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강호. 71. 나무 2.
71. 나무 2.
흥분과 놀람을 응축한 눈으로 강흑성은 나무를 응시했다.정상적인 거대수보다 다섯 배 이상 큰 거대수다.호수 중앙에 기둥처럼 서 있다.그런데 수면으로 뻗어낸 뿌리에 짐승들을 잡고 있다. 비늘로 덮인 맹수들을.
“나무가 저놈들을 잡고 있는 거지? 분명히 그런 거 맞지?”
황당한 눈으로 박현은 일행을 돌아보며 묻는다. 내가 보고 생각하는 게 너희와 같냐는 눈이다. 이 황당하고 놀라운 광경이 생각하는 그게 맞냐는.
“맞아······!”“짐승들이, 맹수들이 저 나무에게 잡혔어······! 비늘 덮인 괴수로 변하는 거야······!”
무슬란과 그렉의 신음 같은 반응 뒤로 박준이 비명을 질렀다.
“으헉!”
호숫가에 가장 가까이 서 있던 박준, 그의 발목을 뭔가 휘감았다.뱀 같은, 나무 덩굴 같은 거다.박준은 넘어졌고 물로 끌려 들어갔다.그 팔을 박현과 무슬란이 잡았고 강흑성이 패천마혈을 내리쳐 원인을 끊었다.
“개신발! 저게 뭐야!”
물에 젖은 몸을 일으키며 박준은 분노했다. 그 발목을 휘감았던 것을 일행 모두가 눈으로 확인했다. 나무뿌리, 분명히 호수중앙의 저놈이다.은빛의 비늘을 바람결에 번득이고 있는 거 괴물나무가 암습을 한 거다.
“이런 식으로 잡은 거구나.”“그래, 물을 마시러 온 놈들을 삽시간에 잡아당긴 거야.”“괴수는 없고 맹수라고 해야 할 놈들만 잡았어.”
그렉과 박현과 무슬란이 차례로 발표하듯 말했다.그렇게 일행은 호수의 거대수를 봤다.괴이하고 징그러운 은회색 비늘을 꿈틀거리고 있다.마치 바람을 맞은 나뭇잎들을 흔들듯이다.그런데 저건 분명 그게 아니다.
“우릴 주시하고 있습니다.”
강흑성은 분명한 확신으로 일행에게 알렸다. 짐승들을 움켜잡고 있는 저 괴이하고 소름끼치는 거대수가 자신들을 인지하고 에너지를 내고 있다.목적성이 확고한 에너지, 의지다. 다른 짐승들처럼 잡겠다는 거다.
“눈깔도 없는데 보고 있다고?”
박현의 미간 좁힌 물음을 박준이 타박하려는데 강흑성이 대답했다.
“의지가 있는 존잽니다. 저런 행위를 하는 건 분명히 저 나무의 생존방식일 겁니다. 우리가 태어나면 살려고 발버둥치듯이 근원적인 생명활동, 그런 거겠지요. 이해할 일이 아닙니다. 중요한건 주변의 다른 놈들입니다.”
주변의 다른 놈들이라는 강흑성의 말에 일행은 긴장했다. 그렉과 박현과 무슬란은 바로 기감을 느꼈다. 호수로 몰려드는 무수한 움직임들이다.
“저것들! 이런 제길! 나무가 불렀다!”
박현이 고리눈을 치뜨고 작두칼을 세웠다.너무 놀란 반응, 일행모두가 그랬다.사방에서 몰려온 괴수들은 하나같이 은회색 비늘 덮인 놈들이다.자이언트레빗과 트라이울프와 테스라와 늑대사슴, 모두 변종괴수다.
“짐승들을 저렇게 변하게 해서 부하로 삼은 것 같은데······!”
뜨거운 숨으로 나온 박준의 짐작은 이제 일행 모두의 것, 그렉이 덧붙였다.
“영역확대 같은 건가 봅니다······!”
