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강호. 66. 흑산대혈전.
66. 흑산대혈전.
“우워어!”
괴성을 지르며 휘두르는 무슬란의 커다란 작두칼은 창고벽을 갈랐다.그 뒤의 황금대호방 무사들 몸통도 갈랐다.천산마갑슈트와 갑은 황금갑주의 슈트를 착용한 자들은 소수다.그렇지 못한 자들은 생선처럼 잘렸다.
“이 새끼들!”
그렉은 반대편에서 쇄도해온 단천문 무사들 속으로 파고들었다.철권과 철각을 펼쳐내 병장기와 그 주인들을 강타했다.그런데 그레이컬러의 슈트를 장착한 자들은 급이 다르다. 정예답게 움직임과 반격이 매섭다.
“현아!”
박현을 수술대에서 끌어내린 박준은 동생을 마구 흔들었다.
“정신 차려! 눈을 뜨라고!”
그래야 한다. 혼전이 벌어진 이 아수라장 속을 빠져나가야 한다. 그러자면 동생 박현이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런데 아직도 비몽사몽이다. 게다가 정신을 차린다고 해도 막 수술을 끝낸 몸이라 운신이 될지 모르겠다.
“으으, 형······”“그래! 정신 차려!”“흐으,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엿 같은 일이지 무슨 일은 무슨 일이겠냐, 움직일 수 있겠냐?”“내 다리가······”
박현이 다리를 만지는 순간 박준은 핸드건을 발사했다. 톱니 같은 거치도를 세우고 달려들던 단천문 무사놈이 미간에 구멍이 난 채 쓰러졌다.
“개자식이! 내가 백발백중 박준이다!”
소리친 박준과 박현을 향해 또 다른 자가 공격해 들어왔다. 무슬란과 그렉의 방어를 뚫고 달려오는 놈, 황금대호방이다. 황금슈트를 입은 놈이다.
“엇!”
박준은 경호성을 냈다.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사격솜씨, 그 손을 바람처럼 돌려 핸드건을 발사했다.그런데 황금슈트의 헬멧에 비껴 맞은 빔이 틀어져 나갔다.황금슈트의 놈은 칼을 세우고 악귀같이 쇄도해 왔다.
‘이!’
절망의 눈을 치뜬 박준은 그 순간 품에서 터져나간 벼락을 인지했다.봤다고 느낀 순간 사라진 번개, 그것은 칼 빛이었다.그 수평의 가름이 황금슈트 놈의 목을 치고 지나갔다. 머리통이 떠오르고 놈은 고꾸라졌다.
“죽일 새끼가!”
박현이 작두칼을 세우며 몸을 일으켰다.3미터 거구가 일어서는 그 모습을 박준은 환상인 것처럼 지켜봤다.아우가 일어선 것이다.혼몽하던 정신을 밀어내고 칼을 휘둘렀다, 슈트를 착용한 황금대호방 놈을 죽였다.
“와라!”
박현은 소리치며 작두칼을 두 손으로 움켜잡았다.좌우에서 달려드는 단천문 놈과 황금대호방 놈의 합공 아닌 합공을 받아쳤다.그 힘에 밀린 단천문 놈에겐 팔극봉추의 팔꿈치를, 황금대호방 놈에겐 칼을 안겼다.두 공격자가 나가떨어진 순간 박준이 소리쳐 물었다.
“현아! 다리 괜찮은 거냐?”
괜찮게 보이기에 묻는 거다. 지금 동생 박현은 접전 속에 있다. 수술한 다리를 제 다리처럼 움직이면서다. 그게 놀랍고 걱정스러워 소리친 거다.
“어? 내 다리?”
박현도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은 사이보그레그를 수술한 직후라는 것을.
“이여어!”
격렬한 기합과 함께 거치도를 휘두르며 달려드는 놈은 단천문 무사다. 시커먼 털로 뒤덮인 얼굴은 흑랑성늑대족이다. 체구가 엄청나게 좋다. 이미터 신장을 가진 타이그란족 그렉보다도 머리 하나는 큰 것 같다.그래서일까, 흑랑성 놈은 신력을 바탕으로 한 칼질을 박현에게 터트렸다. 미친 듯이 몰아부친다. 아무리 움바바족이지만 죽일 수 있다는 눈이다.아니 경험이 있는 것 같다. 저 눈은 움바바족과 싸워 죽여 본 눈이다.
“이 새끼!”
