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강호. 89. 서주(西州)의 앞에서.
89. 서주(西州)의 앞에서.
이틀을 쉬지 않고 이동했다. 박준의 말에 의하면 저 앞이 서주다. 대륙이 중국이라는 나라일 때의 행정구역이었던 강소성의 북단이고 목적지인 산동성의 남단 아래다. 유서 깊은 역사도시라선지 불야성처럼 빛난다.
“저기도 신남경 비슷한 곳일 거야.”
폐허가 된 곳을 살고자 하는 숨결들이 재건했다는 소리. 점점 가까워지는 서주의 불빛을 보며 미간을 찌푸린 박준은 자신의 생각을 이어 말했다.
“굳이 정박할 일이 없으니 내쳐 지나가는 게 좋아.”
괜시리 귀찮은 일에 휘말릴 일은 만들지 말자는, 피해가자는 이야기다. 서주에 들른다고 그런 일이 생긴다는 보장은 없지만 합리적인 의견이다. 샹그릴라 일당이란 이름으로 일행에 대한 소문은 퍼질 대로 퍼진 거다.
“그거야 당연한 건데, 철금련처럼 물길을 막으면 어쩌지?”
동생 박현의 물음에 박준이 미간을 더욱 찌푸리는 데 무슬란이 가슴을 쳤다.
“싸워야 할 상황이면 싸우는 거지!”
박현도 그렇지, 하며 이내 호응하는 얼굴이 돼 뜨거운 콧김을 뿜는다.
“맞아, 우리가 죄지은 것도 아니고! 죽겠다고 덤비는 놈들은 죽이는 거지!”
그렉이 둘의 옆에서 혀를 찼다. 인상구기며 노려보는 둘에게 차갑게 말한다.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랬다고, 솔직히 싸우는 게 누구냐? 니덜 둘이 철금련 같은 세를 감당할 수 있는 거냐? 여태 누가 싸웠냐?”
박현과 무슬란은 쓴 것을 삼킨 얼굴을 만들었다.
“아 뭐, 그건······”“음, 그렇지 뭐······”
그 순간 허공에 뭔가 지나갔다. 야공을 번개처럼 날아가는 작은 비행체다. 그것이 송골매라는 것을 일행은 알아봤다. 당연한 반응으로 긴장을 품었지만, 이곳이 서주의 코앞이기에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겼다.
“야, 아우리엘, 서주는 어떤 놈이 대장노릇을 하는 거냐?”
칸타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던 아우리엘은 박준을 째려보며 반응했다.
“몰라, 내가 다 아냐?”“아 저 싸가지 없는 자식.”
박준이 한마디 더 뱉으려는 그 순간에 강흑성이 경고를 뱉었다.
“비행체들이 날아옵니다!”
무슨 소리야 하는 반응으로 고개를 돌린 박준은 눈을 치떴다. 강흑성의 말대로 송골매로 추측한 작은 비행체들이 야공을 뒤덮듯이 날아온다.
“뭐야 저거!”
박준의 기함한 외마디에 박자를 맞춘 듯 비행체들이 공격을 시작했다. 빔건의 발사다. 일견 백기가 넘는 비행체들이 일시에 빔을 뿜어댄다.
“배 밑으로!”
소리친 강흑성은 마검 패천마혈을 뽑아들고 빔줄기들을 갈랐다. 일행은 경악한 가운데 물속으로 몸을 던졌고, 배 밑바닥에서 빔을 피했다.
‘귀룡아!’
물을 뚫고 들어오는 빔줄기를 보며 아우리엘 귀룡에서 손짓을 했다. 배 뒤로 따라오던 귀룡은 장갑 같은 껍질 속으로 머리와 팔다리를 넣고 다가왔다. 그 아래쪽으로 일행은 이동했고, 귀룡은 빔줄기들을 막아냈다.귀룡이 강가를 향해 몸을 돌리고 일행이 헤엄치는 그때, 배가 폭발했다.
