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강호. 119. 손님.
119. 손님.
비가 그치고 찾아온 손님은 정말 예상치 못한 존재다.
‘매화검문’
그 이름을 찻물과 함께 삼킨 패튼은 이 상황을 곱씹었다.기시감이 드는 건 블랙블러드의 우인관이란 자가 이렇게 찾아왔었기 때문이다.그는 대륙으로 넘어갔다.이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
“매화검문의 천리매향검 형포, 성함과 존호를 처음 듣는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찻잔을 내리며 패튼은 엷게 미소 지었다. 마주 한 중년 사내는 얼굴은 본적 없고 이름도 모르는 자다. 정찰대 서북부총책임자인 패튼 자신을 저렇게 무심히 바라본다. 네가 누구냐고 물었지만 표정의 변화가 없다.
“블랙블러드의 인물이 방문했었다는 것을 압니다.”
표정처럼 아무 감정이 없는 목소리를 내는 자, 매화검문의 형포를 패튼은 응시했다. 고저 없는 음성으로 이어내는 이야기의 핵심은 그놈이다.
“북부지구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에 대한 기록을 열람하고자 찾아왔습니다. 샹그릴라와 관련된 기록, 그리고 반화성조직 ‘미래’ 의 기록입니다.”
바로 이해하지 못해 패튼은 미간을 좁혔다.상대가 원하는 내용이 무엇 때문인지를 더듬었다.결론은 분명한 하나, 유성대협의 후인일지 모를 그 젊은 놈 때문이다.화성의 삼대문파도 그놈을 쫓아 움직이고 있다.
‘뇌인걸의 무공이 실제적 표면적 이유이긴 하지만.’
현재 진행 상황, 대륙의 정세가 어떠한지 대강 알기에 패튼은 짐작을 삼켰다. 단파무전기를 가진 조직이나 세력에 의해 소문이 퍼졌다. 상해에 이어 신남경과 서주에서도 큰 사건이 일어났다. 샹그릴라 일당이다.
‘지옥사신이라니······!’
샹그릴라의 그 젊은 놈을 부르는 호칭이다. 어쩌다가 그런 황당하고 가당찮은 별호가 붙은 건지 모르겠지만, 소문으로 전해진 결과가 그러하다. 그놈은 독을 사용해 적을 몰살하고 무시무시한 무공을 펼친다는 거다.
“대륙의 불은 더 커질 것입니다.”
툭 건너온 형포의 말, 패튼은 상념이 깨진 자리에 깨달음을 넣었다.
‘불.’
형포의 표현대로 불이다. 대륙에선 거센 불길이 번지고 있다.그것이 더 커질 것이라고 저 자는 말한다.그렇다, 블랙블러드가 움직였고 삼대문파가 행사하는 일이다. 그러니 잡힐 불이라곤 여기지만 예감은 아니다.
‘애초에 우릴 엿 먹인 놈들.’
레드스콜피온, 정찰대를 몰살한 놈들이다. 대륙으로 넘어가선 상해를 뒤집고 신남경을 거쳐 서주도 뒤집었다. 그 결과로 매화검문의 인사가 왔다.저자가 요구하는 건 흔적이다. 그놈들이 머물렀던 자리부터 훑는 거다.
‘결국 목적지는 대륙.’
샹그릴라 일당을 찾아가는 것임을 모를 수가 없다.
‘뇌인걸의 무공, 유성대협의 유진······’
이 일은 그런 것보다도 크고 강대한 뭔가 있다. 그렇다고 예감이 소리치지 않아도 안다. 매화검문마저 이렇게 찾아온 게 이유다. 이들이 원하는 것에 단초가 있다. 샹그릴라 일당, 그리고 ‘미래’에 대한 기록이다.
“매화검문은 이번 일에 손을 담글 작정인가 봅니다?”
도발이라고 여기면서도 패튼은 물음을 뱉었다. 형포는 역시 표정 없는 얼굴이다. 잔잔하게 고여 있는 연못 같은 눈빛만 낸다. 하지만 대답한다.
“당신도 함께 가게 될 겁니다.”
패튼은 찻잔을 들다 멈칫했다. 귀를 파고든 형포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몰라서다.간다, 그 의미가 대륙이라는 걸 알겠다.동행한다는 소리다. 그래서 뜬금없고 놀랍다. 저런 소리를 할 수 있는 이유가 있어서다.
“무슨······”
입을 열던 패튼은 통합테스크의 신호음을 들었다. 화성으로부터의 메시지가 온 것이다. 반사적으로 창밖의 송수신 철탑을 봤다. 정찰대 본부 중앙에 위치한 원추형 철탑, 저것을 타고 화성의 명령이 들어온 거다.의자를 밀고 일어선 패튼은 통합테스크의 메시지를 확인했다.
[모든 역량을 다해 매화검문과 협력하라.]
두 번째 명령, 매화검문의 방문할 것이니 정중하게 응대하란 명령 이후의 것이다. 명료하다. 한마디로 매화검문이 원하는 대로 따르라는 거다.
