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85화 (86/172)

혹성강호. 85. 철금련.

85. 철금련.

부릅뜬 눈으로 우란테는 그의 움직임을 봤다.선수에서 벼락처럼 도약해 나온 신형은 통행세를 내라고 겁박하던 자를 지나갔다.둘로 나눠버린 죽음을 뒤로 두고 계속 달린다.어느새 캐논포의 포탑을 갈라버린다.

“저 자는 그잡니다!”

이제야 깨달은 아란의 경악한 반응을 곁에 두고 우란테는 검을 움켜잡았다.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반응, 샹그릴라의 젊은 무인을 보노라니 그렇다. 저자를 여기서 보게 된 것도 놀랍지만, 저 움직임과 무위가 놀랍다.

“저들을 보십시오!”

배위의 남은 일행이 움직인다. 거북이가 좌측 포탑들을 향해 몸을 돌렸고, 그 등을 밟은 자들이 포탑으로 뛰어올랐다. 움바바족 둘이 선두다. 그들 특유의 커다란 작두칼이 포탑 위의 적들을 무처럼 동강낸다.굉렬한 소리로 포가 터졌다.아니 포에 맞은 배가 터졌다. 그러나 배위에는 아무도 없다.거북 등위에만 엘프로 보이는 존재와 사슴 한 마리가 있을 뿐이다.그런데 사슴은 블랜팩더만큼 크고 엘프는 여자로 보인다.

“저들은 샹그릴라 일당이 분명합니다!”

거듭 경악스런 반응을 내는 아란에게 우란테는 삼엄한 눈빛을 던졌다. 즉시 의미를 깨달은 아란은 입을 다물었다. 쓸데없는 말을 뱉은 것이다.아란이 주변을 살펴볼 때 우란테는 다시 그를 봤다. 공격을 시작함으로써 일행들의 공격을 동시에 끌어낸 젊은 무인, 그가 포탑위에 섰다.삽시간에 캐논포 세 문을 불능상태로 만든 존재, 그가 강하게 소리친다.

“길을 막고자 하는 자 나서라!”

천둥벽력 같은 목소리는 강과 운하의 교차점에 만들어진 신남경을 흔들었다.

* * *

“저길 보시오.”

혁리추는 강가를 가리켰고 선수에서 바람을 맞던 명일해는 시선을 돌렸다.흔적, 전투가 일어났던 흔적이 여실하다.거대수들이 쓰러져 있고 핏자국이 널렸다.왜 그런지도 알았다.블랙베어들의 사체가 널려 있다.

“저놈들, 머리가 부서져 죽었소.”

혁리추는 미간에 힘을 가득 주며 강가를 응시했다. 황금대도객들에게 강가로 배를 대라는 명을 내리진 않았다. 블랙베어들의 사체가 있는 곳엔 다른 놈들이 있기 때문이다. 굳이 그 흉악한 놈들과 싸울 필요 없다.

“어떻게 저렇게 죽었을까······”

명일해는 눈동자를 번득이며 의문을 삼켰다.블랙베어들의 사체가 열구나 된다. 거대수들이 쓰러져 평지처럼 된 공간의 여기저기에 있다.흉한 싸움이 일어났던 게 분명하다.블랙베어들을 저렇게 죽일 원인이 뭔가.

“중화기를 사용한 흔적은 없는 것 같소이다.”

혁리추의 말대로다. 벌컨이나 하다못해 미니건, 로켓이나 복합광탄류의 무기가 사용되지 않았다. 거리가 있어서 확실치 않지만 도검에 의한 흔적이 있고 블랙베어들의 머리는 강한 외부충격에 의해 박살난 것 같다.

“무공······!”

신음처럼 중얼거림을 흘려낸 명일해를 혁리추가 홱 돌아봤다. 뭐라고 말을 하지 못하고 입술과 눈가만 움찔거렸다. 지금 명일해가 낸 말, 자신 역시 같은 생각이다. 강가의 저 흔적은, 블랙베어들은 무공에 죽었다.

