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76화 (77/172)

혹성강호. 76. 퓨터.

76. 퓨터.

그렉을 등지고 선 강흑성은 흉악한 괴수들의 숨소리를 피부로 느꼈다. 퓌르르르, 들릴 듯 안 들리는 듯한 저 소리는 저놈들이 의사소통을 하는 거다. 영악함을 넘어 교활한 괴수들, 퓨터들은 팀을 이뤄 사냥한다.

‘공룡.’

퓨터의 근원이 그것임을 강흑성은 상기했다.어머니로부터 들어 알고 있고 이 순간 아버지의 기억이 떠오른다.지구에 재앙으로 닥친 두 번의 거대한 전쟁 훨씬 이전, 지구는 인간이 아닌 공룡들이 지배했었다.퓨터는 바로 그 공룡의 후예다. 거대하고 포악한 삼바바에 비교하면 귀여울 정도의 크기지만, 그래도 성인 남자를 단번에 물어죽이고 후려치는 놈이다. 이놈들의 키는 대략 이미터 정도, 저 아가리는 아주 흉악하다.

‘눈에 보이는 놈들이 여섯 마리면······’

안 보이는 놈들이 그만큼 더 있다.이 교활한 놈들은 엄청난 스피드와 강한 육체능력에 더해 이렇게 팀플레이를 한다.강적들을 사냥하는 본능이다.무적의 삼바바라고 해도 퓨터들 무리와는 싸우려 하지 않는다.

‘최소 서른 마리가 주변에 있고 계속 부르고 있구나.’

꾸워 꾸워 하는 소리가 수림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지금 강흑성 자신과 대치한 놈들이 내는 숨소리의 의사소통과 다르게 멀리 있는 놈들을 부르는 소리다. 동료를 단번에 동강낸 적에 대한 경고와 분노의 소리다.

“흑성아······!”

뒤에서 부르는 그렉의 목소리에 강흑성은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움직이지 않고 공격해 오는 놈들만 상대하면 됩니다.”

그렉은 무슨 소린지 알아듣고 거대수를 등지고 섰다. 강흑성이 퓨터들을 상대할 것이다. 그중에서 빠져 자신을 노리는 놈들만 상대하면 되는 거다. 그런데 저놈들의 발톱에 걸리면 철갑기공도 갈가리 찢겨 나간다.

‘제길, 저런 괴수들을 움바바족은 어떻게 부렸던 거야?’

그런데 연이어 드는 의문은 거대괴수 삼바바다.퓨터의 대형모델이라고 하긴 조금, 아니 많이 다르지만 어쨌든 그놈도 같은 류다.그놈의 이름이 삼바바인 이유가 움바바족의 명칭과 무슨 관계가 있는 건 아닐까?

‘퓨터들을 부린 게 움바바족이니까 관계있는 거 아냐?’

의문을 침과 함께 삼킨 그렉은 빔라이플을 겨누고 긴장했다.강흑성을 시야에 넣고 그 너머로 벌려선 퓨터들을 바라봤다.한순간 놈들이 움직인다.그야말로 벼락같은 스피드의 공격, 여섯 놈이 강흑성을 물어뜯는다.일순간 흑청빛 안광을 폭발하듯 발산한 강흑성은 패천마혈을 일직선으로 찔렀다.무원일격, 중앙에서 달려들던 퓨터의 미간을 관통했다.그 순간 검을 놓고 좌측 놈의 머리통을 수도로 갈겼다. 수박처럼 터트렸다.격렬한 계류의 흐름처럼 강흑성은 우측으로 몸을 돌리며 왼 팔꿈치를 박았다.우측에서 달려들던 놈의 흉악하게 벌린 아가리를 치고 돌아갔다.흉측한 이빨들이 흩어져 날리는 가운데 퓨터의 턱이 위아래로 쪼개졌다.그 순간 강흑성은 다시 검을 잡았다. 머리에 박혀 휘청거리며 쓰러지던 놈에게서 뽑아냈다. 그 동작으로 원을 그리며 붉은 검광을 갈라냈다.점프하는 세 놈의 움직임을 후려갈겼다. 붉은 벼락의 채찍을 후려치듯이.한번 같으면서 세 번인 무원진격에 퓨터 세 마리가 토막 나 떨어졌다. 선혈을 흘려내는 놈들을 보며 그렉은 눈가를 떨었지만 강흑성은 담담했다.

