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강호. 106. 조협산.
106. 조협산.
지옥도를 만들고 그 안에 선 강흑성은 죽인 자들이 경비대가 아님을 확인했다.경비대의 복장도 아니고 무기도 아니다.낭인 흑도패들 이라고 하면 딱 맞을 자들이다.특이한건 노예인식장비를 갖고 있다는 거다.
‘경비대가 아닌 자들이 무장한 채 조협산에 접근했다?’
그것만이 아니라 노예를 죽이고자 했다. 강흑성 자신의 일행, 철수와 영희다. 저 아이들의 팔뚝에 각인된 노예표시가 이들의 장치에 포착된 거다.
‘가브리엘.’
그 이름을 강흑성은 결과로 붙잡았다. 농장노예들에게 은밀히 접근해 반란을 일으키게 한 장본인이다. 거사를 일으킨다는 건 꿈도 꾸지 못하던 이들에게 무기를 쥐어줬다. 그 흥분과 전율이 이 밤을 만들어 냈다.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눈길을 어둠 저편으로 돌린 강흑성은 조협산의 그림자를 응시했다.어둠 속에 음울한 자태를 보이는 산은 높고 커다랗다.저 산 안에 모인 자들이 도주할 길이란 산을 넘어가는 것뿐인데, 그건 거의 불가능 해 보인다.
‘처음부터 작정한 거야.’
결과, 반란의 끝이 어떻게 할지 계획한 일이 이 일이다.가브리엘이란 상인의 음모다.그는 반란군을 살게 해줄 생각 같은 건 손톱만큼도 없다.조협산, 저곳에서 몰살하도록 한 거다.경비대는 이미 들이닥쳤다.
‘그 뒤를 친다······’
여기 죽어 넘어진 놈들, 낭인흑도패를 동원해 농장경비대의 배후를 치는 거다. 그렇게 전력을 파훼하고 농장을 점령하는 거다. 처음부터 그게 목적이었다. 농장수확물만 거래하는 상인이 아니라 농장주가 되는 거다.
‘이대로 움직이면 다시 포착되겠지.’
아이들에게 눈길을 돌린 강흑성은 걸음을 옮겨갔다.흠칫하는 철수와 그 품에 안긴 영희를 응시하고 아이들의 팔을 봤다.노예인식표인 별표시가 불에 지진 화인으로 보인다.저걸 없애야만 타겟팅을 피할 수 있다.
‘피부에 합성된 인식기능을 완전히 없애려면······’
갈등하던 강흑성은 무릎을 접고 아이들과 눈을 맞췄다.
“경비대가 산에 있는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다. 그들만이 아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는 철수의 흔들리는 눈을 응시하며 강흑성은 뒷말을 이어냈다.
“너희들 팔에 있는 노예인식표를 없애야 한다.”
그래야만 안전하다는 걸 철수는 이해했다. 경비대가 노예인식장비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안다. 그 장비와 연동된 빔소총에 걸리면 죽는 것이다.
“어, 어떻게요?”
미간을 옅게 찌푸렸다 편 강흑성은 단도와 같이 허리에 매달고 있던 수통을 내려놨다. 품에선 작은 약병도 꺼냈다. 그 안의 환약 두 알을 꺼냈다.
“먹어라.”
강흑성이 내미는 환약을 보고 강흑성의 얼굴을 보고 하던 철수가 다시 묻는다.
“뭐, 뭔데요?”“해독약이다.”“해독약요? 뭐, 뭐를 해독하는 건데요?”
긴장과 두려움이 물드는 철수의 눈을 응시하고 강흑성은 차분하고 진중하게 설명했다.
“너희 팔의 그걸 없애려면 독을 사용해야 한다. 살에 스며든 걸 지우자면 말이다. 노예인식표를 없애려면 팔을 자르는 게 가장 확실하지만······”
철수의 낯빛이 해쓱해지는 순간 강흑성은 뒷말을 이어냈다.
