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강호. 73. 주술사.
73. 주술사.
적은 너무나 빠르고 위험하다.검은 형체만이 분간될 정도의 엄청난 스피드로 공격 해 온다.그렇다고 해도 파괴할 수만 있으면 되는데 그게 안 된다.가르고 동강내면 다시 뭉쳐서 온다.무생물이라서 죽질 않는다.
‘이것들을!’
강흑성은 너무나 강렬한 분노와 살심의 충동을 제어 하느라 혀를 깨물었다. 일행은 흑강석인간들의 공격으로 피투성이 혈인이 됐다. 공격해 오는 적들은 아무리 후려쳐도 끄떡없고, 파편은 칼날처럼 육신을 친다.
‘이대로는!’
일행과 자신을 보호할 방법이 없다고 강흑성은 판단했다. 운신이 어려운 흑강석 산비탈 위라는 지형, 아무리 가르고 동강내도 데미지를 입지 않는 흑강석인간들,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준동하는 마기를 쓰는 거다.
‘아무것도 못하고 당할 바엔!’
패천마혈이 그 순간 광포하게 울어댔다.주인의 결정을 환영하는 울음이다.그 울음에 공명하며 강흑성은 속에서 터지려는 마기를 개방했다.
‘죽인다! 모조리 소멸해 버린다!’
처절한 격노와 마기에 강흑성은 휩싸였다.흑청빛 눈동자는 붉은 빛이다가 암흑으로 변했고 온몸의 모공에서는 혈광이 폭발했다.그 순간 다른 변화가 겹쳤다.하늘에 나타난 샤크다. 세대의 기체는 불벼락을 냈다.
콰르르르르.
샤크의 불벼락, 지상으로 퍼붓는 벌컨의 재앙은 모든 것을 휩쓸었다. 혈광을 폭사하던 강흑성과 그 빛 속에 먹혀버린 일행을 뒤덮었다. 공격하던 흑강석 인간들을, 호수와 그 앞에서 싸우던 모든 존재들을 두들겼다.
* * *
호수가 뒤집혔다. 땅이 뒤집혔다. 갈라진 거대수와 그 안에서 나온 흑강석 인간들을 부숴버렸다. 눈부신 빔의 우박을 퍼부어 모든 걸 가루 냈다.종말과도 같은 그 현장을 부릅뜬 눈으로 바라보며 크리스티앙은 외쳤다.
“우리가 남도의 제왕이다! 크하하하하!”
피를 토하던 입으로 앙천광소를 터트린 크리스티앙은 가라앉는 호수의 광경을 응시했다. 샤크 세대가 뿜어낸 벌컨의 재앙, 과연 어마무시하다.이런 힘 앞에선 그 무엇도 무용하다. 대륙전쟁은 이래서 결판난 거다.
‘크리듐에너지 기반의 무력은 최강이야!’
샤크 세대로 상해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이젠 호수를 까뒤집었다.뭔지 모를 것들도 모조리 가루로 만들었다.에너지를 거의 다 썼지만 이겼다.머뭇거리다 죽는 것보다는 가진 걸 쏟아 붓고 살아남는 게 최선이다.진즉에, 애초부터 이랬으면 수하들을 잃진 않았을 거다. 하지만 사냥을 하기 위해서였고 포착이 먼저였다. 그런데 샹그릴라 놈들도 흩어졌다.
‘수급을 가지고 돌아가긴 힘들겠는데.’
흑강석 산으로 시선을 돌린 크리스티앙은 미간을 찌푸렸다.벌컨의 불벼락으로 산의 높이가 삼분의 일이나 줄어들었다.정상 언저리부터 날아갔다. 저렇게 된 속에서 추적하던 놈들의 수급을 건진다는 건 어렵다.
‘응?’
찌푸린 미간에 골을 그린 크리스티앙은 기이한 혈광을 봤다.흑강석 산의 비탈에 박혀 있는 것 같은 혈광이다.보는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든다.
‘저게 뭐······’
혈광을 응시하던 크리스티앙은 모이앙의 놀란 숨소리를 들었다.
“헛!”
흑강석 산, 잿더미처럼 윗부분이 날아간 그곳에서 검은 뭔가가 일어섰다.수면을 차고 오르는 잉어처럼 솟구친 검은 형상.그것이 검은 인간이란 걸 알았다.그냥 검은 인간이 아니라 등에 검은 포신을 단 놈이다.
‘저!’
포신이 폭발했다.검은 벼락을 하늘로 쐈다.지상에서 천공으로 터지는 뇌전 같은 그것이 샤크를 뚫었다.연속해서 발포한다.나머지 두 대의 샤크도 동체가 뚫렸다.화염이 터져 나온다. 동체를 기울며 추락한다.
‘이, 이런 개 같은!’
어처구니없는 격노 속에서 크리스티앙은 부들거렸다.호수를 까뒤집고 보이는 것들을 모조리 가루 낸 샤크들이 추락하고 있다.호수에 처박힌다. 화염을 발산하며 폭발한다.무시무시한 그 힘에 밀려 굴러갈 뿐이다.
