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104화 (105/172)

혹성강호. 104. 살고자 했을뿐.

104. 살고자 했을 뿐.

무겁게 가라앉은 시선을 한 카이오에게 원필성 대위는 차분한 음성으로 질문을 던졌다. 대전으로 오게 된 경위에 대해서다. 하지만 카이오는 조개처럼 다문 입을 하고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모두 그랬다.결국 포기하고 만 원필성 대위는 전복과 최창수와 마주 앉았다.

“두 분은 협조해 주시길 바랍니다.”

악의 없는 미소를 지어보이는 젊은 장교에게 전복은 불쑥 다른 말을 했다.

“여기도 수도랑 전기를 놔주면 안 되는 겁니까?”

안되는 거요 하려다가 그래도 명색이 상대의 신분이 7군단 정보장교이기에 더 높임말로 물었다. 대답을 받은 장교가 황당한 얼굴을 하는 걸 봤기에 미간을 구겼지만, 그래도 정말 필요한 것이란 생각은 확고하다.

“대전 안에서처럼 세금도 걷고 하면 될 것 아닙니까? 시 경계 밖인 이곳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모여 사는지 아시죠? 다 같은 사람입니다?”

다 같은 사람입니다라는 말을 할 때 전복은 힘이 빠지는 걸 느꼈다. 말은 맞는 말인데 실상 이 세상에선 웃기는 소리여서다. 절대로 같지 않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만, 제 소관 밖의 일이라 답변이 어렵습니다.”

처음부터 위세가 아니라 저렇게 온화한 태도인 터라 최창수는 젊은 장교에게 호감을 느꼈다. 분명 샹그릴라일행에 대한 정보수집을 위해 온 것인데 억압이나 겁박을 하지 않는다. 7군단의 이름이 높은 이유다.

“우린 춘천에서 왔습니다.”

최창수가 툭 하고 대답을 내놓자 전복은 뜨악한 얼굴로 돌아봤다. 지금 뭐하는 거야, 라는 얼굴과 시선을 무시하고 최창수는 목소릴 이어냈다.

“7군단에서도 알고 있겠지만 춘천은 내전에 휩싸였습니다. 옆에 있는 이 친구가 자치대와 작은 인연이 있었던 터라 공격을 받았고, 그걸 피해 춘천을 떠났습니다. 이곳에서 여인들을 만나 협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 것까지 얘기하다니 라는 얼굴로 눈을 치뜬 전복은 말을 더듬었다.

“뭐, 뭐하자는 거야?”“그러시군요.”

대수로울 것 없단 반응의 정보장교 원필성에게 전복은 시선을 홱 돌렸다. 목소리처럼 하등 신경 쓰는 모양새가 아닌 젊은 장교는 다시 묻는다.

“무슨 이유에선지 전혀 이야기를 하지 않으시니 대신 묻겠습니다. 이 집의 여성들, 어디에서 어떻게 이동해 온 것인지 아시는 바가 있습니까?”

전복의 눈동자가 다시 굳었고 최창수는 예리한 눈빛을 흘려냈다.

“왜 그걸 묻는지부터 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만.”

젊은 장교 원필성은 전복과 최창수의 눈을 응시하다가 엷은 미소로 입을 열었다.

“서해바다 건너 대륙에서 폭력사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 원인과 관계가 있을만한 단서를 확보하고 확인중입니다. 이 건물에 정착한 여성들이 도착한 날을 즈음에서 역으로 추적중입니다. 대상자들 전부지요.”

카이오와 여자들 말고도 그런다는 소리다. 그렇지만 원필성이란 젊은 장교의 눈에는 그보다도 강한 확신이 있다. 찾아온 단서가 있는 거다.

“무작정 손을 더듬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들으라는 게 분명한 전복의 중얼거림, 원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비교적 정확한 정보가 있습니다. 서울지구의 북쪽에서 생긴 사건입니다.”

최창수의 전복은 눈동자를 번득였고 원필성은 반박자를 두고 말을 이었다.

“데빌그라운드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지역입니다. 북부지구 정찰대가 경계를 맡고 있는 지역이지요. 그곳에 샹그릴라라는 주점이 있었습니다.”

샹그릴라란 이름이 나온 순간 전복과 최창수는 경직했다.

“박준이라는 인간 남자가 경영하던 곳입니다. 직원으로 그렉이란 이름의 타이그란족이 한명 있었고, 성명미상의 젊은 인간 남자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그들 외에 움바바족이 두 명 가세한 채로 그들은 떠났습니다.”

눈가를 움찔하는 전복과 최창수의 반응을 응시하며 원필성은 계속 말했다.

“북부지구 정찰대는 몰살한 걸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치안총국에선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일입니다만, 여러 루트로 확인이 된 사실입니다. 북부지구는 현재 서부지구에서 맡고 있습니다. 중요한건 그게 아니라 그들이 전멸한 결과입니다, 그렇게 만든 자들이 존재하는 것이죠.”

