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70화 (71/172)

혹성강호. 70. 나무 1.

70. 나무 1.

“수림 안에서 화약류 총기의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샤크를 조종하는 수하의 보고에 크리스티앙은 미간을 확 좁혔다.

“총기반응?”“예, 그렇습니다. 현재 위치에서 북쪽으로 5키로 거리입니다. 음향감지기에 총성이 감지됐고 섬광도 확인했습니다. 보십시오, 해당영상입니다.”

크리스티앙은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했다. 과연 화약총을 발사한 듯한 섬광이 보인다. 자신이 착륙을 지시한 직후다. 어두워지는 터라 선명하다.

‘저지역이면 역시······’

수림의 밀도가 달라 샤크를 내릴만한 곳이 아니다. 그래서 이곳에 착륙했다. 무리해서 샤크를 운용할 순 없다. 재활용기체지만 거금을 들여 장만한 것이기도 하고, 이제부턴 사냥이다. 5키로 거리니 금방 잡을 거다.

“확실하게 구분은 못하는 거겠지?”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크리스티앙은 확인하듯 물었다. 액티브소나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더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열화상이 안 되듯 그것도 안 된다. 외부카메라와 음향감지기 만으로도 감지덕지다.

“됐다, 섬광포착지점을 목표로 추적에 들어간다.”

명령을 던진 크리스티앙은 문을 향해 돌아섰다. 갈라져 열리는 샤크의 외부, 짙은 어둠이 깔리고 있는 수림을 노려봤다. 어서 나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은, 도발하는 것 같은 느낌이 음울한 바람으로 뺨을 스친다.

“장비를 풀어라.”

걸음을 내며 크리스티앙은 단호하게 명령했다.바로 옆에 착륙한 샤크가 명령을 받아 꽁무니 문을 연다.육중한 소리를 내며 강철케이지가 굴러 나왔다.바이탄합금으로 만든 세 칸의 쇠창살, 괴이한 존재들이 있다.

“피 맛이 그립지 않으냐?”

잔인한 미소를 입가에 물고 걸음을 낸 크리스티앙.그 목소리에 반응하며 케이지 안의 괴존재들이 시선을 돌린다.인간과 붉은 엘프와 베어족.셋은 피처럼 붉은 눈알을 꿈틀거리며 크리스티앙의 미소를 바라본다.

“네놈들이 상상하기 힘든 거액을 주고 산 거다. 그래, 너희를 우리 남도의 제왕이 샀지. 문주는 쓸데없는 짓이라고 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비릿하고 차가운 미소를 머금은 채 크리스티앙은 베어족의 앞에 섰다.

“화성연구소에게 너희 같은 폐물들을 사간다고 했을 때 이상했다 이거야.”

베어족, 흑곰족이라고도 부르는 존재는 붉은 눈을 꿈틀대며 이를 드러냈다.

“크르르······!”

귀를 파고드는 순간 소름끼치는 숨소리, 하지만 크리스티앙은 웃는다.

“불구가 돼 버려져 죽는 것 밖에 도리가 없는 놈들, 너희를 돈 주고 산다는 데 이상했지. 그래서 은밀히, 정말 열심히 알아봤더니 이종을 만들더란 말이지. 너희 같은 놈들에게 괴수를 덧씌운 이종, 정말 놀랐지.”

베어족을 보던 시선을 돌린 크리스티앙은 붉은 엘프족 사내를 응시했다.

“화성연구소에선 매화검문과 짝짜꿍이 돼가지고 이사업을 하고 있어. 지금은 몰라도 앞으로는 아주 큰돈이 될 사업이야, 난 그렇게 확신했다.”

크리스티앙의 눈동자는 강렬한 빛을 냈다.

“그래, 그런데 거기엔 우리가 낄 자리가 없었지. 그렇지만 비빌 순 있었어.”

다시 눈길을 돌린 크리스티앙은 인간 남자에게 계속 말했다.