“우헥!”
물가로 나와 숨을 틔운 박준은 폭발한 배를 돌아봤다. 송골매들의 충돌도 연속해서 폭발이 일어나고 있다. 배와 함께 강흑성을 폭사하려는 공격이다. 그런데 강흑성은 허공으로 떠올라 휘돌며 검광을 갈라낸다.피처럼 붉은 검광.강흑성으로 부터 퍼져나간 그 가름들이 송골매들을 갈랐다.빔건을 장착한 내부에 폭탄을 심은 송골매들은 허공에서 터진다.
“허.”
박준은 또 새삼 강흑성의 능력에 감탄하고 전율했다.일백기가 넘는 비행체들을 저렇게 도륙하는 광경을 어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그런데 감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저 송골매들을 날려 보낸 적이 있는 거다.
“우릴 노리는 놈들이 있다······!”
분노와 긴장을 삼키는 박준의 목소리에 반응한 일행은 시선을 모았다. 박준처럼 분노와 긴장으로 힘이 응축한 눈동자들, 현재상황을 더듬는다.
“황금대호방과 남도의 제왕일까?”“그래, 그 떨거지 문주놈들이 우릴 쫓아오고 있다고 했잖아?”
무슬란과 박현의 목소리 뒤로 그렉이 냉철한 눈빛을 흘려냈다.
“그자들에게 이런 여력이 있을지 의문인데? 저건 분명히 송골매야. 정찰용이 아닌 공격용이지. 저 정도 숫자를 운용할 정도면 그들은 아니야.”
박준이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저 정도면 군이나 정찰대라고 해도 틀리지 않아. 그런데 그건 현실적으로 안 맞는 얘기고, 그에 준하는 세력이나 조직이라고 봐야겠지.”
그게 누군데 하는 동생 박현의 눈을 응시하던 박준은 순간 경직했다. 일행이 강에서 기어 나온 지금 이 자리의 뒤쪽, 수림에서 은빛이 번득인다.
“피해!”
소리친 박준은 거구의 동생 박현을 밀고 엎어졌다. 그 순간 은빛이 무슬란의 팔을 치고 지나갔다. 그렉의 등도 스쳤고, 사슴 칸타를 강타했다.고통스러운 울음소리를 내며 칸타가 쓰러졌다. 아우리엘을 향해 날아오는 은빛을 대신 맞은 결과다. 뿔이 잘려나갔고 목에선 선혈이 치솟는다.
“칸타!”
아우리엘의 비통한 외침 속에서 은빛은 허공을 선회해 수림으로 돌아갔다.그것이 뭔지 그렉은 알아봤다.무슬란의 팔을 가르고 자신의 등을 갈랐으며, 아우리엘의 사슴 칸타의 목에 박힌 무기.저건 반월륜이다.
“블랙블러드다!”
* * *
매그넘이 낸 돈으로 산 배는 정말 속도가 빠르다. 이제 샹그릴라 일당의 뒤를 거의 따라 붙은 것 같다. 이 부분은 매그넘에게 감사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혁리추와 명일해는 점점 짙어지는 불안한 예감을 삼켰다.
“배가 아니라 건쉽을 살수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불안의 근원, 매그넘의 미소를 두 사람은 엷은 미소로 받아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정말 좋았을 거요.”“그렇지, 그럴 수 있었다면.”
혁리추와 명일해는 십분 공감했다. 배로 뒤를 쫓는 게 아니라 하늘을 가로질러 가 잡는 상상은 상상만으로 짜릿하다. 하지만 난망한 일이다. 당장 샹그릴라 일당을 추적하는 게 급한데 비행체 구하러 다닐 순 없다.
“음?”
매그넘이 하얀 얼굴을 갑자기 찡그렸다. 혁리추와 명일해는 긴장했다. 매그넘이 자신들이 감지하지 못한 무엇인가를 감지한 것이 분명하다.
“저걸 봐.”
