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강호. 90. 그 이름 블랙블러드.
90. 그 이름 블랙블러드.
흑사연검진.최강의 살수검진이라는 블랙블러드의 공격검진 안에서 강흑성은 흑청빛 살기를 전신으로 발산했다.아버지 유성대협의 기억이 이순간 다 떠오른다.저들이 어떤 존재인지, 왜 죽여야 하는지의 기억이다.
‘세상을 팔아먹으려한 것들!’
블랙블러드는 그런 조직이다. 삼백년 전 프락시안들과 결탁해 수많은 이들의 피를 흘렸다. 그 비밀의 동맹을 아버지 유성대협과 천웅대협이 알았다. 그래서 저들을 궤멸하고자 했다. 물론 악연은 그것만이 아니다.
‘처음부터 아버지를 죽이려 한 것들! 모조라 갈라 죽여주마!’
싸늘하게 엄습하는 흑사검진의 중앙에서 강흑성은 벽뢰십진을 터트렸다.패천마혈을 땅에 꽂음과 동시에 양손을 전후좌우로 떨쳤다.사슴 칸타로부터 흡수한 벽뢰의 힘, 혼천무상대법의 역혈로서 번개를 날렸다.푸른 폭발이 일어나듯 벽뢰 열줄기가 터져나갔다.전신을 난자해 들어오던 블랙블러드의 흑사검진을 강타해 흐트러뜨렸다.일급살수들로 구성된 암살자들 이십인이 당황과 충격을 삼킬 때, 마검 페천마혈이 울었다.지옥 같은 혈광을 패천마혈은 터트렸다.강흑성이 다시 검병을 잡고 휘두르면서다.지옥의 암천을 가르는 혈뢰가 되어 암살자들의 형상을 가른다.블랙블러드의 일급살수 이십인, 그들의 형체가 조각나 흩어진다.한순간에 끝나버린 승부.죽은 자들이 흘려내는 피를 밟고 선 강흑성은 몸을 돌렸다.사슴 칸타를 잡고 비통한 울음을 토하는 아우리엘과 그 곁의 일행에게 다가갔다.무슬란과 그렉이 부상을 입었고 칸타가 죽었다.
“으허어! 칸타아!”
목 놓아 비통함을 내는 아우리엘, 그 모습을 보던 박준은 고개를 돌렸다.
“제기랄······!”
아우리엘만 만큼은 아니지만 비분강개함이 이를 악물게 한다. 저 사슴이 아우리엘을 살리려고 반월륜을 대신 맞았다. 아우리엘의 얘기가 기억난다. 강흑성을 공격할 때 지닌 힘을 다 쏟아내서 힘이 없는 상태라고.
“블랙블러드야.”
그렉의 경직한 눈동자를 응시한 강흑성은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알고 있다는 반응, 그렉은 죽은 놈들에게 시선을 돌려 새삼 결과에 전율했다.
‘저놈들 분명 일급살수야, 그런 놈들 스물을 저렇게······!’
강흑성이 저놈들을 도륙하는 건 한순간이었다.이결과가 믿기지 않는 건 저들이 블랙블러드여서다.그 이름이 가진 힘과 공포는 어마무시한 것이다.그런데 강흑성은 저렇게 도륙했다. 끝없이 강해지고 있는 것 같다.
‘하긴, 흑강석 산을 흙더미로 만들어 버린 일도 있는데······’
그런데 솔직히 그건 무공이란 걸로 논할 수 없는 결과였다.그렇다, 그 순간의 강흑성은 다른 존재였다.맨처음 샹그릴라에서 마검을 잡았을 때처럼이다.그런 일이 또 생겼다고, 강흑성이니까라는 걸로 이해하는 거다.
‘지금 이결과는 완전한 흑성이의 무력.’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옮긴 그렉은 동강난 블랙블러드 살수들의 사체를 뒤졌다. 그렇게 찾아낸 것은 놈들의 상징 철패, 역시 핏방울이 다섯 개다. 블랙블러드가 일행을 특정했고 위험하다고 판단했다는 증거다.
