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67화 (68/172)

혹성강호. 67. 지옥에서 온 사신.

67. 지옥에서 온 사신.

충격과 공포에 물든 눈을 제어하지 못하고 운드라이는 뒷걸음질 쳤다.

‘저! 저럴 수는!’

혼전을 벌이던 자들이 쓰러지고 있다. 단천문의 수하들과 황금대호방의 무사들, 슈트를 착용한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 할 것 없이 고꾸라진다.칠공으로 피를 뿜어내며 쓰러진 자들 모두 경련하며 핏물이 된다.

‘미, 미친!’

있을 수 없는 일, 상상해 보지 못한 상황을 목도하고 있기에 운드라이는 경악했다. 저 젊은 사내, 흑색의 옛날 군복을 입은 저자가 만든 일이다.

‘독!’

독을 살포했다.아무도 모르게,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그렇게 만들었다.지금 이 공간 안의 단천문과 황금대호방 전원을 몰살시킬 무서운 독이다.그런 독과 저 사내에 대해 들어보지 못했고 알고 있는 것도 없다.

‘잘못 건드렸구나!’

뒤늦은 깨달음으로 운드라이는 호흡을 닫았다.수하들이 핏물로 녹아버리는 중이다. 자신도 저렇게 될 수 있다. 운기해보니 아직은 괜찮은 것 같다. 그런데 저 젊은 사내는 독만이 아니다.황금강 염진을 죽였다.

‘일권에······!’

부르르 눈빛을 떤 운드라이는 그들을 봤다.황금룡 염군과 황금수 염해, 두 형제는 막내의 죽음 앞에서 한 맹세를 지킬 수 없는 처지가 됐다.무릎을 꿇고 토혈하는 중이다.그 앞에 그자가, 젊은 사내가 서 있다.

‘여길 벗어나야······’

바람처럼 신형을 돌린 운드라이는 그 순간 단전에서 피어나는 격통을 느꼈다. 비수로 찌르는 것 같은 통증, 헉하며 휘청거리다 검으로 땅을 찍었다. 그렇게 신형을 유지했지만 전신이 부들거린다. 토혈이 넘어온다.

“우웩!”

선지피를 토하며 운드라이는 주저앉았다. 바닥을 찍은 검을 놓치고 엎어졌다. 토해낸 피 속에 얼굴을 박고 부들거렸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개자식들아, 니들이 누굴 건드렸는지 모르지?”

부들거리는 고개를 겨우 드는 운드라이, 그 눈을 차갑게 응시하며 그렉이 말했다.

“지옥에서 온 사신이다! 네놈들 전부를 지옥으로 데려갈 것이다!”

소리친 그렉은 큰소리로 웃었다. 그 소리에 반응한 무슬란은 아직도 버르적거리며 일어서려고 하는 자들을, 슈트를 장착한 놈들을 작두칼로 쳤다.

“야 무슬란! 피 튀니까 하지 마라!”

박준이 소리쳤다. 박현도 손짓했다.무슬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작두칼을 내렸다.이미 끝장이 난 상황이기에 그렇다. 핏물로 변할 자들에게 힘쓸 것 없다.그러나 저러나 강흑성이 놀랍다, 언제 독을 살포했단 말인가.

“하, 흑성이 자식 정말로 무시무시하구나.”

박준은 강흑성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아니 소름을 삼켰다. 대륙으로 떠나오기 전에도 정찰대를 대상으로 이랬지만, 지금 이 현장은 규모가 다르다.

“단천문과 황금대호방 놈들을 합치면 수백 명이야, 미쳤네 미쳤어.”

거듭 이어진 박준의 탄식처럼 차고를 중심으로 밀집해 있는 놈들의 숫자는 대충 봐도 그렇다. 상황을 인지한 놈들은 창고에서 멀어지고 있다.그러는 와중에도 토혈하며 쓰러진다. 경련하다가 핏물로 녹아버린다.

