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강호. 110. 다시 만난 자들, 만나야 할 자들.
110. 다시 만난 자들, 만나야 할 자들.
금빛 도신에 한줄기 피를 머금은 것 같은 병기, 금혈신도라는 이름을 주인의 별호로 만들어준 칼이 움직인다. 벼락같은 도광을 번득인 순간 공간을 가른다. 엄청난 스피드와 파워를 품은 도세는 진정 놀라울 정도다.
‘역시!’
위하문의 공격을 피하며 강흑성은 확신했다.붉은 꽃의 화신이 된 존재, 본래의 무위를 넘어선 공격을 펼치고 있다.저것은 무공과 내력이라는 개념을 벗어난 거다.붉은꽃덩굴이 주는 에너지가 저자의 힘이다.칼날이 벼락 치는 것 같은 공격, 폭풍우와 같은 속에서 강흑성은 무원신보를 밟아나갔다.간발의 차로 위하문의 금혈신도를 피하면서 주변을 인지했다.붉은꽃덩굴이 춤추듯이 출렁거리고 있다. 위하문과의 동조다.물러나는 바닥에 구궁팔괘를 그리듯 바닥을 팬 강흑성은 때가 됐음을 알았다.순식간에 백보를 밟았다.마지막 백보를 디디는 순간 종골근을 뒤틀며 앞으로 나갔다.백보를 물러나며 쌓은 철극지력을 뻗어냈다.
‘철경(鐵勁).’
철의 뇌전처럼 뻗어나가는 검.철혼의 끝에 맺힌 철마류의 진력을 강흑성은 분명히 보고 느꼈다.무원진력을 덮어쓰고 무원신보에 스며들어 치솟아 나온 힘이다.그 의지가 검극을 터져나가 위하문의 가슴에 닿았다.바람에 날린 낙엽처럼 위하문은 날아갔다.손가락으로 튕겨버린 바둑돌처럼 덩굴숲에 처박혔다.그렇지만 덩굴은 바로 토해냈다.쓰러진 몸을 세워놓는다.그런데 가슴에 구멍이 났다. 심장에 있어야할 곳이 휑하다.
캬르르르르.
금속새들이 울부짖는 것 같은 소리가 사방에 진동한다. 소름끼치는 그 소리의 원인이 붉은꽃덩굴이란 걸 의심치 않으며 강흑성은 위하문을 응시했다. 자신이 구멍 낸 가슴이 메워지고 있다. 역시 덩굴줄기가 찬다.
“너를······ 죽인다······”
죽은 자의 목소리를 흘려낸 위하문이 다시 걸음을 낸다. 움직인 순간 역시 벼락이 치는 것 같은 스피드로 공격해 온다. 자욱하게 공간을 수놓는 금빛 도광의 확산이다. 이정도면 초절정 고수의 도막이라 하겠다.금빛 도광의 확산이 내리덮이는 순간 강흑성은 움직였다.철혼을 하늘로 그어 올리는 일검을 뿌리며 나아갔다.무원역진격의 베기.철극지력과 더해진 무원진력의 힘을 터트렸다. 철혼의 의지로서 대상을 갈랐다.귀에 들리지 않는 가름의 소리를 강흑성은 들었다.갈라 올린 철혼의 감각으로서 느꼈다.위하문의 도세를 갈랐다. 그렇게 벌어지는 속으로 무원비천류를 펼쳐 나갔다.손과 발, 온몸으로 천지를 때리고 유린했다.
* * *
“동요하지 말고 길을 열어라!”
초월십검에게 소리쳐 명령하며 육대원은 검을 휘둘렀다. 라이트슈트에는 덩굴수액이 닿아 흰연기를 피워내고 있다. 붉은꽃덩굴, 이것의 정체가 뭔지 모르지만 와이어를 끊는 것 같은 느낌이다. 진법 속에 든 것 같다.
‘독향기와 환청으로 이지를 혼란케 하는 마물!’
정체 모를 이 괴식물은 그런 거다. 추적대상인 천지도 상패천등의 목소리를 내 놀라게 했다. 흉내 내는 거다. 그들의 목소릴 들었기에 가능하다.
‘이곳에 상패천이 들어왔다는 방증.’
일석이조의 상황이다. 애초의 목표는 그였다. 그런데 중간에 강흑성으로 타깃을 바꾼 거다. 블랙블러드가 움직인 정황, 강흑성이 유성대협의 후인이라는 가능성 때문이다. 소문만이 아닌 그 진위 확인을 우선시했다.
‘이 안으로 천지문일행이 들어갔고 강흑성도 마찬가지.’
그들의 행보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강흑성의 목적지가 이곳 태산이라는 이유는 모르지만 흐름이 짐작하게 한다. 상해에서 얽혔던 천지도 상패천도 이곳에 온 거다, 그 인과관계와 내막은 역시 뇌인걸의 무공이다.
“덩굴이 열립니다!”
초월십검 수좌의 목소리에 반응하며 육대원은 전방을 응시했다.괴수의 촉수처럼 덮쳐오던 덩굴이 물러나 공간을 만들었다.덩굴로 뒤덮여 있던 거대수가 보인다. 그 아래 가부좌를 틀고 있던 인물이 일어선다.
