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강호. 78. 운하를 타고.
78. 운하를 타고.
피웅덩이에 빠졌다가 나온 사람처럼 강흑성은 피를 뒤집어썼다.베고 가르고 동강낸 금교어족의 피다.저희의 영역이라더니 맞는 말이었다.앞길을 가로마고 나타나 공격한 수십 명의 뒤로 그만큼이 더 달려왔다.그들을 모조리 벴다.정확히 몇을 벴는지 모른다. 죽은 자들이 흘려낸 피가 운하 쪽으로 피가 흘러가고 있다.그 피를 밟고 강흑성은 자신을 다스렸다.마검과 속에서 준동하는 마기를, 피를 뒤집어쓰고 제어했다.
‘되고 있어.’
깊은 호흡으로 무원진력을 운용하며 강흑성은 패천마혈을 검갑 안에 넣었다. 저항을 포기한 마검의 마지막 울음을 흩어내듯 강흑성은 말했다.
“계속 덤벼든 다면 씨를 말릴 거다.”
물러나 공포와 경악으로 경직해 있는 자들, 금교어족의 생존자들은 주춤주춤 물러났다. 형제들을 도륙한 저 인간의 말이 헛소리가 아님을 안다. 자신들 겨우 다섯을 살려뒀을 뿐이다. 면전에서 검을 검갑에 넣었다.
“살 수 있을 때 가라 이놈들아!”
박준이 호통 쳤다. 그 소리에 움찔하며 반응한 다섯의 금교어족은 뒤돌아 달려갔다. 돌아가서 더 많은 동족을 끌고 오든지 멀리 도망가든 지다.
“하, 저것들 살겠다고 뛰는 거 봐라.”
박현이 혀를 차는데 무슬란은 옅은 걱정을 드러냈다.
“수백놈이 뎀벼드는 거 아냐?”
그럴 수 있으니 저놈들을 괜히 살려 보낸 게 아니냐는 거다.
“걱정도 팔자다.”
t-rex장총을 어깨에 척 걸친 박준은 아는 체 하는 얼굴로 목소릴 이었다.
“금교어족 놈들은 씨족단위로 사는 놈들이다. 숫자가 많아봐야 일이백을 넘지 않아. 다른 씨족과는 섞이질 않는 놈들이야. 족외혼을 제외하곤 철저하게 저희끼리만 사는 놈들이지. 여기 뒈진 놈들이 거의 다일 거다.”
그렉이 주변을 돌아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럼 우리가 금교어족 씨족하나를 몰살한 셈이네······”
박현과 무슬란은 그 의미를 깨닫고 미간을 찌푸렸다. 먼저 공격을 해왔고 죽이려고 한 적이니 이렇게 한 거지만, 이결과는 마을을 연상케 한다.정찰대의 공격을 받아 몰살한 움바바마을, 다를 게 없는 일일 수 있다.
“인육을 먹는 자들입니다.”
강흑성은 일행에게 차가운 그 한마디를 던지고 움직였다. 인육이라는 말에 흠칫하며 놀란 일행이 시선을 던지는 가운데 사체들 속을 뒤졌다.피 묻은 손으로 주워드는 것은 어린아이 해골로 만든 장식품이다.
“헛, 뭐야 저거!”
기함과 동시에 분노한 얼굴로 움직인 박준이 해골장식품을 낚아챘다.거대수 줄기를 꼬아 만든 줄로 연결한 해골, 아기 두개골이 여러 개다.그런 것이 하나 둘이 아니다.이빨을 엮은 것, 모발을 꼬아 만든 것도 있다.
“이런 개신발······!”
박준은 부들거렸다.그렉과 박현과 무슬란은 동강난 금교어족들의 몸에서 비슷한 장신구들을 찾아냈다.강흑성의 말대로 인간을 사냥한 증거다.
“이것들 정말로 사람을 잡아먹은 모양인데······!”