‘정찰대로부터겠지.’
뜨겁고 무거운 숨을 흘려낸 그렉은 철패를 박현에게 던졌다. 무슬란과 박준도 철패를 확인하고 낯빛을 경색했다. 그 앞에서 강흑성이 말한다.
“이동해야 한다. 위험해 질 거다.”
이 자리에 머물면 그렇다는 소리, 아우리엘은 고개를 확 쳐들고 강흑성을 노려본다.
“블랙블러드가 너희를 노리는 거냐?”
흑청빛 눈동자에 힘을 싣는 강흑성, 그 모습을 노려보던 아우리엘은 스스로 답을 찾았다.
“블랙블러드······! 내 가족을 죽인 놈들, 죽여 버리고 말테다······!”
칸타는 아우리엘의 가족인 거다. 그 가족을 해친 블랙블러드에 대한 원한으로 아우리엘은 치를 떨었다. 곧바로 귀룡에게 다가가 긴히 속삭인다.꾸어, 소리를 내며 아우리엘의 얼굴을 혀로 핥은 귀룡은 칸타의 시신을 물었다. 그렇게 강물 속으로 들어갔다. 짐승들의 먹이로 버려두지 않겠다는 것, 작별이라는 것을 일행들은 알았다. 그래서 한숨을 내쉬었다.
“가자.”
돌아와 단호하게 이동을 말하는 아우리엘, 이젠 떼버리려야 뗄 수가 없게 된 거다. 돌아가라고 할 수가 없다. 아우리엘은 복수를 맹세한 거다.
“괜찮습니까?”
강흑성은 무슬란과 그렉에게 물었다. 둘 다 제법 크게 갈라졌지만 위중한 상태는 아니다. 괜찮다는 둘의 혈도를 누른 강흑성은 앞서 움직였다.강흑성을 선두로 일행은 강변을 따라 이동했다. 서주의 안을 향해서다.
* * *
“괜찮니?”
준후가 먼저 여자아이에게 물었다. 깜찍한 꼬마여자애는 눈물 젖은 얼굴로 생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준후가 소리치며 나선 게 고마운 거다.
“아 다행이다.”
마주 미소를 피워낸 준후는 죽어버린 흑랑성놈을 향해 분노를 발사했다.
“나쁜 놈, 저런 놈들이 여기도 있구나.”
핸드건을 움켜쥐고 바라보던 캐리언족 아가씨, 꼬마여자애가 카이오라고 부른 여자가 준후에게 미소 짓는다.
“도와줘서 고맙다.”“예? 아니, 제가 뭐 도와준 게 없는데요.”
당황해하는 준후에게 캐리언족 아가씨는 거듭 미소를 건넨다.
“아니야, 네가 소리친 덕분이야. 저 자의 주의를 분산시킨 거야.”
그래서 자신이 핸드건을 발사했다는 소리.
“그, 그런가요?”
어색하게 웃으며 뒷머릴 긁는 준후를 보던 캐리언족 아가씨는 두 사람에게 시선을 돌린다. 최창수와 전복, 두 사람은 기묘한 눈으로 마주 봤다.
‘강단이 대단한 아가씨군.’‘미모가 상당한데.’
두 사람을 항해 아가씨는 준후에게처럼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전복이 바로 반응했다, 너스레다.
“아이구 뭐 사람이 다 도와가면서 사는 거지요. 준후 이놈이 워낙에 정의감이 투철해서 말입니다. 그게 다 잘 가르친 어른 덕분이긴 하지만요.”
하하하, 하며 웃는 전복을 최창수는 못마땅하게 돌아봤고, 그 순간 꼬마여자애가 준후에게 뭐라고 말한다. 제 이름하고 다시 보자는 이야기다.