“화성연구소와 매화검문에게 손을 비벼서 너희를 다시 산거라 이거다. 맞아, 너희가 우리형제였다는 것에 대한 의리 따위가 아니야. 지금의 너희라서 산거다. 그게 무슨 말인지 잘 알 거다. 흥, 온전한 제품이었다면 좋았겠지. 그런데 그랬으면 얼마나 돈이 더 들지 모를 일이었고.”

강렬하게 꿈틀대던 크리스티앙의 눈에 미소가 걸렸다.

“그래, 잘 알고 있어. 아예 사지 못했을 거다. 화성연구소와 매화검문놈들이 팔 생각을 안했겠지. 너흴 살 수 있었던 건 불량품이어서야. 그래서 그들이 넘겨준 거지. 너희들을 가지고 우리가 뭘 할 수 있는지 보려고.”

인간남자의 붉은 눈이 응축하는 걸 들여다보며 크리스티앙은 남은 말을 냈다.

“이건 아주 간단한 거다. 내 명령을 따르면 고통은 없다. 너희 몸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고통을 잊게 해줄 약을 줄 거다. 그밖에 원하는 건 다 가지게 해 줄 거다. 더는 그런 꼴로 철창 안에 갇혀 있지 않게 말이다.”

크리스티앙은 셋을 바라보며 환한 미소로 말했다.

“이제 철창을 열어 줄 거다. 결정은 너희가 하는 거다.”

크리스티앙은 물러서며 손짓했다. 그 신호로 바이탄합금철창은 철컹 소리를 내며 열렸다. 크리스티앙 주변엔 남도의 제왕 무사들이 빔건을 겨누고 몰려섰다. 그러나 세 존재는 그들이 아닌 크리스티앙만을 응시했다.크리스티앙은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그것을 본 세 존재, 이종이라고 불린 자들은 움찔거렸다.저 손가락 튕김에 따라 머리통이 터지기 때문이다.머릿속에 삽입한 폭탄, 그걸 제거할 방법이 없는 한 도리가 없다.인간 남자가 먼저 케이지에서 나왔다. 그 뒤를 따라 베어족이, 붉은 엘프마저 나왔다. 나란히 선 그들에게 크리스티앙은 잔인한 미소로 말했다.

“사냥해야 할 놈들이 있다. 나와 함께 사냥을 시작한다.”

* * *

“도대체 이놈은 뭐야?”

황당한 얼굴의 박현이 자이언트레빗을 작두칼로 건드리며 의문을 드러냈지만 대답을 해줄 이가 없다. 일행 중 누구도 이런 괴수를 본 적이 없다.

“몸뚱이에 난 이건 털이 아니라 비늘인데? 하, 이건 마치······”“야무치 비늘.”

무슬란이 말하자 박현은 맞아 하는 얼굴로 눈에 힘을 줬다.

“야무치라고? 그럼 저놈이 야무치와 자이언트레빗의 혼종이라는 거냐?”

혼종이란 단어에 담긴 뜻이 단순하지 않지만, 박준은 말해놓고 인상을 구겼다. 구역질을 참는 그 얼굴은 그렉과 박현과 무슬란도 비슷했다.

“이동해야 합니다.”

강흑성이 명료하고 단호하게 일행을 깨웠다. 박준은 가장 먼저 상황을 깨달았다. 자신이 t-rex를 발포한 상황, 이 총의 울음은 이미 퍼졌다.남도의 제왕놈들이 수림으로 진입했다면 방향을 알려준 거나 같은 거다.

“그래, 어서 여길 벗어나야 해.”

박준이 서두르자 그렉이 배낭을 멨고 박현과 무슬란은 서로를 봤다. 상황을 인식하지만 여전히 자이언트레빗의 간과 고기가 아까워 침을 삼킨다.

“뭐해 자식들아!”

박준이 소리치자 박현과 무슬란은 움직였다. 강흑성은 어느새 수림으로 사라진 것처럼 앞서 나갔고 박준과 그렉이 열심히 뒤따라갔다. 그들 뒤로 박현과 무슬란이 붙자 그렉이 새삼스레 돌아봤다. 박현의 다리다.