“그럴 순 없을 거다. 그래서 독을 사용해 피부를 지울 거다. 그러자면 해독약을 먹어야 한다. 그래, 지우는 과정이 너희에겐 쉽지 않다. 하지만 하는 동안의 고통은 못 느끼게 해줄 거다. 하고 나서는 참아야 한다.”
결정을 하라는 강흑성의 눈, 철수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침을 삼켰다. 얼굴도 못 들고 있는 영희를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러다 조협산을 봤다.섬광과 폭발화염이 치솟고 있는 산 어귀, 그렇게 현실을 받아 들였다.
“하, 할게요.”
철수는 영희를 품에서 떼 내고 얼굴을 마주했다. 눈물을 흘리며 무서워하는 아이에게 설명했다. 왜 해야 하는지를, 살려면 해야 한다고 말했다.
“괜찮아. 우릴 살려주신 분이야.”
강흑성을 믿어도 된다고 영희를 다독인 철수는 해독약을 삼켰다. 영희에게도 먹게 했다. 그리고 팔을 내밀었다. 앙상하게 마른 열세 살 남자아이의 팔이다. 그 중앙에 별모양이 보인다. 노예임을 각인한 저주표시다.
“한다.”
짧고 명료하게 말한 강흑성은 철수가 아닌 영희의 팔을 잡았다. 놀라는 아이를 무시하고 혈도를 짚었다. 꼼짝도 못하는 영희의 눈을 철수가 감겼고, 강흑성은 수통을 기울여 독을 손에 발랐다. 그걸 영희 팔에 댔다.치이익, 영희의 팔에서 연기가 피어났다.피부가 녹는 광경, 철수는 똑똑히 봤다.노예표시인 별이 없어지는 것도 봤다.그 대신 붉은 살이 드러났다.그 위에 풀잎 같은걸 붙이고 붕대가 감기는 마무리까지 지켜봤다.
“하루정도는 감각이 없을 거다, 그 시간이 지나면 아플 거다.”
무심히 말하며 강흑성은 철수의 팔을 잡았다. 철수가 영희에게 보지마라고 하는 걸 들으며 같은 일을 반복했다. 배낭 안 붕대는 이제 더 없다.
‘블랙블러드놈들 걸 잘 사용하는 군.’
놈들의 플라잉카에서 얻은 배낭과 그 안의 물건들이다. 활엽초는 놈들이 쓰는 상비약이다. 피부재생과 지혈등의 효과가 탁월해 원형그대로 쓴다.
‘독을 더 만들어야······’
조협산으로 시선을 돌리며 강흑성은 수통의 독을 흔들었다. 바닥이다. 그런데 만들 시간이 없다. 배를 타고 이동하면서 만든 것처럼 소량이라도 만들자면 재료를 구하고 준비해야 하는데, 현재로선 그럴 틈이 없다.
‘아버지처럼 독인이라면 아무 제약이 없겠지만.’
강흑성 자신도 독인이다. 그렇지만 아버지 유성대협과 같은 절대 독인은 아니다.바로 그 경지, 절대독인이 된다면 독을 만들 필요 없다.내쉬는 숨결, 체액, 손짓하나로 독을 퍼트릴 수 있다. 그것이 절대의 경지다.
‘굳이 저곳에 가야 할 이유는······’
문득 치솟은 그 생각을 강흑성은 일거에 밀어냈다. 다시 고민 할 일이 아닌 거다. 마무리하겠다고 마음먹은 일이다. 태산으로 향하는 길목이다.
‘결과가 어떠하든.’
흑청빛의 안광읖 흘려낸 강흑성은 철수와 영희에게 말했다.
“가자.”
* * *
산 어귀의 비탈을 미친 범처럼 달려간 그렉은 벌컨을 장착한 장갑차를 목표로 질주했다. 전부 다섯 대다. 조협산의 입구에 벌려 서서 산을 향해 발포하고 있다. 눈부신 섬광의 불벼락은 산을 쑤시며 까뒤집고 있다.
‘개자식들!’
