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강호. 92. 혼전.
92. 혼전.
“야, 너 눈이 왜 그래?”
박준이 놀라서 아우리엘의 얼굴 앞으로 얼굴을 확 내밀었다.
“오른쪽 눈은 파랗고 왼쪽 눈은 빨갛잖아? 뭐야 이거? 너 뭐 먹었냐?”
이거 식중독 아니냐 라고 말하려던 박준은 강흑성의 얼굴을 보고 흠칫했다. 같은 순간 그렉과 박현과 무슬란도 강흑성이 보는 곳을 같이 봤다.로켓이다. 반점 밖에서 불꼬리를 내고 날아오는 것은 분명 로켓이다.
‘미친!’
입 안의 소리를 내지 못한 채 경직한 박준은 강흑성의 움직임을 봤다. 스르르 미끄러지듯 일어선 그가 마검을 뽑아 수직으로 내리치는 것을.혈뇌전.강흑성이 갈라 내린 패천마혈로부터 터져나간 검광이 로켓을 갈랐다.반점 창문 안으로 날아 들어온 그것은 정확히 반으로 갈라진 형상을 찰나에 보였다가 폭발했다.그 화염이 반점 안으로 퍼져나갔다.
“공격이다!”“로켓이다!”
반점 안 흑도강호인들은 소리치며 대응했다. 누구의 공격인지 모르지만 공격당한 상황에 분노하며 병기를 뽑았다. 삽시간에 빔줄기들이 난무하고 검과 도를 휘두른다. 누가누구에게라는 방향성이 없는 혼전이다.
“끼야아!”
옆에서 칼을 내리치는 츄란족 놈을 향해 그렉이 몸을 휘돌리며 철각을 후렸다. 머리가 돌아간 놈은 팽이처럼 돌며 쓰러졌지만 다른 놈들이 왔다.
“이 죽일 새끼들이!”
박현은 격노를 발산하며 작두칼을 휘둘렀다. 메브라온족의 머리통을 쪼개고 흑랑성 늑대족의 허리를 동강냈다. 같은 순간 무슬란은 팔극권의 일격으로 한 놈을 날려 보냈고, 박준은 t-rex를 견착하고 마구 쏴댔다.
“개신발 놈덜아!”
쾅쾅 소리로 반점을 울리는 총성 속에서 여지없이 달려들던 놈들의 형상이 터졌다. 그런데 그때까지 정물처럼 앉아 있던 아우리엘이 일어섰다.
“죽여야 할 것들이 온다.”
파랗고 붉은 눈동자를 빛내며 아우리엘은 중얼거렸다. 박준이 앉으라고 소리쳤지만 반점 문을 무섭게 노려본다. 그러더니 허리의 칼을 뽑았다.
* * *
“이런 썅!”
분노로 이를 악문 마상풍은 반점 안의 혼전을 보며 잠시 갈등했다. 하지만 바로 갈등을 접었다. 누군가 서주반점을 공격했다, 그 원인은 분명 저 일행이다. 그러나 저러나 이렇게 공격당하고 가만있을 순 없다.
“쓸어버려!”
마상풍은 소리쳤다. 3층에서 터진 그 명령은 바로 상황을 바꿨다. 반점 내부 벽 뒤에 설치된 미니건들이 나타났고, 빔의 수평소나기를 퍼부었다.
* * *
투르르르 하며 귀청을 찢는 소리보다 섬광을 보고 박준은 반응했다. 몸을 날려 바닥에 엎드렸다. 동생 박현과 무슬란에게 소리치면서다. 그런데 저들은 움바바족, 거구의 육신이 이런 때는 정말로 쥐약이 아닐 수 없다.
‘제기랄!’
동생 박현에 대한 걱정으로 고개를 다시 든 박준은 아우리엘을 보고 얼어붙었다. 칼 하나를 잡고 나간 그가 파랗고 붉은 빛을 칼로 뿌려내고 있다. 무공고수가 도막(刀幕)을 만든 것 같은 모습, 빔들이 튕겨나간다.
‘뭐야!’
경악한 박준은 강흑성도 봤다. 붉은 검광을 토해내는 그의 검은 미니건의 빔줄기들을 가른다. 보고 있어도 황당한 광경, 그런데 미니건이 전부가 아니다. 반점 내외에 무장한 놈들이 나타났다. 3층의 외침 결과다.
‘서주반점이란 이곳을 근거로 한 놈들이구나!’
놈들이 복합광탄발사기를 겨눈다. 미니건에 더해 저런 공격은 반점 내부를 아주 쓸어버리려는 거다. 그런데 그 의지는 역시 뜻만으로 남음이다.강흑성이 검을 던졌다. 쥐고 휘두르는 마검이 아니라 철검이다. 철금련주 철무진이 건네 준 검, 우물 속에 있던 천철정 안에서 나온 검이다.검은 벼락이 휘몰아쳤다.회오리처럼 돌며 날아간 검이 만든 결과다.반점 안팎에서 복합광탄발사기를 겨누던 놈들을 갈랐다.벽이고 뭐고 갈랐다.