격노의 숨을 터트리며 박현은 공격을 받아냈다.불꽃이 피어나는 가운데 뒤로 물러났다.형 박준이 핸드건을 겨누고 눈을 치뜬 앞으로, 그 존재감을 느끼면서 숫자를 셌다.흑랑성놈이 칼질을 하는 숫자, 스물이 됐다.흡, 하며 흑랑성 놈이 숨을 들이마시는 순간 박현은 뒷걸음을 멈췄다.은빛의 강철로 된 왼다리를 앞으로 내디뎠다.큰 걸음으로, 깊게 바닥을 찍으며 체중을 실었다.양손으로 잡은 작두칼에 온힘과 의지를 모았다.
쉬카악!
섬뜩한 파공음이 퍼지는 가운데 박현은 움직임을 멈췄다.양손으로 잡은 작두칼을 아래로 향한 채다.그 칼이 갈라 내려간 자리에 흑랑성 놈이 경직해 있다. 눈을 부들거린다.잡고 있는 거치도는 잘려 떨어진다.
“뭐······”
거구의 흑랑성늑대족은, 단천문 무사들을 이끌던 조장은 뒷말을 이어내지 못했다. 정수리부터 벌어진 육신이 허물어졌다. 그 피가 바닥을 적신다.
“현아!”
박준의 격한 부름에 반응하며 박현은 돌아섰다, 형 박준의 곁으로 바람처럼 붙어 서서 혼전 속을 바라봤다. 흥분한 그 눈은 깨달은 것을 말한다.
“저놈들 슈트가 정찰대 슈트 같은 게 아니야.”
이미 어느 정도 파악한 박준은 긴장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폐기품을 구해서 손본 물건들인 것 같다. 겉은 그럴 듯하지만 내구성이나 성능은 아닌 거야. 그래도 핸드건의 빔을 비껴낼 정도는 되는 거지.”“시늉만 일단 내는 것 같아. 다른 세력과의 균형 때문에.”“맞다. 황금대호방방이든 단천문이든 금혈방이든 슈트 같은 장비가 절실하게 필요한 건 아니야. 소모품으로 쓸 놈들이야 얼마든지 널렸으니까. 게다가 저놈들 수뇌부는 무공이라는 본질을 추구하는 무인들이니까.”“제길, 여길 어떻게 나가지?”
박현이 현실을 말하자 박준은 강흑성을 봤다.
“흑성이가······”
강흑성은 황금대호방의 수뇌 삼형제의 막내 황금강 염진과 격돌하고 있었다. 둘이 얽혀 돌아가는 벼락같은 그 광경을 향해 박준은 소리쳤다.
“흑성아!”
지붕도 날아가고 벽도 파괴된 창고, 혼전 속을 날아간 목소리가 강흑성의 귀를 파고들었다. 격려와 염려를 담은, 그 의미를 강흑성은 알았다.
“이노옴!”
광풍폭우처럼 공격을 퍼붓는 자, 황금대호방의 황금강 염진을 응시하며 강흑성은 주변을 파악했다. 천지도 상패천과 어우러진 황금룡 염군, 단천문주 운드라이와 싸우고 있는 황금수 염해, 모두 박빙의 공방이다.
“네놈이 날 능멸하는 구나!”
황금강 염진이 격노를 터트렸다. 강흑성이 자신의 공격을 받아내면서 주변을 살핀다는 것을 알아서다. 그렇다는 걸 일부러 보인 반응이다.
“피떡을 만들어주마!”
무시무시한 권각술을 쏟아낸 황금강 염진은 한순간 전신으로 황금광을 방출했다. 눈이 멀듯 한 그 빛은 권각을 검으로 받아내던 강흑성을 휘감았다. 피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고, 염진이 펼쳐낸 최강의 절초다.
‘흡!’
전신을 파고드는 형용키 힘든 고통에 강흑성은 경직했다.
‘전류!’
그것임을 깨달았다.황금강 염진은 육신에 장착한 황금갑주를 통해 전기 에너지를 방사한 것이다.근육질의 저 육신을 이룬 것은 사이보그바디다.내부의 크리듐 에너지를 일거에 발출해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이다.
‘그래서 황금강이구나!’
이젠 확실히 알겠다. 염진의 몸이 드러나 눈에도 보인다.크리듐 에너지가 만든 전류가 걸치고 있던 의복을 가루로 만들었다.머리통을 제외한 전신이 황금금속이다.본래 육신과 합쳐진 사이보그, 그 힘인 거다.
‘비루한 수작!’
강흑성은 의지를, 진정한 살기를 일으켰다. 그 의지를 따라 내부에서 광포한 힘이 포효하며 일어선다. 형용하기도 힘들고 제어도 할 수 없는 힘, 그 힘이 내미는 손과 걸음을 무시했다. 오로지 그 숨결만 받아들였다.
