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강호. 72. 검은 인간.
72. 검은 인간.
호수다.어둠조차도 스며들지 못하는 수림 속에 존재 하는 호수엔 기이한 것이 있다.하늘로 치솟은 기둥처럼 거대한 거대수다.은회색의 비늘로 뒤덮인 나무다.저런 것은 처음 봤다. 있을 거란 생각도 못해 봤다.
‘이, 이것들이 뭐야?’
경직한 숨을 넘기지 못한 채로 크리스티앙은 눈썹을 떨었다. 사냥감들을 추적한 끝에 드디어 뒷발을 잡을 상황, 그런데 예상치 못한 것들과 만났다. 호수의 괴이한 거대수와 거대한 괴물이다. 온통 은회색비늘이다.
‘저게 도대체!’
이종부하 세 놈이 괴성을 지르며 공격하는 것은 작은 산만하다.저 모양을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트라이울프와 자이언트레빛과 테스라와 늑대사슴과, 수림에 존재하는 모든 짐승들을 얽고 뭉쳐 놓은 형상이다.
‘저런 게 어떻게 존재하는 거야!’
부릅뜬 눈으로 괴수의 무지막지한 움직임을 바라보던 크리스티앙은 섬뜩한 기운을 감지했다.치뜬 눈으로 원인을 봤다. 호수 중앙의 거대수다.바람에 가지가 흔들리는 것 같은 모습, 그런데 한순간 은빛을 폭사한다.
“피해라!”
본능의 예감으로 소리치며 크리스티앙은 장검을 휘둘렀다. 팔문육합검, 천지종단의 묘리를 토해낸 장검의 일섬은 날아오는 은빛 섬광을 갈랐다.
‘읏!’
강력한 반발력을 느낀 크리스티앙은 휘청거리며 세 걸음을 물러났다.그 순간 비명들의 결과를 봤다.수하들, 쉰여섯이란 숫자의 절반이 쓰러졌다.호수 중앙의 괴이한 거대수가 날린 은회색 나뭇가지 창에 당했다.
“이런 개 같은!”
격노와 충격으로 소리친 크리스티앙은 또 다른 변화에 경직했다.은회색 나뭇가지 창에 몸이 뚫린 수하들이 변한다.나뭇가지가 스며들더니 그 빛깔이 되고 있다. 은회색 비늘로 덮인다. 그러더니 다시 일어선다.
“뭐, 뭐야!”
쉰여섯 중에 쓰러졌다 괴물이 되어 다시 일어선 스물다섯 명, 그들이 남은 자들을, 동료들을 공격한다. 크리스티앙에게도 무섭게 달려들었다.
‘이것들이!’
충격과 경악 위로 분노를 덮어씌운 크리스티앙은 장검을 휘둘렀다. 사문인 팔문육합검문의 비전이자 성명절기 팔문육합검을 전력으로 펼쳤다. 은회색비늘괴물이 된 수하들의 형상을 동강내고 쪼개며 소리쳤다.
“호수의 괴물나무가 원점이다! 로켓을 쏴라!”
괴물로 변한 동료들과 혼전을 벌이던 자들 중 모이앙이 바로 반응하며 움직였다. 장갑배낭의 등짐을 지고 있던 수하를 붙잡아 장갑을 열었다. 육연장의 로켓포워드를 어깨에 견착하고 호수의 거대수를 조준했다.
“먹어라!”
블랙엘프의 격한 외침과 더불어 로켓의 불길이 터졌다. 아주 오래된 형태지만 여전히 효과적이기에 사용하는 휴대용 로켓포, 불꼬리가 선명하다.모이앙의 뒤로 화염을 터트리며 날아간 불의 선은 거대수를 강타했다.
그어어어!
수림을 흔들며 끔찍한 소리가 퍼졌다. 귀가 아닌 머릿속을 파고들어 흔드는 소리다. 그릇속의 내용물을 휘젓듯이 뇌를 휘젓는 소리, 끔찍하다.
“억!”
크리스티앙은 휘청거렸다. 신형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어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 상태로 호수의 거대수를 봤다. 파도를 일으키면서 흔들리고 있다. 로켓 여섯 발을 맞은 결과다. 가지들이 떨어졌고 불이 붙었다.
“괴물아, 맛이 어떠냐?”
득의한 미소를 피워내며 크리스티앙은 무릎을 다시 세웠다. 그러며 보니 수하들은 괴물로 변한 놈들을 거의 때려잡았다. 이종 세 놈은 거대한 괴수를 상대로 미친 듯이 싸우고 있다. 괴수는 제대로 운신을 못한다.
‘괴물 나무의 조종을 받고 있었던 거야.’
그렇다는 걸 이제 확인했다. 괴물로 변한 수하들도 그렇고 저 거대괴수도 그렇고 맥울 못 춘다. 호수의 거대수가 로켓을 제대로 맞은 결과다.