거대수의 의지가 그렇다는 것을 일행은 깨달았다. 근원본능이 어떠한 것인지 정확하게 알 길 없지만 짐승들을 자신과 같은 비늘로 덮었다. 활동하고 이동하는 저들을 부린다. 수림에서 최상위 존재가 되려는 거다.
“저거 혹시 야무치가 나무로 변한 거 아냐?”
박현의 황당한 짐작에 무슬란은 작두칼을 세우며 맞장구친다.
“그럴지도 몰라, 그 거대하고 무서운 놈이 거대수하고 한 몸이 됐거나 뭐 그런 거지. 어떻게 그런 건지 몰라도 그런 거야. 퉤, 기분 더럽다.”
박준은 으이그 하면서도 일정부분 공감했다. 자신이 이십오 년 전에 겪은 대륙은 무엇이든 가능한 땅이었다. 이 광활한 땅의 수림엔 무엇이 살고 있는지 정확히 모르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정말 그런 일이 생겼을 지도 몰라.’
침을 삼키며 박준은 t-rex장총을 겨눴다. 그 순간 강흑성이 말했다.
“흑강석 산을 오르겠습니다.”
그러니 길을 뚫겠다는 거고 뒤따르라는 소리, 일행은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강흑성의 이름과 유사한 흑강석,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돌로 이뤄진 산이다, 저곳을 오르면 신발은 아작 날 거다. 다행이 새 신발은 있다.
“제길, 전투화를 여벌로 챙기길 잘했네.”
중얼거림을 뱉고 박준은 강흑성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렉과 박현과 무슬란과도 눈을 맞춘 강흑성은 전진을 시작했다. 호수 우측변을 따라 달려갔다. 은회색 비늘의 변종괴수들은 괴성을 지르며 공격해 왔다.
콰우우!
은회색 비늘을 칼날처럼 세운 트라이 울프가 도약해 왔다. 보통의 삼목울프보다 배 이상 큰 몸뚱이, 게다가 비호처럼 빠르다. 흉악하게 벌린 아가리가 강흑성을 물었다. 하지만 그렇게 보인 순간 두 동강 났다.
쾅! 광! 쾅!
박준은 총을 연사했다.정확히 한번 격발에 괴수 한 마리씩 머리통이 터진다.그렉은 창날 같은 늑대사슴의 뿔을 철권으로 후려쳐 부러뜨렸다.그 순간 박현이 작두칼을 내리쳤고, 늑대사슴은 머리가 잘려 나갔다.
“저건 뭐야!”
박준이 경악한 반응을 내며 멈춰 섰다. 다른 일행도 눈을 부릅떴다.여태 동강내고 죽인 괴수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그러면서 한데 모인다.잘린 몸통들이 연결되고 있다. 피와 힘줄과 근육들이 엉겨 붙어 이어진다.
“이런 개신발······!”
부들거리는 박준에게 강흑성이 소리쳤다.
“달려요!”
박준은 후득 깨어났고 그렉과 박현과 무슬란도 그랬다.모두 강흑성이 달려가던 방향으로 전력질주했다.강흑성은 어느새 흑강석 산 앞이다. 그곳으로 달리는 일행의 뒤로 뭉치고 합쳐진 괴수가 일어서 쫓아온다.
‘죽지 않는 구나.’
흑청빛 안광을 빛내며 강흑성은 호수를 돌아봤다.은회색 비늘의 거대수가 가지들을 흔들고 있다. 그 몸짓으로부터 에너지가 퍼져 나온다.보이지 않지만 너무도 강렬한 그 힘이 느껴진다.괴수들을 부리는 의지다.
“죽지 않는 것은 없다.”
서늘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죽음을 선고한 강흑성은 일행의 도착과 동시에 흑강석을 움켜쥐었다. 양손 가득 쥐고 무원신수의 힘으로 으스러뜨렸다. 수백 개의 작은 알갱이가 된 그것에 이순간의 의지를 실었다.