분노를 에너지 삼아 그렉은 어둠 속을 질주했다. 벌컨장갑차들이 벌려선 중앙을 피해 우회해 달렸다. 수풀을 헤치고 바위를 뛰어넘는 그 움직임은 역시 발각됐다. 경비대 십여 명이 빔소총을 난사하며 달려온다.
“더는 도망 안 간다!”
스쳐가는 빔에게 소리치듯 그렉은 그 의지를 외쳤다.정말로 미친 범이 돼서 경비대에게 쇄도했다.그 움직임에 당황한 놈들을 철권과 철각으로 후려쳤다.쓰러진 놈의 칼을 뽑아내 물러서는 놈들의 허릴 갈랐다.어디서 이런 용력이 나오는 걸까, 스스로에게 놀라면서도 그렉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등 돌려 달려가는 마지막 놈에게 칼을 던져 맞추고 달렸다.삽시간에 십여 명을 격살도륙한 결과, 분명 내력이 증진했다.그 원인이 뭔지를 지금 따지는 건 필요 없는 일이지만 짐작한다.평택에서 조엘과 싸운 결과로 입은 부상이다, 그걸 강흑성이 치료해줬다.그 후부터 내력이 한 단계 나아간 거다.이런 접전상황이 되니 확인이 된다.
“이 새끼들아!”
흩어지는 경비대 병력 속을 질주해 간 그렉은 벌컨 장갑차 위로 도약해 올랐다. 상황을 인지한 장갑차 위의 놈이 해치를 닫으려는 순간 크레몬을 던졌다. 포탑을 차고 점프하며 폭발하는 장갑차의 열기를 느꼈다.
“이여어!”
괴성을 지르며 그렉은 두 번째 장갑차를 향해 달려갔다. 좌우에서 경비대가 쏘아대는 빔이 날아왔지만 비호처럼 달려 장갑차 아래로 들어갔다. 미끄러지는 움직임 그대로 크레몬을 차체 아래에 붙이고 빠져나왔다.폭음과 섬광이 몸을 때렸다.화끈한 그 힘에 밀려 그렉은 나뒹굴었다.허공에 떠올랐다가 뒤집혀 처박히는 벌컨 장갑차를 목격했다. 군과 정찰대가 쓰는 게틀러라면 저러진 않을 텐데 하는 생각이 순간 스쳐간다.
‘잡았어!’
두 번째 벌컨장갑차를 해치웠다는 짜릿함으로 그렉은 몸을 일으켰다. 경비대의 속에 있는 상황, 한순간이라도 방심하고 지체하면 빔에 구멍이 날 터다. 다행이라면 경비대도 이 상황에 놀라 허둥거리고 있다는 거다.
‘아직 세대가 남았어!’
호랑이 눈을 강렬하게 빛내며 움직이던 그렉은 쓰러졌다. 허벅지를 뚫고 지나간 빔 때문이다. 그냥 빔소총의 타격이 아님을 맞는 순간 깨달았다. 그렇다고 벌컨은 아니다. 장갑차들은 자신에게 포신을 안 돌렸다.그럴 수가 없다, 경비대와 그랙 자신이 섞여 있는 상황, 벌컨의 포신을 빔소총처럼 가볍게 돌릴 수도 없다. 그러자면 장갑차량 자체를 돌려야 한다. 그럴 순 있겠지만 지금 이 타격은 뒤에서 날아온 거다, 계속 온다.트르르르릉.귀에 박히는 경쾌한 소음과 경비대를 들쑤시는 눈부신 빔섬광으로 그렉은 깨달았다.미니건의 타격, 다른 자들의 공격이다.경비대의 뒤에서 이럴 자들이 누군지 떠오른다.가브리엘, 그자의 기습이다.
“개신발······!”
박준이 전염시킨 욕을 신음처럼 흘려낸 그렉은 미니건의 수평소나기 아래로 머릴 박았다. 경비대가 춤추며 쓰러지는 가운데 벌컨 장갑차들이 차체를 돌리는 것도 봤다. 그런데 그 순간 전차로켓이 날아와 강타했다.눈이 멀듯한 폭발화염 속에서 벌컨장갑차는 터졌다. 두 대가 터졌고 한 대는 하체만 파괴됐다. 그 상태에서 벌컨의 불벼락을 토해냈다. 미니건과 대전차로켓을 발사하고 접근하던 놈들도 장난감처럼 부서져 흩어진다.