‘무원비천!’
영혼의 외침으로 움직인 강흑성, 그 육신을 휘감아 파고들던 황금광은 찢어졌다. 아니 부서졌다. 아침햇살에 흩어지는 안개처럼 소멸해 버린다.
‘뭐, 뭐야!’
황금강 염진이 경악으로 눈을 치뜰 때, 강흑성은 용선풍이 돼서 염진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본능적인 반응으로 염진이 황금팔을 냈지만, 그 팔을 흘려내듯 휘돌며 들어가 일권을 내질렀다. 무원진천일권붕이다.
쾅!
폭음이 터지며 황금강 염진이 날아갔다.그 신형이 날아간 곳은 공교롭게도 천지도 상패천과 황금창 염군이 치혈하게 싸우는 곳이다.두 사람의 중앙으로 염진이 떨어졌다.입으로 피를 토해내며 전신을 경직한다.
“쿠엑!”
제 몸 위로 분수 같은 피를 게워내는 황금강 염진, 그의 가슴엔 양철냄비를 밟은 것 같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강흑성이 안겨준 일권이다.
“막내야!”
황금룡 염군이 경악을 토하며 염진을 붙잡았다. 천지도 상패전과 접전 중이었다는 것도 잊은 모습으로, 황금창을 놓고 막내 염진을 잡았다.
“이, 이게······!”
단천문주 운드라이와 싸우던 둘째 황금수 염해도 곁으로 달려왔다.
“아우야!”
충격과 경악으로 염진 곁에 무릎 꿇은 둘째 염해, 그리고 황금룡 염군의 모습이 접전을 멈추게 했다. 모두가 눈을 치뜬 채 한사람을 바라봤다.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로군······!”
단천문주 운드라이가 신음 같은 음성을 흘려냈다.그 말의 의미를 귀가진 자, 눈이 있어 본 자들은 다 알아 들었다.황금대호방의 황금삼형제 중 한사람, 막내 황금강 염진이 이름 모를 청년의 일권에 저렇게 된 거다.
“흑성아!”
그렉이 피투성이 몰골로 강흑성을 불렀다. 무슬란도 작두칼의 피를 휘둘러 뿌리며 강흑성을 바라봤고, 박현과 박준도 크게 뜬 눈에 힘을 줬다.
“네놈은 누구냐?”
황금룡 염군이 황금창을 들고 일어서며 물었다. 피토하는 경련을 보이다가 축 늘어져 미동 없는 막내 염진, 그 죽음을 뒤로 두고 부들거린다.
“네놈의 정체가 무엇인지 밝혀라······!”
처절한 살기를 발산하는 황금룡 염군의 곁으로 둘째 황금수 염해가 섰다. 제 형과 마찬가지로 살기와 격노를 터트리는 눈동자에 핏발이 섰다.
“너희 놈들······!”
나지막하지만 처절하게 부들거리는 분노의 숨으로 염군은 선고했다.
“아무도 이 자리를 살아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야······!”
염군의 저주와도 같은 그 말 뒤로 염해가 휘파람을 불었다.날카로운 칼날의 퍼짐 같은 그 소리에 맞춰 황금대호방 무사들이 움직였다.황금슈트를 입은 자들이 주변을 포위했다. 그들의 슈트가 빛을 점멸한다.
“뭐야 이거?”
무슬란이 험악한 눈을 치뜨며 반응하는 가운데 박준이 소리쳤다.
“자폭이다!”
황금슈트의 무사들, 그들의 슈트 가슴에서 불빛이 점멸하며 하나씩 감소하고 있었다. 그들이 강흑성과 일행을 향해 몸을 던졌다. 그런데 그뿐이다. 경악으로 몸을 빼려던 강흑성 일행의 앞에 그냥 엎어져버렸다.
“뭐, 뭐야?”
염해가 눈을 치떴고 염군도 그랬다.상대방이 공격하면 폭발해야 하는데 그냥 엎어졌다.공격자를 화염으로 휘감아야 하는 거다. 그런데 허수아비처럼 쓰러졌다.그것만이 아니다. 핏물로 변하고 있다.이건 뭔가?
“맞아.”
명징하게 모든 이들의 귀를 파고든 목소리. 강흑성에게 모든 시선이 꽂혔다.
“너희 중에 살아서 여길 벗어날 자는 없다.”
강흑성이 움직이는 순간 죽음이 시작됐다.무형지독에 중독된 자들, 황금대호방과 단천문은 적아(敵我)의 구분 없이 피토하며 쓰러졌다. 잠깐의 경련 후에 핏물로 녹아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