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강호. 115. 그의 복수.
115. 그의 복수.
“크으······!”
고통스러운 숨을 내쉰 육대원은 잘려나간 오른다리와 사라진 왼팔을 새삼 더듬었다. 더 이상은 흘러나올 피가 없는지 출혈은 멈췄다. 지혈을 하고자 혈도를 막았지만 내상으로 인해 소용없던 부상, 이젠 감각도 없다.
‘이렇게 죽는 건가.’
죽음의 의미가 절절하게 다가온다. 한 번도 죽음에 대해서 깊게 생각 해 본 적 없다. 세상에 태어난 생명이라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것이 그것이다. 그렇지만 나와는 무관한 것으로 여기며 사는 게 죽음이다.모두 그렇다.이 세상을 사는 존재들 모두가 죽음을 등에 단 시한부의 삶을 산다.그렇지만 죽음을 의식하고 죽음을 준비하는 자는 없다.눈앞에서 다른 죽음을 봐도 나완 상관없다. 이렇게 돼서야 알게 되는 거다.
“데바족 전사인 내가······ 삼월문 초월단주인 나 육대원이······”
가슴속에 일어난 회한이 중얼거림으로 나온다. 그렇다는 걸 육대원은 한템포 늦게 깨달았다. 정확하게 이 감정이 뭔지 모르겠다. 삶 전체를 후회하는 것 같기도 하고, 상실의 결과로 후련한 것 같기도 한 허무다.
“다 죽었어······”
다시 목소리를 흘려낸 육대원은 이마의 뿔을 오른 손으로 더듬었다.부러져 있던 뿔은 그 손길에 떨어졌다.다시 올릴 힘도 없는 오른 손의 뿔을 봤다.죽음이 임박한 육대원 자신의 모습이다.허탈한 숨이 나온다.
‘이곳에서 뭘 한 건가.’
등을 받쳐주는 바위에 머릴 완전히 기댄 육대원은 불타는 태산을 눈에 넣었다. 공간폭탄의 화력이 펴져나간 결과, 산은 거대한 불덩이가 됐다.그 중간, 접전이 벌어졌던 공지는 사라졌다. 산의 옆구리가 사라졌다.
‘붉은 엘프, 가라운.’
그 존재가 저렇게 만들었다. 백두파가 발사한 공간폭탄을 뇌전도로 갈라 터트리고, 전신으로 푸른 에너지를 발산해 모른 것을 날려버렸다. 삼대문파의 무인들, 상공의 샤크들, 접전의 공간, 모조리 그에게 죽었다.
‘강흑성도······’
마지막 순간 붉은 엘프는 강흑성과 격돌했다.천지사방으로 푸른 에너지를 발산하는 동시에 강흑성을 향해 뇌전도를 날렸다.그 힘을 강흑성은 받아쳤다.그것이 기억하는 마지막이다. 육대원 자신도 날아갔으니까.
‘푸른 에너지, 그것은······’
뇌전의 칼날이자 화살이고 창이며 미사일이었다.누구도 그 힘을 피하지 못했다.막는 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상공에서 공중전에 돌입했던 샤크들도 전부 갈라졌다. 당연히 탑재하던 공간폭탄은 터졌다.그 힘이 더해져 정말로 공간이 사라졌다.태산의 옆구리가 뜯겨나간 것처럼 됐다. 산은 거대한 불덩어리고 변해 타고 있다.그 안에 있던 자들은 전부 죽었다.천지문 종초홍도 백두파 고건도 흔적 없이 소멸했다.
‘이제 곧 다시 만나겠군.’
임박한 죽음을 느끼며 육대원은 미소 지었다.숨 쉬던 이 세상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모든 게 부질없게 여겨진다.무엇하러 이렇게 살아왔을까, 무엇을 이루고자 쉼 없이 달려온 건지 모르겠다.그저 홀가분하다.
‘이곳에서 벌어진 일······ 남은 자들의 것이야.’
삼대문파가 올 것이다. 위성을 비롯한 장비들이 지구엔 없기에 현장상황을 화성으로 보낼 수 없다. 샤크의 블랙박스를 회수하는 것이 방법이다.
‘강흑성.’
불덩이가 된 산에 묻혀버린 그를 육대원은 다시 떠올렸다.그는 정말로 유성 대협의 후인이었다.천지문 뇌인걸의 무공 벽뢰수를 추적해 온 행보였는데 그의 등장으로 이곳까지 왔다.이 결과의 의미도 부질없다.
‘소멸······’
모두가 그렇게 됐다. 이제 육대원 자신이 마지막으로 그 길을 간다. 붕괴하는 토사에 밀려 구르며 묻히는 건 면했지만 이미 죽었다. 팔다리가 잘려서가 아니라 심부의 부상 때문, 붉은 엘프의 푸른 칼들이 지나갔다.