“버러지 같은 것들이 감히······”
승리자의 미소를 품던 크리스티앙은 다시 경직했다.
‘저!’
호수의 거대수, 그것이 호수 물을 밀어내며 일어서고 있다.
* * *
“시베리아 개신발······!”
박준의 신음 같은 욕을 일행은 제대로 듣지 못했다.박준처럼 기함한 눈을 치뜰 뿐이다.호수의 거대수 괴물, 그것이 일어섰기 때문이다.호수에 다리를 숨기고 앉아 있다가 일어서는 것처럼, 두 다리를 세웠다.
“도대체 저게 뭐야?”
박현의 의문과 충격은 모두 마찬가지, 일행의 시선 속에서 호수의 거대수 괴물은 밖으로 나가고 있다. 남도의 제왕이 분명한 놈들이 미니건을 발사하고 다시 로켓을 쏜다, 무시무시한 그 공격을 거대수는 받아낸다.
“이 틈에 우린 산을 넘어가는 게······”
강흑성을 돌아보며 그 말을 냈던 그렉은 입술을 움찔하며 경직했다.일행을 멈추게 하고 상황을 주시하던 강흑성이 위를 올려다보고 있다.얼마 남지 않은 흑강석 산의 정상이다.그런데 거기 기이한 존재들이 있다.
‘저건 또 뭐야······!’
* * *
흉악하고 광포한 괴성을 토해내며 싸우는 이종의 수하들, 그들의 몸에 돋은 칼날 같은 뿔이 뭔지 크리스티앙은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거대괴수가 다시 힘을 내고 있고, 그에 맞춰 저들이 뿔을 날린다는 거다.
‘저!’
은회색 비늘의 맹수들을 한데 뭉쳐놓은 것 같은 거대괴수, 그것은 이종 세 놈에게 찢기고 뜯기고 흩어지고 있다. 너무나 빠르고 강한 파워에 속수무책이다. 그런데 지금 그 싸움에 정신을 뺏기고 있을 때가 아니다.
‘나무 괴물!’
놈이 눈앞에 닥쳐왔다.두 갈래 뿌리가 다리가 되어 일어선 놈이 호수 밖 땅에 발을 디뎠다.미니건의 불벼락은 놈의 몸통을 뚫지만 그뿐이다.은회색액체가 넘쳐나면 진흙처럼 메워진다. 로켓도 더는 효과가 없다.
‘이 죽일 놈이!’
격노를 전신으로 풀어내며 크리스티앙은 모든 내력을 끌어올렸다.웅하고 울음을 터트리는 장검을 양손으로 움켜잡고 달렸다.나무를 향해 도약했다. 그 순간 닥쳐오는 은회색 가지들을 육합만참으로 갈라냈다.
‘쪼개버린다!’
거대수의 가지를 차고 허공 높이 도약한 크리스타응은 검신합일로 낙하했다.
* * *
검은 인간들.정확하게 전신이 암흑빛으로 보이는 인간 형상의 존재들이다.보통의 성인 남자와 비슷하지만 외형의 굴곡은 호리호리 하다고 해야 할 체격이다.얼굴 윤곽은 없고 눈동자도 없다. 하지만 보고 있다.
‘무생물.’
그렇다는 걸 강흑성은 직감했다. 그렇기에 기감을 전혀 못 느꼈다.그래서 더 기이하고 놀랍다.저들은 분명 강흑성 자신과 일행을 주시하고 있다.의지를 가진 거다.기감도 못 느낄 무생물인데 그게 어찌 가능할까.
‘흑강석으로 이뤄졌구나.’
거듭 깨달아지는 것은 저들의 본질이다.지금 밟고 서 있는 이 산의 본질, 흑강석이 저들 존재의 근원이다.이걸 알아내고 이해하려는 짓은 부질없다.저들이 존재하고 일행을 주시하며 갈 길을 막았음이 중요하다.
‘위험 해.’
강흑성이 미간을 꿈틀거리는 그 순간 검은 흑강석 인간들이 움직였다.
* * *
전율스럽다할 감각 속에서 크리스티앙은 움직임을 멈췄다.허공 높이 도약해 팔문육합검의 진신절예 천지종단을 펼쳤다.초식의 수준이 아니라 온 의지와 내력을 더한 일격이다.그 무엇이라도 두 쪽으로 갈라진다.
‘네놈이 아무리 기괴한 괴수라 해도······’
고개를 든 크리스티앙은 거대수의 최후를 봤다. 꼭대기부터 두 쪽으로 갈라져 휘청거리는 모습이다. 다리가 된 두 갈래 뿌리의 사이가 벌어졌다.
“크하하하하!”
크리스티앙은 커다란 웃음을 터트렸다.승자의 웃음이다. 그런데 그 순간 괴사가 일어났다.갈라진 거대수 안에서 검은 인간들이 튀어나왔다.