눈동자를 빛낸 혁리추와 명일해는 강 앞쪽을 응시했다.매그넘이 가리키는 곳, 서주로 이어지는 운하의 강어둠 저편에 섬광이 일고 있다.마치 먼 곳에서 작은 뇌전이 작렬하는 것처럼이다.저건 폭발이 분명하다.
“속도를 더 높여라! 전속으로 달려!”
혁리추의 격한 명령 속에 황금대도객들은 배의 속도를 최대로 높였다.
* * *
대전을 코앞에 두고 사망해 버린 차를 전복은 물끄러미 바라봤다. 마치 죽어버린 애인을 바라보듯이다. 오래도록 고생만 시키고 호강 하번 못시켜줬는데 란 말을 하는 것 같다. 그러다 배낭을 짊어지고 돌아섰다.
“가자.”
기다리던 준후가 차를 다시 한 번 더 응시하고 걸음을 떼며 묻는다.
“아저씨 저차 타고 다니면서 현상금 사냥꾼 노릇을 한 거예요?”
최창수는 엄한 눈길을 준후에게 던졌지만 전복의 자랑질이 더 빨랐다.
“그럼, 내가 제법 잘나갔거든. 도망 다녀야 할 놈들은 내 차 소리만 들어도 꽁무니를 뺐지. 내 별명이 단두대다. 단두대 전복하면 울던 아이도······”“그쯤해라.”
최창수가 걸음을 멈추고 사납게 노려보자 전복은 미간을 움찔했다. 바로 나오는 반응은 에잇 이젠 못 참겠다는 것인데, 그것도 즉시 사라진다.
“그래그래, 준후 네가 알아서 좋을 거 없는 얘기다.”
최창수와 전복의 사이에서 눈치 보며 걸음을 옮기던 준후는 다시 입을 열었다.
“대전은 어떤 곳일까요?”
기대를 품은 아이의 눈, 준후의 머릴 쓰다듬은 전복은 다시 입을 열었다.
“좋은 곳이라고 해서 가는 거 아니냐. 좋을 거다.”
최창수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바로 뱉어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다. 어디서든 내가 준비하고 있으면 되는 거야. 명심해라, 준후 네가 준비해 놓지 않으면 세상에게 당하고 마는 거다.”
최창수를 올려다 본 준후는 어둠을 품었다가 강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예 알겠어요.”
준후의 대답이 나오고 세 사람은 말없이 걷기만 했다. 그 시간이 얼마나 됐을까. 어둠 저편에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드디어 대전인 거다.
“거의 다 왔어요!”
환호하는 것 같은 목소리로 준후가 앞서 달려갔다. 그 뒤로 하 저놈, 하며 웃은 전복이 따라 달려갔고, 최창수는 두 사람을 바라보면서 걸어갔다.
* * *
“칸타!”
비통해 젖은 아우리엘의 외침을 향해 강흑성은 신형을 돌렸다. 마지막 송골매를 밟아 터트리면서다. 허공을 비상하는 그 움직임 앞으로 은빛들이 날아온다. 일행을 공격한 무기, 블랙블러드의 상징인 반월륜이다.
‘너희구나!’
예감했던 가능성의 하나다.정찰대가 남도의 제왕을 칼로 부린 일과 같은 맥락이다.어떻게든 강흑성 자신 일행을 죽이려 한다면이란 전제하에서다.무엇보다도 정찰대는 독을 분석했다. 그 유래를 알아냈을 거다.
‘아버지의 독.’