“아 그래 명희야, 다시 보자.”
준후가 환한 미소로 손을 흔든다. 그와 함께 캐리언족 아가씨는 목례하고 돌아선다. 등을 돌리고 가는 그 모습에 전복은 어정쩡한 얼굴이다.
“아 이거, 이제 막 인사 트려는 참인데 가네.”
최창수가 째려보고 준후와 같이 걸음을 내려는 데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빠라바라밤하는 소리, 어디서 나는 소린지 최창수는 알았다.캐리언족 아가씨와 명희란 꼬마여자애의 앞에 나타난 로봇이다. 눈을 빛낸다.
“어라, 저 고물로봇은 뭐래? 어? 이리 오는데?”
전복이 이게 무슨 상황이지 하는 얼굴인데 로봇이 다가와 섰다. 그 뒤로 캐리언족 아가씨와 명희란 애가 역시 당혹 품은 얼굴로 따라와 섰다.
“야 이거 정말 골동품이데?”
전복이 감탄하며 로봇을 위아래를 살펴봤다. 이런 기종이 아직도 있고 움직이네 하는 감탄이다. 그에 반해 최창수는 기묘한 예감을 삼켰다.
‘이놈······’
로봇의 붉은 눈이 마치 자신을 알아보는 것 같아서다.
“어, 저거 봐요?”
준후의 놀란 목소리와 반응, 최창수와 전복은 로봇의 배를 봤다. 그그극 하는 소리를 내며 열린 복부 안의 오래된 모니터에 사진이 떠 있다.세 사람이 어깨동무를 하고 찍은 사진이다.최창수와 전복과 박준이다.최창수와 전복은 얼어붙었다.로봇은 계속 소리를 냈다, 바라바라밤.
* * *
“이럴 수가······!”
혁리추는 저절로 떨림이 일어나는 어깨와 손, 호흡을 가까스로 다스렸다. 폭발해 가라앉은 배의 파편들이 흘러가는 강물의 곁, 강변 수림에 죽음이 널렸다. 암흑색의 라이트슈트를 착용한 자들, 블랙블러드 살수다.
“일급 살수들이오······!”
명일해의 힘겨워 하는 것 같은 목소리에 혁리추는 흠칫하며 반응했다.있을 수 없는 이 결과의 충격이 새삼스러워서다.블랙블러드 일급살수들을, 스물이나 되는 숫자를 죽인 거다. 이렇게 생선토막처럼 만들었다.
“공격용 송골매를 날려 먼저 공격 했소······ 그다음 강변으로 나온 샹그릴라 일당을 블랙블러드 일급살수들이 반월륜을 날리며 공격한 건데······!”
명일해는 뒷말을 잇지 못했다. 이을 필요 없다. 이 현장의 결과가 다 말해준다. 블랙블러드가 일급살수 스물을 동원해서 공격했지만 실패한 거다.
“그대들의 힘만으론 더욱 어렵게 됐군.”
어둠속에서 사이한 미소를 흘려내고 있는 존재, 주술사 매그넘에게 혁리추와 명일해는 시선을 홱 돌렸다. 그러나 그뿐이다. 매그넘이 말한 건 냉정한 현실이다. 블랙블러드의 행사에 끼어들고 있는 형국이 된 거다.그렇다, 드디어 블랙블러드가 나타난 거다.서부지구 정찰대장 패튼의 말대로다.치안총국내부에서부터 이어진 끈이 저들로 하여금 유성대협의 자취를 찾아오게 했다.이젠 저들보다 먼저라는 계획은 헛일이 됐다.
“블랙블러드, 그들은 무섭지.”
파란 눈동자에 은빛을 머금은 채 매그넘은 소리 없이 웃었다.
“그렇지만 걱정 할 거 없어. 내가 있으니까.”
