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91화 (92/172)

혹성강호. 91. 서주반점.

91. 서주반점.

마상풍은 부채질을 하며 반점내부를 조망했다. 3층에서 내려다보는 반점의 광경은 언제나 흐뭇함을 준다. 일층과 2층을 가득 채운 손님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생기를 느끼게 한다. 이제 서주는 다시 살아난 거다.

“얼음 더 가져와라.”

마상풍이 말하자마자 파이곤족 여자가 즉각 움직였다. 냉장고에서 얼음덩이를 꺼내 소반에 받쳐 들고 와 마상풍의 앞 테이블 위에 올렸다.

“더 크게 얼리라고 했잖아.”

파이곤족 여자는 움찔하며 본능적으로 물러선다. 그 모습을 못마땅하게 보던 마상풍은 얼음을 움켜잡고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늘 하는 습관이다.

“아, 오늘은 유난히 더운데.”

그렇지 않다. 시원한 날이다. 그렇지만 마상풍은 다른 거다. 양강기공을 연마한 몸이라 늘 이렇게 부채질을 하고 얼음을 먹게 되는 거다. 칠척거한 체구의 근육질을 드러낸 민소매차림으로 그러는 모습은 무섭다.

‘응?’

우적대며 얼음을 씹던 마상풍은 미간을 확 좁혔다.일층으로 한 무리의 손님들이 들어와서다. 그런데 그 중 둘이 움바바족이다.3미터 거구의 전사종족, 희귀한 자들은 아니지만 저렇게 일행을 이룬 모습은 별나다.

‘인간이 둘, 타이그란 하나.’

좁힌 미간으로 일행의 구성을 헤아리던 마상풍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샹그릴라일당!’

하마터면 소리칠 뻔한 입속의 그 말을 악문 마상풍은 곁에서 파이곤족 여자가 후다닥 물러났다. 마상풍이 저러면 무슨 일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서주의 중심에서 서주반점을 운영하는 강자, 모두 두려워하는 존재다.

‘저자들이!’

마상풍은 눈가를 경련하듯 떨었다.원치 않는 손님이 찾아 왔기 때문이다. 저들의 행적에 대해 알고 있다.상해로부터 퍼진 저들의 이야기는 철금련으로 이어졌다.철금련주 철무진이 저들과 싸우기를 포기했다.

‘제기랄······!’

주먹을 움켜쥔 마상풍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했다. 아무리 자신이 잘나가는 서주반점의 주인이라고 해도 저자들을 상대하는 건 바보짓이다. 서주안팎으로 균형을 이룬 여덟 개 세력의 도움을 받아도 어렵다.그런데 근본적으로 뭣 때문에 그런 짓을 한단 말인가? 그럴 이유가 없다.

‘그자들이 맞나? 엘프는 정보에 없었는데?’

원래 일행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엘프까지 해서 여섯이다. 저들이 정말 소문의 그 주인공들인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움바바족 둘의 구성은 맞는 것 같다. 그들이란 전제하게 여섯이란 저 숫자를 상대 못할 일은 아니다.

‘질 거라곤 생각 안 해. 그렇지만 이겨도 이긴 게 아니게 되지.’

상해의 결과를 생각하면 너무 명확하다.

‘무서운 독을 사용하는 자들······!’

저들은 천지도 상패천이 가졌다는 뇌인걸의 절세무공과 관련 있다고 한다.그런데 진위가 불분명하다.상해에서 저들은 무공과 관련 없다고 천명했다. 천지도 상패천을 버리고 떠났다.살아남아 본 자들의 증언이다.

‘천지도 상패천을 쫓아간 건 단천문주와 금혈방주, 그런데 저들의 뒤를 추적하는 건······’

황금대호방주 혁리추와 한반도에서 온 남도의 제왕 문주 명일해가 뒤를 추적하고 있다고 한다. 복수하기 위해서고 무공도 관련 있다고 추측되지만, 뭔가 다른 그림도 있는 것 같다. 뭐가됐든 저들은 불청객이다.

‘철금련주 철무진이 저들은 안 건드린 건 이유가 있는 거야.

냉철하고 강한 자, 철무진은 저들에게 뇌인걸의 무공이 없다고 판단한 거다. 싸워봐야 아무 이득이 없는 자들, 손님으로 접대하고 보낸 거다.

‘모종의 작업을 합께 했다고 하는데······'

그게 뭐든 간에 철무진은 철저하게 이해득실을 따라 판단하고 결정한 거다. 마상풍 자신이 철무진보다 못하다고는 생각안하지만 크게 낫다고도 생각 안한다. 그러니 철무진처럼 해야 한다. 욕심은 화를 부른다.

‘제길, 그래도 일단 팔개문파에 연락은 해야겠군.’

칠척 체구를 돌린 마상풍은 파이곤족 여자를 지나쳐 무전실로 들어갔다.

* * *

“하 이거 참.”