“저 개자식들, 정말로 지옥사신을 만난거지.”

박현의 뿌듯하면서도 두려움 품은 목소리에 박준은 고개를 강하게 끄덕였다.

“왜 아니겠냐······!”

박준의 눈이 흔들리던 그 순간 강흑성의 목소리가 건너왔다.

“단천문주에게 해독약을 먹이십시오.”

박준은 미간을 좁혔지만 바로 움직였다. 강흑성에게 생각이 있어서 저런 말을 하는 것이 분명해서다. 운드라이에게 다가가 품안의 약병을 꺼냈다.

“운 좋은 놈이네.”

토혈하며 거의 죽어가던 운드라이, 그 몸을 뒤집고 박준은 환약을 먹였다.

“먹였다.”

강흑성을 향해 박준이 대답했고, 그 목소릴 들은 강흑성은 형제를 응시했다. 황금창을 움켜잡고 토혈하며 경련하는 염군, 황금수로 땅바닥을 긁으며 몸부림치는 염해, 지옥의 문 앞에 서 있는 그들에게 말했다.

“너흰 죽는다.”

명료한 한마디, 염군과 염해는 진정한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죽어가는 이 순간에,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느꼈다.자신들이 어떤 존재를 건드린 건지 알았다.지옥에서 온 사신(死神), 죽음을 건드렸다.

“쿠에에······”

염군은 마지막 토혈을 흘려냈다. 그렇게 엎어져 최후의 경련을 냈다. 그리곤 절명했다. 육신이 녹아 핏물로 변해버리는 죽음은 가공하고 참혹하다.

“크어······”

염해가 뒤를 이었다. 생의 마지막 징후인 경련을 끝으로 핏물로 녹았다.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죽음, 그 앞에 서서 말없이 내려다보던 강흑성은 돌아섰다. 황금강 염진을 향해 무원비천일권붕을 안겨주느라 손에서 놓았던 패천마혈을 다시 잡았지만, 마검을 휘두를 일이란 사방 어디도 없다.

‘잘 됐어.’

강흑성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속에서 일어나는 충동이 예사롭지 않았었기 때문이다.마교의 검법인 지옥마검을 펼치려는 의지와 힘이 울부짖었었다.그 검법은 이미 펼쳤었지만 이제 펼치는 것은 전혀 다르다.

‘내 속에 들어찬 원혼들의 힘과 마검에게서 흡수했던 힘이······’

어우러지고 있다. 자칫하면 강흑성 자신의 의지를 놓치게 된다.그게 어떤 것인지 모른다.다시는 강흑성이란 존재로 돌아오지 못할 지도 모른다.그러니 독만으로 상황을 끝낸 이결과가 좋다. 하지만 종결은 아니다.

“금혈방이 남았습니다.”

일행에게 그 이름을 던지며 강흑성은 한 사내에게로 걸음을 냈다. 무너진 창고 벽에 등을 기댄 자, 부들거리며 주저앉아 있는 사내 상패천이다.상패천은 힘겹게 고개를 들었고 강흑성은 곁으로 온 박준에게 말했다.

“이자에게도 해독약을 주십시오.”“엥? 그러라고? 뭐 그러자.”

박준은 하등 고민 없이 해독약을 상패천에게 먹였다. 백지장처럼 하얗던 상패천의 안색은 금세 혈색이 돌았다. 그사이 그렉이 일행을 불렀다.

“단천문주가 조금 있으면 일어날 것 같은데?”

강흑성과 박준이 돌아봤다. 단천문주 운드라이는 가부좌를 틀고 독기를 빼는 중이었다. 그렉의 말대로 잠시 후면 운신이 가능할 모습이다.

“이자들이 필요한 거냐?”

그렉이 묻자 강흑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갯짓으로 일행은 전후를 짐작했다.금혈방이 남았다는 말을 이미 한 거다.그들은 이곳으로 달려오던 중이었을 터, 도망친 두 문파의 놈들에게서 상황을 파악했을 거다.

