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65화 (66/172)

혹성강호. 65. 파문제자.

65. 파문제자.

“아우야!”

염군은 둘째 염해를 향해 소리쳤다.황금수라는 별호를 가진 동생은 장력을 터트렸다.격공장력이 아닌 크리듐에너지파 장력이다.뻗어낸 두 손을 통해, 바이탄합금의 황금수를 타고 폭발하듯 황금광이 날아간다.

‘역시!’

무공과 과학을 접목한 강력한 병기, 명불허전 화성연구소의 작품답다. 상패천을 격중하진 못했지만 벼락같은 장력이 신형을 흐트러뜨렸다.

“막내야!”

염군은 연이어 막내아우를 소리쳐 불렀다.황금강이란 별호로 공포를 주는 막내는 육탄공격으로 상패천의 측면에서 쇄도했다.황금빛의 저 몸통에 부딪치면 누구나 터져버린다.말 그대로 황금강, 금강불괴지신이다.

‘저!’

둘째의 공격으로 신형이 흐트러지고 속도가 늦어진 상패천, 그 찰나를 막내가 충돌했지만 상패천은 귀신같은 신법으로 스치기만 했다. 역시 천지문의 제자다. 하지만 바로 이 찰나를, 한순간을 자신은 기다렸다.

‘내가 왜 황금룡인지 뼈저리게 알게 될 것이다!’

건물 지붕을 박차고 허공을 휘돌며 염군은 황금창을 던졌다. 내부가 파괴돼 이젠 회수하지 못하는 애병, 전 내력을 다해 상패천에게 날렸다.

‘됐어!’

손끝을 떠나가는 순간 느껴진다.상패천은 이 공격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황금창에 맞아 새처럼 떨어질 터, 그 광경을 그리니 짜릿한 소름이 돋는다.그런데 그렇게 되지 못했다. 암흑의 섬광이 창과 충돌했다.

‘엇!’

염군은 눈을 치뜨며 경직했다. 자신의 애병 황금창이 방향을 틀었다.건물 벽에 박혀 진동한다. 그렇게 만든 것의 정체를 봤다.우측에서 날아온 화살이다.암흑처럼 새카만 화살, 저것의 주인은 단천문주 운드라이다.

‘죽일 놈이!’

염군은 분노로 치를 떨며 경공을 펼쳤다. 건물 벽에 박힌 황금창을 잡아 뽑고 신형을 휘돌리며 나아갔다. 상패천은 화살을 피하며 멈춰 섰다.

“운드라이!”

격노한 심정을 터트리며 염군은 지붕을 밟고 섰다. 둘째 염해와 막내 염진이 좌우로 벌려 선 기세를 느끼며 상대를 응시했다. 상패천을 막아 선 자, 건물 지붕 두 개를 건넌 자리에 서 있는 단천문주 운드라이다.

“저런, 황금룡이 화가 많이 났군.”

미소를 피워 문 단천문주 운드라이. 몽골민족 출신 아버지와 러시아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자답게 체구가 장대하고 이목구비는 뚜렷하다. 거의 백발이라고 해도 좋을 머리카락을 바람에 흔들며 흑궁을 매만진다.

“오랜만에 얼굴을 봤는데 과한 인사가 아닌가?”

친구를 향한 것 같은 운드라이의 태연한 수작에 황금룡 염군은 물론 둘째 염해와 막내 염진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상패천을 놓고 다투던 금혈방주를 떼어놓고 거의 잡기 직전이었는데 운드라이가 나타난 거다.

“개수작 마라! 우리가 정담을 나눌 사이인가!”

염해의 강렬한 살기에 운드라이는 짐짓 미간을 찌푸렸다.

“저런, 그렇다고 불공대천의 원수도 아니거늘.”

가볍게 혀를 차는 운드라이와 황금대호방 삼형제의 사이에 선 자, 천지도 상패천이 웃음을 흘려냈다. 잔잔한 그 웃음에 양측은 눈썹을 세웠다.