정찰대의 몰살, 엄청난 일이기에 전복과 최창수는 경악하는 얼굴을 해야 했다.헛소리가 아니라 7군단 정보장교가 하는 말이니까다.소문으로 듣는 것하곤 완전히 다른 것이기에 그렇다.그런데 경악은 안 나온다.

“두 분은 별로 놀라시는 얼굴이 아니군요.”

여전히 온화한 미소의 원필성, 그 눈이 차갑게 번득인다는 걸 전복과 최창수는 알고 있다. 그래서 뒤늦게 전복이 가슴을 어루만지며 시늉한다.

“아이고 심장이야, 너무 놀라서 그렇습니다, 하! 정찰대가 정말 몰살당했다는 겁니까? 그렇게 한 자들이 있다고요? 와, 이게 말이 되는 소리야?”

너스레 떠는 전복과 달리 최창수는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소문이 퍼지고 있더니 사실이었던 모양이군요.”

풍문으로 들은 이야기고 나는 그 정도로 놀라진 않는 다는 듯 최창수는 말했다.

“여길 찾아온 정확한 내용을 밝히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최창수의 깊고 우묵한 눈동자를 응시하던 원필성은 고갤 한번 끄덕였다.

“그러지요. 네, 이곳을 특정하고 찾아온 이유가 있습니다. 샹그릴라 일행과 연관이 있다는 확신을 가져섭니다. 그들에게는 여성일행이 있었습니다. 성인 인간여성 2명과 캐리언족 성인여성 8명, 인간 여아 2명과 캐리언 여아 2명의 구성입니다. 이곳에 있는 여성들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전복과 최창수의 반응을 응시하며 원필성은 계속 이야기했다.

“샹그릴라 일행이 북부지구를 이탈한 시기에 이곳에 여성들이 나타났습니다. 경로를 확인해 보니 평택인근에서 보급대를 따라서 왔더군요. 평택은 샹그릴라 일행이 서해바다를 넘어간 곳으로 파악하는 곳입니다.”

입을 다물었던 원필성은 다하지 않은 말을 이내 이어냈다.

“평택에서 그들은 남도의 제왕과도 충돌했습니다. 문주 명일해는 그들을 쫓아 대륙으로 건너갔습니다. 그의 생사는 현재 불명입니다. 우리 군에서 파악한 정보로는 상해에서 큰 사건이 있었고, 북으로 이동 중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말하지 않았지만 북으로 이동 중이란 말로 전복과 최창수는 알아들었다. 상해에서의 큰 사건이 북으로 이동 중이란 소리다. 그건 다시 말해 사건을 일으킨 주체가 이동 중이란 말이다. 강흑성일행이다.

“그 일에 7군단이 관심을 두는 이유가 있습니까?”

묵직한 숨으로 나간 최창수의 물음에 원필성은 눈빛을 날카롭게 흘려냈다. 즉답을 안 하고 전복과 최창수만 바라보던 그 눈에 결심이 곤두섰다.

“화성에서 삼대문파가 움직였습니다.”

전복과 최창수는 그 어느 때보다 놀란 반응을 보였고 원필성은 뒷말을 이어냈다.

“상해에 천지문의 파문제자 천지도 상패천이 출몰했습니다. 그는 삼백년 전 인물 뇌인걸의 무공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로인한 혼란에 샹그릴라 일행이 얽혔습니다. 그런데 그 일에는 더 중요한 내막이 있습니다.”

굳어 있는 얼굴의 최창수와 전복에게 원필성은 핵심을 말했다.

“강흑성이란 청년 무인이 유성대협과 관련이 있다는 내용입니다.”

돌처럼 경직해 있던 미간을 경련처럼 움직인 전복이 즉각 물음을 던졌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밑도 끝도 모를 소리,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단 반응에 원필성은 대답했다.

“강흑성이 유성대협의 독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즉, 강흑성이란 인물이 유성대협의 진전을 이은 인물이라는 이야기가 되는 겁니다. 그건 뇌인걸의 무공과는 별개로 엄청난 일입니다. 삼대문파를 움직일 사건이지요.”

차갑게 번득이는 원필성의 눈을 바라보며 전복과 최창수는 뜨거운 침을 삼켰다. 그런데 가시가 걸린 것처럼 침이 제대로 넘어가질 않는다.

“상황이 이러해서 움직이게 됐습니다. 협조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정중하게 다시 종용하는 원필성, 저 눈과 얼굴엔 역시 힘을 사용하겠다는 의지는 안 보인다. 이미 확신을 가지고 온 것이다. 부인하고 자시고 할 게 없다. 그런데 실상 더 말해 줄 것도 없는 거다. 자신들은 그렇다.

“우리가 아는 게 있다면 숨김없이 협조하겠습니다만······”

떨리는 숨결을 다스리며 입을 연 최창수는 전복을 돌아봤다가 다시 원필성을 응시했다.

“당사자들의 의지와 결정을 주변에서 어찌 할 도리가 없습니다. 이 곳의 여인들이 샹그릴라 일행과 함께 이동한 그 여인들이라면, 그렇다는 확신으로 찾아오신 게 분명하지만, 절대로 다른 말을 듣지 못할 겁니다.”

