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107화 (108/172)

혹성강호. 107. 별을 쫓는 자들.

107. 별을 쫓는 자들.

“문주의 후의를 삼월문은 잊지 않겠소이다.”

공수의 예를 취하며 미소로 인사하는 자, 사자검이란 별호를 가진 육대원을 향해 철무진은 마주 예를 취했다.

“행로에 행운과 안녕이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육대원이 입매를 꿈틀하며 반응하려다가 미소만 흘리고 돌아선다. 행운이나 안녕 따위는 내가 만드는 거다 라는 말을 듣지 않았지만 철무진은 들은 것만 같다. 등을 보이고 떠나가는 저 자는 그럴만한 인물이다.

‘삼월문 삼대무력단체 중 하나, 초월단주(初月團主) 사자검 육대원.’

엄청난 거물이다, 무서운 고수다. 천지문에서 외당주 종초홍을 보낸 것처럼 삼월문은 저자를 보냈다. 종초홍처럼 이곳을 거쳐 간 강흑성을 더듬는다. 뇌인걸의 무공을 찾은 천지도 상패천이 아니라 그를 쫓고 있다.

‘어쩌면 양동작전인지도······’

골을 그린 미간으로 철문진은 새벽 속을 응시했다. 강물을 거슬러 가는 삼월문 인물들은 이제 시야에서 사라졌다. 저들은 천지문 인물들처럼 강흑성을 쫓아갔다. 강흑성, 그가 정말로 유성대협의 후인이라면 어찌될까.

‘진정 그렇다면 유성대협처럼 그도 별과 같은 존재야.’

흑성이란 이름 때문이 아니라 그 인물이 그러함을 철무진은 안다.강흑성이란 사내를 겪어봤기에, 그의 눈동자를 봤기에 아는 거다.그는 굴종당할 자가 아니다. 그를 건드리는 자들은 죽을 각오를 해야 할 거다.

“육대원, 네가 거칠 것 없는 지위를 가진 데바족이지만 이번 상대는 다를 거다.”

새벽 속으로 철무진은 그 말을 흘려냈다. 동시에 작은 소름을 삼켰다. 배를 떠나간 육대원을 떠올리면서다, 그자의 존재감이 그렇게 만든다.악마족이라는 데바족이다. 그 이마의 뿔은 떠올리는 것만으로 경직된다.

‘데바족, 군부와 삼월문의 근간을 이룬 족속.’

육백년 전 지구를 침공한 외계종족, 그러나 지구의 일부가 되어 정착해 살았고 삼백년 전 프락시안의 침공에 맞서 함께 싸운 자들, 저들은 삼월문과 군부를 기반으로 화성의 핵심지도층이 됐다. 특별한 족속이다.

‘가이요라, 본적은 한 번도 없는데 정말 그럴까?’

데바족이 특별한건 종족자체의 능력이다. 가이요라라고 부르는 생체에너지 발생능력이 있다. 절대고수들의 호신강기와 비슷한 힘이다. 태생적으로 그런 게 가능하기에 저들은 삼월문의 고수가 될 수 있었던 거다.

‘뿔이 완성된 성인의 경우만 가능하다지만······’

수명도 인간과는 다른 자들, 성인이 되려면 인간 성인 나이의 두 배 이상을 살아야 한다. 그건 외형으로 구분하는 게 아니라 뿔을 보고 아는 거다. 그리고 같은 데바족 성인이라고 다 가이요라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럴 수 있게 자신을 갈고 닦은 자, 디스토챠를 받은 자의 능력.’

데바족의 검 디스토챠를 육대원은 분명히 지니고 있었다. 삼월문의 삼대무력단체 중 하나인 초월단의 보스가 제 종족의 성인식을 통과 못했을 리 없다. 저희종족의 뿔과 뼈가 들어간 브리틀합금의 강검을 지녔다.

‘육대원이란 이름은 누구에게서 받은 걸까?’

그게 궁금해 철무진은 미간을 깊게 좁혔다. 데바족의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친이 인간이고 모친이 데바족이란 상상은 도저히 안 된다.

‘그런 일이 있었던가?’