“하하하하, 좁쌀 같은 흉심을 가진 자들이 천하를 품을 듯한 수작을 하는 구나.”

황금룡 염군이 입을 벌려 반응하려는데 상패천의 말이 더 빨랐다.

“자고로 자격이 없는 자에겐 귀보의 인연이 닿지 않는 법이거늘, 들쥐 같은 자들의 탐욕이 하늘에 닿겠구나. 정녕 너희가 뜻을 이룰 성 싶으냐?”

상패천의 담담하지만 차갑고 날선 음성이 운드라이와 삼형제의 귀를 파고들었다. 표정이 경직한 두 세력의 수장들이 눈동자를 빛내는 그 와중에, 황금대호방과 단천문의 무인들은 골목을 에워싸며 밀집하고 있었다.

“상패천! 네놈이 달아날 구멍은 없다! 살고 싶다면 본 황금대호방에 투항해라!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아니 원하는 것이 있다면 들어줄 것이다! 네가 가진 것을 우리형제에게, 황금대호방에 양도하는 것이 현명하리라!”

황금룡 염군이 반협박 반회유로 소리쳤다. 그러나 상패천은 차갑게 웃을 뿐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운드라이는 서늘한 눈빛만을 흘려냈다.

“욕심에 눈이 먼 자들······”

상패천은 나지막하게 그 소리를 새벽바람결에 흘러냈다.그러며 깊고 무거운 회한의 숨을 내쉬었다.욕심에 눈먼 이는 다른 이가 아닌 자신이다.아니 정확하게는 욕심이 아니라 불나방과 같은 복수심 때문이다.

‘선대 문주의 유진을 찾아냈다지만 익힐 수도 없는 무용지물.’

그렇다, 지금 상패천 자신이 가진 것은 그러하다. 이러한 것을 찾겠다고 화성을 떠나 지구로 왔다. 사문의 추적을 피해 필사의 탈출을 한 거다.

‘에리카······!’

그녀의 원한을 갚기 위해서다.나이 사십에 사랑을 알게 해준 그녀, 세상 무엇보다도 소중하던 그녀를 잃었다.그녀를 앗아간 자는 소문주다.

‘천금택! 갈아 마실 놈······!’

부르르 진저리를 치며 원한을 풀어낸 상패천, 그 모습을 운드라이와 삼형제가 차가운 눈빛을 내며 바라봤다. 상패천은 냉소를 물고 입을 열었다.

“너희가 진실을 안다면 이게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 땅을 칠 것이다.”

황금룡 염해가 바로 반응했다.

“수작부리지 말고 어찌할 것이지나 결정해라!”

상패천은 장도를 느릿하게 돌려 세웠다. 허공에 선을 긋는 것 같은 그 움직임에 모두가 눈동자에 힘을 줄 때, 천근추의 수법으로 지붕을 밟았다.콰릉, 지붕이 무너지며 상패천의 신형이 가라앉았다.그 순간 황금대호방의 삼형제와 단천문주 운드라이가 동시에 움직였다.거의 동시에 비명과 아우성이 터졌다.포위를 뚫고 나가는 상패천의 칼이 만드는 소리다.

* * *

“제길!”

그렉은 눈썹을 떨며 창고문에서 물러섰다.바깥 상황을 보기 위해 틈을 만들었던 창고문을 닫아거는 건 부질없는 짓이다.상패천이 포위망을 뚫고 달려오고 있다. 일행이 있는 이 창고 방향이다,재수 없게 됐다.

“숨죽이고 지나가길 기다립시다!”