박현이 박준만큼의 분노를 드러내며 콧등을 찡그렸다. 자신은 움바바족이지만 형 박준은 인간, 피를 나눈 형제보다 가까운 그의 분노를 안다. 무슬란도 비슷하고 그렉도 마찬가지다. 다른 종족을 먹는 건 괴수다.
‘그래서 흑성이가 무자비하게 검을 휘둘렀구나······!’
그렉은 이제 이유를 알았다. 강흑성이 금교어족을 몰살한 이유가 있었던 거다. 자신들은 경황이 없어 못 봤지만 강흑성은 처음부터 알았던 거다.
“가죠.”
일행에게 명료한 한마디를 던지고 강흑성은 선두로 걸음을 냈다. 주변의 기척을 엄밀히 감지하며 운하로 향했다. 살려 보낸 다섯 놈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 수 없지만, 다시 온다면 모조리 죽여줄 생각이다.
‘그렇게 되기를.’
눈앞에 드러나는 운하를 보노라니 예상한 일은, 기대한 금교어족의 공격은 없을 것 같다. 일행을 공격하느라 모조리 동원된 전사들이 다 죽었다. 그 결과를 안 마을의 금교어족 여자들과 아이들은 급히 도망쳤다.
“제길, 도망치는 건 무쟈게 빠른 족속이네.”
텅 빈 마을을 좌우로 돌아보며 박현은 인상 썼고 무슬란은 침을 뱉었다. 물가에 인접한 곳의 수림을 마을로 만든 곳이다. 거대수들의 속을 파내 가옥을 삼았다. 그 모든 거처들이 비었다. 집기들도 전부 그대로다.
“배가 있다!”
그렉이 배를 발견하고 반갑게 소리쳤다.강흑성을 선두로 일행은 배로 다가갔다. 금교어족이 만든 목선이다.아주 오랜 옛날부터 이어져온 원형과도 같은 모델의 배다.동력장치도 없고 작은 돛을 이용하는 쾌속선이다.
“와 정말 원시적이네.”
무슬란이 감탄하는 듯한 반응을 냈고 그렉은 배에 올라 이리저리 살폈다.그사이 박준은 마을 쪽을 보며 총을 쥔 채 경계를 풀지 않았다. 다섯 놈을 살려 보낸 게 마음에 걸려서고, 무엇보다 이들이 사람을 해쳐서다.
‘먹는 걸 보진 못했지만······!’
먹지는 않고 해치기만 했을 수 있다. 어떻든 해친 건 확실하다.강흑성이 그렇게 말했을 때는 이유가 있을 거다.그런데 그걸 어떻게 안걸까?무슨 냄새 같은 게 나는 걸까? 강흑성은 그런 냄새를 맡은 걸가?
“흑성아, 금교어족이 인육을 먹었다는 걸 어떻게 안거냐?”
직전에 찾은 아기 두개골이나 모발과 이빨 같은 거 말고 라는 박준의 눈길을 강흑성은 담담히 받았다. 잠시 운하의 강물을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냄새, 사람을 먹은 냄새를 맡았습니다.”
역시 하며 눈을 빛내는 박준에게 강흑성의 대답은 이어나갔다.
“잡혀서 살 때, 적호문주 그놈이 인육을 즐겼습니다. 어린아이를 잔혹하게 살해한 후 그 피를 마시고 심장과 간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난후에 찾아와서 피 묻은 입으로 말했습니다. 언젠가 내 피를 마실 거라고요.”
그 냄새였다. 금교어족의 숨결에 밴 냄새는 그것이었다. 그래서 검을 휘둘렀다. 가차 없이 죽였다. 다섯 놈을 살려 보낸 건 더 죽이기 위해서다.
“배는 멀쩡해!”
그렉의 외침에 강흑성은 현실로 돌아왔다. 자신도 모르게 움켜잡았던 검자루에서 손을 떼고 배에 올랐다. 금교어족 수십 명이 타고 이동하는 전투선이다. 갑판위에 박현과 무슬란이 올라탔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
“계획대로 잘됐네, 이 배를 타고 산동 제남까지 가면 되는 거잖아?”