철무진은 고개를 흔들고 실소를 터트렸다. 하지만 이내 냉정한 눈빛을 흘려냈다. 육대원의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고 이 현실이 엄중하다.

“강흑성, 그대를 쫓는 자들은 무섭다.”

새벽 강바람 속에 그 말을 던진 철무진은 돌아섰다. 그런데 강울 가르며 배가 다가온다. 라이트를 번득여 신호를 보내는 배의 정체를 알겠다.

‘백두파, 역시 너희도 왔구나.’

뜨거워지는 숨결을 다스린 철무진은 배가 접안하기를 기다렸다.

* * *

여명이 움터오는 속에서 강흑성은 현장을 돌아봤다.지난밤의 흔적, 경비대와 가브리엘의 낭인 흑도패가 전투를 벌인 결과다.파괴된 장갑차들과 죽은 자들의 시신이 널려있다.그 속을 반란군들이 누비고 있다.

‘끝장은 내야지.’

죽은 자들의 무기를 수거하는 반란군, 농장 노예들이었던 저들은 이제 현실을 냉엄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가브리엘에게 이용당했다는 분노보다도 완전한 자유를 얻겠다는 의지로 저런다. 아직 농장주들이 건재하다.

‘아이들이······’

철수와 영희가 계속 떠오른다. 그 아이들의 내일을 위해서도 이 싸움은 끝내야 하는 게 맞지만, 아버지를 잃고 우는 저 아이들의 지금이 마음 쓰인다. 누군가 돌봐준다면 저 아이들의 미래는 완전히 달라질 거다.

‘짐승 같은 날을 살아야 했던 나와는 다른.’

그런 마음의 충동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분명하게 헤아리고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내지 못한 충동, 그 감정이 저들의 싸움에 끼어들게 했다.내 일이 아니니 모른척해야 하는 게 맞는데 행동 한 거다. 이득이 전혀 없는 일, 아이들을 본 순간 한 거다. 그런 일인데 더는 시간이 없다.

‘어서 태산으로 가야 해. 아우리엘이 패천마안을 찾기 전에.’

이들은 이제 농장주들과 싸워야 한다. 경비대 병력의 핵심이 이곳에서 전멸했다곤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다. 하루 이틀에 끝낼 수 있는 싸움이 아니다. 반란군들이 이제야 진정한 현실을 자각했다 해도 힘든 일이다.

“무슨 생각 하냐?”

그렉이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와 묻는다. 그 얼굴을 강흑성은 새삼 응시했다. 이곳 조협산에서 보게 될 거라곤 예상치 못했던 일행이다. 그렉은 맹호처럼 벌컨장갑차를 공격해서 파괴했다. 무슨 생각이었을까.당신이야 말로 무슨 생각입니까 라고 물으려던 강흑성은 그렉의 뒷말을 들었다.

“태산으로 가라.”

시선을 응축한 강흑성의 눈을 그렉은 담담히 마주보며 미소 지었다.

“여긴 우리가 맡을 거니까 너는 네 일을 해.”

이런데서 얼쩡거리며 시간허비 말라는 의미, 이 결론이 가진 뜻을 강흑성은 깨달았다. 이젠 헤어지겠다는 거다. 강흑성 자신 혼자 가란 거다.

“짐이 되지 않고 도움이 되려는 거다.”

고개를 돌린 그렉은 가브리엘의 처리를 놓고 갑론을박중인 반란군을 응시하며 말했다.

“저들에게 우리는 도움이 될 거다.”

강흑성은 의미를 헤아렸다.그렉과 박준과 박현과 무슬란이면 정말 그렇다.농장주들을 상대로 벌일 싸움에서 반란군을 지휘해 승리할 수 있다.강흑성 자신을 쫓아가는 것보다는 이들과 함께하는 것이 현명하다.

“아이들 걱정은 마라.”

강흑성의 눈을 다시 응시한 그렉은 푸근한 미소를 지어냈다.

“네 마음 누구보다 잘 안다.”

처음 샹그릴라에서 만났을 때의 강흑성, 그 모습을 떠올리며 그렉은 웃었다. 소리 없는 그 웃음을 마주 바라보던 강흑성도 미소를 피워냈다.

