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112화 (113/172)

혹성강호. 112. 태산대혈전 1.

112. 태산대혈전 1.

바람이 강하게 분다.산의 옷의 돼 있는 수목들이 울부짖음을 토하고 있다.그 속에 아우리엘이 있다.붉은 엘프가 된 모습으로, 아니 가라운이 된 형상으로 푸른 뇌전도를 휘두른다.괴수들은 갈라져 추락한다.

‘아우리엘.’

흑청빛 눈동자를 무저갱처럼 응축한 가운데 강흑성은 계속 걸음을 냈다. 추락한 괴수로부터 떨어져 나온 무인이 강기 품은 화살을 날리는 광경을 보면서, 그자가 끝내 아우리엘의 뇌전도에 갈라지는 걸 보면서다.마침내 강흑성은 멈춰 섰다. 그 걸음에 맞춘 듯이 아우리엘은 돌아섰다.

“역시.”

환한 미소를 얼굴에 드리운 아우리엘, 손에 발출했던 뇌전도를 지운다. 강흑성 네가 이렇게 내 눈앞에 다시 나타날 줄 알았다고 눈으로 말한다.

“미워하지 마. 안 그러지?”

이어내는 미소엔 하지 않은 이야기가 들었다.강흑성 네게서 마기를 흡수한건 그래야 해서였다는 말이다.그것이 운명이었고 정해진 결론이었다는 거다.지금 내 모습이 그렇다는, 이 답을 위해 살아 있었다는 거다.

“아버진 세상을 위해 싸웠다.”

무덤덤하게, 툭 나온 강흑성의 목소리에 아우리엘은 미간을 옅게 좁혔다. 아버지얘기는 갑자기 뭐고 세상을 위해 싸웠다는 건 뭘까, 의문이다.

“왜 그랬는지, 누굴 위해 그래야했던 건지 아버지를 본적 없어서 모른다.”

하늘을 응시하며 뒷말을 이어낸 강흑성은 정말로 그게 궁금했다. 지금 새삼스럽게 더 궁금하다. 아버지에게 묻고 싶다. 그렇게 한 이유가 뭐냐고.

“아버지가 그런 일을 했다고?”

기묘한 표정을 지은 채 아우리엘은 강흑성을 응시했다. 입가에 피어나려는 미소를 다스리면서다. 지금 튀어나오려는 말은 이거다. 네 아버지가 세상에 빚진 게 있는 거냐고, 아니면 세상이 구해 달라 부탁했냐고.

“확실히 내 아버지하곤 다른 걸?”

아우리엘은 미소의 봉인을 풀었다. 이를 드러내고 소리 없이 웃었다.그건 어머니와 자신을 버리고 간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저주인 동시에 강흑성의 말에 대한 조롱이다.세상을 구하다니, 그러한 자는 없다는 거다.

“정말 확실한 건······”

괴수들이 날던 하늘을 더듬던 시선을 내린 강흑성은 다시 아우리엘을 응시했다.

“아버지가 구한 세상은 망했다는 거야.”

아우리엘은 다시 미소를 지우며 미간을 좁혔고 강흑성은 뒷말을 냈다.

“그래도 구한 건 구한거지. 그 속에 내가 이렇게 숨 쉬며 살아 있으니까.”

흐릿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던 강흑성은 다시 입을 열었다.

“난 세상이 어떻게 되든 관심 없다. 이 세상은 나에게 고통과 슬픔만 줬어. 내가 가진 의지는 살겠다는 거다. 약해서 당하지 않고 잡아먹히지 않겠다는 거야. 내게 중요한 것들을 빼앗기고 잃지 않겠다는 거, 그거다.”

흑청빛이 꿈틀거리는 강흑성을 눈을 바라보던 아우리엘에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좋은 얘기네, 전적으로 공감해.”

그래서 이제 어쩔 건데 라는 눈으로 아우리엘은 강흑성을 응시했다.

