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77화 (78/172)

혹성강호. 77. 금교어족.

77. 금교어족.

날렵하고 강인한 차체를 자랑하는 플라잉카는 지면에서 떠올라 삽시간에 사라졌다. 시야에 남은 그 흔적을 응시하던 패튼은 차가운 미소를 흘려냈다.

“비륜거라고?”

블랙블러드 놈들이 플라잉카를 부르는 호칭이다.왜 그따위 호칭을 붙인 건지 모르지만 놈들의 전통이다.과거로부터 이어진 흔적인 거다.그런데 그런 흔적들은 세상 많은 곳에 남아 있다. 중원무인들의 영향이다.

‘요지경 같은 세상.’

새삼스럽게 세상의 현실을 헤아리던 패튼은 미간을 좁혔다.블랙블러드가 샹그릴라 일당을 잡겠다고 나섰다.그들은 대륙에도 기반이 있다. 거기 뿐 아니라 지구 어느 곳이든 그들의 그림자는 드리워 있음이다.

‘치안총국의 누구인가?’

블랙블러드를 부른 인물, 한 몸인 자가 누구냐가 이 시점의 관건이다. 저들이 행사에 나선 것은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 격이다.

‘유성대협이 사용한 독과 같은 성분의 독이라는 것이 저들을 놀라게 했어.’

내천자를 그린 미간으로 해를 응시하던 패튼은 다시 표정을 찌푸렸다. 블랙블러드 사자란 놈이 밤을 지내고 간 이곳 북부지구를 자신이 언제까지 떠맡고 있어야 하냐는 거다. 로이어는 진즉에 동부로 돌아갔다.

‘샹그릴라 일당을 잡겠다고 남도의 제왕 놈들을 부린 게······’

로이어를 통해 상부에 보고가 됐을 걸로 짐작된다.경로가 어떠하든 블랙블러드를 부른 인물에게도 들어간 거다.원치 않아도 이젠 이렇게 엮였다.그런데 이게 해로운 일은 아니다. 조직 속의 비선에 선을 댄 거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나하기 나름이지.’

강렬한 시선을 아침 해를 향해 던지던 패튼은 통신기의 소리에 돌아섰다. 브라이튼이 사용하던 통합데스크 위에 설치한 단파무전기가 울어댄다.

-여긴 남도의 제왕, 패튼 대장은 들리는가?

정해놓은 주파수로 날아온 목소리는 그자다. 남도의 제왕 문주, 팔로진사검 명일해다. 검을 펼치면 여덟 길로 나뉜 죽음을 선사한다는 고수다.

‘벽도문이 기반인 남도의 제왕을 거머쥔 자.’

남도의 제왕은 본래 벽도문 세력이 근간이다. 골치 아팠던 반화성조직 ‘근역’을 해결한 것도 벽도문 놈들이 간세노릇을 해서라고 알고 있다. 그런 조직에 팔로육합검문 출신이 세를 장악해 문주 위까지 차지했다.

-패튼 대장, 거기 있소?

잡음과 같이 다시 들리는 명일해의 목소리에 패튼은 대답했다.

“패튼이오, 듣고 있소.”

아무리 문주라고 해도 남도의 제왕과 같은 무리에게 공대한다는 건 자존심이 딸꾹질을 하는 일이다. 정찰대가, 레드스콜피온이기에 그렇다. 그렇지만 패튼은 내색하지 않았다. 자신과 조직의 명예를 누르고 공대했다.

“문주께서 직접 연락을 하셨구려. 급한 일이 생긴 거요?”

치익 하는 잡음 뒤로 문주 명일해의 목소리가 다시 넘어왔다.

-부문주와 연락이 끊겼소.

패튼은 순간 경직했다. 연락이 끊겼다는 말이 뜻하는 게 뭔지 너무 명확해서다. 남도의 제왕 놈들은 매일,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다. 대륙으로 간 놈들이 문주에게 보고를 함이다. 그게 끊겼다는 말이다.

‘당했구나······!’

샹그릴라 일당에게 당한 거다.남도의 제왕 놈들은 샤크를 세대나 몰고 갔다. 폐기품이지만 그래도 샤크다.기본적인 운행과 공격무장은 그대로인 거다.그런데도 당했다는 거다. 블랙블러드의 말이 현실이 됐다.

‘돌아올 자가 없을 거라더니······!’

블랙블러드의 사자 우인관은 그렇게 말했다. 호언장담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조용한 목소리엔 확신이 있었다. 그 말이 현실이 되어 날아왔다.

-부문주이하 쉰여섯명의 부하들이 전부 몰살한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이오.

무겁게 가라앉은 명일해의 목소리에 든 분노를 패튼은 느꼈다.

-그들만이 아니었소, 정찰대도 인지하고 있을 것으로 아오만, 화성연구소에서 제작한 ‘이종’을 셋이나 데려갔었소. 특별전력으로 준비한 거요.