* * *
암흑의 눈동자를 뜬 강흑성은 고개를 들었다.흑강석 인간이 포와 합체된 형상으로 샤크를 추락시키는 것을 봤다.그놈 외에 다른 놈들이 일어서고 있다.양 팔에 총신을, 아니 포신을 단 놈들이다. 그 팔을 겨눈다.
“죽인다.”
암흑의 울림 같은 음성을 낸 강흑성은 걸음을 냈다.그 순간 패천마혈이 지옥의 울부짖음을 토했다.핏빛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혈광을 폭사하며 공간을 갈랐다.흑강석 인간들을 강타했다.모조리 형상이 흩어졌다.
지옥마검.
강흑성은 지옥에서 현신한 지옥의 사신이 되어 몰아쳤다.한걸음을 내딛는 순간 흑강석 인간들의 형상을 흩어버렸고, 두 걸음을 내딛는 순간 소멸시켰다.붉은 벼락처럼 몰아치는 지옥마검의 공세는 모든 걸 갈랐다.
* * *
“크으······”
신형을 겨우 가누며 크리스티앙은 그 광경을 봤다.흑강석 산비탈에 박혀 있던 것 같은 혈광, 그것은 인간이었다.추적하던 놈들 중의 일인이다.젊은 사내, 황금강 염진을 일격에 죽였다는 그자다.그가 검을 친다.
‘미친······!’
형용할 수 없는 경악으로 크리스티앙은 얼어붙었다.운신조차 못할 육신의 고통을 이 순간 느낄 수가 없다.샹그릴라 일당의 젊은 사내가 흑강석괴물들을 죽이고 있다. 혈광을 터트리는 검으로 갈라 소멸시킨다.
‘소멸······!’
흑강석인간들, 아니 괴물들은 흩어져 다시 뭉치지 못한다.지옥에서 현신한 사신 같은 저자의 검이 그렇게 만들고 있다.마치 근원을 소멸시키는 것 같은 검이다. 가르고 동강내도 다시 공격하던 놈들은 흙이 됐다.
‘저런 자를······!’
전율과 두려움으로 크리스티앙은 떨었다.지금 보고 있는 저 검은 자신이 상대할 수 있는 게 아니다.저 검은 무위를 설명할 수 없는 검이다.
‘샤크 수십 대가 있어도 소용없을 검······!’
지옥에서 솟아난 것 같은 사내와 검은 흑강석 산을 갈라 내렸다.
* * *
강흑성이 검을 갈라 내린 순간 일행은 깨달았다. 딛고 있는 흑강석 산이 죽었다는 거다. 칼날처럼 거칠고 강하던 흑강석이 흙으로 변했다. 혈광이 파고들어 죽인 거다. 흑강석을 이루던, 괴물들의 근원을 소멸시켰다.
“미, 미쳤다······!”
박현이 기함한 얼굴로 외마디를 냈다. 신음 같은 그 한마디의 심정을 일행 모두가 아는 터, 그저 눈을 부릅뜨고 강흑성을 볼뿐이다. 어떻게 저럴 수 있는지 모르지만 했다. 전설의 초극강 고수가 현신한 모습이다.
“흐, 흑성아.”
그렉이 조심스럽게 불렀다.강흑성이 검을 내리고 서 있다 돌아본다. 그 눈동자가 암흑빛이어서 그렉과 일행은 흠칫했다.그런데 검을 올려 세운다. 일행에게 다가온다.아무리 봐도 저건 정상적인 강흑성이 아니다.
“흑성아!”“야 뭐야! 왜 그래!”“개신발, 무섭게 왜 저러냐!”
그렉이 격렬한 소리로 다시 강흑성을 불렀다.
“강흑성!”
* * *
머릿속을 때리는 울림에 강흑성은 흠칫했다. 자신이 걸음을 내고 있던 것임을 깨달았다. 검을 세우고서다. 그렇게 나가던 곳에 일행이 있다.
‘저들······’
두려움을 품은 일행의 모습이 혈광 뒤로 보인다, 그런데 혈광이 짙어지면서 일행들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용암처럼 살심이 치솟는다.거부할 수 없는 의지, 강흑성 자신을 차지한 마기라는 것을 알았다.
‘안돼!’
천둥 같은 외침을 터트리며 강흑성은 혀를 물었다. 통증이 느껴지지 않지만 거듭 격하게 물었다. 미세하게 일어난 그 감각으로 의지를 붙잡았다.
‘물러나라!’
강흑성은 명령했다. 자신을 차지하려는 마기에게 눈 부릅뜨고 소리쳤다.
‘너 따위에게 잡아먹히지 않는다! 내가 널 잡아먹을 거다!’
강흑성은 으르렁거렸다. 대호가 산을 울리며 포효하듯 마기에 저항했다. 아니 겁박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이 타이그란족이란 것을, 호랑이 무늬가 전신에 돋아났다는 것을 모른다. 온 의지로 마기를 움켜잡았다.