형이 그렇게 말했지? 라는 얼굴로 보는 박현에게 박준은 인상쓰려다 고갤 끄덕인다.
“두 번 말해주랴? 내가 된다고 했잖아.”
그렉이 바로 옆에 선 무슬란만 들으란 듯이 속삭였다.
“체, 흑성이가 되게 한 걸 갖고 공치사는.”“뭐? 너 뭐라고 했어 새꺄!”
흥분하는 박준과 물러서는 그렉 사이로 강흑성이 섰다.
“식량을 확보하고 떠나죠.”
배에서 뛰어내린 강흑성은 금교어족마을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일행도 그렇게 했다. 애초에 가지고 온 전투식량은 상해에서 다 잃어버렸다. 짐승을 잡아먹든 열매를 따 먹든 식량을 해결해야 갈수 있다.
“여기 식량창고가 있다!”
박준이 냅다 지른 소리에 반응하며 일행은 다시 모였다.마을 중앙의 거대수 안이다. 말린 과일과 물고기와 육포 등이 가득 쌓여 있다.그런데 육포를 보더니 박준은 표정을 경직했다.왜 그런지 모두가 알았다.
“이거 설마······”
육포를 쥐었던 무슬란은 바로 놓으려는데 강흑성이 아니라고 했다.
“인육 아닙니다.”
손을 놓으려던 무슬란은 미간을 꿈틀하더니 다시 쥐고 입에 물었다. 강흑성이 아니라고 했으니 당연히 짐승고기다. 먹어보니 늑대사슴 고기다.
“늑대사슴이네.”“그래? 어디? 아, 그러네.”
박현도 맛을 봤고 그렉도 그랬다. 박준은 뒤늦게 망설이다가 씹었다.
“음, 맞네. 허, 이놈들 육포 만드는 솜씨가 제법 인데?”
넷이 그러다가 강흑성이 자루에 음식을 담는 걸 보고 얼른 따라했다. 각자가 큼지막하게 자루를 만들어 배에 실었다. 물통도 확인해 물을 채웠다.
“자, 가자고.”
박준이 호기롭게 출발을 말했다. 머뭇거릴 일이 없기에 일행은 출발했다.
* * *
애병 팔로금검을 무릎 위에 놓고 명일해는 길고 긴 숨을 내뿜었다. 운기조식을 끝낸 시간에 맞춰 배는 대륙에 닿았다. 사방은 칠흑 같은 어둠이다.
‘왔구나.’
새삼스러운 마음으로 명일해 선창 밖 어둠을 응시했다. 군대의 이목을 피해 급거 서해를 넘어온 이 행보는 남은 인생을 다르게 살기 위해서다. 남도의 제왕이라는 이름으로 한반도의 구석에만 있지 않으려고다.
‘뇌인걸의 무공만 손에 넣는 다면······!’
허망한 상상과 바람만이 아닐 수 있다. 현실로 만들 수 있다. 화성의 지배세력인 삼대문파와 같은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거다. 백두파와 삼월문과 천지문이 시작부터 저 높이에 있지 않았다. 그들처럼 살 수 있음이다.
‘절세 무공을 얻어 초극무인이 된다면······!’
뇌인걸의 무공이라면 그럴 수 있다. 그는 천지문이 배출한 불세출의 기재였다. 유성대협의 무공을 보고 같은 무공을 만들어내 자가 뇌인걸이다.
‘화성에선 이미 움직였어.’
천지문을 비롯해 백두파와 삼월문에서도 행동하고 있음을 명일해는 의심치 않았다.이 일은 그만큼 중차대한 일이다.그런데 상해의 일은 헤아리지 못한 복잡함이 있다.정찰대가 노린 샹그릴라 일당이 얽혀 있다.
‘유성대협의 독과 성분이 같은 독이라고?’