그렉이 일행에게 경고하며 자세를 움츠렸다. 이제 막 깨어나려는 박현 곁의 박준도, 형제 곁으로 돌아가 작두칼을 움켜쥐고 있는 무슬란도 거구를 웅크렸다. 강흑성은 패천마혈의 울음을 들으며 흑청빛 안광을 냈다.일행이 숨죽이고 움츠린 그 순간, 바깥의 상황이 일행과 상관없는 일이 되기를 바라며, 그냥 지나가기를 바라며 긴장한 순간, 창고문을 박살내며 그림자가 들어왔다. 바람 같은 신형의 주인, 천지도 상패천이다.강흑성은 창고문이 파괴되는 순간 움직였다.천지도 상패천이 벼락처럼 이동하는 방향, 수술대에 누워 있는 박현과 그 곁에 박준, 그리고 무슬란이다.그들을 본 상패천의 눈이 살기로 빛난다.그 살기에 검을 그었다.무원진격.무원도법의 진력을 담고 터져나간 검은 혈광의 번개처럼 상패천을 강타했다.무슬란을 베고 나가려던 상패천은 신형을 돌려 받아쳤다.눈부신 불꽃이 튀고 상패천의 신형은 창고 벽 쪽으로 틀어져 나갔다.우웅, 검이 우는 소리를 전율로 삼키며 강흑성은 상대를 응시했다. 자신과는 다른 의미로 울어대는 칼, 상패천의 장도가 일격을 맞은 울음이다.

“넌······ 누구냐?”

장도가 아프다고 진동하는 걸 힘준 손으로 무시하며 상패천은 물음을 냈다. 지금 이순간의 충격, 일검을 받아낸 결과는 심장을 울리고 있다.

‘위험한 자.’

혈광을 흘려내는 검을 잡은 저 젊은 사내가 누군지 모르지만 강자다.

“이노옴 상패천!”

격노한 외침을 터트리며 창고 안으로 들이친 자, 황금대호방의 황금룡 염군은 흠칫하며 신형을 멈췄다. 치뜬 눈으로 창고 안을 돌아봤다. 벽을 등지고 선 천지도 상패천과 일촉즉발의 기세로 대치한 젊은 사내다.

‘이것들?’

좌우로 둘째 염해와 막내 염진이 내려서는 데도 염군은 반응하지 않았다. 창고 안의 이 상황이 보여주고 말해주는 것을 받아들이며 숨을 죽였다. 그렇기는 염해와 염진도 마찬가지, 반대편으로 들이친 자 역시다.

“기묘한 일이 생겼군.”

창고 반대편 벽을 부수며 들어선 자, 단천문주 운드라이가 푸른 눈동자를 빛냈다. 상패천을 보고 젊은 사내 강흑성을 보는 눈이 칼날 같다.

“천지도의 동료가 아닌 게 확실한 것 같은데, 그대들은 그들이로군?”

담담한 음성으로 운드라이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눈빛은 예기를 품었다.

“흑산의 의원들을 다니며 사이보그레그에 대해 수소문 한다는 자들이야. 그렇지? 상해로 들어오는 들길에서 혈랑패가 몰살당했다던데, 그대들의 소행이겠지. 마찬가지로 율산모텔에서 주인내외와 아들이 사라진 것도.”

단천문은 제대로 빠르게 알아냈다. 그래서 황금룡 염군을 비롯한 두 아우는 눈동자를 서늘히 빛냈다. 자신들 황금대호방은 아직 모르는 내용도 있어서다. 율산모텔 일은 지금 처음 들었다. 이자들이 그렇다는 거다.

“네놈들, 천지도 상패천과 한패라면 이 자리에서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싸늘하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입을 연 황금룡 염군은 강흑성을 비롯한 일행을 응시하며 황금창을 돌려 겨눴다. 이어내는 소리는 더욱 차갑다.

“그게 아니라면 살 길은 있다. 본방의 행사에 방해가 되지 않는 길이다. 살고 싶다면 무기를 버리고 무릎을 꿇어라. 물러서서 처분을 기다려라.”

경직한 얼굴이던 박준의 눈썹이 반발과 분노로 꿈틀거린 그 순간이다.

“이것이 그토록 탐이 나더란 말이야?”

허탈한 냉소를 눈으로 풀어낸 상패천이 품안의 뭔가를 꺼냈다.