혁리추와 명일해는 서로를 돌아봤다. 동시에 공감과 의문을 품었다.매그넘이란 저 주술사의 능력은 이미 겪어 안다.말대로 저자가 필요하다.그렇지만 명확하게 어떤 방법으로 도움이 될 건지에 대해선 아직 모른다.
“놈들은 이제 코앞이야, 서주, 저 안으로 들어갔지.”
불야성처럼 빛을 내고 있는 서주를 바라보며 매그넘은 다시 목소릴 냈다.
“그런데 블랙블러드가 나타났으니 조금 더 힘을 내야겠군.”
명일해와 혁리추에게 눈길을 돌린 매그넘은 소름끼치는 미소를 피워냈다.
“선물을 주지.”
걸음을 옮긴 매그넘은 피를 밟고 섰다. 블랙블러드 살수들의 동강난 사체 사이에서 주문을 암송하기 시작했다. 피풍의의 검은 깃털들이 곤두섰다.
‘헉!’‘흡!’
혁리추와 명일해는 전신을 경직한 채 움직이지 못했다.매그넘이 주문을 암송한 순간, 깃털들이 곤두선 찰나다.매그넘으로부터 기이한 와류가 피어올랐다.깃털들을 흔들며 솟구친 와류는 바닥의 피를 끌어올린다.
‘뭐, 뭐야!’‘무슨 짓을!’
눈을 부릅뜬 혁리추와 명일해는 피의 와류가 덮치는 걸 피하지 못했다, 피할 수 없었다. 위험을 직감하고 호흡을 닫았다. 그런데 모공을 파고든다.
‘으아아아!’‘크어어어!’
형용할 수 없는 감각, 충격에 혁리추와 명일해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온몸을 맷돌로 갈아내는 것 같은, 겪어보지 못한 충격 속에서 흔들렸다. 그런데 그 속에서 느낀다. 자신의 내부로 스며드는 힘을 인지한다.
‘이거구나!’‘살수들의 내력을!’
매그넘이 선물이라고 말한 것의 의미를 이제 알겠다.죽은 자들의 에너지를 옮겨주는 것이다.그게 어떻게 가능한지는 따질 필요 없다. 이렇게 되고 있다.블랙블러드 일급살수들의 내력이 모공을 통해 들어온다.혁리추와 명일해와 황금대도객 육인은 전율 속에서 피로 물들어 갔다.
* * *
화려하게 불이 밝혀진 서주의 거리를 걸어가던 강흑성은 멈춰 섰다. 서주반점이라고 커다란 간판을 세운 건물 앞이다. 밖에서 보니 무슨 대형 연회장 같다. 수십 개의 테이블과 사람들이 일층은 물론 이층도 채웠다.
“배부터 채웁시다.”
강흑성은 서주반점으로 들어갔다. 황당한 눈을 한 박준은 바로 반문한다.
“한가하게 밥 먹을 때가 아니잖아?”
블랙블러드가 공격을 해온 마당인데 라는 말은 내지 않았지만 다 안다.
“그러니까 밥부터 먹어야죠.”
간단하게 대답하고 식당으로 들어간 강흑성, 바라보던 그렉이 해석했다.
“맞아, 블랙블러드놈들은 이미 피할 수 없는 단계야. 우리 눈앞에 나타났으니까.”
그렇다는 걸 일행은 새삼 깨달았다.
“부딪쳐 부숴버리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는 거지. 흑성이는 그럴 작정인거야. 사람들이 밀집해 있는 이런 장소에서 기다리는 거야. 그러니까 밥을 먹어야 하는 거고. 빈속보다는 먹고 힘내서 싸우는 게 좋겠지.”
박현과 무슬란을 바라보며 말한 그렉은 박준에게 윙크하고 강흑성을 따라 들어갔다. 그 뒤로 아우리엘이 돌덩이 같은 얼굴로 들어갔고, 박현과 무슬란은 어깨를 으쓱했으며, 몰라, 하며 박준은 인상 쓰고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