‘길잡이 개 노릇을 하라는 건가?’
반발처럼 가슴에 들어찬 생각을 패튼은 이내 흩어버렸다.
‘아니야. 그놈들을 잡으러 갈 기회다.’
어금니에 힘을 주며 턱을 세운 패튼은 형포를 돌아보고 물었다.
“원하는 게 무엇이오?”
형포는 비로소 찻잔을 들어 마셨다.
* * *
한마디로 개박살난 게틀러의 잔해를 확인하며 박준은 혀를 내들렀다.
“아주 고철로 만들어 버렸구나.”
농장주들의 이차공격은 실패로 끝났다. 공격해 왔던 낭인용병들 중에 살아서 도주한 놈은 없다. 한 놈도 남김없이 강흑성의 손에 죽었다. 지옥사신의 선고다. 그걸 피해 살아날 자는 없는 거다. 오직 죽음뿐이다.
“형, 이건 고치면 쓸 수 있겠는데?”
박현의 부름에 고개 돌린 박준은 비교적 멀쩡한 게틀러로 다가갔다. 열심히 살펴보는 박현 말대로 손보면 될 것 같다. 다른 게틀러처럼 파괴된 게 아니라 안에 있던 놈들만 죽었다. 강흑성이 내가기공으로 한 거다.
“여기도 멀쩡합니다!”
무슬란이 손들어 소리치는 곳으로 박준은 바로 달려갔다. 참호로 파놓은 구덩이에 들어가 앞쪽이 기울어진 게틀러다. 이건 완전히 멀쩡하다.
“좋았어!”
두 대의 게틀러를 확보한 거다. 놀랍게도 농장주 놈들은 열대의 게틀러를 동원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엄청난 돈을 들인 거다. 그런데도 모조리 파괴됐고 죽었다. 게틀러 두 대를 선물한 꼴이다.
“이 거면 농장주놈들이 다시 덤벼든대도 해볼 해 볼만 하겠는데?”
좋아하는 박현에게 박준은 차가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럴 일이 없을 거다.”
박현과 무슬란은 알아들었다. 여길 이렇게 만들어 놓고 간 강흑성, 그의 손에 끝장이 날것이기 때문이다. 낭인용병들로부터 정보를 추출한 강흑성은 그 일로 움직였다. 완전한 끝을 위해서, 농장주들을 죽이려고다.
“그렇지, 지옥사신이 움직였는데 다 뒈진 거지.”
좋아 죽겠다는 얼굴로 무슬란은 작두칼을 홱 휘둘렀다. 그래놓고 바로 미간 좁힌다.
“태산에선 어떻게 된 걸까?”
물어 보지 못했다. 그럴 틈도 없었다. 분명히 태산에서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샤크들이 날아갔고 산은 불덩이가 됐다. 그래서 가슴 졸이며 걱정했는데 강흑성이 돌아왔다. 알몸이 놀랍긴 했지만 멀쩡한 모습이었다.
“뭐, 흑성이가 무사하니까 다른 놈들은 뒈진 거지. 안 그래?”
박현의 당연하단 짐작에 무슬란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음, 그렇긴 하겠네. 그지, 맞아.”
박준도 한마디 하려는 데 외곽 경계 중이던 그렉이 소리쳤다.
“흑성이가 돌아온다!”
반갑고 기쁨에 찬 그렉의 외침을 찾아 셋은 달려갔다. 낭인용병들의 시신이 널린 농장 입구 저편, 강흑성이 걸어온다. 그냥 걷는 것 같은데 질주다. 어느새 눈앞에 왔다. 들고 온 것을 던졌는데 머리통 다섯 개다.
‘농장주들!’
그들의 머리란 걸 그렉과 박준과 박현과 무슬란은 알았다. 낭인용병들을 동원해 공격케 하고 결과를 기다리던 자들, 위치를 파악한 강흑성의 방문을 맞은 거다. 피할 수 없는 존재 지옥사신의 선고, 지옥으로 갔다.다시 만난 일행의 앞에 선 강흑성은 덤덤히 말했다.
“배고프고 목마르네요.”
무심히 나온 강흑성의 목소리, 그랙과 박준과 박현과 무슬란은 분주히 움직였다.
* * *
“애초에 화성연구소에 드나드는 이동수단들은 탐지가 불가능합니다. 화성과 지구를 운행하는 비행체는 모두 감지가 되고 운행에 대한 모든 정보가 공개되지만, 그것이 원칙이고 정상이지만, 그들은 늘 예외였습니다.”
발언을 마친 정보참모의 얼굴에 든 분노와 우려를 원필성은 십분 공감했다. 화성연구소, 그들의 행태는 모든 것이 비밀이고 원칙을 벗어나 있다.그럴 수 있는 배경은 화성 권력층과의 결착, 뿌리 깊고 오래된 것이다.