‘저!’
경악으로 숨을 멈춘 채 박준은 소름을 털어냈다.모든 것이 찰나였다.복합광탄발사기를 가른 철검의 벼락은 미니건으로 흘러가 갈랐다. 사수 놈들도 동강났다. 불벼락이 몰아치던 반점 안엔 갑자기 정적이 내렸다.
* * *
‘미친······!’
자신이 무얼 본건지 이해할 수 없어 마상풍은 진저리를 쳤다. 샹그릴라 일당, 그 중의 젊은 무인이 붉은 검으로 미니건의 빔줄기들을 갈랐다.그것만도 경악인데 철검을 던져 수하들을 도륙했다. 그냥 한순간이다.
‘진정 저자가 그자구나······!’
소문 속의 그자다.지옥사신이라는 별명이 붙은 자다.상해의 세력들을 쓰러뜨린 자다. 설마 했고 이왕 이렇게 됐으니 했던 결과가 눈앞에 있다.건드리면 절대 안 되는 자들인 거다.저 자는 아직 독을 쓰지 않았다.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할지를 생각한 순간 마상풍은 변화를 목격했다. 반점 밖에서 밀려들어오는 무인들이다. 자신이 무전으로 연락한 팔개문파의 전력이다.
“안······”
돼라는 뒷말을 마상풍은 내지 못했다. 연합세력인 서주 반점이 공격 받고 있는 상황, 동맹조약에 의해 저들은 공격 하는 거다. 그런데 쓰러진다.또 다른 자들의 등장, 팔개문파무인들을 도륙하며 갈라 들어온다.
* * *
아우리엘의 변화를 보며 눈을 빛내던 강흑성은 또 다른 변화를 목격했다. 반점 밖에서 공격해 들어오던 무인들의 배후를 치고 들어오는 공격이다.
‘블랙블러드.’
드디어 저들이 왔다. 전신이 검은색 일색인 살수 십 인이다.
‘고작 열이라는 숫자.’
그런데 백여 명에 달하는 무인들을 도륙한다.특급살수라는 이야기다.흑사검의 낭창이는 검광이 명멸하면 죽음이 피어난다.서주반점 3층의 거구 사내는 경악과 충격에 사로잡혔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뭐지?’
강흑성은 미간을 뒤틀었다.블랙블러드 사수들에게서 생기가 느껴지지 않아서다. 살아 있는 존재라면 당연히 풍겨 나와야 할 기운이 없다. 그렇다면 죽은 존재란 건가?그건 아니다. 저렇게 검을 휘두르는 무인이다.
“사악해.”
아우리엘의 중얼거림이 뭘 말하는 지 강흑성은 깨달았다.
‘그런가.’
꿈틀거리는 마검 패천마혈의 흥분을 움켜잡은 의지로 다스리며 강흑성은 지켜봤다. 블랙블러드 살수들이 살육을 끝내고 다가옴을 기다렸다.오래 걸리지 않았다. 살아 움직이는 자들이 아무도 없다. 피바다가 된 그 속에 블랙블러드 살수 십인이 서있다. 복면을 한 얼굴엔 눈만 빛난다.
“죽은 자들이 산자의 행세를 하는 구나.”
나직하게 그 말을 던진 강흑성은 패천마혈을 들었다. 순간적으로 혈광을 발산한 마검은 진저리치는 포효를 터트렸다. 그 소리를 살수들은 들었다.흠칫하며 물러난 살수들, 눈동자만 빛내는 자들을 향해 아우리엘이 물었다.
“저 뒤에 숨은 자들은 너희의 동료냐?”
박준과 그렉과 박현과 무슬란이 영문 모를 얼굴을 하던 그때, 살수 중 다섯이 벼락처럼 돌아섰다. 번개 같은 움직임으로 반점을 나갔다. 이내 호통과 접전의 소리가 들린다. 아우리엘이 말한 숨은 자들이 분명하다.
“결정해라.”
강흑성의 목소리에 살수들은 붉은 눈동자를 빛내며 반응했다. 이 상황 속에서 무엇을 결정하라는 말인지 모를 수 없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블랙블러드는 목표를 두고 물러나지 않는다.”
리더의 목소리는 또렷하게 귀를 파고들었다. 강흑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라 하는 일행에게 답을 주듯 강흑성은 말했다.
“정말 산자의 목소리와 다를 바 없구나.”