미간을 찌푸리듯 좁히는 원필성에게 최창수는 말했다.

“죽음에서 구원해준 은인들인 겁니다. 절대로, 아무 말도 안 할 겁니다.”

그게 다시 죽는 일이라고 해도 하는 최창수의 말을 원필성은 눈으로 들었다.

“살고자 한 것뿐입니다.”

이어 나온 최창수의 말에 원필성은 물론 전복도 눈에 힘을 줬다.

“여기 정착한 여인들······ 아이들과 살기위해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모호하지만 가슴을 찌르는 말, 원필성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알겠습니다.”

처음 보였던 미소를 다시 입가에 머금은 원필성은 일어섰다.

* * *

맹렬하게 들길을 질주한 장갑차량이 멈추자 그렉은 상부해치로 머릴 내밀었다. 어둠을 헤치며 달려온 여태까지도 그랬지만 위험한 동정은 없다.

“조협산은 저 앞이잖아?”

안에서 던진 박현의 목소리에 그렉은 반응했다.

“맞아, 저 산이야.”

그렉은 힐긋 운전석을 봤다. 결국 함께 행동하기로 결정한 박준은 여전히 말이 없다. 그게 화가 나서가 아니라 심중의 생각들 때문임을 안다.

“머뭇거릴 거 없잖아, 어서 가자고.”

무슬란의 종용이 나오자 박준은 다시 차를 움직였다. 어둠 저편에서 점점 가깝게 다가오는 조협산, 일행은 제각기의 심정으로 산그림자를 봤다.탕, 총성이 울린 것은 그때다.박준은 차를 멈췄고 불꽃이 차를 수놓았다.두두두둑하는 울림으로 차를 때리는 화약총과 빔소총의 공격 속에서 일행은 고개를 움츠렸다. 아무리 장갑이지만 눈먼 탄환을 맞을 수 있다.

“개신발! 우린 적이 아니라고!”

발작처럼 소리친 박준은 차를 거칠게 몰고 나갔다. 전방을 두들기던 총탄들이 좌우를 거쳐 후면에 이를 때가 돼서야 차를 멈췄다. 산의 초입니다.

“멈춰! 우린 토벌대가 아니야!”

그렉이 해치 위로 백기를 내밀고 흔들었다. 그런데 백기는 삽시간에 걸레가 됐다.

“제기랄 것들이!”

박현이 분노를 참지 못해 씩씩거리는 그 순간 총격이 멎었다. 일순간 찾아온 정적에 일행은 눈썹을 세운 채 서로를 봤고, 소리가 들려왔다.

“차에서 내려라!”

무슬란이 바로 반발했다.

“무방비로 죽으라는 소리냐! 웃기지 마라!”

그런데 그 순간 그렉이 차문을 열고 나갔다.

“야!”“그렉!”

박현과 무슬란의 외침을 뒤로 하고 그렉은 걸레가 된 백기를 세웠다.

“싸우려고 온 게 아니다!”

소리친 그렉은 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그림자를 봤다. 화약총을 지닌 남자다. 육십은 넘어 보인다. 구릿빛 얼굴은 깡말랐고 주름이 가득하다.

“누구냐?”

정체를 묻는 장년남자에게 그렉은 말했다.

“여기 모여 있으면 다 죽게 될 겁니다.”

* * *

“먹어라.”

노릇하게 잘 구워진 쥐토끼 고기를 강흑성은 여자아이에게 내밀었다. 아직도 두려움이 눈도 잘 못 맞추는 아이, 영희는 두 손으로 받아 들었다.

“감사합니다.”

인사하는 영희에게서 시선을 거둔 강흑성은 반대다리를 잘라 철수에게 줬다. 말없이 꾸벅하는 인사로 받아든 철수는 영희에게 먹으라고 종용한다. 그리곤 곧 제 손안의 고기를 먹는다. 두 아이는 정신없이 먹는다.강흑성은 단도를 놀려 고기를 잘라냈다. 불을 바라보며 나무등걸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잘게 씹어 먹었다. 그러는 사이 주변에선 짐승들이 죽는 소리가 들려온다. 접근 못하도록 뿌려놓은 독에 중독돼 핏물이 되는 거다.

“오빠······”

영희가 주변의 기척을 듣고 두려워 철수를 부른다. 철수는 강흑성을 돌아봤다가 영희를 안심시킨다. 다시 먹는 영희를 바라보던 철수가 말했다.

“살려고 하는 거뿐이라고 그랬어요.”

뜯던 고기를 무릎에 놓고 중얼거리듯 말한 아이, 철수를 강흑성은 응시했다. 흑청빛이 어린 그 시선을 마주 응시한 철수는 슬픈 얼굴로 말한다.

“아버지는······ 우리를 데리고······ 그냥 살고 싶은 거뿐이라고······”

철수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영희의 울음으로 이어졌다.강흑성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래······ 다들 살고 싶은 것뿐이지.”

어둠 뒤에선 죽어가는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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