“하아······”
마지막을 음미하며 깊은 숨을 내쉰 육대원은 불속의 그림자를 봤다. 활활 타오르는 태산의 불덩이 속에서 움직이는 형상, 불을 뚫고 나온다.
‘강흑성!’
그다, 그가 걸어온다.
* * *
거대한 불덩이가 된 산을 바라보며 아우리엘은 웃었다.어둠을 밀어 올리는 산의 불길은 한마디로 훌륭하다.지구라는 어둠을 밝히는 등불 같다.그걸 만든 자가 바로 자신이다. 저 불을 보고 달려올 자들이 있다.
‘블랙블러드.’
그들이 올 거다. 아니 이미 왔다. 산으로부터 이어진 아우리엘 자신의 흔적을 쫓아 올 거다. 이렇게 기다리고 있다 즐겁게 환영해주면 된다.
“칸타, 화가 나도 조금만 기다려. 곧 복수할 거야. 여기 온 놈들을 거쳐서 지구에 남아 있는 블랙블러드 놈들을 다 죽일 거야. 화성에서도.”
웃는 얼굴로 말한 아우리엘은 왼손바닥을 봤다. 패천마안이 박힌, 스며든 손은 아무 흔적이 없다. 그렇지만 눈을 뜬다. 피와 죽음을 원할 때다.
“세상을 피로 물들여 붉은 하늘을 열 것이야.”
손바닥에 대고 속삭인 아우리엘은 패천마안이 눈뜨는 것을 봤다. 붉은 피의 용암이 이글거리는 것 같은 눈동자, 아우리엘을 보며 같이 웃는다.
* * *
흑청빛의 기운을 두른 형상이다. 그 힘이 산란해 불을 막는다.
‘안 죽었다니!’
저것을 호신강기라고 해야 할지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중요한건 강흑성이 살아 있다는 것이다. 저렇게 두발로 땅을 디디며 걸어온다.
‘어떻게!’
경악으로 육대원은 강흑성을 봤다. 임박한 죽음조차 잊게 한 충격과 의문, 강흑성이 저렇게 멀쩡한 모습으로 걸어오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네, 네가······!”
피가 튀어나오는 목소리를 낸 육대원, 그 앞에 걸음을 멈춘 강흑성은 무심한 시선을 던졌다. 아니 만년빙처럼 차가운, 만년한철 같은 눈이다.
“그, 그놈은······ 떠났다······!”
힘겨운 목소리를 다시 낸 육대원, 지금 하는 말이 뭔지 강흑성은 안다. 태산을 이렇게 만든 존재 아우리엘을 말함이다. 그의 마지막을 말한다.
“날 보더니······”
컥 하고 선지피를 토해낸 육대원은 부들거리며 뒷말을 냈다.
“웃음만 보이고······ 갔다······”
그랬다는 거다, 이 데바족의 죽음 앞에 섰던 아우리엘은 웃고 돌아섰다는 거다.무슨 생각을 했고 무슨 마음이었던 건지 모른다.중요한건 이 결과, 아우리엘에 의해 모두가 죽은 거다.이 자도 이제 죽는다.
‘나는 죽었던 걸까.’
아우리엘의 뇌전도를 받아쳤다. 그러나 그가 전신으로 발산한 뇌전지력을 받아치진 못했다. 몸을 파고든 그 에너지들, 칼날의 관통 속에 휘날렸다. 그 위로 샤크들의 폭발로 인한 엄청난 화력의 에너지가 덮쳤다.태산은 붕괴했다.접전이 이뤄지던 공지는 무너지고 소멸했다. 그 붕괴 속에 파묻혔다.토사의 압력 속에서 의식을 되찾은 건 조금 전이다.몸속의 철강지기가 깨워냈다. 또다시 죽음을 밀어내고 일어서게 했다.
‘아니, 이번은 아버지의 힘과 의지.’
의식 깊은 곳 어딘가에서 아버지가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깨어나라고, 일어서라고, 죽지 않는다는 소리였다.그 외침을 따라 다시 일어섰다.
‘내 속에서 꿈틀거리는 것이 있어.’
그것을 움켜잡아야 한다는 걸 강흑성은 느낀다. 사라지기 전에 잡아야 한다. 겨우 걸음을 내는 이 몸을 안전한 곳으로 옮긴 뒤에 해야 한다.
‘아버지가 남겨준 것.’
그렇다는 걸 안다. 생명을 주시는 일로서 하신 거다. 그 씨앗이 발아했다.
“너······”
귀를 파고든 데바족의 목소리에 강흑성은 초점을 모았다. 죽어가는 자를 응시했다. 손상된 라이트슈트의 가슴에 육대원이라는 이름이 붙은 자다.