“죽인 다는데?”

두 사람 곁으로 다가온 박준의 얼굴엔 심각함이 없다. 가브리엘을 마침내 죽이기로 했다는 결론을 전하면서 심드렁하다. 그래서 그렉이 긁었다.

“돈 안 생기는 일인 건 마찬가지올시다.”“뭐?”

되물음을 냈던 박준은 무슨 의미인지 깨달았다. 강흑성을 따라 가는 일도 여기서 반란군과 함께하는 일처럼 돈 같은 건 안 생긴다는 놀림이다.솔직히 그 부분은 이미 마음을 정리했다. 그런데도 들으니 화가 난다.

“이 개호랑이 쉐이가!”

그렉의 멱살을 잡으려 박준이 손을 뻗는 순간 강흑성이 움직였다. 둘의 사이를 지나 반란군 지도부가 모인 곳으로, 가브리엘의 앞으로 갔다. 누가 어쩔 사이 없이 검을 뽑아 내리쳤다. 가브리엘의 머리가 굴렀다.당황하고 놀란 반란군 지도부 인물들이 주춤 물러났고 그렉과 박준이 그들에게 말했다. 죽인다고 결정한 자이기에 죽인 거라고, 죽인다고 결정했으면 가차 없이 죽이는 거라고, 이제 해야 할 싸움이 그래야 한다고.

“지금 가냐?”“바로 가는 건가?”

박현과 무슬란이 다가와 묻는다. 그 말 후엔 미소 짓는다.강흑성은 고개를 한번 끄덕였고 박현과 무술란은 역시 고갤 끄덕인 후 돌아섰다.그것이면 된 거다, 살아 있으면 다시 보게 될 거다.강흑성은 걸음을 냈다.

* * *

‘응?’

아이들 노랫소리가 들려 원필성은 미간을 좁혔다. 여인들이 사는 3층 건물이 노랫소리의 근원이란 걸 알았다. 일부러 전술차량을 두고 걸어서 온 길, 아침 해를 반기는 듯한 노랫소리가 경쾌하다. 모습도 그렇다.

‘이건 꼭······’

건물 일층에 아이들이 모여 있다. 이십여 명 가까이 된다.제비 새끼들처럼 종알거리며 노래 부르는 아이들 앞엔 그녀가 있다.카이오란 이름의 캐리언족 아가씨다.화사하고 포근한 미소로 아이들과 함께 노래한다.

‘학교.’

머리에 떠오른 단어를 지금 보는 광경에 대입하며 원필성은 기묘한 감정을 삼켰다. 카이오란 아가씨가 하려는 일이 뭔지를 알 것 같아서다.

‘이곳 아이들을 가르치려는 거구나.’

왜 저러는 지, 어째서 저런 생각을 했는지 알겠다.샹그릴라 일행에 대해선 조개처럼 입을 다물었던 저 아가씨는 말했었다.아이들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일이 없겠느냐고, 7군단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겠냐고.그 말의 의미를 이제 분명히 알겠다.

‘대단하고 용감한 아가씨야.’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서다. 참혹하고 잔인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 조금이라도 나은 내일을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인 거다. 그러기 위해선 스스로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아이들에게 준비시키는 거다.

‘여길 온 게······’

창문 넘어 건물 안 광경을 바라보던 원필성은 카이오란 이름의 아가씨를 새삼 바라봤다. 열정을 품은 눈동자, 화사한 미소, 아름다운 여자다.저 모습이 떠올라 여길 왔다. 딱히 오늘 볼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왔다.

“아침부터 오셨습니다.”

비수를 찌르듯 곁에서 다가온 목소리에 원필성은 흠칫하며 고갤 돌렸다. 뭘 그리 놀라나? 하는 표정의 남자, 최창수를 바라보며 당황을 삼켰다.

“아 예, 그게······”

건물 안을 넘겨다 본 최창수는 흐릿한 미소로 다시 입을 열었다.

“보기 좋지요? 카이오가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시작한 일입니다. 아, 어제 아이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없겠냐고 했다던데, 그 일입니까?”