“그레엑!”
부르는 소리에 반응한 그렉은 고개를 들었다.박현과 무슬란이 달려오는 걸 봤다.3미터 거구의 움바바족 전사들, 눈먼 총탄에 맞기 쉽상인 저들이 달려온다.그렉 자신을 구하기 위해서다. 뜨거운 게 치밀어 오른다.
* * *
어둠 속에서 일어나는 접전을 바라보며 강흑성은 아이들이 있는 곳을 다시 확인하듯 돌아봤다. 수림의 안전지대다. 강흑성 자신이 남은 독을 이용해 만든 장소다. 그 안에 있는 동안은 누구도 접근하지 못할 거다.
‘인식표도 없으니까.’
경비대의 뒤를 치는 공격은 이미 시작됐다.가브리엘이란 자가 동원한 낭인 흑도패도 경비대도 여기 다 모여 있는 거다.그들로 인한 위험은 없다.목전의 위험이라면 그렉과 박현과 무슬란이다. 잘 대처하고 있다.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어쨌든 시간이 촉박하군.’
셋은 파괴된 벌컨장갑차량의 뒤에 숨어 있다. 경비대와 낭인흑도패의 접전이 백병전으로 이어지는 가운데다. 낭인흑도패가 우세하다. 마지막 남은 벌컨장갑차도 파괴됐고, 배후기습을 한 숫자가 배는 더 많다.
‘머릴 잘라야지.’
접전을 눈에 넣던 강흑성은 플라잉카를 찾았다. 접전 현장에서 거리를 벌린 위치에 기동한 채 떠 있는 야전차량이다. 해치를 열고 머릴 내민 자가 야시경으로 살피고 있다. 주변엔 캬이엔을 탄 퓨리엔트족들이 있다.
‘너구나.’
목표를 찾은 강흑성은 주저하지 않고 움직였다.비탈과 둔덕을 차고 바람처럼 달려갔다.커다란 바위를 박차고 비상했을 때 놈들이 인지했다.역시 퓨리엔트족, 일제히 빔소총을 겨눴다. 그러나 그들이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강흑성은 철룡을 펼쳤다.은빛 뇌전이 된 사슬은 퓨리엔트족의 형상을 후려쳤다.타고 있던 캬이엔과 같이 갈랐다.빔은 그 후에 터졌다.두 명의 퓨리엔트족이 벼락같은 순간에 흩어졌다. 그 죽음을 밟고 다시 도약한 강흑성은 거릴 벌리고 물러나는 퓨리엔트족에게도 철룡을 안겼다. 빔보다 빠른 철룡의 폭출, 퓨이엔트족들은 머리와 심장이 뚫렸다.쓰러지는 죽음과 동시에 땅을 밞은 강흑성은 플라잉카를 응시했다. 정확하게는 그 안에 탄 자, 기함한 눈을 부들거리는 존재를 향해 말했다.
“가브리엘, 내려와라.”
늘어진 볼살을 부들거리던 자, 기브리엘이 미니건을 꺼내더니 발사했다. 눈부신 빔섬광이 강흑성을 강타했다. 그러나 그 자리에 강흑성은 없다.가브리엘은 눈을 치뜨고 은빛사슬의 은총을 받았다. 미니건을 가르고 자신의 팔마저 잘라버린 은빛의 선, 그걸 잡고 다가오는 공포를 맞이했다.
“으어!”
패닉에 빠지는 가브리엘의 목을 틀어잡은 강흑성은 천근추를 밟았다. 지면에서 떠 있던 플라잉카는 땅을 파고들었고, 불이 치솟는 차체로부터 가브리엘을 끌고 나왔다. 그 걸음은 아이들을 거쳐 조협산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