“할 말이 있나?”
강흑성은 물었다. 묵직한 흑청빛의 시선을 받던 육대원은 그대로 경직했다. 너, 라고 부른 것이 마지막 숨이었다. 눈은 여전히 강흑성을 본다.
‘아버지와 너희종족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냐.’
데바족 핵심권력가와의 싸움, 아버지 유성은 그 일을 했다.크라이튼 가문과의 싸움이었다.삼백년 전 서울격투장의 선수였던 아버지는 크라이튼 가문의 대적자를 쓰러뜨리면서 악연을 맺었다.그 가문을 멸살했다.
“너희가 다시 덤빈다면 모조리 죽여주마.”
죽은 자를 향해 나직한 선고를 던진 강흑성은 돌아섰다.
* * *
“역시.”
즐거운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 아우리엘은 과일을 씹었다. 심령의 거대수가 만들어 내는 열매다. 어린아이 머리통만한 열매는 수박처럼 물이 많다. 이 물에 심령의 거대수가 모은 에너지가 들어 있다. 아주 달다.
“블랙블러드가 왔다고, 저거 보이지?”
몸통을 갈라버린 거대수의 가지에 앉아 아우리엘은 친구에게 하듯 말했다. 고통에 찬 떨림으로 가지와 잎을 흔드는 심령의 거대수는 죽어간다.
“뭐 그렇게 엄살이야?”
아우리엘은 새침해진 아이처럼 말한다. 그 말을 듣는 대상인 심령의 거대수는 정말 죽는다. 몸통 속에 맺은 열매를 빼앗겨서고 갈라져서다.그렇거나 말거나 과일을 맛있게 베어 먹던 아우리엘은 흠칫했다.
‘어?’
뭔지 모를 예감이 등골을 엄습해서다. 땀에 젖은 등에 시원한 바람이 지나갈 때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상쾌한 게 아니고 불쾌한 스쳐감이다.
‘뭐지?’
반이나 남은 열매를 땅으로 떨어뜨린 아우리엘은 태산을 바라보며 일어섰다. 고통스러워하는 심령의 거대수 가지를 밟고 불타는 태산을 봤다.
‘블랙블러드.’
그들이 왔다. 상공을 선회한 비행체가 하강한다. 이제 곧 저들은 아우리엘 자신이 남긴 흔적을 추적해 올 것이다. 그런데 뭔가가 더 있다. 그런 느낌이다. 그렇지만 그럴게 없다. 불덩이가 된 저 산에 모두가 묻혔다.
‘강흑성도.’
붉고 푸른 눈동자를 강렬하게 번득인 아우리엘은 다시 미소 지었다.
“어서들 와, 죽여줄게.”
심령의 거대수를 박찬 아우리엘은 푸른 선으로 수림을 나아갔다.
* * *
계류 속에 몸을 숨긴 강흑성은 움직이는 자들의 정체를 알았다.블랙블러드, 와야 할 자들이 왔다.불덩이가 된 태산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아내려는 움직임이다.샤크의 잔해 속에서 블랙박스를 찾을 거다.
‘아우리엘이 너희를 기다릴 거다.’
물 밖으로 고개를 내민 강흑성은 수림 저편 어느 곳엔가 있을 아우리엘을 떠올렸다. 푸른 바람의 정령 칸타가 죽었을 때 보인 그의 비통함이 생생하다. 아우리엘은 복수를 맹세했다. 이제 그 시작을 할 것이다.
‘무모한 행보였어.’
아우리엘을 찾아 이곳에 온 걸음이 그렇다.처음부터 목적이 패천마안이었으니 당연히 와야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거다.패천마안을 아우리엘이 가지는 걸 막지 못했다.그 힘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만 확인했다.
‘냉정하게.’
이제부터 할 행동에 대해 생각하며 강흑성은 몸을 돌렸다.승리를 만들기 위한 계획과 준비다.우선 몸을 완벽하게 치료해하고 힘을 복원해야 한다.아버지가 남겨주신 씨앗을 잡아야 한다.그러니 돌아섬이 맞다.강흑성은 계류가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겼다. 블랙블러드가 태산 주변을 훑는 움직임 속에 강으로 흘러갔다. 부유하는 나무토막처럼 강가로 흘러가 일어섰다. 수림을 헤치고 들어가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불렀다.
후르르르.
강흑성이 입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수림으로 퍼져나갔다. 그 반응이 나타났다. 퓨터들을 부르고 소통했을 때처럼이다. 블랙팬더가 나타났다.
“날 도와다오.”
블랙팬더에게 다가간 강흑성은 목을 쓰다듬고 그 등에 올랐다. 후르르, 하며 콧김을 뿜어낸 블랙팬더는 검은 몸통을 힘차게 돌리고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