우워엉!

수림 저편에서 들려오는 블랙베어의 울음소리에 혁리추와 명일해는 흠칫했다.

‘역시 주변에 다른 놈들이 있구나······!’‘한두 마리가 아니야······!’

블랙베어들의 특징은 저렇게 죽은 동료 곁에 머문다는 거다. 맹수들은 타고난 특성상 무리를 짓는 것이 어려운데 저 괴수들은 그렇질 않다. 특이하게 무리를 지어 행동하고 저렇게 죽은 놈 곁에서 슬퍼하며 운다.저런 놈들과 싸우는 건 바보짓이다. 블루마운틴보다 무서운 저 괴수 곰들, 싸운다면 죽일 수야 있겠지만 이득이 없는 행위다. 그보다 중요한 건, 열 마리나 되는 놈들의 머리통을 저렇게 박살내 죽인자의 정체다.

‘그놈들이······!’‘샹그릴라 일당······!’

칼날처럼 곤두선 눈을, 그 속의 복잡한 감정과 생각을 다스리지 못한 채 명일해와 혁리추는 침묵에 잠겼다. 그렇게 배는 운하를 타고 나갔다.

* * *

피를 달라며 우는 패천마혈의 몸부림을 움켜쥐고 강흑성은 변화를 지켜봤다. 배에서 튀어 올라가 반대편 포탑을 장악한 동료들과 눈을 맞추면서다. 운하의 물길을 막은 자들, 철금련이란 조직의 대응을 기다림이다.그것이 눈에 들어온다. 북으로 뻗어나간 운하의 물길 우측 산비탈, 강물을 내려다보는 곳의 건물에서 누군가 나타났다. 벙커라고 해야 맞은 구조물의 옥상이다. 긴 외투자락을 강바람이 날리며 오른 손을 들고 있다.

‘너구나.’

상대가 우두머리거나 최소한 이 상황의 국면을 좌우할 지위에 있는 자라는 걸 강흑성은 직감했다. 저렇게 홀로 서서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든다. 대담함의 바탕을 이루는 자신감을 가늠하기에 앞서 바로 도약해 나갔다.포탑을 차고 나간 강흑성은 구조물들과 강가의 비탈을 차고 올라갔다. 마치 물수리가 물을 차고 나가는 것 같은 그 움직임은 경탄이 절로 난다.벙커 앞에서 도약한 강흑성은 허공을 선회해 착지했다.

“대단하군.”

환한 미소로 박수를 치는 자, 선 굵은 얼굴로 호쾌한 웃음을 흘려내는 사내는 서른 중후반으로 보인다. 외투 안 허리벨트엔 핸드건이 있고 외투 밖 어깨에는 빔소총이 걸려 있다. 가장 눈을 끄는 건 오척장검이다.

‘다루기도 어렵게 생긴 검을······’

길이도 길이지만 검폭이 보통 검의 세배는 되겠다. 저렇게 무거운 검을 다루기란 정말로 어렵다. 그런데 사내에겐 잘 어울린다. 검병에 손때가 가득한 걸로 봐선 오랜 시간 저 검을 사용했다. 아마 몸과 같을 거다.

“예사롭지 않은 검을 가졌군.”

사내가 먼저 검에 대해 말했다. 혈광을 번득이는 강흑성의 검이 예사롭지 않게 보이는 건 당연. 응시하는 사내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빛난다.

“철금련의 수장인가?”

대꾸처럼 던진 물음 뒤로 강흑성은 핵심을 바로 뱉었다. 아니 통첩을 던졌다.

“길을 터라. 파손된 배를 대체할 배는 내라. 피를 보자면 본다.”

흑청빛 안광으로 검을 움켜잡는 강흑성, 그 모습을 사내는 고요한 눈으로 응시했다. 그러다 설핏 입가에 미소를 피워 물고 중얼거리듯 말한다.