“돌아가야겠습니다.”

주변에서 몰려드는 퓨터들의 움직임을 감각에 넣으며 강흑성은 몸을 돌렸다.숨어 있던 삼십 마리가 공격해 오지 않는 이유는 동료들이 당한 걸 봐서다. 그렇지만 이놈들은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다 같이 있어야 한다.

“제길 저녁거리 구하와 왔다가 이거, 음, 이거라도 가져가서 구워먹을까?”

토막 난 퓨터의 사체를 보고 엉거주춤 말한 그렉은 에잇 하며 등에 짊어졌다. 강흑성이 뭐라 하기도 전에, 시선도 맞추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 * *

“저 제기랄 것들이······!”

무슬란은 작두칼을 움켜잡고 수림 속을 노려봤다.파란 불빛처럼 보이는 퓨터들의 눈알은 어느새 이백 개에 육박한다.백 마리가 주변을 포위했다.달려들지 않는 이유는 불을 무서워해서가 아니라 강흑성 때문이다.

“야 냄새가 제법인데?”

박현은 불에 굽는 퓨터고기를 살피며 코를 벌름 거렸다. 현재 상황을 전혀 개의치 않는 거다. 그렇기는 박준도 마찬가지, 고기를 칼로 쑤셔본다.

“거의 익은 거 같은데? 햐,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다?”“그러게, 형은 퓨터고기 안 먹어봤지?”“당근이지, 너는? 움바바족은 먹냐?”“어딜? 과거에 퓨터들하고 지낼 때도 고기는 안 먹었다는 걸로 알고 있어. 저놈들 그래도 한 때는 우리종족의 일원이나 같았는데, 쩝 아쉽네.”“야 난 그게 정말로 신기하고 궁금하다. 움바바족은 퓨터들하고 어떻게 통한 거냐? 영성이 통한다고 하잖아? 그게 정확이 어떤 걸 말하는 거야?”

둘의 수작하는 걸 보는 무슬란의 얼굴이 못마땅하게 구겨지는 걸 그렉은 모른척했다. 아니나 다를까 버럭 소리 지르듯 끼어들어 대신 대답한다.

“우리종족도 주술사가 있었다고요!”

깜짝 놀란 박준은 무슬란을 보며 어벙한 표정이다가 대번에 분노를 발산했다.

“내가 귀먹은 거로 보이냐 이무식한 쉐이야! 얘길 해주려면 곱게 해주지 왜 소리 지르고 지랄이야!”

무슬란은 박준이 아닌 박현을 돌아보고 또 소리친다.

“너는 소풍 나왔냐! 퓨터놈들이 저렇게 우글거리는데 해해호호가 되냐!”

박현은 미간을 찌푸린 채 서 있는 무슬란을 올려다봤다.

“뭐 어쩌라고? 무슨 방법 있어?”

되는 대로 해야지 하는 박현의 중얼거림, 그의 시선이 가는 곳에 있는 강흑성을 무슬란도 돌아봤다. 강흑성은 아까부터 수림만 보고 있었다. 정확하겐 퓨터들을 보고 있는 거다. 그랬는데 박준을 돌아보고 말한다.

“먹지 마십시오.”

거의 구워진 퓨터 고기를 칼로 자르려던 박준은 멈칫했다. 그렉과 무슬란과 박현도 강흑성의 눈빛과 음성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일행의 시선을 받으며 강흑성은 느릿하게 일어섰다. 불 옆을 떠나 수림속의 파란 눈알들을 향해 걸음을 냈다. 정확히 스무 걸음을 가서 멈췄다.