“천지도 상패천이란 저놈은 금혈방에 던져 주려는 걸 알겠는데······”

무슬란이 미간 좁힌 얼굴로 강흑성에게 뒷말을 던졌다.

“단천문주 이자는 뭐에 쓰려는 거야?”

강흑성 대신 그렉이 답을 냈다.

“상패천을 잡고 있는 놈이 필요하지. 그거 아니냐 흑성아?”

무슬란은 눈 밑을 꿈틀했다가 깨달았다.

“그렇군, 이놈들이 상패천을 두고 싸우는 게 우리로서는 펀하겠네.”

박준도 고갯짓하며 입을 열었다.

“그래, 더 달라붙는 놈들 없이 여길 떠나는 게 좋지.”

말하며 동생 박현을 응시했던 박준은 미간을 좁히고 사방을 돌아봤다.

“그런데 의사부부는 어딜 건거냐? 휩쓸리진 않은 것 같지? 싸움 시작되자마자 돈 들고 도망쳤잖아? 확실하지? 햐, 그 사람들 대차게 튀었는데?”

박준의 감탄하는 목소리는 죽은 자들 위로 퍼져나갔다.

* * *

“이게 무슨······!”

금혈도를 내린 채 위하문은 눈가를 떨었다. 황금대호방 삼형제놈들과 단천문주 운드라이가 충돌한 곳, 천지도 상패천을 두고 벌인 싸움의 현장에 이변이 일어난 거다. 그곳에 몰려 있던 두 문파의 놈들이 죽었다.

“독이라니······!”

황당한 충격이 가슴을 때리며 등골을 서늘하게 만든다. 금혈신도라는 별호를 스스로 만들어 상해의 일각을 차지한 맹주가 자신 위하문이다.자칭한 그 별호가 부끄럽지 않고 자랑스러운 건 이렇게 서 있기 때문이다.황금대호방과 단천문과의 패권쟁투, 그 속에서 당당하게 상해를 밟고 있다. 그러나 두 문파는 역시 간단치 않은 상대다. 그들을 확실히 이기자면 특단의 조치나 강력하고 특별한 수단이 있어야 한다. 그게 찾아왔다.천지도 상패천, 그자가 나타난 거다. 저절로 굴러 들어왔다.옛 초인 뇌인걸의 무공을 찾아냈다 한다.황금대호방이나 단천문에게 뺏기기 전체 차지해야 한다.그래서 이러고 있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변고가 생겼다.

‘그놈들이 누구길래?’

눈 밑을 가늘게 떨며 위하문은 현장을 바라봤다. 아침 해가 선명하게 비추기 시작한 곳, 흑산의 골목이 밀집한 공간, 의원이 있던 장소다. 저곳에서 살기 위해 도망쳐온 놈들이 쓰러져 핏물로 변하는 걸 목격했다.

‘황금대호방, 단천문 놈들이······!’

접전 중심에서 도망쳐온 놈들은 다 죽었다. 그나마 거리를 두고 있던 놈들이 도주해 왔지만 역시다. 놈들이 죽기 전에 한말은 믿기 힘들다.

‘황금강 염진이 한방에 뒈졌다고?’

그자가, 정체 모를 젊은 무인이 독을 뿌렸다는 거다. 황금룡 염군과 황금수 염해가 고꾸라졌다는 거다, 단천문주 운드라이도 토혈을 했다는 거다.

‘그들이······!’

핏물로 녹아 절명한 놈들처럼 된다는 상상을 하기 힘들다.하지만 독이다.핏물로 녹여버리는 저런 독에 대해선 들어본 적도 없다.그런 절대지독이 뿌려진 중심에 그들이 있었다. 그러니 살 가능성은 없는 게 맞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어찌 판단하고 행동하는 게 맞는지 위하문은 답을 찾지 못했다.천지도 상패천이 있는 저곳으로 접근할 수가 없다.그건 죽음이다. 그런데 상패천이 가진 뇌인걸의 무공을 포기할 수도 없다.