“무서워서 오줌을 지리겠군.”

말은 그렇지만 하나도 무서워하지 않는 미소다. 이어내는 말이 그렇다.

“협박에 굴복한다면 철금련은 이름을 버려야겠지. 나 철무진은 철금련을 그렇게 만들지 않았다. 두려움에 물러섰다면 지금 이 자리에 서서 숨 쉬고 있지 않을 것이야. 시체가 돼서 저 강물속의 고기밥이 됐겠지.”

강흑성은 한걸음을 내디뎠다. 그럼 이제 물고기밥으로 만들어주겠다는 듯이.

“저런.”

반사적으로 한걸음을 뒤로 물린 자, 철무진은 오척장검을 쥐고 다시 말했다.

“그렇지만 장사는 완전히 다른 거지. 거래라는 것은 말이야.”

강흑성의 눈이 응축하는 걸 응시하며 철무진은 계속 뒷말을 냈다.

“서로 원하는 걸 주고 받음으로서 쌍방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 그게 거래야. 본 철금련은 누구하고도 거래 할 수 있다. 안된다면 싸우겠다.”

말없이 철무진을 바라보던 강흑성은 물었다.

“무슨 거래를 말하는가?”

물길을 막은 것도 너희고 죽이려한 것도 너희지만 들어보겠단 반응.

“그대들이 누군지 알고 있다.”

미간을 꿈틀하는 강흑성의 반응을 예의주시하며 철무진은 이어 말했다.

“상해가 쑥대밭이 됐다고 안다. 거길 그렇게 만든 자들 중에 움바바족 둘이 낀 일당이 있다고 했지. 그 무리 속에 젊은 무인이 있는데, 가공할 독을 사용한다고 들었다. 덤벼들었던 자들 전부가 독수로 변했다더군.”

그게 너희잖아? 라는 눈으로 철무진은 미소를 피워냈다.

“황금대호방주 혁리추와 한반도에서 넘어온 남도의 제왕 문주 명일해가 손을 잡았다고 하더군. 누군가를 추적하기 위해서라던데, 알고 있나?”

강흑성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철무진은 다시 미소를 피워냈다.

“그래 맞아, 우리가 제대로 못 알아보고 실수했지. 건드리면 안 될 자들은 건드린 거야. 그런데 그거 아나? 우리도 죽기를 각오하면 무섭다네.”

달궈진 쇠와 같은 안광을 흘려내는 철무진, 강흑성은 다시 걸음을 냈다.

“망설이지 마라.”

세 걸음 째 내디딘 강흑성에게 철무진은 다급히 손을 들었다.

“어리석은 짓이다. 그렇다는 걸 서로가 안다.”

그렇기에 철무련주 철무진이 직접 나섰고 거래를 제안한 거란 의미. 이쯤에서 칼을 거두고 서로의 체면이 손상되지 않는 한도에서 물러서는 거다. 그래야 할 명분으로 철무진은 거래를 말했고, 그 내용도 말한다.

“길을 터주고 배를 내주겠다. 원하는 물자도 주겠다. 그 대신 도움을 받고자 한다.”

꿈틀한 미간을 좁히는 강흑성에게 철무진은 거북을 가리켰다.

“저 괴수의 힘이 필요하다.”

* * *

“저자가 철무련주 패천검 철무진이 분명합니다.”

벙커 위의 인물, 샹그릴라의 젊은 무인과 일촉즉발의 기세로 대치하며 선 사내를 우란테는 힘준 눈으로 응시했다. 육중한 크기의 검을 지닌 자다. 일신무공내력을 자세히 알진 못하지만 철극문의 후예라고들 한다.철극문은 십대문파의 한 곳이었다. 그들의 철마류라는 신공과 검술을 비롯한 무공은 프락시안놈들을 놀라게 했었다. 그러나 치열하고 참혹했던 전쟁의 결과, 문파의 기틀을 제대로 보존하지 못하고 멸문한 곳이다.