씁쓸하면서도 기묘한 당혹의 표정을 전복은 숨기지 못했다. 대전에 와서 박준의 인연을 만나게 될 줄은 정말 손톱만큼도 생각 못한 일이다.그런데 만났다. 캐리언족 아가씨와 명희란 여자애는 박준의 식구였다.

“대륙으로 갔다는 말이지요?”

모두 다 같이? 라는 눈빛 물음을 던진 최창수를 마주 보며 카이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박준 사장님의 동생분 다리치료를 위해서요.”

그리고 강흑성의 목적 때문에란 말을 카이오는 속으로 삼켰다.

“난 정말 놀랐는데? 박준에게 동생이 있고 그게 또 움바바족이란 거잖아?”

아직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의 전복이다. 대륙전쟁 당시 박준은 한 번도 동생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다들 그렇듯이 고아로만 알았다.

“하, 박준 그 자식 늘 이렇다니까? 사람뒤통수를 쳐요?”

허탈한 표정 속에 한줄기 노여움을 품고 전복은 박준을 헐뜯었다.

“음흉한 거야, 그 자식 속엔 여우랑 너구리가 수십마리 들어 있는 거지. 그놈한테 동생이, 그것도 움바바족 동생이 있다는 걸 이제야 아는 거야?”

전복의 목소리 뒤로 준후가 바로 물음을 냈다.

“흑성이 형은요? 무사한 거죠?”

순간 카이오의 얼굴에 드리운 애상을 전복과 촤창수는 분명히 봤다. 애틋한 그리움을 품은 눈이다. 바로 감정을 숨기고 표정을 바꾸지만 분명하다.

“아 그래, 무사하실 거야.”

그래야 해, 반드시, 라는 말을 숨죽이며 말한 카이오를 보고 전복과 최창수는 확신했다. 이 캐리언족 아가씨가 강흑성이란 청년을 연모한다는 걸.

“준후야, 명희랑 다른 애들하고 놀고 있으렴.”

최창수가 말하자 준후는 네 하고 나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최창수는 새삼스럽게 지금 앉아 있는 이 건물을 생각했다. 3층짜리 건물이다.

‘박준, 이런 일도 할 줄도 아는 구나.’

대전의 경계 바로 밖에 이런 건물을 구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카이오란 이 아가씨 말에 의하면 역시 어렵게 샀다는 거다.돈이 있기에 가능했다. 박준이 마련해 준 돈이다. 무기도 사서 여자들은 무장하고 있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된 걸까······’

박준이 터전을 버리고 대륙으로 넘어간 이유, 카이오라는 이 캐리언족 아가씨를 포함해 다른 여인들과 아이들을 이곳으로 보낸 배경이 궁금하다.

“여기까지 어떻게, 왜 오게 된 겁니까?”

같은 의문을 품고 있던 전복은 참지 못하고 물음을 냈다.

“예, 그분들과 만나게 된 처음부터 말씀드려야겠지요······”

카이오는 차분한 신색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 * *

원형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은 일행에게 주변에서 눈길을 던졌다. 움바바족이 둘이나 낀 일행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 왁자하게 다시 먹고 마신다. 흉악한 생김과 복장으로 무기를 지닌 자들, 강호인들이다.강호.대륙에선 그 말을 사용했다.아주 오랜 옛적부터 사용해온 말, 작금의 이 지옥 같은 세상에도 딱 들어맞는 말인 거다.비정하고 잔혹한 강호.그 안에서 칼을 쥐고 외줄타기의 삶을 살고 있는 자들이 모여 있다.

“야수족, 인간, 골고루네. 일이층을 채운 놈들 대부분이 흑도강호인이다.”

그렉이 주변을 살피며 긴장을 환기시켰다.박현과 무슬란은 킁 하고 콧방귀를 꼈다. 한바탕 싸우게 되기를 오히려 바라는 것 같은 눈을 부라린다.

“니들은 현실감각 좀 챙겨라, 응?”

박준이 힐난하자 무슬란은 시선을 회피했지만 박현은 반발했다.

“아 형은 우리가 뭐 어쨌다고 그래?”“이쉐이 정말? 야? 우리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몰라? 블래블러드 놈들이 코앞에 다가와 있는 거란 말이다? 목에 힘주고 턱 세울 때가 아니야?”“누가 뭐래나?”

눈 부라린 박준이 다시 입을 열려는 데 직원이 다가왔다.

“주문하시겠습니까?”

얼른 표정을 바꾼 박준이 주문하려는데 아우리엘이 먼저 말했다.

“제일 비싼 요리로 열 가지. 술도 내오고.”

어? 하는 얼굴인 박준이 표정을 구기며 반응하려는데 강흑성이 나섰다.

“술부터 먼저.”

직원은 웃는 얼굴로 고개 숙인 후 돌아갔다. 박준과 그렉은 강흑성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는 걸 느꼈기에 아무 말 안했다. 뭔가 시작된 거다.

“블랙블러드 놈들이 우리 근처에 있는 거냐?”

숨죽인 그렉의 물음에 시선을 딴 데로 돌리던 무슬란과 박현도 눈을 빛냈다.

“그건 아닙니다.”