“이!”

금혈도를 움켜쥐고 전신을 부들거리던 위하문은 수하의 보고를 받고 눈을 치떴다. 접전의 현장으로부터 누군가 걸어오고 있다는 거다. 고개 들어 보니 정말로 그렇다. 체구가 엄청나게 크다. 저 정도면 움바바족이다.

“들어라!”

쩌렁하게 귀를 파고드는 외침에 반응하며 위하문은 금혈도를 세웠다. 그렇게 상대를 주시했다. 수하들이 서 있는 자리에서 이십여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멈춘 놈, 움바바족이 커다란 칼을 어깨에 걸치고 다시 소리친다.

“우린 떠날 거다! 너희가 욕심내는 것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위하문은 거듭 눈 밑을 꿈틀거리며 상대의 외침을 들었다.

“우리 목적은 이뤘다! 보다시피 내 다리다! 원하는 걸 얻었으니 간다! 싸움은 너희끼리 해라! 천지도 상패천은 무사하다! 우린 그가 필요 없다!”

움바바족은 커다란 목소리로 핵심을 던졌다.

“우리 길을 막는 다면 모조리 죽일 것이다! 봐서 알거다! 먼저 죽은 놈들처럼 참혹하게 뒈지고 싶다면 그렇게 해라! 지옥사신이 환영해 줄 테니까!”

으하하하, 하는 커다란 웃음소리를 낸 움바바족은 돌아서 걸어간다.놈의 왼다리가 은빛의 금속이다. 사이보그레그다.저게 목적이었다고 했다. 그걸 이뤘으니 간다는 거다.천지도 상패천을 두고서다. 정말일까?

‘이게······’

눈가만 움찔거리고 있던 위하문은 다른 광경을 봤다. 흑색의 군복을 입은 젊은 사내가 누군가를 끌고 오는 모습이다. 움바바족이 섰던 자리에 섰다.

* * *

“차라리 날 죽여 다오.”

창백한 얼굴로 힘없는 간청을 내는 자, 천지도 상패천을 강흑성은 내려다봤다. 평좌로 앉은 그의 얼굴과 눈에 든 것은 가늠하기 힘든 절망이다. 그 크기와 무게가 느껴진다. 하지만 강흑성 자신이 알 필요 없다.

“우릴 죽이려고 한 대가다.”

강흑성의 흑청빛 눈동자를 보고 상패천은 깨달았다. 이 젊은 무인의 가슴엔 만년빙이 들어있다는 것을. 자신은 정말로 대가를 받고 있다는 것을.

‘쫓기며 들어간 창고에서 어쩔 수 없이 살수를 펼쳤다는 변명 따위······’

이 젊은 무인에겐 통하지 않는다.이렇게 죽는 거다.복수는 꿈으로만 남게 됐다.그래서 눈물이 흐른다. 평생 흘리지 않았던 통한의 눈물이.상패천을 두고 돌아서려던 강흑성은 멈칫했다.말없이 눈물 흘리는 상패천을 내려다봤다.그 시간이 몇 초가 흘렀을까, 차가운 음성으로 말했다.

“벽뢰수를 익히는 방법은 하나다.”

강흑성의 이야기를 들으며 상패천은 전율하고 전율했다. 하지만 강흑성이 돌아서고 난 뒤 다시 절망했다. 이 사지를 벗어날 길이 없는 거다.

‘하늘이시여······!’

하늘을 보며 상패천은 그도 봤다.금혈방주 위하문, 그가 슈트를 착용한 모습으로 달려오고 있다.독에 대비한 거다. 이제 저 자의 손에서 죽음을 맞을 것이다.체념하며 눈을 감았다. 그런데 뒤에서도 누가 온다.

“물러서라!”

단천문주 운드라이의 외침에 상패천은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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