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81화 (82/172)

혹성강호. 81. 벽뢰수.

81. 벽뢰수.

밖에서 들리는 위험한 소리들에 준후는 어깨를 경직했다. 지하실에 있는 이상 안심해도 된다고 하지만 그래도 불안하다. 그렇게 자신을 안심 시킨 최창수는 뭐가 불안한지 출구에 귀를 대고 동정을 살피고 있다.

‘전복 아저씨······!’

사장님은 그를 걱정하는 거다.무시로 드나들지만 살가운 말 한마디 안 건네는 사이다.그렇지만 저렇게 걱정한다. 그래야 할 상황이다.춘천을 두고 전쟁이 벌어졌다. 자치대와 부시장세력이 서로 죽이려 싸운다.

‘그 형은 잘 있을까?’

강흑성이란 이름을 가진 청년, 그가 궁금하다. 사는 곳이 위험지역이라고 들었는데 어떨지 모르겠다. 지금 춘천상황이면 그가 사는 곳과 다를 바 없을 거다. 그렇다, 그를 보냈던 사람도 사장님과 과거의 인연이 있다.

‘전복아저씨하고도.’

등을 보이고 있는 사장 최창수를 응시하던 준후는 강한 진동에 목을 움츠렸다. 우수수 먼지가 떨어지는 지하실 천장을 두려운 눈으로 바라봤다.

“사장님······!”

겁에 질려 부르는 준후의 목소리에 최창수가 반응하며 돌아본다.

“괜찮다. 하늘상어가 직격으로 떨어져도 끄떡없게 지었다.”

지금 이 충격이 바로 그런 게 아닌 가요 하는 준후의 눈은 두려움에 차 있다. 최창수는 지하실 출구 밑에서 몸을 돌려 준후에게로 다가갔다.

“너무 두려워 마라, 오래가지 않을 일이다.”“그, 그럴까요? 하지만 자치대하고 싸우는 부시장 쪽은 매화검문이 있잖아요?”“그러니 오래 가지 않을 거다.”

준후는 눈동자를 반짝하며 깨달았다. 자치대가 아무리 험악하게 공격해도 결국 이기는 쪽은 부시장파라는 거다. 아니 명확하게 말하면 매화검문이다. 그들은 화성연구소와 밀착한 세다. 자치대로서는 힘든 상대다.

“시장이 숨을 거두자마자 결국 이런 일이 생겼다만······”

최창수는 마른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갈등했다.준후에게 전후내막과 배경을 자세하게 이야기 해줄 필요가 있는가해서다.그런데 준후는 지금 이 위험한 상황 속에 있음이다.뭐가 뭔지 알아야 자신을 돌봄이다.

‘지옥 같은 이 세상에서 살자면, 살아남자면.’

현실을 삼키며 최창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매화검문의 무력을 자치대가 당할 수 없을 거다. 춘천은 그들의 손에 떨어질 거다. 변하는 건 거의 없을 테지만 전과 같지는 않을 거다. 무엇이 어떻게 되던, 주변이 어찌 변하든, 그 속에서 자신을 지켜야 한다.”

최창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기에 준후는 고개를 강하게 끄덕였다.

“매화검문은······”

최창수가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하려는데 강력한 충격이 다시 지하실을 흔들었다. 직전의 충격과는 비교할 수 없는 충격, 정말 직격인 것 같다.

‘뭐가!’

눈을 부릅뜬 최창수는 바로 대응했다. 준후를 뒤로 밀고 미니건을 잡았다. 흙먼지가 떨어지는 지하실 출구를 올려다보며 불안을 삼켰다. 분명 공격당한 충격이어서다. 그렇다면 역시 전복으로 인한 결과인 거다.

‘자치대와 친분을 만들더니 결국······!’

육중한 미니건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최창수는 옛일을 문득 떠올렸다. 대륙전쟁 당시의 기억, 전복과 박준과 자신이 함께 싸우던 전장이다.

‘그때 우리 셋은······’

쾅, 폭음과 함께 지하실 출구가 떨어졌다.최창수는 상념을 깨고 미니건을 발사했다.

투르르르르.

눈부신 섬광의 우박이 터져나갔다.출구를 날려버리고 진입하려던 자들의 형상이 조각나 흩어졌다.최창수는 미친 듯이 발사했다.대륙전쟁 당시처럼, 전복과 박준과 등을 맞대고 싸우던 그때처럼, 괴성을 질렀다.

“으와아아아!”

최창수의 괴성과 함께 터져나간 미니건의 우박은 지하실 천장을 산산조각내며 퍼져나갔다.

* * *

아우리엘은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숨 쉬는 것을 잊었다.

‘저 놈이!’

