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84화 (85/172)

혹성강호. 84. 바다를 건너온 자들.

84. 바다를 건너온 자들.

“상해에서 일어난 일의 진상이 정확히 뭘지 궁금합니다.”

얼굴의 흉터를 뚜렷하게 꿈틀거리는 부관 아란을 우란테는 돌아봤다. 강이 보이는 이곳의 풍광을 즐기지도 못하고 긴장과 의구심만 삼키고 있다.그럴만한 일이고 현실이긴 하다, 이곳은 대륙 땅이고 그 일은 충격이다.

“상해를 나누고 있던 흑도방파 삼개 세력이 궤멸한 대사건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 그 속에 천지문의 파문제가 천지도 상패천이 있었고 그들이 있었다는 거다. 샹그릴라일당 이라고 부르는 자들, 그 젊은 무인의 일행이다.

“정말로 그들이 그들일까요?”

아란은 어탕수육에 손도 안대고 의문만 거듭 말한다. 퓨리엔트족 용사의 얼굴, 전장의 영광으로 품은 흉터의 그 눈을 응시하던 우란테는 말했다.

“그들일 거다.”

스스로가 가진 의문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그들이 과연 대륙으로 넘어왔느냐의 의문을 가졌었다. 하지만 상해가 그렇게 된 결과가 답이다.

“상해의 형세를 이젠 모르는 자가 없습니다. 황금대호방주 혁리추가 남도의 제왕 문주 명일해와 손을 잡았다는 소식입니다. 그들을 뒤쫓는 행보에 나섰다는 건데, 그자들이 궁극적으로 노리는 건 무공이 아니겠습니까?”

무공, 천지문이 낳은 불세출의 기재이자 고수 뇌인걸의 무공이다.천지도 상패천이 찾아낸 그것이 상해를 그 지경으로 만들었다.하지만 그렇다고만 보기엔 아귀가 안 맞는 부분들이 있다. 샹그릴라일행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처음부터 내용을 알고 무공쟁탈전에 끼어든 것인지, 남도의 제왕도 그러했던 것인지······ 그렇다고 보기엔 우연 같고 기이한 점들이 있어.’

강을 내려다보며 우란테는 의문점들을 곱씹었다. 아란처럼 어탕수육이 식어가는 줄도 모르고서다. 전당강이 보이는 이 음식점은 제법 비싸다.

‘대륙에 왔으니까란 마음으로 여기 앉았는데 이러고 있구나.’

어탕수육의 맛을 즐기고 풍광을 완상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고 있다. 단파무전기를 가진 자들에 의해 퍼진 소문은 아란이 직전에 말한 따끈따끈한 것이다. 혁리추와 명일해가 목적을 위해 손잡고 출행한 것이다.

‘그들을, 그를 쫓는 것은······!’

뜨거운 것이 목구멍에 걸린 것 같아 우란테는 침을 꿀꺽 삼켰다.

‘죽는 거야.’

그렇다는 결과를 예감한다. 아니 확신한다.그 젊은 무인은 가공할 독을 사용하는 자다. 그런 무서운 독은 듣도 보도 못했다.그것만이 아니라 고강한 무공의 소유자다.그러나 그보다 두려운 건 그의 눈동자다.

‘그 자의 내면에는 추측 못 할 무서움이 있어.’

그 무서움을 보게 되는 자는 죽을 것이 확실하다.황금대호방주와 남도의 제왕 문주는 그것을 모른다.보고 살아난 자가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세력을 잃고 마지막 도박을 하는 셈.’

그들의 입장이 그러하다. 그러니 샤크를 동원해 상해를 뒤집은 명일해와 혁리추는 손을 잡은 거다. 명일해 역시 샤크와 수하들을 잃은 처지다.

‘샤크 세대, 그것이 필경 그가 가진 전부였을 터.’