‘느껴져.’

수림 속의 파란 빛, 퓨터들의 눈을 바라보며 강흑성은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그렇게 느끼고 인지했다.퓨터들이 보내는 적의와 분노와 호기심이다.이건 로봇 삼백이와 교감을 할 때와 비슷하다. 그렇다, 교감이다.

“누가 대장이냐?”

강흑성은 수림을 향해 그 물음을 던졌다. 불 옆의 일행은 뭐하는 거야 란 얼굴로 서롤 돌아봤다. 그런데 수림에서 퓨터 한마리가 불쑥 나왔다.

“너구나.”

강흑성이 눈동자를 빛내는 앞으로 퓨터는 다가왔다. 그 모습을 본 일행은 황당함을 삼켰다. 마치 강흑성의 물음에 대답하듯 퓨터가 나와서다.

퓌르르르.

사이한 숨소리를 흘려낸 퓨터는 강흑성을 두고 맴돌았다.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고, 꼬리를 쉬지 않고 흔들면서 긴장을 드러냈다. 그렇게 강흑성과 다시 마주 섰다. 놈의 등에는 꼬리까지 붉은 선이 있었다.

“분명히 하자. 너희가 먼저 공격했다.”

강흑성이 흑청빛 눈을 꿈틀거리며 말하자 대장 퓨터는 흠칫하며 물러섰다. 하지만 강흑성이 한 말의 의미를 알아들은 듯, 불쪽을 돌아본다.

“안 먹을 거다.”

강흑성이 말하자 그렉이 얼른 행동했다. 불에 굽던 퓨터의 몸통을 옆으로 옮겼다. 그렇게 물러나자 퓨터들이 다가와 물더니 빠르게 사라진다.

퓌르르르.

다시 울음소리 같은 걸 낸 대장 퓨터, 놈이 돌아서 사라지는 걸 강흑성은 말없이 지켜봤다. 곧바로 수림 속에 박혀 있던 푸른빛들도 사라졌다.

“하, 저놈들 갔네······”

박준은 허탈한 건지 뭔지 모를 심정으로 중얼거렸다.백여마리가 넘게 포위했던 퓨터들이 돌아간 거다.동생 박현과 태연한 척 했지만 긴장을 안 할 수 없던 터다.그런데 역시 강흑성이 해결했다. 조금 다르게다.

“흑성아, 퓨터하고 말이 통하는 거냐?”

그렇게 보였는데 정말 그런 거냐는 그렉의 물음, 강흑성은 엷게 미소 지었다. 대답 없이 미소만 짓는 그 반응 뒤로 박현과 무슬란이 논쟁했다.

“우리 부족의 주술사처럼 한 거야.”“뭔 소리냐? 주술사가 사라진 게 언젠데 헛소리야?”“무슬란 넌 눈으로 보고도 그런 소릴 하냐? 그럼 흑성이가 퓨터하고 뭐한 것 같냐? 저 괴수들이 왜 돌아간 것 같아? 네가 무서워서 그랬겠냐?”“아이 씨 뭐래냐?”

둘이 주먹에 힘을 주는데 박준이 나섰다.

“통했잖아. 그걸 우리가 봤고.”

박현과 무슬란은 험악해지던 눈을 풀고 고개를 끄덕였다. 박준의 말대로 일행은 봤다. 강흑성은 퓨터들에게 말했고 놈들은 포위를 풀고 갔다. 그걸 뭐라고 하던 간에 통한 거다. 강흑성의 또 다른 면모와 능력이다.

“그런데 그 주술사 놈은 그냥 도망친 걸까? 아니겠지? 난 퓨터들이 그놈의 꾸민 짓인 줄 짐작했었거든. 그런데 그건 아니네. 아 그놈 찜찜하네.”