그 내막이 뭔지 알아내기 위해 블랙블러드가 움직였다. 패튼의 말로는 치안총국의 수뇌부에서 은밀히 일을 처리하기 위해 블랙블러드를 고용했다는 건데, 명일해 자신이 보기엔 그보다 비밀스런 내막이 있음이다.
‘뭐가 됐든, 이 땅에선 커다란 일이 일어나고 있음이야.’
커다란 일, 그것이 기회의 다른 이름이란 것을 알기에 이곳으로 왔다. 부문주와 쉰여섯의 수하들과 이종 세 놈이 몰살했다고 확신하면서도 주저하지 않았다. 무인으로 칼을 잡았으니 당연한 것, 목숨을 거는 거다.
‘돌아가지 못하게 되면······’
남도의 제왕은 남은 놈들의 몫으로 하는 거다. 미련을 두어선 목표한 것을 가질 수 없다. 이제부턴 처음처럼 하는 거다. 아니 그건 아니다.
“문주, 황금대호방주와 연락이 됐습니다.”
곁으로 다가와 고하는 수하 엘킨에게 명일해는 흡족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베어족답게 육중한 체격이지만 기만하고 영민한 두뇌를 가졌다. 게다가 일처리가 비정하고 분명하다. 동생을 버릴 정도로 철저하다.
‘이종이 된 베어족 놈이 친동생이라던데······’
새삼 엘킨의 속이 어떨까를 생각하던 명일해는 가부좌를 풀고 일어섰다. 애병 팔로금검을 잡고 갑판으로 나갔다. 반잠수정 갑판을 밟고 땅으로 내렸다. 대륙, 이 땅에 발을 디디는 것의 의미를 오롯이 느끼며 웃었다.
“수하놈들이 난리를 피우는 동안 망해버린 황금대호방이 어떤지 모르겠구나.”
엘킨은 뒤로 두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명일해는 기다렸다. 그 시간이 몇 분이나 흘러갔을까, 어둠 저편에서 불빛이 다가온다. 황금대호방의 차다.
“왔구나.”
흡족한 미소를 흘려내며 명일해는 황금대호방이 보낸 차량을 향해 걸어갔다.
* * *
운하의 강물을 타고 이동하는 동안 강흑성은 강안을 주시했다.어둠이 짙게 내렸지만 별다른 동정이 없다.박준의 말대로 금교어족은 단합하지 못해서인 걸로 생각된다.자기 마을에만 피해가 없으면 된단 생각이다.
‘그렇긴 한데, 불빛마저 다 죽이고 있어.’
금교어족은 운하를 따라 강안에 사는 거다. 박준이 겪은 바에 의하면 장강에서 그랬다. 남북운하로 옮겨와 영역을 주장하는 터이니 마찬가지다. 당연히 강안 양편에 금교어족 마을들이 있고 불빛이 있어야 한다.
‘우리 때문에 경계하고 긴장하는 건 당연하긴 한데······’
강흑성 자신 일행이 이동하는 걸 알고 있을 테니 그렇다. 살아서 도망간 다섯놈의 입이 퍼트렸고 당한 마을을 확인했을 것이다. 그러니 몸 사린다.섣불리 건드렸다가 똑같은 꼴을 당할지도 모를 강적인 거다. 그런데 그렇다고 보기엔 뭔가 더 삼엄한 긴장의 느낌이다. 그렇다는 예감이 든다.
‘만일 우리 말고 다른 무엇을 두려워하고 경계하는 거라면?’
곤두세운 칼날 같은 눈빛으로 강흑성은 강안을 응시했다. 그러다 감지했다. 나아가는 강줄기의 앞쪽으로부터 음울하게 불어온 한줄기 기류다.그건 바람이 아니었다. 피부에 소름을 돋게 하는 이 기류는 숨결이다.
‘뭐가?’
눈썹을 확 곤두세우며 강흑성은 일어섰다. 그 순간 강물이 뒤집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