아침부터 찾아온 걸 보니 그런 거지? 하는 최창수의 눈을 원필성은 피했다.

“아, 그게, 음, 예. 정확한 상황을 파악해야, 지원가능 여부를······”“호, 역시 그렇군요, 역시 7군단입니다. 그리샴장군과 7군단에 대한칭송이 자자한 이유를 확실히 알겠습니다.”“어 뭐······”“보셨으니 기대해도 좋겠군요? 듣기로는 7군단 내 군인가족을 위한 학교가 있다던데, 거기서 쓰는 교재라든지 교육비품을 나눌 수 있겠습니다?”“예? 아니 아직 그렇게까진······”

소리 없이 큰 웃음을 흘려낸 최창수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압니다.”

안다는 말 한마디에 담긴 모든 의미를 원필성은 헤아렸다. 농담을 한 것일 뿐이라는, 당신 입장을 알고 언감생심 그런 걸 바라지도 않는 다는.

“카이오가 걱정을 했습니다.”

다시 나온 최창수의 목소리에 원필성은 한숨을 덜며 귀 기울였다.

“어제 방문으로 위험해지지 않을까 두려워했습니다. 예, 보는 것처럼 자신의 안위 때문이 아닙니다. 함께 사는 이들, 아이들을 걱정하는 겁니다.”

눈길을 카이오에게 돌리는 원필성에게 최창수는 계속 말했다.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원대위가 찾아온 용무는 샹그릴라 일행에 국한된 것일 뿐이라고, 여기 사람들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돌아보는 원필성의 눈을 응시하며 최창수는 쐐기를 박듯이 말했다.

“7군단은 명예를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군대라고, 절대 위해를 가할 일이 없을 거라고 말해줬습니다.”

최창수의 눈을 말없이 응시하던 원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런 일은 절대로 없을 겁니다.”

단호하게 의지를 뱉어내듯 말한 원필성은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이어냈다.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는지 찾아보겠습니다.”

목례하고 돌아서는 원필성대위,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최창수는 중얼거렸다.

“향기에 취했구나. 그런데 그 꽃이 한곳만 보는 해바라기인 걸 어쩐다.”

쯧하고 혀를 찬 최창수는 전복이 일하고 있을 들로 시선을 멀리 던졌다.

* * *

“쯧.”

혀를 찬 종초홍은 준수한 얼굴을 구기며 시신을 봤다.

“주술사라는 것들은 죽는 것도 확실히 특이하군.”

다리가 잘렸고 가슴엔 구멍이 났으며 목이 잘려 나간 죽음이다.이 자는 주술사다. 신남경을 거쳐 서주에서 샹그릴라 일행을 추적 공격한 자다.이자의 일행으로는 혁리추와 명일해가 있었다. 그들은 소멸했다.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단 말이야.”

주술사란 존재에 대한 것인 동시에 이 죽음을 만들어낸 존재에 대한 의문이다.미간을 잔뜩 찌푸린 종초홍은 접전의 흔적을 되새김질했다.이건 분명히 강흑성이란 인물이 한 게 아니다. 그와 동행했던 자의 소행이다.

“후우.”

깊은 한숨을 내쉰 종초홍은 지나온 길을 더듬었다. 샹그릴라 일행이 거쳐 간 길을 더듬어 온 이곳까지다. 아직도 그들은 앞서가고 있지만 거의 다 따라잡았다. 그런데 그들 내부에서 또 다른 존재가 불거져 나왔다.

‘주술사를 여기서 이렇게 죽여 버린······’

서주가 블랙블러드에 이은 주술사의 공격으로 혼란하던 때, 안개속의 그들을 목격한 자들이 있다. 그들의 증언에 의하면 붉은 엘프였다고 한다.

‘블랙블러드의 개입도 골치 아픈데······’

뺨에 주름이 지게 이를 물었던 종초홍은 시선을 들었다. 해가 중천에 올라 있는 저 너머 북쪽, 산동땅의 중심이던 제남, 태산이 있는 방향이다.

‘그곳이야.’

확신에 찬 예감을 삼키며 종초홍은 돌아섰다. 대기하던 플라잉카를 타고 질주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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