‘천류비천.’
당문최고수 당인상의 무공.그 경지의 백분지 일도 따를 수 없지만 이순간의 충동과 깨달음으로 펼쳐냈다.중원을 공포로 몰아넣은 암기술이다.한순간 검은 잔상으로 변하듯 움직인 강흑성의 두 손에서 흑강석 비가 퍼져나갔다. 45도 각도로 퍼져나간 그 의지와 힘은 수림을 휩쓸었다.
* * *
‘저 괴물놈들······!’
수림 속을 헤치며 귀신처럼 달려가는 존재, 이종괴물이 된 옛 수하들을 응시하며 크리스티앙은 살기를 삼켰다. 강하고 위험한 것을 보고 일어나는 본능적인 것이다. 과연 저것들을 아우를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매화검문놈들이 순순히 넘겨 준 이유가 분명히 있어.’
그냥 넘겨준 게 아니라 돈 받고 팔았다. 그런데 원래 팔 것들이 아닌 거다. 그런데도 판 건 저놈들이 실패한 폐품들이기도 하지만, 저 상태로서의 효용성을 확인하기 위해서가 분명하다. 그들은 손해 볼게 없다.
‘뭐든, 이번 일에 잘 써 먹을 수 있으면 되는 거긴 한데.’
추적하는 놈들을 잡고 그 수급을 확보하는 거다. 그 일에 제대로 활용하면 문주에게도 할 말이 있고, 무엇보다 정찰대 놈들에게 요구할 수 있다. 샤크의 부품들을 구하는 것부터 다른 협조를 구할 명분이 생긴다.
‘그것들이 먼저 제안한 거니까.’
서부지구대장 패튼이 분명히 말했다. 사냥을 제대로 해오면, 수급만 확실하게 가져오면 원하는 걸 얻게 해 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해독약도 줬다.
‘패튼, 네 눈은 정말 간절해 보였는데 안됐구나.’
제가 직접 대륙으로 넘어와 잡고 싶은 마음, 패튼의 눈은 그랬다. 하지만 그러지 못해 정보를 넘겨주고 청부한 거다. 분명 직접원인은 치안총국의 명령이 없어서다. 그런 이유를 모르겠지만 다른 건 짐작하고 있다.
‘대륙에 군대와 정찰대가 없는 이유.’
있기는 있다. 주요지역에 거점을 만들어 상주하고 있다. 하지만 남으로 해남도와 북으로는 내몽고초원이다. 그곳을 제외하면 대륙은 텅 비어 있다.일부러 그렇게 하는 거다, 25년 전 대륙전쟁을 다시 안 겪으려고다.
‘힘으로 눌러서 뭉치게 하는 게 아니라 저희끼리 싸우고 분열해 있도록.’
어금니가 시큰거리도록 힘을 줬던 크리스티앙은 달리던 몸을 멈춰 세웠다.앞서 수림을 헤치고 질주하던 세 놈, 이종수하들이 멈춰 섰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이한 기감이 느껴진다. 뭔지 사이하고 음울한 바람 같다.
‘이건 뭐······’
미간 좁히던 크리스티앙은 총소리를 들었다.분명 그놈들의 화약총격음이다.뒤이어 울음도 들었다. 괴수의 울음이다.소름끼치는 울음이다.멈춰 섰던 이종들이 다시 달리는 걸 본 크리스티앙은 수하들에게 소리쳤다.
“놈들의 꼬리를 잡았다!”
크리스티앙과 남도의 제왕 무사들 쉰여섯은 미친 듯이 질주했다.
* * *
벌컨이 휩쓰는 것처럼 수림을 흑강석이 초토화 했다. 그 속에 있던 존재들, 은회색 비늘의 변종괴수들도 산산조각으로 터지며 흩어졌다. 동강나고 부서진 사체들이 얽히고 뭉쳐 움직이던 거대괴수도 마찬가지다.