“네가 가져간 마기엔 관심 없다.”“그래? 좋네. 다시 돌려줄 수도 없고 그럴 생각은 더욱 없으니까.”

환하게 미소 지은 아우리엘은 바로 뒷말을 뱉었다.

“그래도 날 죽이고 싶잖아? 그럴 거잖아?”

강흑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도 말했다.

“내 안의 피가 아우성친다. 널 죽이라고.”

아우리엘도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래.”

미소 짖지 않은 얼굴로 아우리엘은 오른손에 뇌전도를 발출했다. 화르르 뇌기를 산란하는 장도는 아우리엘의 전신에도 푸른 기운을 물들였다.강흑성은 느릿하게 철혼을 뽑았다.격렬하게 울음을 토하는 검의 투쟁의지를 영혼으로 공명하면서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그렇게 아우리엘의 눈동자에 든 의지를 읽었다.이번엔 살아나지 못할 죽음을 줄 것이라는.

‘아버지.’

마음속으로 부친을 부른 강흑성은 모든 마음을 한 덩어리로 만들어 삼켜버렸다. 아우리엘에게 말한 것과 같은 의문과 감정, 모두 흩어내고 이 순간의 대적에 혼을 집중했다. 가라운이 된 존재와의 싸움, 피가 끓는다.한순간 강흑성은 철혼을 휘둘렀다.아우리엘이 뇌전도를 움직이는 찰나다.흑청빛 검강지기와 푸른 뇌전지기가 둘 사이의 허공에서 충돌했다.폭발충격이 퍼져나가는 것처럼 두기운의 충격파가 확산했다. 태산의 비탈에 옷을 입혔던 수목들이 갈라지고 뽑혀나갔다. 그리고 그들이 왔다.

천지문 외당주 종초홍, 삼월문 초월단주 육대원과 초월십검.마침내 목표의 앞에 도달한 자들은 휘청거렸다.격돌의 충격파에 놀라면서 눈을 치떴다.엄청난 한수를 나눈 강흑성과 붉은 엘프가 산 위로 이동 중이다.누가 먼저랄 것 없이 움직였다. 산을 차고 오르는 바람이 돼서 질주했다.그렇게 도달한 곳은 산비탈이 사라지고 나타난 평지다.사원이 있었던 흔적조차 사라진 공간, 강흑성과 붉은 엘프는 서로를 보며 서 있다.

“왔습니다!”

초월십검 수좌의 긴박한 목소리에 반응하며 육대원은 명령했다.

“좌표를 보내!”

초월십검 수좌는 즉각 멀티폰을 조작했다. 그 모습을 돌아보지 않고 육대원은 이만 으스러져라 물었다. 산 중턱 공지의 중앙에 대적하고 선 두 존재, 강흑성과 붉은 엘프에게로 달려가고픈 마음을 억제하며 기다렸다.

‘지옥의 불벼락을 안겨주마!’

저 둘이 저렇게 대치하고 선 내막을 모른다. 추적하며 파악한 바에 의하면 일행이었다. 그런데 서주에서 갈라졌다. 이젠 서로 죽이려 한다. 저들 중 강흑성이란 존재로부터 유성대협의 유진에 대해 파악하는 게 임무다.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도 불벼락이 필요하다. 검을 맞대고 싶은 욕구가 가득하지만 냉정해져야 할 때다. 붉은 엘프는 비룡들을 갈라 버린 자다. 물론 그래서 더 검잡은 손이 꿈틀대지만, 임무완수가 가장 중요하다.

‘천지문, 너희도 가만있지 않겠지······!’

우측저편 수풀 사이에 서 있는 종초홍을 보며 육대원은 눈을 번득였다.

팔목의 멀티폰을 응시한 종초홍은 시간을 가늠했다. 이제 곧 당도할 지원병력, 천지검대의 등장이다. 목표의 위치를 찾아 보내기만을 기다려온 바, 그러하기는 저들도 마찬가지다. 서로 위치를 안 드러내려 웅크렸다.