“걱정할거 없어. 아니 그게 아니라 신기하지?”

피식 웃으며 입을 연 박현은 그렉의 마음을 아는 듯 목소릴 이어냈다.

“나도 신기하다. 사이보그레그가 아니라 내 다리인 것 같다니까? 하나도 불편한 게 없어. 어색한 게 일도 없어서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야.”

무슬란이 나름의 짐작을 말한다.

“그 의사가 시술한 혈고라는 거 말이다. 그게 원인인 것 같아.”

그렉도 동의했다.

“맞아, 내 생각에도 그런 것 같아. 혈고가 나노봇들을 대신 한 건데, 나노봇보다 더 기깔나게 다리를 맞춘 거지. 그게 마교의 비전이라잖아? 이제 더는 구할 수도 없는 거라고 했어. 현이 너는 정말 행운을 잡은 거야.”“그런가? 그럼 이게 기연인 거지? 그렇지?”

박현의 말에 무슬란이 손을 올려 뒷머리를 탁 쳤다.

“지랄을 해라, 그게 기연이면 우리는 뭐냐? 너 때문에 뭔 지랄을 겪었는지 모르냐?”“어 그건, 음, 그렇군.”

그렉이 선두의 강흑성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미소 지었다.

“우리에게 기연이라면 흑성이 저놈이지.”

박현과 무슬란은 깊은 공감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셋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부지런히 이동한지 얼마나 됐을까, 선두의 강흑성이 멈췄다.

* * *

“이게 뭐야?”

황당한 눈을 번득이며 크리스티앙은 괴수의 사체를 살폈다.온몸에 털이 아닌 비늘이 덮인 놈이다.크기가 엄청나서 거의 블루마운틴만 하다. 아니 그보다 더 큰 것 같다.그런데 머리통이 없다. 이게 대체 뭘까.

“자이언트레빗과 흡사합니다.”“뭐? 거대토끼라고?”“확신은 못하겠습니다만, 저 간은 분명 자이언트레빗의 간입니다.”

이번 일에 나서면서 총령을 맡긴 모이앙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바닥을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을 따라 눈길을 돌린 크리스티앙은 큰 간을 봤다.

‘음?’

정말로 자이언트레빗의 간이다. 나름 귀한 것이고 훌륭한 식재료라서 안다. 저 아까운 걸 여기 버리고 갔다. 게다가 옆엔 괴수사체가 있다.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바닥과 주변 흔적을 보면 격한 움직임들이 있었다. 그 자취들의 이동흔, 경로를 살피니 짐작이 된다. 비늘로 덮인 괴수가 여기 있던 놈들을 공격했다. 하지만 이렇게 죽었다. 괴수는 자이언트레빗으로 추정된다.

“이런 놈이 있다는 건 금시초문인데?”

거듭 황당함을 보이는 크리스티앙에게 모이앙은 검은 눈을 번득이며 생각을 말했다.

“여긴 대륙입니다. 이 광활한 땅에선 무슨 일이든지 가능할 겁니다.”

크리스티앙은 모이앙의 검은 눈을 응시하며 서늘한 숨을 삼켰다.

‘검은 숲 요괴.’

블랙엘프족인 저들을 그렇게 부른다. 붉은 엘프와 흰엘프를 포함한 엘프 삼부족 중에 가장 흉포하고 잔인한 족속이다. 물론 엘프족 전부 신비하고 용맹하고 잔인하지만, 블랙엘프는 숫자가 가장 많고 호전적이다.

‘엘프라는 이름이 가진 의미를 명확하게 각인시킨 존재들.’

크리스티앙은 새삼 기억을 되새겼다. 폐허가 된 도시에서 찾아낸 엘프의 흔적들이다. 삼백 년 전 대전쟁보다 이전, 육백년 전의 차원전쟁 전에도 엘프란 이름은 있었다. 많은 이야기 속의 그것은 아름다운 존재였다.