폐기된 기체를 손에 넣어 운용한다지만 샤크 세대는 엄청난 전력이다. 그 힘을 동원해 위세를 과시했지만 폭망했다. 다시 복구해야 할 것이다.

‘본전생각에 계속 돈을 거는 것이 도박판의 생리.’

이 세상, 강호의 삶이 그렇다. 그들은 이제 마지막 패를 쥐고 달리는 중인 거다.

“귀신대가리놈들이 남도의 제왕을 부린 거겠지요?”

이제야 젓가락을 집고 어탕수육을 휘저으며 아란은 짐작을 이어 뱉는다.

“샹그릴라일당을 추적하다 대륙으로 넘어간 정황을 알아내고 관련 정보를 남도의 제왕에게 준 것이 분명할 겁니다. 문주 명일해는 차제에 대륙으로의 발판도 마련한다는 심산으로 움직인 거고요. 하지만 당했네요.”

짐작만으로 결과를 다 알 수 없어 답답하다는 듯 아란은 고개를 저었다.

“그 일은 그만 관심을 접어라, 애초에 우리완 관련이 없는 일이다. 우린 우리 일만 제대로 마치고 돌아가면 된다. 형제들이 기다리고 있다.”

우란테의 말에 아란은 강한 눈빛을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우린 우리 일이 있지요, 명심하겠습니다.”

두 사람이 대륙에 온 이유, 무기를 구하기 위해서다. 바로 이곳 남경에서 무기상과 접촉하기로 했다. 중차대한 일이기에 우란테는 직접 나섰다.

“원래 남경은 여기서 서쪽으로 더 가야 한답니다.”

다시 입을 연 아란은 취득한 정보를 토대로 이야기했다.

“이곳은 서쪽에서 흘러내려와 동쪽바다로 흘러가는 전당강과, 남북으로 이어진 운하가 교차하는 지점이라 이렇게 모여들고 있다고 합니다.”

모여든다, 인간과 이종족들과 물산이 모이는 곳이다. 사통팔달의 요충지이기에 그렇다. 모든 것이 풍부한 곳, 그러나 그만큼 위험도 많은 곳이다.

“어? 뭐지?”

아란이 강을 보며 고개를 뺀다. 뭔가 자세히 보려는 움직임, 이유는 강에 있다.전당강과 남북운하의 교차로에 배 하나가 들어왔다.운하의 남쪽에서 올라온 배다. 그런데 놀랍게도 배를 끌고 온 것이 거대거북이다.

“거북이 아냐?”

아란의 놀람처럼 우란테도 놀라 몸을 돌렸다.강의 소란스러움이 한눈에 들어온다.각종 물자를 실은 배, 인간과 이종족들을 나르는 배, 하역하던 선창가, 음식점과 술집과 찻집, 모든 곳에서 모두가 웅성거린다.

‘괴수거북을 배 끄는 데 이용하다니!’

놀람을 삼키며 눈에 힘을 준 우란테는 숨을 멈추며 경직했다.갑판에 오연하게 서 있는 자, 바로 그자다.샹그릴라 일당의 그 젊은 무인이다.

* * *

“아 그 자식 아주 꼬시네 그거.”

박준은 정말로 고소해 입을 찢고 웃었다. 소리 없는 그 웃음이 아우리엘의 분노를 더 불러일으킨다는 걸 알기에 웃었다. 환하게 소리 없이.

“대충하십쇼, 얻어맞은 놈한테 뭐하는 겁니까?”

그렉이 핀잔했지만 박준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저자식이 얻어맞을 짓을 했잖아, 가만히 있었으면 눈탱이가 저렇게 됐겠냐?”

그렉은 쓴 입맛을 다셨다. 박준의 말처럼 아우리엘은 주먹을 불렀다. 다름 아닌 강흑성의 주먹이다. 어제부터 궁금한 건 못 참는다면서 달라붙었다. 어디로 뭘 찾으러 가느냐고 계속 치근대더니 결국 한 대 맞았다.

“형, 저기 다들 우릴 보는데?”