인간, 젊은 남자 인간 놈이 칸타의 번개를 맞고도 멀쩡하다.계속 일어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분노한 칸타의 번개에 맞으면 터지거나 재가 돼야 한다.그런데 저놈은 계속 굴러 일어나고 있다. 모습이 그대로다.

‘아니! 그건 아니야!’

뭔가 변하고 있다. 저 인간 놈의 내부에서 뭔가가 꿈틀거리고 있다. 그게 칸타의 번개를 맞아서인 것 같다. 그렇다면 저놈은 일부러 맞는 거다.

“칸타!”

아우리엘은 소리쳤다. 수림과 운하의 강물이 부르르 떨만큼 격렬한 외침이다. 그 의지를 받은 푸른 바람의 정령 칸타는 모든 힘을 뿔에 모았다.한순간 어둠을 하늘로 밀어 올리는 푸른빛이 폭발했다.사슴의 커다란 뿔로부터 확산해 나간 그 힘은 푸른 전류에 뒤덮인 강흑성을 강타했다.휙 날아간 강흑성은 운하의 강물 속으로 사라졌다.검푸른 강물은 한순간 푸르게 물들었지만 이내 본래의 색으로 돌아왔다.인간은 죽었다.

‘됐어!’

아우리엘은 검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고갤 돌렸다. 블랙베어들과 싸우는 퓨터들의 상황을 보기 위해서다. 저것들을 부른 인간 놈을 해치웠으니 결과가 나올 거다. 그런데 이상하다, 퓨터들은 더 맹렬하게 덤빈다.

크워어어!

블랙베어들의 성나고 당황한 괴성이 수림을 흔드는 가운데 아우리엘은 다시 강물을 돌아봤다. 설마 하는 눈으로, 검은 머릿결을 떨며 응시했다.

‘헉!’

칸타와 함께 아우리엘은 뒷걸음질했다. 강물에서 치솟아 오른 그림자 때문이다. 검은 강물이 토해낸 것 같은 저 그림자는 분명 그 인간이다.

“말도 안 돼!”

부정을 외치는 아우리엘의 앞, 깃털처람 착지한 강흑성은 푸른 눈동자를 번득였다. 거대사슴이 뿔로서 뿜어낸 번개와도 같은 빛이 넘실댄다.

“내 차례다.”

명료하고 담담한 한마디를 던진 강흑성은 움직였다. 블랙베어의 공격을 받고 있는 일행에게로 푸른 바람처럼 나갔다. 박준이 쏜 총탄을 무시하고 앞발을 내리치는 블랙베어, 놈의 안면에 푸른 주먹을 후려쳤다.블랙베어의 머리가 사라졌다. 아니 흩어졌다. 강흑성의 푸른 주먹에 맞아 돌아가더니, 푸른빛에 물드는 찰나의 형상을 보이고는 터져버렸다.

“좋았어!”

박준이 외치는 소리가 퍼지는 가운데 강흑성은 계속 움직였다. 무슬란과 박현이 작두칼을 휘두르며 대적하는 블랙베어의 등판에 휘돌아 박혔다. 푸른 번개를 머금은 발을 거대곰의 몸통을 뚫고 형상을 흩어버렸다.

“나이스!”

빔라이플을 연사하며 터트린 그렉의 환호에 반응하듯 강흑성은 휘몰아쳤다. 퓨터들과 얽혀 싸우고 있는 블랙베어들을 향해 푸른 형상으로 쇄도했다. 거대수를 박차고 비상하듯 떠올라 양손을 사방으로 펼쳐냈다.

‘벽뢰십진.’

허공을 휘도는 강흑성으로부터 푸른 장영이 열갈래로 터져 나왔다. 수림의 어둠을 밝히며 뻗어나간 그 힘, 벽뢰수는 블랙베어들을 강타했다.

* * *

“준후야!”

최창수의 부름을 들은 준후는 강철방패를 세워 몸을 숨겼다.정확히 물어보지 않았지만 바이탄합금 같은 것으로 만든 방패란 걸 알고 있다.최창수는 이것으로 몸을 보호하라고 하는 거다.그래야 할 위급 상황이다.준후가 방패로 몸을 가리는 걸 돌아본 최창수는 피가 나게 이를 악물었다. 미니건을 쉬지 않고 발사하면서 이 상황을 어떻게 모면할지를 생각했다.그런데 실상 방법이 없다. 지하실은 퇴로가 없다. 독안에 든 쥐다.

‘저놈들이 지하실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알고······!’

매화검문 놈들이다. 자치대 같은 얼치기들과는 질이 다른 거다. 그러니 최창수 자신이 안이했음이다. 이런 최악의 상황을 염두하고 대응했어야 한다. 만시지탄이다. 춘천에 눌러 살면서 젖어든 타성이 이렇게 했다.

‘지옥 같은 전장을 굴러 나온 놈이······!’