‘단천문주 운드라이!’
그자다, 그런데 그자가 아니다. 앞을 보는 눈엔 눈동자대신 붉은 꽃이 피어나 있다. 전신은 덩굴줄기가 뒤덮었다. 저건 산자의 모습이 아니다.
“너희를······ 죽인다.”
유부의 음성인가, 장검을 움켜쥔 운드라이가 걸어 나온다.
* * *
끝없이 덤벼드는 붉은꽃덩굴의 공세 속에서 종초홍은 분노를 삼켰다. 이따위 잡것에게 시간을 허비하고 있어서다. 화기를 가져왔다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인데, 무인으로서의 자존심은 손에 검만을 지니게 했다.
“전력으로 파훼해라!”
좌우호위에게 소리쳐 명하며 종초홍은 진력을 끌어올렸다. 이제 대적하게 될 강적들과의 조우를 위해 아껴둔 힘을 풀었다. 이렇게 시간과 힘을 소비하는 것보다 낫다는 결정이다. 천지조화검의 파도를 일으켜 냈다.
‘천지 속에 오직 검 하나만이 존재하노니.’
근본의 무의를 가슴에 품고 종초홍은 검을 펼쳤다. 횡으로 갈라내고 종으로 내리치는 검에서 검기의 파랑이 퍼져 나왔다. 붉은꽃덩굴들은 허공에 뿌리는 화우처럼 흩어져 휘날렸다. 그 속을 종초홍은 진격해 들어갔다.
카앙!
검을 통해 느껴지는 충격, 그보다 늦게 눈에 들어온 불꽃을 인지한 순간 종초홍은 뒤로 신형을 날렸다. 검기를 흩뿌리며 착지한 순간 깨달았다. 자신의 검이 후려친 것이 뭔지, 위험을 예감하게 한 본능의 대상을.
“상패천······!”
그다, 눈동자에 붉은꽃을 피워낸 모습의 상패천이다. 덩굴이 모습을 가리고 기척마저 지운 존재, 덩굴 뒤에서 나온다. 두 손을 느릿하게 내민다. 그리곤 벼락같이 떨친다. 그 손으로부터 푸른 뇌전이 터져 나온다.
* * *
철룡의 포효를 온몸으로 터트리며 강흑성은 전진했다. 온갖 소리를 다 내며 이우성치는 붉은꽃덩굴을 유린했다. 그렇게 전진한 걸음을 멈췄다.계곡이다. 붉은꽃덩굴이 마침내 끝나고 드러난 계곡길이 스산한 풍경으로 맞아준다. 불어나오는 바람은 음울하다. 지옥에서 올라온 바람 같다.
‘아우리엘.’
그가 이곳으로 들어갔다는 걸 강흑성은 확신했다. 붉은꽃덩굴은 모든 흔적을 감추고 일체의 기척마저 다 숨겨버리지만, 아우리엘의 존재감은 이제 확연하다. 그는 패천마안을 찾아 왔다. 어쩌면 늦었는지 모른다.
“끝을 보자.”
계곡의 음울한 바람을 향해 그 말을 던진 강흑성은 걸음을 냈다.
* * *
좌우호위가 줄 끊어진 연처럼 뒤로 날아가는 걸 종초홍은 부름뜬 눈으로 돌아봤다.
‘뭐?’
전후를 판단할 사이 같은 건 없다. 좌우호위를 날려버린 힘, 상패천의 손은 푸른 벼락을 다시 터트린다. 종초홍 자신을 향해 날아온다.
“이놈!”
온힘을 다한 종초홍은 천지조화검을 펼쳤다. 푸른 벼락을 치는 순간 깨달았다.
‘벽뢰수!’
내부로 치고 들어오는 강력한 힘에 기혈이 진탕한다.흘려내지 못하면 내상을 피할 수 없다.천지조화보를 밟았다. 땅에 도장을 찍듯이 깊은 발자국을 내며 팽이처럼 돌았다.멈춰 서서 코에 흐르는 피를 닦았다.
“벽뢰수를······!”
신음 같은 숨을 흘려내며 종초홍은 상페천을 노려봤다. 어떠한 무공인지 모르던 선조의 신공이다. 그것을 상패천이 가졌고 저렇게 펼쳤다. 벽뢰수라는 이름도 상해의 일로서 파악한 것이다. 그 위력을 지금 겪었다.
“죽인다······”
다시 걸음을 내는 상패천의 두 손이 푸르게 물드는 걸 본 종초홍은 검을 가슴 앞에 모았다.웅 하는 소리로 진동하는 검은 푸르게 물들었다.상패천이 벽뢰수를 떨치는 순간 검도 나갔다. 푸른 검광을 터트렸다.검강지력.종초홍이 터트린 궁극의 그 힘과 상패천의 벽뢰수는 충돌했다.푸른 확산이 주변으로 퍼져 붉은꽃덩굴들을 휩쓸었고, 그 자리로 종초홍은 날아가 뒹굴었다. 그러며 본 상패천 역시 쓰러져 뒹굴다 일어선다.