“어? 저걸 보십시오, 저들이 화해한 모양입니다?”

아란의 놀란 반응처럼 우란테도 눈에 힘을 주고 그 광경을 봤다.철무련주 철극진이 샹그릴라의 젊은 무인을 안내하듯 벙커로 데리고 들어가는 모습이다. 그 뒤를 따라 다른 일행들도 그곳으로 이동하고 있다.

“무슨 일일까요?”

궁금해 미치겠다는 아란을 곁에 두고 우란테는 느릿하게 자리에 앉았다. 그러며 주변을 보니 음식점 안팎의 모든 이들이 웅성거리고 있다.

“경거망동하지 마라, 말했듯이 우린 우리 일에만 집중한다.”

식은 찻잔을 든 우란테는 찻물을 넘기며 궁금함도 함께 넘겼다.

* * *

“무슨 소리야?”

아우리엘은 인상을 찡그리면서 철무진을 응시했다. 그 시선이 부담스러워 철무진은 된 숨을 흘려냈다. 남자란 말을 들었지만 정말 여자 같다.

“귀룡을 이용한다는 거잖아? 그렇지?”

점점 흥분하는 아우리엘을 그렉과 박준과 박현과 무슬란은 비슷하면서 다른 생각과 감정으로 쳐다봤다. 아우리엘 입장에선 별로인 일인 거다.

“이봐, 강한 인간? 왜 이러는데? 그냥 우리한테 한 것처럼 쓸어버리지 않고 왜 이러는 거야? 저놈들이 겁나는 거야? 그거 아니잖아? 그렇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단 아우리엘에게 답을 준 건 박준이다.

“그 머리는 장식이냐?”“뭐? 이!”

재수 없는 인간놈이 라고 말하려던 아우리엘은 이어 나오는 말에 흠칫했다.

“흑성이가 이자들과 싸우는 동안 우리 중의 누군가는 죽는다. 그게 아마 네가 소중하게 여기는 사슴이거나 거북이일 확률이 가장 높지. 이자들이 허술해 보여? 절대로 아니지. 우릴 죽일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거야.”

그렇다는 거다. 그래서 강흑성은 불필요한 피해를 만들지 않기 위해 이런 다는 거다. 물론 싸우게 되면 악귀가 되겠지만, 이길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로인한 결과는 의미가 다른 것이다. 정말 누군가 죽을지 모른다.

‘강물 속에 무슨 폭파장치라도 해 놨다면? 귀룡을 죽인다면?’

현실을 자각한 아우리엘은 철무진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그 시선을 철무진은 엷은 미소로 받아냈지만, 내심으로는 기묘한 한숨을 내쉬었다.

‘여자같이 생긴 하프엘프 남자놈이라니······’

철무진이 그 생각을 하는데 강흑성이 입을 열었다.

“결정은 네가 해라.”

네 거북이니까란 의미.

“어 그건······”

아우리엘은 강흑성의 눈을 응시하며 갈등했다. 처음엔 싸움에 져 죽지 않으려고 길잡이를 한 건데, 어디로 뭘 찾으러 가는 건지가 궁금해졌다. 그걸 계속 물어보다가 눈도 맞았지만, 이대로 돌아가는 것도 웃기다.

‘솔직히 돌아갈 곳도 없어.’

수림 어디든 돌아갈 곳이긴 하지만, 그렇게 여기며 살아왔지만, 마음에 난 이 구멍은 늘 채워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들을 만나고 달라졌다. 불과 하루 이틀이지만 생기가 돈다. 심장이 흥분으로 뛴다. 처음 겪는 일이다.

“야, 하기 싫으면 하지 말고 넌 이제 돌아가.”

박준이 그 말을 던진 순간 아우리엘은 대답했다.

“하지 뭐.”

박준과 그렉과 박현과 무슬란은 벙찐 얼굴로 아우리엘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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