이종이란 단어를 들은 순간 패튼은 인상을 확 구겼다.화성연구소에서 비밀리에 하는 짓을 안다. 아니 이젠 비밀도 아니다.그 조각들이 흘러나오고 있다.남도의 제왕은 ‘이종’을 셋이나 전력으로 보냈다고 말한다.

-그 무엇도 소용이 없었던 것으로 판단되는 결과요. 부문주의 보고에 의하면 상해에서 놈들의 종적을 잡아 추적하고 있다고 했소. 샤크를 동원해 상해의 흑도조직들을 공습, 초토화시킨 후였던 걸로 아오. 당연히 샹그릴라 일당 놈들도 그렇게 할 것으로 알고 기다렸소만, 일이 뒤집혔소.

육중한 숨을 이사이에 물고 있는 패튼에게 명일해의 물음이 확 건너왔다.

-우리 남도의 제왕이 모르고 있던 것이 무엇이오?

입술을 움찔한 패튼은 즉답을 안했다. 명일해는 바로 또 묻는다.

-내게 알려주지 않은 것이 있소? 있다면 그걸 들어야겠소.

패튼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샹그릴라 일당은······

* * *

크고 작은 금교어족 수십 명이 풀어내는 살벌한 기세는 기름 냄새를 잊게 할 정도다. 사타구니만 겨우 가린 행색의 금교어족은 피부가 옅은 황금빛이다. 크고 뾰족한 귀 아래엔 아가미가 있다. 손에는 창칼을 들었다.

“퓌쉬,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놈들이냐?”

중앙에서 나선 놈이 물음을 던졌다. 퓌쉬하는 숨소리를 먼저 내는 금교어족 특유의 말투다. 그래서 피시휴먼이라고 부르는 건지 물고기인간이라고 그런 건지는 정확치 않지만, 지금 일행이 처한 상황은 좋지 않다.

“우, 우린 상해에서 왔다. 운하를 타고 북쪽으로 가려고 한다.”

박준이 긴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자신이 운하를 타고 가자고 일행을 이끌고 왔기에 느끼는 책임감 때문인지 몰라도, 장총을 잡고 힘을 준다.

“지, 지나가는 길이다. 우린 누굴 공격하거나 해칠 의사가 없다.”

머리가 오이처럼 긴 중앙의 놈이 가는 눈을 번득이며 반응한다.

“퓌시, 그런 자들 치고는 무장이 제법인데? 인간 둘에 타이그란 하나에 움바바족 둘? 뭐하는 자들이냐? 여기가 우리영역인걸 알고도 침범한 거냐? 그렇다면 명백한 도전이 아닌가? 우리 종족의 철칙을 알고 있겠지?”

박준은 당황했다.강흑성이 기름 냄새가 난다고 했을 때부터, 금교어족이란 판단을 했을 때부터 가진 불안한 예감은 현실이 됐다.이 종족의 철칙은 영역을 목숨 걸고 지키는 거다.저희영역으로 선포하면 끝장을 본다.

‘제길, 이십오 년이나 흘러간 땅인데······!’

그 시간 동안 많은 변화가 일어난 거다.당시의 남북운하에 금교어족은 없었다. 저들은 장강에서만 살았고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여기 있다. 저희 영역을 침범했다고 한다.쉽게 끝날 일이 아니다.

“아, 오해가 있다. 우린 금교어족의 영역인 걸 전혀 몰랐다.”

일행을, 특히 강흑성을 돌아봤던 박준은 오이처럼 머리가 긴 놈을 향해 다시 말했다.

“돌아가겠다. 서로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돌아서면 되는 일이다. 자 그럼.”

박준은 미소 지은 얼굴로 느릿하게 걸음을 뒤로 물렸다.

“들어올 땐 맘대로 했겠지만 나가는 건 맘대로 안 된다.”

박준은 뒤로 물리던 움직임을 멈췄다.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결국 피를 봐야해서다. 강흑성이 있으니 그게 두려운 일은 아니지만 피하고픈 일이다.

“이봐, 꼭 그래야······”

금교어족은 일제히 창칼을 겨눴다. 빔라이플 하나도 없이 원시적인 냉병기만 지닌 집단이다. 그러나 금교어족의 전투력은 무섭다. 타고난 신체의 유연성에 파워가 더해져 둘이상이면 움바바족도 죽인다는 종족이다.

“이것들이!”

무슬란이 작두칼을 움켜잡고 나서고 박현도 콧김을 뿜는 순간이다.

“너희 모두······”

스윽 한걸음을 내며 목소릴 낸 강흑성은 뒷말을 던졌다.

“이 자리에서 죽는다.”

* * *

“그 일당 중의 젊은 놈, 그놈이 사용한 독이 그렇다고 했소.”

패튼은 핵심을 말했다. 자신도 몰랐던 내용, 블랙블러드를 통해 알게 된 진실이다. 무전기 너머 남도의 제왕 문주 명일해는 알 수 없는 숨소릴 냈다. 그러다 다시 입을 연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내뱉는다.

-내가 대륙으로 건너가겠소.

통신은 그렇게 끊어졌다. 패튼은 멍한 표정으로 무전기를 응시했다.