“익!”
분노와 고통을 밀어내고 종초홍은 다시 일어섰다. 그런데 그 순간 하늘에 뭔가 지나갔다. 엄청나게 빠른 스피드의 비행체, 정체가 뭔지 알았다.
‘비룡!’
독수리와 뱀의 형상을 합쳐놓은 것 같은 괴수. 삼백년전 백두파가 부리던 것들이다. 그것이 다시 날아와 하강한다. 뭔가를 지상으로 떨군다.
‘하늘상어!’
그것임을 종초홍은 직감했다. 발사관을 통해 날려 보낸 것이 아니라 저렇게 비룡의 다리에 장착하고 지상으로 꽂는 공격, 백두파의 등장이다.모든 생각을 끊고 종초홍은 신형을 날렸다. 비명인지 분노의 포효인지 모를 소리를 일제히 터트리는 붉은꽃덩굴 위로 도약했다. 꽃덩굴을 밟으며 나가는 순간 폭발이 터졌다. 그 폭발력에 휘말려 덩굴 속을 굴렀다.
* * *
상해 흑도방파의 주인, 그런 미천한 존재와 검을 겨룬다는 것 자체가 수치스럽다. 하지만 지금 대적하는 이자는 그런 미천함을 넘어 섰다.어떤 조화인지 모르지만 붉은꽃덩굴로 인해 육대원 자신과 맞서고 있다.
‘네가 무엇이든 내 손에 죽는다!’
디스토챠를 양손으로 움켜쥔 육대원은 삼월검을 펼치며 운드라이를 밀고나갔다. 데바족의 타고난 육체의 월등함에 더해진 삼뭘검법의 깊이로 상대를 압박했다. 운드라이는 계속 검을 맞고 있다. 하지만 그뿐이다.
‘이놈······!’
밀려가면서도, 팔다리에 검을 맞으면서도 하등 변함없는 운드라이를 보며 육대원은 분노를 삼켰다. 그런데 한순간 운드라이의 붉은꽃눈동자가 활짝 펴지는 걸 봤다. 그 순간 운드라이에게서 꽃잎들이 폭발해 나왔다.아찔한 충격 속에서 육대원은 휘청거리며 물러났다. 검을 쥔 두 팔로 안면과 가슴을 보호하며 뒷걸음질한 결과, 그렇게 만든 운드라이를 응시했다. 몸에 두른 덩굴에서 붉은 꽃잎을 암기로 발산한 놈, 다시 다가온다.
“으와아!”
격노를 터트린 육대원은 기력을 있는 대로 발출했다. 팔다리에 암기로 박힌 꽃잎들은 모조리 튕겨나갔다. 그 힘과 의지로 다시 검을 세웠다.그런데 하늘에 뭔가 지나간다, 그게 비룡임을 인지한 순간 깨달았다.
‘하늘상어!’
백두파의 공격이다. 그들이 비룡을 타고 왔다. 하늘상어가 떨어진다.
* * *
계곡은 좁아지고 마침내 동굴로 끝을 맺었다. 시커먼 괴수의 아가리처럼 존재를 드러낸 동굴 앞엔 아무 것도 없다. 신물을 지키는 신수라든지 결계를 친 진법이라든지, 상상하던 것들은 없고 그냥 바람만 음울하다.흑청빛이 어른거리는 눈으로 동굴을 응시하던 강흑성은 걸음을 냈다. 축축한 습기가 밟히는 동굴 바닥을 밟으며, 저벅대는 소리를 내며 들어갔다. 구불구불 휘어진 동굴 안은 작은 광장 같은 공간으로 끝을 내보였다.
‘아우리엘.’
동굴 벽을 보고 서 있는 존재는 아우리엘이다. 강흑성 자신이 온 것을 알 텐데 돌아보지 않는다. 석상처럼 서서 동굴 벽만을 바라보고 있다.
“아우리엘.”
강흑성은 이름을 불렀다. 그렇지만 역시 반응이 없다. 천천히 걸음을 내서 다가갔다. 아우리엘의 2미터 뒤에 서서 그가 보는 동굴 벽을 바라봤다.
‘좌대.’
벽 아래 놓인 것은 그렇게 여겨지는 바위다. 저 위에 놓여 있었을 것이 분명한 패천마안은 보이지 않는다. 그걸 찾아온 아우리엘이 앞에 있는 결과다. 그런데 아우리엘의 손이나 몸에도 패천마안 같은 것은 안 보인다.
“아우리엘.”
다시 이름을 부른 강흑성은 아우리엘의 옆으로 걸음을 냈다. 그렇게 아우리엘을 봤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우리엘은 없고 껍데기만 남았음을.순간적으로 흑청의 철빛을 눈동자로 폭사해낸 강흑성은 폭음을 들었다. 동굴 밖에서 들려오는 그 소리에 반응하는 순간 아우리엘이 무너져 내렸다.흩어지는 아우리엘의 껍데기를 동굴에 남겨두고 강흑성은 밖으로 달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