걱정의 숨소릴 내는 그렉처럼 박준과 박현과 무슬란도 무거운 숨을 내쉬었다.강흑성이 물리치긴 했지만 그 주술사는 괴수들을 부린 놈이다.또 어떤 짓을 벌일지 모른다. 그놈이 오라고 불을 피웠는데 아직이다.

“어?”

그렉이 빔라이플을 쥐고 벌떡 일어섰다. 무슬란과 박현도 그랬다.셋이 바라보는 수림, 퓨터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그런데 늑대사슴을 물고 왔다. 그걸 바닥에 내려놓고 돌아선다. 안 왔던 것처럼 사라졌다.

“뭐야 이건?”“우리 먹으라고 갖다 준거 같은데?”“허, 이거 참.”

그렉과 무슬란과 박현은 강흑성을 돌아봤다.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불 옆에 앉아만 있던 그가 일어서 늑대사슴을 끌고 오더니 해체를 시작했다.

“그래, 제대로 된 고기 좀 먹어보자!”

박준의 호기로운 목소리에 맞춰 일행은 고기를 잘라 불에 굽기 시작했다. 그 냄새가 수림에 퍼져나갔지만 그 어떤 존재도 다가오지 않았다.

* * *

남북운하를 타고 북상하기로 했다. 황하와 양자강을 관통해 이어진 대운하, 대륙이 중국이라는 나라로 정상이었을 적에, 아득한 옛적에 만든 것이라 한다. 박준은 그 물길을 잘 안다면서 빠른 길이라 호언장담했다.

“그 주술사 놈 때문에 계속 뒤가 찝찝해.”“누가 아니래냐, 개자식, 단칼에 쪼개버렸으면 좋겠구만.”

박현과 무슬란이 주술사 욕을 하며 뒤처지자 박준이 호통쳤고, 그렉은 그러려니 하며 계속 걸음을 냈다. 그런데 앞서가던 강흑성은 멈춰 섰다.

“물 냄새 말고 다른 게 있습니다.”

그렉은 대번에 코를 벌름거렸고 박준과 박현과 무슬란도 그랬다. 하지만 아무 냄새도 구별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강흑성의 감각을 절대 믿는다.

“기름 냄새, 그겁니다.”

박준이 대번에 한마디를 뱉어냈다.

“금교어족이다!”

그렉이 기억을 더듬어내며 반응했다.

“금교어족이라면 피쉬휴먼들을 말하는 겁니까? 물속에서 사는데 몸에서 기름 냄새가 난다는 놈들요? 그것들 귀 아래에 아가미가 있다면서요?”

박현과 무슬란은 서롤 돌아보며 눈가를 움찔거렸다. 자신들도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본적 없는 종족이다. 한반도에는 그들이 살지 않는다. 대륙에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호전적이고 잔인하기가 일등이란 놈들이다.

“형, 기름 냄새만 가지고 그것들이라고 하긴······”“시꺼 새꺄! 내가 이십오 년 전에 장강에서 그것들을 겪었다고!”

강흑성이 시선을 던지는 곳으로 역시 눈길을 던지던 그렉은 가라앉은 목소리를 냈다.

“기름 냄새가 확실하게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어.”

박현과 그렉도 이젠 더 의심할 상황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그렉의 말처럼 기름 냄새는 이제 분명하게 나고 있다. 많은 기척도 확실히 들린다.

“싸워야 한다면 싸우면 됩니다.”

강흑성의 담담한 목소리가 일행의 귀를 파고들었다. 등이 가려우면 긁으면 된다, 라고 하는 것 같은 목소리다. 그걸 황당해 하면서 일행은 무기를 잡았다. 긴장한 숨을 고르는데 수림이 갈라지고 그들이 나타났다.

“개신발, 정말 금교어족이다······!”

박준의 신음 같은 중얼거림처럼 수십 명의 금교어족이 앞길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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