‘아니야.’
천류비천을 펼치고 난 빈손으로 강흑성은 흑청빛 눈을 꿈틀거렸다. 달려들던 괴수들을 다 쓸어버렸지만, 천류비천을 펼쳐낸 흥분이 강렬하지만, 은회색 비늘의 괴수들을 끝장낸 게 아님을 안다. 저것들은 또 뭉친다.
“저런 개신발! 저게 대체 뭐야!”
박준이 분노와 두려움으로 소리치며 t-rex를 발포했다. 산산조각으로 흩어진 괴수들이 다시 꿈틀거리며 뭉치고 일어선다. 블루마운틴도 쓰러뜨리는 거대괴수전문 사냥총의 총탄은 소용이 없다. 괴수는 거대해진다.
‘마력을 이용한다면······!’
강흑성은 강렬한 유혹을 느꼈다. 방금 전 펼친 천류비천 역시 속에서 꿈틀거리는 마기를 이용한다면 결과가 달랐을 터다. 그렇지만 그 힘을 사용하면 돌이킬 수 없다는 예감이다. 멋모르고 의지하는 일은 더는 안 된다.
‘응?’
눈썹을 거칠게 세운 강흑성은 다가오는 기운이 낯설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섭게 험악하며 사악하며 비통한 기운, 분명 겪었던 거다.
‘이건······!’
그 기억이 떠오른다.춘천으로 가던 길에 만난 카이오족, 이종이라던 존재.
“산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애초의 계획대로 강흑성은 흑강석 산에 오르기를 결정했다. 천류비천으로 시간을 번 것은 거의 없지만, 이제 달려올 자들이 만들어 줄 것이다.
“그래! 올라가자!”
박준은 강흑성 뒤를 따랐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먹어라는 듯이 총을 쐈다. 그 바람에 박현이 고갤 즉각 숙이며 소리쳤고 무슬란과 그렉은 빠르게 움직였다. 그렇게 일행이 산에 오르는데 거대수가 울었다.
그오오오.
수림을 흔들며 퍼지는 소리.분명 귀로 듣고 있지만 머릿속에 울리는 것 같은 소리다.그 소리를 들은 일행은 움직임을 멈추고 괴로워했다.해서는 안 될 짓을 하는 것 같은 내부의 반발, 산에 오르기를 멈췄다.
“우워어!”
강흑성은 엄청난 고함을 터트렸다.호수의 수면을 뒤흔들어 출렁이게 할 정도의 외침, 사자후다.그 소리에 일행은 괴로운 경직에서 깨어났다.
“뭐, 뭐야 이건?”“사술이야!”“맞아 사술!”
박준의 놀람 뒤로 박현과 무슬란의 소리치며 작두칼을 움켜잡았다. 자신들이 걸렸던 사술이 다시 덤벼들면 칼로 끊어버리겠다는 듯이다. 그런 둘과 달리 그렉은 강흑성의 안색을 살폈다. 삽시간에 창백해져서다.
“흑성이 너 괜찮은 거냐?”
그제야 박준과 박현과 무슬란도 강흑성이 편치 않은 상태임을 깨달았다.뭔지 모를 사술을 파훼하려고 한순간 내력을 소모한 것이 분명하다.아니 그 직전에도 그랬다. 수림을 쓸어버리는 암기술을 펼쳤던 거다.
“뭐야? 얼굴이 안 좋은데?”“사자후를 해서 그렇구나!”
일행의 반응이 아닌 호수의 거대수를 응시하며 강흑성은 말했다.
“저 나무괴물이 다른 공격을 해올 겁니다.”
그전에 유리한 곳을 찾아 움직여야 한다는 말, 일행은 돌아서는 강흑성을 즉각 따랐다. 미친 듯이 흑강석 산을 올랐다. 뒤에선 다른 소리들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