이 얽힌 허벅지에 흘러내린다.
“어?”“뭐, 뭐야 저거?”
그렉과 무슬란이 눈을 치뜨며 반응했다. 박준도 그랬다. 동생 박현의 다리, 수술부위가 부글거리며 피가 끓어오른다. 그러며 아물고 있다. 사이보그레그와 허벅지가 연결되고 있다. 처음부터 하나인 것처럼 이어진다.
“놀랍지요? 이게 혈고의 묘용입니다. 나노봇이 없어도 신경접합이 가능하게 해줍니다. 아무도 이런 묘용을 모릅니다. 혈고도 이젠 없습니다.”
진한 아쉬움을 드러낸 하진의 얼굴, 강흑성은 짐작했다.
‘저게 유일무이한 혈고였다는 소리. 혈고를 만드는 방법을 모르니까.’
마교의 비전인 혈고를 어떻게 손에 넣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하진은 이런 수술을 전에도 해봤다. 그러니 나노봇이 없는데도 자신 있게 한 거다.
“자 수술은 끝났습니다. 개인차가 있지만 한 시간 정도면 깨어날 겁니다.”
담담한 미소로 다시 입을 연 하진은 박준을 응시하며 이어 말했다.
“혈고의 놀라운 점은 수술부위가 저렇게 바로 아문다는 겁니다. 당장은 무리일수 있지만 하루 이내에 보행이 가능할 겁니다. 당연히 예전처럼요.”
박준은 동생 박현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정말로 수술부위가 감쪽같이 아물었다. 왼다리는 처음부터 이렇게 태어난 것같이 매끈하다. 살과 이어진 금속 다리, 접합부의 이질감이 없다. 정말로 수술은 잘된 것 같다.
“수고하셨습니다, 의사선생님.”
박준은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했다. 하진은 피곤한 얼굴로 의자에 앉아 아내 뚱녀를 돌아본 후 미소 지었다. 그 얼굴 앞에 강흑성이 다가섰다.
“끝까지 그 미소를 유지하길 바랍니다.”
하진은 경직했고 박준과 그렉과 무슬란은 눈에 힘을 줬다. 그렇게 일행과 하진은 강흑성의 말에 담긴 의미를 알았다. 일행이 가진 돈이 발고해서 받을 이익보다 크기에 했다지만, 이후 등에 칼을 찌르지 말란 거다.
“내가 받을 거 외엔 더 욕심내지 않소.”
하진은 경직한 음성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강흑성이 경고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세 세력 중 한 곳에 발고해 이득을 더 취하려는 짓은 안한다고.
“떠날 생각입니까?”
강흑성은 다시 물음을 던졌고 하진은 강흑성을 말없이 응시했다.
“텐박스의 거금을 손에 넣었으니 흑산의 뒷골목에 있을 이유가 없지. 맞소, 떠날 거요. 원하는 것을 얻었으니 가야지, 진정 원하는 걸 위해서.”
뒤늦게 나온 하진의 대답, 그 속에 뭔가 다른 의미가 있음을 일행은 짐작했다. 그 이유를 간호사이자 아내인 뚱녀가 의자를 밀치고 대답한다.
“병원을 세우려는 거예요!”
박준과 일행이 미간을 확 좁히는데 뚱녀가 거듭 소리쳤다.
“항주에 큰 병원을 세우려는 거라고요! 혼자 잘 먹고 잘살려고 이러는 게 아니라 이거예요! 더 많은 이들을 치료하기 위해서 그러는 거예요!”
하진이 아내 뚱녀를 돌아보고 인상을 썼지만 늦은 일, 허탈한 미소를 피워낸다.
“허허, 헛소립니다. 이런 세상에 그런 미친 짓을 누가하겠습니까?”
하진이 변명 아닌 변명을 하고 박준과 일행이 시선을 교환할 때다. 강흑성이 바람처럼 돌아서며 창고 문으로 붙었다. 이에 일행은 긴장했다.
“뭐냐?”“왜 그래?”
강흑성 곁으로 붙은 그렉과 무슬란은 이내 상황을 파악했다. 위험한 파공성과 기합소리, 쫓고 쫓기는 접전의 소리가 이편으로 다가오고 있다.
“지나가면 다행이지만, 아니면 싸워야 합니다.”
마검 페천마혈을 움켜잡는 강흑성의 곁에서 그렉과 무슬란도 무기를 움켜잡았다. 뒤에 선 하진과 아내 뚱녀는 불안한 눈을 교환하고 부리나케 움직였다. 수술비로 받은 크리듐과 텐박스의 카트를 밀고 창고를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