‘뭐!’
본능적인 움직임으로 크리스티앙은 검을 펼쳤다. 눈앞으로 번개처럼 닥쳐오는 검은 인간을 갈랐다. 그런데 불꽃이 튀고 검은 인간은 비껴지나갔다.
‘이, 이것들이!’
연속적인 바람처럼 닥쳐오는 검은 인간들의 공격에 밀려 크리스티앙은 연신 뒷걸음질 쳤다. 그러며 보니 반 남은 수하들은 속속 쓰러지고 있다.
‘익!’
거대수를 가르느라 내력을 소진한 터, 크리스티앙은 토혈이 넘어오는 것을 삼켰다. 검에 부딪치는 검은 인간들의 정체를 그 속에서 구분했다.
‘인간이 아니야!’
그렇다, 이들은 인간도 아니고 야수족은 더욱 아니다.호수 양 옆에 솟은 흑강석 산, 산이라고 부를 높이는 아니지만 분명 산인 저것과 같은 존재다.세상에서 가장 강도가 강한 암석, 날카롭기가 칼과 같은 돌이다.
‘이런 것들이 존재하다니!’
은회색 비늘로 덮인 거대수와 괴수들에 이어 이젠 흑강석 인간이다. 검에 맞은 몸에 흠집은 나지만 갈라지지 않는다. 불꽂만 무섭게 일어난다.
‘도대체 내가 어딜 온 거야!’
사력을 다해 검을 휘두르며 크리스타앙은 후회와 분노를 삼켰다.
* * *
“공격이다!”
강흑성은 패천마혈을 세우며 일행에게 외쳤다. 그렉은 이미 상황을 인지하던 터고 박현과 무슬란도 즉각 반응하며 고리 눈을 부릅떴다. 가장 늦게 인지한 박준이 어리둥절할 때 흑강석 인간들의 공격이 닥쳐왔다.
“으헉!”
박준이 놀라 소리치던 순간, 그 찰나의 직전에 강흑성은 패천마혈로 흑강석 인간을 갈랐다. 무원도법의 진의와 힘이 담긴 무원일격의 베기다.검은 형체는 벼락처럼 닥쳐와 허리가 잘린 두 동강으로 일행을 스쳐갔다.놀랍고 경악스러운 건 그다음이었다.흑강석 산비탈을 굴러내려 가던 검은 인간은 다시 몸을 합쳤다.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달려 올라온다.
“이것들 뭐야!”
박준이 소리쳤지만 대답해줄 이는 없다. 검은 적들의 공격을 막느라 정신없다. 박현과 무슬란은 작두칼로 내리치면서 그 파편에 맞아 피투성이다.
“흑강석이야!”
박현이 형 박준에게 소리쳐 알렸다. 지금 싸우고 있는 것들의 정체다.
“뭐? 흑강석이라고?”
황당한 표정을 만든 박준은 튀어드는 흑강석 파편에 맞아 찢어지는 피부와 옷으로 현실을 절감했다. 소리나게 이를 물고 t-rex를 발포했다.
“죽어라 개신발 놈들아!”
거대괴수전문 사냥총이 울어대는 소리가 수림과 어둠을 흔들었다.
* * *
“쿠헉!”
토혈하며 뒤로 미끄러져 간 크리스티앙은 검으로 땅을 찍으며 몸을 멈춰 세웠다. 울컥거리며 거듭 튀어나오는 토혈을 시원하게 뱉어내고 입가를 손등으로 닦았다. 그렇게 앞을 봤다. 흑강석인간들이 나란히 서 있다.
“부문주······!”
옆에서 부르는 소리에 크리스티앙은 고개를 발작적으로 돌렸다.총령 모이앙이 피투성이가 된 몰골로 주저앉아 있다.그 외엔 아무도 안 보인다. 아니 아직 있긴 하다. 이종 세 놈은 여전히 괴수와 싸우고 있다.
“흐······ 내가 이런 꼴을 겪을 줄은······”
처절한 분노와 모멸감을 참담한 미소로 삼키던 크리스티앙은 소리를 들었다.총소리, 흑강석 산에서 퍼져 나온 소리다.무슨 소린지 안다.접전이 시작되던 순간 추적하던 놈들을 인지했다. 놈들도 싸우는 중인 거다.
“너희 놈들······ 뭔지 모르지만······ 난 너희에게 안 죽는다······!”
핏발 선 눈으로 이를 갈며 일어선 크리스티앙의 머리 위로 밝은 빛이 내리쳤다. 수림 상공을 날아온 샤크 세대, 벌컨을 지상으로 퍼붓는다.
투르르르릉.
천둥벼락이 치는 것 같은 굉음과 함께 불벼락은 수림과 호수를 까뒤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