박현이 선미에서 앞을 보며 인상을 쓴다. 무슬란도 마찬가지다. 그 말대로 작은 도시 같은 곳에 소란이 일어나고 있다. 배를 끄는 거북 때문이다.

“여, 저긴 규모가 상당한데?”“그러게요? 어, 신남경이라고 써 붙여놨는데요?”

그렉이 가리키는 커다란 입간판을 보고 박준은 미간을 확 좁혔다. 강가에 기둥 두 개로 박아 놓은 저 것은 이 작은 강가도시의 이름이다. 그런데 박준 자신이 알기로 남경은 여기가 아니다. 물론 가깝다는 건 안다.

‘뭐야 이건?’

의문 뒤로 이어지는 짐작을 삼키는 박준에게 아우리엘이 답을 던졌다.

“여기가 남경이야 바보 놈들아.”

쌍심지 돋은 눈으로 아우리엘을 돌아봤던 박준은 깨달았다. 이젠 그렇다는 거다. 남경의 이름은 쇠퇴한 곳에서 넓혀져 나와 이곳을 이룬 거다.

‘하긴 대륙의 모든 도시들은 수백 년 전에 망한 거니까.’

박준의 상념을 깨는 박현과 무슬란의 성난 목소리가 터졌다.

“저 자식들이 뭐하는 거야!”“물길을 막고 있잖아! 저 죽일 놈들이!”

정말이다. 귀룡이 끌고 나가는 배의 앞쪽, 전당강과 운하가 교차를 지나 북쪽 운하로 들어가는 길목에, 강물아래서 거대철책이 올라오고 있다.

* * *

‘여기서 배를 탄 거야.’

혁리추는 분노를 삼키며 흔적을 다시 살폈다. 샹그릴라 일당은 이곳 금교어족마을을 공격했다. 물론 지나온 수림에서 금교어족놈들이 먼저 공격했겠지만, 상대를 모르고 덤볐다가 당한 놈들은 시신조차 안 남았다.

‘죽어버린 건 뭐든 남지 않지.’

수림에 사는 것들이 남겨 둘 리가 없다. 호수에서처럼 이곳도 핏자국만 남아 있다.

“강을 타고 간 것 같은데 우리도 배를 구해야 하지 않겠소이까?”

다가온 명일해를 돌아보고 시선을 맞춘 혁리추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근에 다른 금교어족들이 살 거외다.”

그들로부터 배를 얻겠다는 소리, 명일해는 차가운 살기의 눈을 번득였다. 안 그래도 속에 품은 살심을 풀어야 해서다. 그 대상이 있다는 거다.

“손이라도 풀게 됐소이다.”

진한 살심의 미소를 풀어내던 명일해는 그 순간 미간을 찌푸렸다. 혁리추도 마찬가지다. 둘이 동시에 느끼고 감지한 것은 살기, 다가오고 있다.

“금교어족이다, 환영해 주자.”

혁리추는 수하들에게 말하고 진득하게 웃었다. 대도를 움켜잡는 그와 같이 황금대도객 육인은 대도를 쥐고 나섰다. 그 순간 그들이 나타났다.금교어족, 수백의 무리가 밀물처럼 달려온다. 황금대도객들이 마주 달려간다. 그런데 엘킨의 손에서 뭔가가 날아갔다. 그것이 땅을 뒤집었다.

‘크레몬!’

혁리추는 눈을 치떴다. 명일해의 유일한 수하, 베어족놈은 연속해서 투척용 크레몬을 던지고 있다. 폭발력이 미치는 범위내의 모든 걸 찢어발기는 위력, 지금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 금교어족은 산산조각 나 흩어진다.

‘저놈 배낭에 든 게 저런 무기구나······!’

엘킨이란 이름의 베어족 놈이 진 커다란 배낭을 혁리추는 새삼 응시했다. 그 순간 명일해의 목소리가 터졌다.