‘삼월문, 너희도 이제 본진을 드러내겠지.’

그러니 이제 이곳에서 벌어질 전투는 치열하고 무서울 것이다. 유성대협과의 연결고리가 확실한 저 자, 강흑성을 확보하는 싸움이다. 저 자는 역시 천지도 상패천과 관계가 있었다. 그건 곧 벽뢰수의 확보인 거다.

‘상패천은 벽뢰수를 펼쳤어······!’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 모른다, 상패천이 오갑자의 내공을 쌓았을 리는 만무하다. 역혈의 운기라는 장애는 무엇으로 해결한 건지 모른다. 그렇지만 분명히 벽뢰수를 펼쳤다. 그 내막도 강흑성을 확보하면 알 터다.

‘백두파도 이대로가 끝은 아닐 터인데······’

미간을 꿈틀거리던 종초홍은 그 순간 멀티폰의 붉은 반응을 확인했다.기다리던 천지검대의 지원이 아닌 다른 상황을 알리는 거다.그게 뭔지 바로 알았다.상공에 벼락처럼 날아온 비행체, 삼월문의 건쉽들이다.

내부에 진탕하는 충돌의 여파를 다스리며 강흑성은 아우리엘을 응시했다. 흐릿한 미소를 머금은 채 마주 바라보는 붉은 엘프, 아니 가라운, 한치의 데미지도 없다. 저 존재의 속에는 추측 못할 에너지가 꿈틀거린다.

“삼목하이에나 같은 것들이 다가오잖아?”

즐거워 못 견디겠다는 듯한 아우리엘의 미소와 목소리에 강흑성은 반응했다.

“지금은 너와 마주한 상대만 생각해야 할 거다.”

두 손으로 잡은 검을 강흑성은 중단세로 내밀었다. 무원진력과 합해진 철극진기가 용솟음쳐 나갈 듯이 꿈틀거린다. 그 순간 아우리엘이 말했다.

“이게 패천마안이야.”

아우리엘이 내민 왼손, 그 손바닥에 존재하는 붉은 눈을 강흑성은 봤다.본 순간 영혼이 만년빙 속에 빠지는 것 같든 경직이 찾아왔다.형용할 수 없는 느낌과 기운, 아우리엘의 손바닥에 존재하는 눈은 마안이다.

“어때? 굉장하지?”

장난감을 친구에게 자랑하는 것처럼 아우리엘은 환히 웃었다.

“잡은 순간 이렇게 손에 박혔다니까?”

왼손바닥을 들여다보는 아우리엘은 정말로 천진한 아이의 얼굴이다.

“네게서 흡수한 마기와 어우러지는데, 하, 그걸 뭐라고 설명할 길이 없더라고.”

환한 미소로 강흑성을 응시하며 아우리엘은 붉고 푸른 눈동자를 빛냈다.

“나는 이제 신인(神人)이 된 거야.”

결정을 선고하는 것과 같은 아우리엘의 음성과 눈빛, 강흑성은 고갤 저었다.

“그런 건 없다.”

검 끝에 꿈틀거리던 힘을 발산하며 강흑성은 걸음을 냈다.그런데 그 순간 하늘이 갈라지는 것 같은 굉음과 함께 비행체가 날아왔다.인지한 순간 상공에서 멈춘 비행체, 건쉽이다.삼각형 기체는 처음 보는 거다.하늘을 본 강흑성과 아우리엘의 머리 위로 불벼락이 떨어졌다.벌컨의 불벼락.그런데 기존의 벌컨이 아니다. 더 강하고 빠른 울트라 벌컨이다.지상을 초토화 하는 무지막지한 힘이 쏟아진다.태산은 까뒤집혔다.

* * *

“여기가 살던 집이냐?”