‘유물영상으로 본 엘프는 고귀하고 아름다웠지. 그냥 이야기였지만.’

저들은 그렇지 않다. 허구가 아니라 실재하는 존재들이다. 크리스티앙 자신이 본 영상 속의 엘프와 가장 유사한 족속이라면 그나마 흰엘프다.

‘붉은 엘프는 전사라고 해야 할 테고, 블랙엘프는 호전적인 악귀라 부르는 게 맞지. 외모도 강인하고 날카롭지만 저 눈동자는 정말 악귀 같아.’“괜히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대륙의 수림에선 그런 느낌이 강렬합니다.”

이어 나온 모이앙의 말에 크리스티앙은 눈빛을 예리하게 흘려냈다.

“그래, 다른 사람도 아니고 숲의 종족인 블랙엘프 모이앙 네가 하는 말이니 뭔가 있을 것 같구나. 무엇보다 이렇게 눈으로 별스런 걸 보고 있고.”

숲의 종족, 정확하게는 검은 숲 요괴다. 그 말을 달리 말한 크리스티앙도 들은 모이앙도 각자의 사념을 넘기고 현실에 집중했다. 이 자리에 잇던 놈들이 변종자이언트레빗을 죽이고 급히 떠난 거다. 추적을 눈치 챘다.

“수림으로 들어선 것부터가 추적을 눈치 채고 행동한 거지.”

고개를 주억거린 크리스티앙은 칼날 같은 시선을 돌려 그들을 봤다. 이종의 세 존재, 소름끼치는 숨소리를 내며 서 있는 그들에게 명령했다.

“이제 너희가 나설 차례다, 잡아라.”

형용하기 힘든 안광을 흘려낸 세 존재는 벼락처럼 움직였다. 수림 깊은 곳을 향해 달려갔다. 그 뒤를 크리스티앙과 수하들이 맹렬히 쫓아갔다.

* * *

왜 그래? 하는 일행의 눈빛을 등으로 받으며 멈춰 선 강흑성은 수림의 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그 숨으로 미세하게 퍼져 나오는 파동을 감지했다.섬뜩하고 무시무시한 기운을 응축한, 그렇지만 솜털처럼 부드러운.

‘이런 기운은 처음인데······’

미간을 꿈틀거리며 강흑성은 기운의 크기와 범위를 더듬었다.놀랍게도 앞을 가로 막았다. 우회할 범위를 초과했다.진행 하는 지형은 좌우가 높아지면서 흑강석의 산비탈을 이루고 있다. 산이라고까지 하기엔 그렇지만 둔덕이라고 할 수 없는 규모, 길이 없다.갈 곳은 직진의 중앙뿐이다.

‘칼날 같은 흑강석 산을 넘어갈 순 없어.’

흑청빛 안광 품은 눈동자를 번득인 강흑성은 결정했다.

‘뭐가 됐든 가는 수밖에.’

추적해 오는 남도의 제왕에게도 이 위험한 기운은 공평하다. 애초의 계획이 그들을 수림의 위험으로 끌어들이는 것, 위기는 기회와 한 몸이다.

“다시 가냐?”

바로 뒤 박준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강흑성은 계속 전진했다.그렇게 확인했다.수림의 공기 속에 퍼지던 기운과 맡아지던 냄새, 물이 저 앞에 있다.흐르는 계류가 아니다. 흑강석 산을 좌우에 세운 계곡의 호수다.

“어라? 호수네?”

박준이 반응하는 그 순간 그렉이 눈을 치뜨며 한곳을 가리켰다.

“저, 저거!”

호수 중앙에 거대수가 있다. 그냥 거대수가 아니라 정말로 거대한 거대수다. 그런데 거대수의 몸통이 비늘이다. 변종자이언트레빗의 몸과 같다.

“나무 아래 저건 뭐야?”

무슬란의 놀란 반응과 함께 일행은 다 같이 눈을 치떴다.트라이 울프가 나무뿌리에 휘감겨 있다. 꿈틀거리는 놈의 몸도 비늘로 덮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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