유성대협이 삼백년 전에 사용한 독.그렇다는 걸 블랙블러드가 알면 가만있을 수 없는 거다.유성대협에게 존폐의 위기를 겪은 자들이다.저렇게 왔다. 정찰대내부를 통해서든 어떤 방법으로든 블랙블러드는 안 거다.사지 육신을 잔혹하게 가르는 병기, 반월륜의 난무 속으로 강흑성은 소용돌이처럼 들어갔다. 패천마혈의 혈광을 사방으로 뿌리며 반월륜을 갈랐다. 불꽃을 피우며 사방으로 비산하는 반월륜, 그 근원을 향해 나갔다.거대수를 가르며 착지한 강흑성은 적들의 실체를 봤다. 포위한 자들 이십여인, 전신을 감춘 흑색갑주는 분명 라이트슈트다. 천산마갑과 성능은 거의 비슷하지만 행동능력에 최우선 중점은 두고 제작한 전투슈트다.
“블랙블러드.”
나직하게 그 이름을 강흑성이 뱉은 순간 놈들이 움직였다. 허리에서 뽑아낸 흑사검의 검신을 낭창거리면서, 밤을 희롱하는 귀신들처럼 덮쳤다.
* * *
드디어 대전이다. 7군단이 지배하는 저 도시는 가장 안전한 곳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저 안에 들어가 살고 싶어하는 자들은 많다. 그렇지만 들어갈 수 있는 자들은 소수다. 그래서 대전의 외곽에 이렇게들 모여 산다.
‘그마나 여기도 안전지대라고 할 수 있겠지.’
거대한 난민촌이 형성돼 있는 대전의 초입에서 최창수는 비애를 삼켰다.
‘사람들은 이렇게 계속 모여들 테지만······’
그 중에서도 대전의 경계 가까이에서 살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해 멀리 떨어져 주저앉아야 하는 사람의 구분이 있음이다. 경계에서 멀수록 안전은 희박해지고 위험은 높아진다. 7군단도 전부를 돌볼순 없는 거다.
“물러서!”
날카로운 여자 목소리에 최창수는 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돌렸다. 앞서가던 전복과 준후도 멈춰 옆을 돌아봤다. 움막들이 연이어 있는 곳이다.
“물러나지 않으면 죽인다!”
거듭 살벌하게 소리치는 여자는 케리언족이다.핸드건을 흑랑성놈에게 겨누고 있다.흉악한 날빛의 칼을 쥔 흑랑성 놈, 그 발아래 여자애가 있다.사색이 된 여자애는 인간이다. 캐리언족여자에게 언니라고 부른다.
“카이오언니······!”“괜찮아 명희야! 언니가 구해줄게 그대로 있어!”
그 순간 흑랑성놈이 흉악한 웃음을 터트린다.
“크하하하! 요 꼬마 계집애를 잡을게 아니라 네년을 잡아야겠구나!”
최창수와 전복은 상황을 이해했다.흑랑성 놈은 이 난민촌 지역에서 아이들을 납치해 팔아먹는 놈인 거다.그런데 저 아가씨를 보더니 침을 흘린다.아이를 팔아먹을 게 아니라 캐리언족 여자를 팔아먹겠단 소리다.
“아이를 놔줘 이 나쁜 자식아!”
빽하고 소릴 지른 존재는 준후다.최창수와 전복은 놀라 준후를 봤고, 흑랑성늑대족 놈은 흉악한 눈을 부라린다.곧바로 칼을 준후에게 돌린다.
“이 애새끼가!”
최창수과 전복이 움직이려는 그 순간, 핸드건이 불을 뿜었다. 흑랑성 늑대족 놈의 가슴을 강타했다. 피를 뿜으며 놈은 쓰러졌지만 살기를 뿜는다.
“이, 죽일 년이······!”
두 번째 빔이 날아갔다. 흑랑성 늑대족의 미간을 관통했다.
“지옥에 가서 지껄여라.”
미모의 캐리언족 아가씨는 한 번 더 빔을 발사했다. 완전히 죽어버린 흑랑성 놈을 발로 차서 죽음을 확인한 뒤, 아이를 안아 일으키고 껴안았다.
“언니 우와앙!”“그래, 괜찮아, 이제 됐어.”
우는 아이를 다독이는 캐리언족 아가씨를 최창수와 전복과 준후는 바라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