일행의 긴장한 눈을 응시하며 강흑성은 말했다.

“우리가 사람이 많은 이런 공간으로 움직일 걸 예상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상황에 대한 대응을 바로 할 겁니다. 누가 죽든 상관없을 테니까요. 만일 여기서 공격이 시작되면 독을 사용할 겁니다. 분명 블랙블러드는 해독제를 복용했을 겁니다만, 시간을 지체하는 효과를 볼 겁니다.”

일행이 가진 의문의 한부분이 독이었다. 그동안 강흑성은 독을 사용 안했다. 그게 가진 걸 다 사용해서라는 걸 알았지만, 그새 또 만들었다. 배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필요한 걸 채취해 만들었다. 그걸 쓴다는 거다.

“공방이 시작되면 이곳을 빠져나가십시오. 보이는 곳처럼 출구는 반점의 사방 네 곳에 있습니다. 창문과 그 밖의 출구들도 있을 겁니다. 블랙블러드를 상대해서 같이 싸우겠다는 생각은 버리십시오. 도움이 안 됩니다.”

박현과 무슬란이 눈썹을 거칠게 세웠지만 박준과 그렉은 고개를 끄덕였다.냉정한 현실인 거다.강흑성의 싸움에 자신들은 별다른 도움이 안 된다.오히려 거추장스러운 짐일 뿐이다. 그러니 피신해 있는 것이 났다.

“무슨 소린지 알겠다.”“혼란을 틈타 피하라는 건데, 만날 장소는 정해야 하잖냐?”

그렉에 이어 박준이 결론을 말하자 박현과 무슬란은 마지못해 수긍의 얼굴을 했다. 그런데 아우리엘이 반대했다.

“난 싸울 거다.”

강흑성을 응시하는 아우리엘의 눈은 변하고 있었다. 한쪽은 파랗게, 한쪽은 붉게.

* * *

한바탕 울고 때리고 난리를 친 다음에야 부둥켜안고 운 모녀, 명희 엄마와 명희를 보던 준후는 자신도 모르게 눈가를 손등으로 훔쳤다. 그런 준후의 곁으로 진숙이와 제닌이 다가왔다. 친근한 미소로 말을 건다.

“오빠, 명희를 도와줬다면서?”“우왕, 대단하당.”“어? 아, 아냐 그런 거. 난 그냥······”

얼버무리던 준후는 두 아이에게 물었다.

“명희는 어쩌다가 흑랑성놈에게 잡혀간 건데?”

서로 돌아본 두 아이 중 진숙이가 대답했다.

“며칠 전부터 그 늑대족이 주변을 돌았어. 그런데 명희가 잠깐 밖에 나간 사이에 그렇게 된 거야.”

“맞아, 카이오 언니가 조심하라고 했었거든.”

준후는 전후를 이해했다. 흑랑성놈이 아이들을 노리고 며칠 전부터 배회했다는 거고, 카이오란 캐리언족 누나가 그 상황을 눈치 채고 대비하고 있었다는 거다. 천만다행하게 명희를 바로 찾아냈고 구한 결과인 거다.

“카이오 언니가 원래 약했는데 무지 세졌어.”“맞아, 무서워졌어. 그게 다 우릴 보호하려고 그러는 거야.”

준후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세 아이가 그러는 사이 일층 안쪽에서도 이야기가 흐르는 중이었다. 카이오의 이야기를 전복과 최창수가 들었다.

“결국 정찰대의 보복을 피하기 위해 떠날 수밖에 없었답니다.”

황당함을 넘어 경악스러운 이야기에 전복과 최창수는 서로를 돌아봤다.

‘이게 무슨!’‘미친······!’

경악, 강흑성이 춘천으로 침을 구하러 왔던 이유가 눈앞의 이 캐리언족 아가씨였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북부지구 정찰대를 궤멸했다는 충격이다. 경악이니 충격이니 하는 말로는 이 심정을 표현할 수가 없다.

‘그 젊은 놈이······!’

전복은 강흑성의 얼굴을 떠올리며 소름을 털어냈다. 한가락하는 실력을 가진 놈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지금 들은 이야기는 그런 수준이 아니다.

‘북부지구 정찰대를······!’

세상 그 누구에게 말해도 거짓이라 할 소리다. 그런데 카이오라는 이 아가씨는 거짓을 말 하는 게 아니다. 보고 겪은 일을 말하는 거다. 진실이다. 그렇지 않으면 박준이 모든 걸 버리고 대륙으로 갔을 리가 없다.

“상해로 간다고 했단 말이오?”

뜨겁게 떨리는 숨을 삼키며 최창수는 카이오에게 다시 확인하듯 물었다.

“예,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박현이란 동생분의 사이보그레그를 거기서 구한다고요.”

최창수와 전복은 뜨거운 시선으로 서로를 응시했다.

‘그거다.’‘그래, 우리가 떠나기 전에 퍼진 소문, 대륙 상해가 뒤집어졌다는 소리.’

그 일의 속에 강흑성과 박준 일행이 있음을 두 사람은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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