“어지간히 해라! 이젠 손을 쓸 때다!”

엘킨은 크레몬 던지는 걸 멈췄고 명일해는 검을 뽑아 들고 달려 나갔다. 혼비백산 흩어지는 금교어족들을 쫓아가면서 검을 휘두른다. 검광이 번득일 때마나 혈화가 피어난다. 혁리추는 뜨거운 숨으로 소리쳤다.

“모조리 죽여라!”

대도를 움켜잡은 혁리추와 황금대도객 육인은 피바람을 일으켰다.

* * *

강물 아래서 솟아오른 철책을 바라보며 강흑성은 흑청빛 눈을 서늘히 빛냈다. 꾸어 하는 울음을 토하는 귀룡에게는 갑판의 발구름으로 멈추라는 지시를 내렸다. 곁으로 다가온 아우리엘의 산만함도 귀에 담지 않았다.

‘이 강을 지배하는 자, 너흰 누구냐.’

이제 대면하게 될 인물을 그리며 강흑성은 검자루를 느릿하게 잡았다. 피할 수 없는 일, 피해서도 안 되는 행보다. 막아서는 건 베고 간다.

“얼마 전에 여기 신남경을 철금련이란 조직에서 장악했다는 소리가 있었다.”

곁에서 이야기 하는 아우리엘의 목소리에 강흑성은 귀 기울였다.

“철을 다루는 놈들이라서 그런 이름 이라는 데, 나도 자세한건 몰라. 강물을 막은 저 철책보이지? 어른 몸통만한 저런 쇠기둥을 철금련놈들이 직접 만든다고 하더라. 그놈들이 운영하는 대장간, 아니 제강소가 있다는······”

박준이 끼어들었다.

“대장쟁이 놈들이 여길 장악했다고?”“대장쟁이? 뭐 그렇지, 그놈들이 철금련이야.”“야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리야? 이런 요충지역을 장악하자면 무기와 인원이 뒷받침돼야 하는 건데, 그놈들이 그렇다는 거냐? 무인들인 거야?”“아 몰라, 내가 다 아냐?”“아니 이 싸가지 없고 요상한 새끼가 말이 지대로 짧네?”

화내는 박준의 뒤에서 박현이 험악하게 스윽 나서는 그때였다.

-환영한다.

일행은 소리를 향해 일제히 시선을 돌렸다. 강을 울리며 다가온 소리, 스피커를 통해 이야기 하는 자가 보인다. 철책의 좌측에서 손을 흔든다.

-철금련의 도시 신남경에 온 것을 환영한다.

검은 수염이 얼굴에 가득한 사내는 웃는 얼굴로 뒷말을 냈다.

-아는지 모르겠지만 이 강을 지나는 자들은 이제 신고를 하고 통행세를 지불해야 한다. 그 배는 등록되지 않은 배가 확실하구나. 등록을 권유한다. 원하지 않는 다면 돌아가라. 단, 타고 온 배는 거기 두고 가라.“하, 저 미친 쉐이가 뭐래냐?”

박준이 어처구니 없어하고 박현과 무슬란은 작두칼을 쥐고 인상 썼다. 그런데 그렉은 경직했다. 강의 양편에서 떠오르는 것, 저것은 함포다.

‘캐논포!’

누가 그 이름을 붙였는지 모르지만 바로 그거다. 복합광탄발사기가 대인 휴대용이라면 저것은 대물, 적의 건쉽이나 함선과 전차를 파괴한다.

‘저것에 맞으면!’

격중되면 남아나는 것이 없다. 여섯 개의 포신이 좌우에서 배를 겨누고 있다.

‘개신발!’

박준이 입에 담고 사는 욕을 삼키던 그렉은 숨을 멈췄다.강흑성이 움직여서다.선수에 서 있던 그가 갑판을 차고 도약했다.그야말로 찰나, 철책 좌측의 털보사내에게 모습이 겹쳤다. 그자의 형상이 둘로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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