미간 좁힌 일행은 어렴풋이 의미를 짐작했다.강흑성이 직전에 낸 말이 있다. 죽은 자가 산자의 행세를 한다는 거다.그렇다면 저 살수들이 죽은 자들이란 말인가?그렇다는 소리다. 믿기지 않지만 그렇다는 거다.
“지옥에 가야 할 자들을 로봇 속에 넣었어.”
아우리엘의 한마디에 일행은 이제 확연히 깨달았다. 블랙블러드의 살수들 십 인은 로봇인 거다.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다. 저렇게 만들었다.
“미친!”
박준이 자신도 모르게 외마디를 냈다. 처음 겪는 일이고 생각해 본적도 없는 일이지만 겪고 있는 거다. 블랙블러드는 로봇살수를 만들었다.그냥 로봇이 아니다, 속에 죽은 자를 넣었다. 그걸 뭐라 하든 그렇다.
“이번엔 죽는 게 아니다, 소멸하는 거다.”
담담히 날아간 강흑성의 말, 결정하란 소리의 핵심이다. 이미 죽은 자들이니 죽음이란 무용한 소리, 소멸될 거란 통보다. 그러니 싸울지 물러갈지를 결정하란 소리였다. 그러나 블랙블러드에겐 역시 하나마나다.
“네 사지를 자르고 끌고 갈 것이다.”
대답, 강흑성이 흑청빛 눈동자를 빛낼 때 그렉이 뒤에서 작게 중얼거렸다.
“소모품이란 걸 알 텐데도 저러는군.”
강흑성이 걸음을 내고 살수들 다섯이 벌려 서던 순간이다. 섬광이 작렬했다. 강흑성과 대화를 주고받던 살수리더 놈이 홱 날아가 벽에 박혔다.일행은 일제히 시선을 돌렸다. 이 상황을 만든 섬광은 3층에서 왔다. 거구사내가 소리친다. 어깨에 견착한 작은 포신은 분명히 소구경 대포다.
“캐논포 맛이 어떠냐!”
박준과 그렉이 황당한 눈을 할 때 벽에 박힌 놈이 다시 일어섰다. 우르르 벽돌무더기를 털어내고 일어선 놈의 의복은 사라졌다. 그렇게 드러난 것은 역시 로봇육체다. 검은빛이 도는 그레이 컬러의 합금바디다.
“하 저거 봐라? 아무리 이동형이지만 캐논포에 맞고도 일어선다?”
박준의 충격은 일행 모두의 것이다. 3층의 거구사내가 발사한 캐논포는 말대로 이동형이지만 그 이름 그대로 캐논포다. 크리듐에너지를 응축해 발포하는 중화기다. 산산조각나야 한다. 그런데 살수로봇은 멀쩡하다.리더놈이 로봇육신을 드러낸 채 걸음을 옮기며 명령을 뱉었다.
“죽여!”
벼락처럼 살수들이 튀어나왔다. 그런데 그 순간 강흑성의 마주 튀어나갔다. 마검이 아닌 철검을 잡은 모습, 검은 벼락을 무섭게 폭발해 낸다.
* * *
혁리추와 그 수하들 황금대도객, 그리고 명일해와 얽혀 싸우는 블랙블러드 살수들을 보며 매그넘은 눈동자의 이채를 번득였다. 생각지 못한 존재여서다. 로봇 속에 죽은 자의 영체 에너지를 주입했다. 정말 신박하다.
‘과연 블랙블러드라고 해야겠어.’
사이한 미소를 피워내던 매그넘은 혁리추와 명일해의 손에 파괴되는 살수로봇들의 최후를 바라봤다. 저런 무위를 발휘하는 자신들이 뿌듯할 거다.
‘계속 선물을 주마, 그래야 그놈을 상대할 테니까.’
매그넘은 주문을 읊었다. 파괴되는 로봇살수들의 영체에너지를 혁리추와 명일해에게 전이했다. 그런데 한순간 등골에 피어나는 소름에 움찔했다.
‘뭐!’
고개를 홱 돌린 매그넘은 서주반점을 응시했다. 그곳에서 피어나는 기운을 감지했다. 저것은 분명이 그놈의 기운이 아니다. 또 다른 기운이다.
* * *
쪼개진다, 동강난다.강흑성이 휘두르는 검은 벼락에 맞은 살수들의 최후다.예외가 없다. 다섯 모두가 파괴됐다.그 광경을 아우리엘은 무심히 바라봤다. 그런데 한순간 귀에 뭔가 들린다.사악하고 더러운 주문이다.
‘주술사!’
아우리엘은 경직했다. 그러나 바로 경직을 깨며 반응했다.주술사의 존재를 인지한 것에 대한 본능으로 빛을 발산했다.파랗고 붉은 빛.두 눈으로 내는 그 빛은 신비롭고 위험하다. 아우리엘을 휘감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