정말 뒤늦은 후회를 삼키던 최창수는 숨을 경직했다.미니건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아서다. 에너지 탄창이 비었다.충전할 시간 같은 건 없다.

‘여분의 탄창을 마련해 두는 건데!’

미니건을 던진 최창수는 준후 쪽으로 물러나며 핸드건을 잡았다.그 순간 파괴된 천장 사이로 뛰어내리는 것들을 봤다.황소만한 개들이다. 그런데 그냥 크기만 한 개들이 아니다. 등과 다리에 칼날 같은 뿔이 달렸다.

‘저건!’

보는 순간 최창수는 알았다. 소문으로만 들던 그것이다.

‘이종!’

저 개들은 그것이다. 흉악하게 으르렁 거리는 아가리 안에서 길게 나오는 것은 혀다. 개의 혀가 저럴 수는 없다. 저건 중형뱀 샤피란의 혀다.

‘저놈들이 냄새를 맡았구나······!’

지하실이 발각된 건 그래서다. 이종의 저 흑견들이 기존의 개들을 뛰어넘는 후각으로 찾은 거다. 물론 원천의 원인인 전복이다. 자치대와 어울린 그를 매화검문에서 특정, 그의 행로를 파악하다가 공격해온 거다.

크르르르.

가라앉은 울음을 흘려내며 다가오는 흑견들, 다섯 마리나 되는 놈들에게 핸드건을 겨눈 최창수는 작게 말했다.

“환영해 주마.”

응축했던 눈동자를 확 팽창하며 그 말을 던진 최창수는 핸드건을 발사하며 몸을 던졌다. 빔줄기는 흑견들의 왼쪽 벽을 향해 선을 그었고, 최창수는 벽에 기대놓은 방패를 잡고 굴렀다. 그 찰나 섬광이 확산했다.폭발, 크레몬이 매설돼있던 벽이 터졌다.지하실을 무너뜨리는 폭발은 흑견 다섯 마리를 휙 쓸어버리듯 밀고나갔다.반대편 벽을 파괴하며 연쇄폭발했다.지하실을 매몰케 하는 그 폭발 속에서 최창수는 일어섰다.

“준후야!”

방패 밑에 깔린 준후를 일으켜 세운 최창수는 번개처럼 움직였다. 자욱한 폭발의 먼지 속을 뚫고, 무너진 벽과 구조물을 타고 올라갔다. 그런데 역시 매화검문 무인들이 있다. 차가운 미소를 입가에 물고 말한다.

“쥐새끼, 그래서 살겠냐?”

매화문양이 새겨진 검을 뽑아든 자들, 이인의 매화검문 무사들을 보며 최창수는 절망을 삼켰다. 권각술이 전부인 자신은 저들을 이길 수 없음이다. 그러니 이 자리에서 죽겠지만, 그건 상관없지만, 준후는 안 된다.

“죽일 놈들아!”

핸드건을 발사하는 최창수에게 매화검문 무인이 벼락처럼 쇄도해 왔다. 그의 머리 위로 빔줄기가 날아가는 순간 최창수는 죽음을 직감했다.

‘끝이구나.’

허망한 원망을 품던 최창수는 다른 결과에 눈을 치떴다.자신에게 매화검을 갈라내던 매화검문의 무사가, 그의 머리통이 허무하게 터져버렸다.그 결과에 다른 한 놈이 반응하며 돌아선 순간, 전복이 장검을 갈랐다.쉬카악, 섬뜩한 소리와 함께 매화검문 무사의 가슴이 갈라졌다.

* * *

열 마리의 블랙베어가 가슴이 터지며 쓰러진다.등을 뚫고 나간 푸른 벼락이 강흑성의 손에서 나왔다.그 엄청난 신위와 결과를 모두가 바라봤다.박준과 박현과 무슬란과 그렉, 하프엘프 아우리엘도 넋을 잃었다.바람결에 선회하는 나뭇잎처럼 땅에 내려선 강흑성은 퓌르르르 하는 소리를 냈다.그 앞으로 퓨터들의 몰려들었다.등에 붉은 줄무늬가 있는 우두머리가 같은 소리를 낸다.강흑성은 우두머리의 머리에 머리를 맞댔다.

“고맙다.”

강흑성이 머리를 떼자 퓨터들은 꿔어 꾸어 하는 울음을 내고 돌아섰다. 삽시간에 썰물처럼 사라진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두려움에 물든 블랙베어들이다. 강흑성이 동료들이 어떻게 죽이는지 봤기에 품는 공포다.

“살 거라고 생각마라.”

강흑성은 마검 패천마혈을 뽑았다. 혈광 위로 푸른빛을 머금은 그것 을 하프엘프에게 겨눴다. 푸른 바람의 정령이라는 사슴은 두려워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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