고개 끄덕이는 철수와 영희, 두 아이의 슬픈 시선을 받으며 그렉은 집안을 돌아봤다. 집이라고 부르기도 힘든 거처는 움막이다. 이곳에서 남매는 아버지와 살았다. 이웃한 다른 집들도 마찬가지, 비참한 삶이었다.

‘농장주들이 도망친 건······’

경비대 정예가 조협산에서 전멸한 걸 알고 농장주들은 도주를 선택했다. 그들은 반드시 다시 돌아와 공격할 것이다. 그럴만한 돈과 힘을 가졌다. 그러니 싸움 없이 농장을 차지 한 게 아니다. 이제부터가 싸움이다.

‘진짜로 목숨 걸고 싸워야 할 투쟁.’

이 일이 그렇다는 걸 그렉은 남매를 돌아보며 각인했다. 이 싸움에 끼어들기로 한 순간부터, 더는 도망치지 않기로 결심한 때부터, 강흑성에게 짐이 되지 않고 누군가의 짐을 덜어줄 수 있는 길을 찾기로 한 거다.

‘그렇게 죽는 다면······’

그렉은 흐릿한 미소를 입가에 물었다. 뜻을 위해 죽어간 ‘근역’ 의 동료들이 웃어 주는 것만 같다. 그들을 다시 볼 때엔 할 말이 있을 것이다.

“아저씨!”

철수의 놀란 외침이 아니더라도 그렉은 알었다. 즉각 움막 밖으로 나가 하늘을 봤다. 하늘에 비행궤적을 남긴 비행체들이 북으로 날아간다.

‘태산!’

강흑성이 있는 곳, 그곳으로 가는 비행체들이다. 그래서 몸이 움찔거린다. 강흑성이 있는 태산으로 달려가야 한다는 반응이다. 그렇지만 그럴 수 없다. 이곳에 있기로 했다. 철수와 영희와 다른 이들을 도와야 한다.

“흑성아······!”

강흑성을 부르며 그렉은 부들거렸다.

* * *

폭포수처럼 퍼부어 내리는 벌컨공격 아래서 강흑성은 검을 천중으로 올렸다.검극에 어려 꿈틀거리던 철극진기는 무원진기와 어우러지며 흘려 내렸다.강흑성이란 존재를 감싸고 덮었다. 그렇게 하나의 검으로 변했다.하늘을 향해 뻗은 검이 된 강흑성을 벌컨의 불벼락은 무섭게 강타했다. 하지만 비처럼 비껴나갔다. 태산의 몸뚱이만 파헤치고 뒤집었다. 그렇지만 불벼락은 그치질 않는다. 모든 걸 소멸할 듯이 쏟아져 내린다.강흑성의 모습에 변화가 일어난 것은 한 순간이다.하늘을 향해 솟은 검과 같던 형상이 비틀리며 움직였다.그로부터 터져 나온 흑청빛 검광들이 갈랐다.쏟아져 내리는 벌컨의 빔줄기를 가르고 공간을 열었다.그렇게 열린 공간으로 은용(銀龍)이 출몰했다.소용돌이치는 용오름의 기세로 비상했다.그 끝에는 철혼이라는 이름을 새로 받은 마검이 있었다.철룡이 된 검은 삼각형상의 건쉽을 뚫었다. 그 폭발이 허공에 퍼졌다.

“죽이는데!”

아우리엘이 환호를 터트렸다. 불벼락 속에서 움직인 형상은 하늘로 솟구쳤다. 마치 불의 폭포수를 거슬러 올라가는 화리(火鯉)와도 같은 모습이다. 뻗어낸 손에는 푸른 뇌전도가 발출했다. 건쉽을 치고 비상했다.폭발하는 건쉽을 징검다리처럼 밟으며 아우리엘은 하늘을 달렸다. 그 형상 아래서 삼각형태의 건쉽들은 폭발했다. 마치 폭죽놀이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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