“너희가 보고 싶고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이 여기 있다. 잘들 봐라.”

작은 실버볼, 손바닥 위에 그것을 올린 상패천은 허공으로 던졌다. 그 행동을 황금대호방의 삼형제와 단천문주 운드라이가 치뜬 눈으로 봤다.허공에서 실버볼이 열렸다.바닥으로 떨어지면서 홀로그램을 뿜어냈다.

“저것!”

황금룡 염군이 전신을 경직하며 반응했다.둘째 염해도 그랬고 막내 염진도 마찬가지, 단천문주 운드라이는 두말 할 것 없다.모두가 놀라는 이유는 홀로그램 문서, 뇌인걸이 남긴 비전의 무공구결과 수련법이다.

“저, 저럴 수가······!”

황금룡 염군이 안면을 부들거리며 떨리는 숨을 흘려냈다, 삼백년전 천지문의 최고기재이자 문주였던 뇌인걸이 남긴 무공, 저것의 실체를 보고 있다.가공할 상승절학, 그 위력을 알겠다. 그런데 익힐 방법이 없다.

“벽뢰수······!”

운드라이가 무공의 이름을 신음처럼 말했다.절로 신음이 새어나오게 하는 현실, 벽뢰수는 인간의 육신을 가지고는 익힐 수 없는 무공이다.저 무공의 힘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렇기는 다른 종족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저런 무공을······!”

부들거리며 황금룡 염군은 치를 떨었다.너무 충격을 받아서고 가질 수 없어서다.그런데 이대로 포기하기엔 너무 억울하다.저러한 무공인줄 알면서도 뇌인걸이 만든 이유가 있을 거다.그 답을 찾으면 될지 모른다.

“상패천, 네놈이 벽뢰수를 던져버린 이유를 이해한다만······”

스산한 살기를 풀어내며 염군은 황금창에 내력을 불어넣었다.

“그렇다고 살아서 이곳을 벗어나진 못할 것이다······!”

결론, 죽인 다는 거다.이유는 하나, 벽뢰수다.익힐 수 없는 무공이지만, 그래서 무용지물이고 부질없는 짓을 한 게 됐지만, 행사한 이상 끝을 낸다는 거다.그리고 진정한 이유는 벽뢰수를 본 자들을 죽인다는 거다.

“황금룡 염군, 네놈의 무지몽매함이 가긍하구나.”

서글픈 미소로 혀를 차는 천지도 상패천, 그를 향해 염군이 벼락처럼 움직였다. 같은 순간 황금수 염해가 단천문주 운드라이에게, 막내 염진이 강흑성에게 공격해 들어갔다. 가장 위험하고 강해보이는 자여서다.황금강 염진이 황금빛의 살기로 닥쳐오는 걸 보며 강흑성은 중얼거렸다.

“너희는 이미 죽었다.”

섬뜩한 미소를 흘려내며, 강흑성은 검을 세웠다.그 미소와 중얼거림에 공명하는 것처럼 마검 패천마혈은 울었다.무시무시한 혈광을 토해내면서, 지옥 같은 포효를 터트렸다.

* * *

“허억!”

이불을 밀치고 벌떡 몸을 일으킨 카이오는 주변을 돌아봤다. 명희를 비롯한 아이들은 새근새근 잘 자고 있다. 아무 일도 없다. 꿈을 꾼 거다.

‘은인께서는······’

강흑성을 생각하며 입술을 문 카이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곤히 자는 아이들과 엄마들이 깨지 않게 조심하며 밖으로 나갔다. 어렵사리 마련한 컨테이너 주택 주변을 돌아보고 우물로 갔다. 물을 퍼 올려 뒤집어썼다.얼음장처럼 차가운 새벽 우물물을 거듭 뒤집어쓰며 카이오는 기도를 올렸다. 은인 강흑성이 무사하기를, 원하는 바를 이루고 돌아오기를 기원했다.카이오가 우물물을 끼얹는 소리와 기도소리 속에 아침은 소리 없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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