‘누군가 지구로 온 게 맞는데······’
화성의 고위층에서 움직였다는 첩보가 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회의를 연 거다. 보고 받는 그리샴장군은 무표정,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
‘장군,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원필성 자신이 앉은 뒷자리에서도 분명히 보이는 그리샴장군의 얼굴, 무심하게 가라앉은 돌덩이 같지만 꿈틀거리고 있다. 이 상황을 조망하고 있다. 그렇게 내린 결정은 진중하고 강고하다. 언제나 그렇듯 현명하다.
“화성연구소의 위치부터 찾아라.”
드디어 결론이 나왔다.장군이 내린 결정은 화성연구소의 위치다.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그들의 비밀거점, 그곳부터 찾아내고 대응한다는 거다.
“긴장을 품어라.”
다시 목소리를 낸 그리샴 장군은 현재 상황의 무게를 말했다.
“화성에서 움직이고 있다. 지구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여하는 상황이다. 그 자체는 문제될 게 없다. 문제는 그러한 원인, 그리고 우리의 대응이다.”
회의실을 메운 참모들을 향해 그리샴 장군은 남은 말을 던졌다.
“전쟁이 다시 일어날지도 모른다.”
경직하는 참모들의 뒤에서 원필성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 * *
밤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른다. 죽은 이들을 슬퍼할 겨를 없이 모두가 정신없이 움직였다. 농장에 널린 시신들을 치우고 불태우고, 파괴된 저택에 모여 다 같이 식사했다. 천만다행하게도 창고는 온전해 풍족했다.
“이제부턴 어떻게 해야 하지?”
머리 긁는 박현을 본 그렉이 비슷한 표정이었다가 입을 열었다.
“산동의 농지는 이제 주인이 없어. 이 땅에서 피땀 흘리며 일한 사람들이 주인이 되는 게 맞지. 여기 이 사람들, 공평하게 땅을 나누게 하자.”
박현은 맞는 말임을 알면서도 형 박준을 돌아왔다.
“당연한 거다. 이 사람들이 원래 주인이야.”
생사를 건 전투로 인해 피곤하고 남루한 몰골의 사람들, 농장의 노예로서 비참한 삶을 살던 이들,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 이긴 이들이다. 이들이 땅을 분배해 농사지으면 된다. 그렇지만 그것을 지키기도 해야 한다.
“누군가 옵니다!”
망루로 삼은 농장 밖 거대수로부터 전해져 온 상황에 모두가 긴장했다. 하지만 그렉과 박준과 박현과 무슬란을 필두로 일산분란하게 움직였다. 두 대의 게틀러를 움직여 대응했다. 저 멀리서 플라잉카가 다가온다.
“저거 백기 아냐?”
눈에 힘을 준 무슬란의 말처럼 플라잉카는 백기를 달았다.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위로 열리는 문을 통해 누군가 내렸다. 얼핏 여자 같다.
“산동농장연합에 제안할 것이 있어 왔습니다!”
카랑하게 날아온 목소리, 정말 여자다. 백기를 단 장대를 쥐고 천천히 걸어온다. 경갑주 위에 간편한 복장을 한 중년 여인이다. 다시 외친다.
“중토상인연맹의 하원옥이 거래를 제안합니다!”
예상치 못한 인물의 출현, 손님의 방문이다.
* * *
익숙하지 않은 의복의 느낌에 강흑성은 소매를 만졌다. 낭인용병의 것을 벗겨 입은 거다. 흑색군복, 낡았고 치수도 맞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 중요한 것도 아니다. 중요한 문제는 아우리엘을 찾아 떠나는 거다.
‘뭘 위해서?’
새삼 물음을 던진 강흑성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파란 하늘이 참으로 맑다.
‘이대로 여기서 저들과 살면 되는 거 아닌가?’
그렉과 박준과 박현과 무슬란과, 그리고 손에 쥔 팬던트의 주인 카이오와 사는 거다. 모두 다함께 평화롭게 사는 거다. 그렇게 살 수 있다.세상은 원래 위험했고 비정했다.아우리엘이 더해진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나하곤 상관없어.’
패천마혈로 생긴 인연이 있긴 하다, 하지만 결국 패천마안은 아우리엘이 가졌다. 그걸 뺏으려 할 필요 없다. 그는 그대로 나는 나대로 사는 거다. 아우리엘이 뭘 하든 상관없다. 건드리지만 않으면 외면하고 산다.
‘그게 될까······’
그것이 문제다.아우리엘의 목표가 뭔지 안다.그는 가라운, 붉은 하늘을 여는 자다.그에게 패천마안이 있다.그것이 가진 의지를 아주 잘 안다.
‘아무도 살지 못할 거야.’
그렉도 박준도 박현도 무슬란도, 철수와 영희도, 카이오와 아이들도, 모두 파멸을 피할 수 없을 거다. 이 세상은 죽게 된다, 함께 살수 없다.
‘아버지.’
손을 편 강흑성은 팬턴트를 응시했다. 독지에 들어가 모든 것이 녹았지만 강흑성 자신의 의지로 남은 것이다. 철혼과 철룡처럼 귀중한 것이다.이것을 주던 카이오에게 말했다. 언젠가 다시 보게 될 거라고.
“간다.”
명료하고 분명한 한마디를 뱉고 강흑성은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