‘내 몸과 영혼의 주인은 나다!’
으르르 전신을 떠는 강흑성의 모습이 변했다. 전신으로 발산하던 혈광은 스르르 잦아들더니 어디론가 사라졌고, 암흑의 눈동자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흑청빛 신비로움을 흘려내는 눈, 그 시선으로 일행을 주시했다.
“흐, 흑성아?”
그렉의 부름에 강흑성은 엷은 미소로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대단한 남자지?”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 난데없고 느닷없는 음성에 크리스티앙은 경직했다. 누군가 자신의 곁으로 기척 없이 다가와 속삭인 거다. 아무리 큰 부상을 입었고 정신을 팔고 있던 상황이라 해도 이건 놀라운 일이다.
‘익!’
사력을 다해 크리스티앙은 검을 후려쳤다.횡선을 그은 일격은 목소리의 주인을 갈랐다.그런데 허상이다. 검이 미치는 범위 바로 뒤로 물러났다.
“아직 검을 휘두를 힘이 남아 있구나?”
젊은 사내다, 하얗고 갸름한 얼굴로 웃고 있다. 푸른 눈동자에 이가 유난히 희다. 검은 피풍의 같은 걸 걸쳤는데, 아무리 봐도 저건 깃털 같다.
“너, 넌 뭐야?”
마지막 힘을 짜내 일검을 펼친 터라 크리스티앙은 얼굴이 백지장처럼 변했다.주저앉아 있던 상황, 상체마저 쓰러지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그러며 보니 모이앙의 상황이 보인다. 정수리에 검은 깃털이 꽂혔다.
“뭐, 뭐야?”
모이앙이 전신을 부들거리고 있다, 눈을 까뒤집었고 입에선 거품이 흘러나온다. 그런 모이앙을 돌아본 정체모를 놈이 웃는다. 무서운 미소다.
“검은 엘프족의 피면 더 효과가 있을 것 같아서 말이지.”
무슨 소린지 크리스티앙은 바로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이내 알았다. 이제까지 보고 겪은 일들이다, 눈앞의 이 놈, 하얀 얼굴의 이놈이 만든 거다.
“주, 주술사구나!”
하얀 얼굴에 하얀 이를 드러낸 젊은 사내는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세상이 그렇게 부르지.”
크리스티앙은 부들거리는 시선으로 모이앙의 변화를 봤다.형상이 변하고 있다.우드득거리는 소리를 내는 몸에서 뼈들이 튀어나온다.그런데도 고통을 못 느끼는게 확실한 저 눈은 이지를 상실한 괴물의 눈이다.
“좋은 걸 가지고 왔던데, 내가 잘 쓰도록 하지.”
검은 깃털 피풍의의 주술사, 그가 하는 말을 크리스티앙은 바로 알아들었다.모이앙이 달려가서다. 까뒤집힌 곳을 파헤친다.은빛비늘덩어리 괴수와 이종 세 놈이 싸우던 곳이다. 뭔가를 찾아내 미친 듯이 먹는다.
‘저!’
모이앙은 다시 변한다. 이종 세 놈이 그랬던 것처럼 칼날 같은 뿔을 전신으로 돌출한다. 형상도 커진다. 주변의 것들이 달라붙어 점점 커진다.
‘개 같은······!’
마침내 변화를 멈춘 모이앙이 두 팔을 하늘로 펼치며 괴성을 지른다.
우워어엉!
은빛 칼날들이 거대수의 가지처럼 뻗어 나온 형상, 모이앙은 괴물이 됐다.
* * *
“저건 또 뭐야!”
박준이 총을 움켜잡으며 반응했다. 기함하는 것이 더 있을까 싶던 참에 일행은 또 기함했다. 남도의 제왕 놈들 중에 있던 검은 엘프놈이다.그런데 괴물로 변했다. 블루마운틴보다 배는 큰 형체, 전신이 칼날이다.
“저놈은 누구야?”
박현이 작두칼로 겨눈 자를 일행은 응시했다.검은 피풍의를 걸친 자다.얼굴이 하얗고 눈은 파랗다.하얀 이를 드러내고 소리 없이 웃고 있다.
“주술사인 것 같습니다.”
강흑성이 낸 한마디에 일행은 흠칫하며 서로를 돌아봤다. 그렇게 이제까지 겪은 일을 더듬고 깨달았다. 호수의 거대수와 괴물들, 흑강석인간, 주술사의 작품인 거다. 헤아릴 수 없는 자들의 능력이 만든 현실인 거다.
“제길, 주술사라니······!”
민머리에 주름을 가득 만든 무슬란은 작두칼을 움켜잡았다. 그러나 그 눈에 든 원초적인 두려움은 감추지 못했다. 주술사란 존재는 그런 거다.세상이 뒤섞이며 생겨난 존재, 그렇게 뒤섞인 세상의 힘을 쓰는 존재다.
“주술사든 뭐든, 누구도 우릴 해칠 수 없습니다.”
흑청빛 안광을 흘려낸 강흑성은 일행의 앞으로 걸음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