‘간다? 대륙으로? 직접?’

팔로진사검 명일해, 그가 간다는 거다. 부하들의 복수를 위해선지 패튼 자신이 의뢰한 일을 끝내기 위해선지, 아무튼 간다는 거다. 샤크 세대를 가지고도 몰살한 걸로 추정되는 부하들의 결과를 아는데도 간다는 거다.

‘왜?’

놀람보다 의문이 크다.위험을 감수하고 가야하는 명일해의 의중이 뭔지 모르겠다.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 처절한 복수심에 사로잡혀서?아니다. 그런 자가 아니다. 뼛속까지 흑도인이다.이건 분명 뭔가가 있다.

‘내가 파악 못한 무언가, 대륙의 무엇인가가······’

경직한 얼굴로 허공을 응시하던 패튼은 통합데스크의 알림 표시로 시선을 내렸다.화성의 치안총국에서 내려온 메시지다.터치해 열어보니 더 놀라운 내용이 들었다.천지문에서 지구로 고수들을 보냈다는 거다.

‘이게 뭐야?’

첨부된 내용을 보고 패튼은 숨을 멈췄다.

‘대전쟁 당시 천지문의 문주 뇌인걸의 무공을 찾았다?’

뇌인걸, 천지문이 낳은 최고기재라는 인물, 그가 남긴 무공이 지구의 천지문 유적에서 드러났다는 거다. 그걸 찾아낸 자는 천지문의 파문제자 천지도 상패천, 그가 상해에서 자취를 드러냈다가 사라졌다는 거다.

‘이거구나!’

남도의 제왕 문주 명일해가 대륙으로 간다는 말의 진정한 뜻이 이거다.그런데 명일해만이 아닐 거다.천지문만이 아닐 거다.이건 대사건이다.

‘대륙에 엄청난 일이 생기겠구나······!’

패튼은 뜨겁고 긴 숨을 내쉬었다.

* * *

박준은 뒤로 물러났고 그렉과 무슬란과 박현은 숨을 다스렸다. 그렇게 강흑성을 응시했다. 적의를 드러낸 금교어족에게 강흑성이 경고한 거다.허튼 소리가 아니다. 강흑성이 여택 적들을 어떻게 했는지 알고 있다.

“인간, 산 채로 가죽을 벗겨주마.”

얼굴이 오이 같은 놈, 금교어족 무리의 우두머리는 창을 휘돌려 겨눴다.소림곤법에 뿌리를 둔 창술이 분명하다.상당한 경지로 수련한 기세다.그러나 금교어족이 무서운 건 무공에 더해진 본래의 육체 능력이다.퓌쉬, 우두머리 놈의 입에서 숨소리가 터진 것과 같이 창이 폭발해 나왔다.그 순간 그렉과 박현과 무슬란이 동시에 혀를 찼고, 강흑성이 움직였다.우측으로 걸음을 내디뎌 창을 피했다.동시에 왼주먹을 뻗었다.퍽, 오이를 땅에 패대기치면 저렇게 될까, 우두머리 놈의 안면이 터졌다. 머리통이 흩어졌다.그 광경을 본 금교어족 무리는 경직했다.하지만 그건 순간, 일제히 괴성을 지르며 공격했다.강흑성은 검을 뽑았다.

‘혼전, 격전.’

아버지의 기억을 떠올리며, 되새겨 각인하며 강흑성은 패천마혈을 양손으로 움켜잡았다.피를 보고 느낀 마검은 미친 듯이 준동하고 있다.그 힘을 다스리고 내부에서 치솟는 마기를 누르며 혈로를 만들어 나갔다.

‘검이 됐건 도가 됐건 궁극의 의지는 살상.’

오직 그것만을 뇌리에 품고 강흑성은 검을 휘둘렀다. 닥쳐오는 금교어족의 허리를 끊고 나가 머리를 쪼개고, 옆에서 공격해 들어온 놈을 흘려내며 등판을 갈랐다. 오직 검과 육신의 힘으로만 혼전의 혈로를 뚫었다.

* * *

“뭐?”

데스크 위로 뜬 로이어의 홀로그램얼굴을 보며 패튼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춘천은 본격적으로 내전을 시작했어.

명료한 로이어의 목소리, 블랙시티 춘천의 현재다. 동부지구의 영역인 춘천의 로이어가 주시하고 있던 곳이다. 그곳이 어떻게 되든 상관할 일은 아니지만, 만에 하나 반화성조직이 점령하거나 오염되면 안 될 일이다.

-자치대가 외형상으로는 우세한데, 부시장 쪽은 매화검문과 연결이 되어 있으니까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군. 일단은 상황을 지켜봐야겠어.

패튼은 감정을 수습하며 입을 열었다.

“로이어 자네도 고생스러운 일이 생겼군, 지원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라고.”-그러지.

로이오의 홀로그램 모습은 사라졌다. 비어버린 그 공간을 응시하던 패튼은 작게 중얼거렸다.

“지구라는 이 땅은······ 다시 꿈틀거리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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