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혹성강호-122화 (123/172)

혹성강호. 122. 조우.

122. 조우.

자꾸만 북쪽으로 돌아가려는 시선을 다스리며 강흑성은 질주했다. 무원신풍보를 전개한 신형은 수림과 관목지대와 길의 구분 없이 주파해 나갔다. 한줄기 바람이 된 행보, 내력이 칠성의 관문을 넘어선 결과다.

‘아우리엘, 조금만 기다려라.’

북으로 간 아우리엘을 떠올리며, 그의 행보가 북쪽임을 확신하며 강흑성은 달렸다. 그를 찾아 가기 전에 해야 할 일, 철금련주를 만나야 한다. 동료들의 안전을 확보해 놓고 삼대문파의 이목을 끌며 가야 한다.

‘응?’

질풍처럼 달리던 강흑성은 한순간 멈췄다. 갑작스러운 멈춤은 주변 수목들을 휘청거리게 했다. 앞을 막은 수림의 벽도 그 힘에 밀려 흔들렸다.멈춘 공간과 기류마저도 휘청거리는 그 순간 강흑성은 분명히 인지했다.

‘삼바바.’

수림의 최강괴수 중 하나인 그놈이다. 아니 그놈들이다. 놀랍게도 여섯 마리나 되는 놈들의 기감이 인지된다. 무슨 일인지 격렬하게 화내고 있다.멈춘 움직임을 다시 낸 강흑성은 수림을 헤치고 기감의 근원을 찾아갔다.

‘저건?’

거대수들이 밀집한 사이로 보인다.삼바바들이 둘러싸고 분노와 적의를 발산하는 짐승이 있다.새카만 암흑빛의 털을 가진 맹수, 호랑이다.

‘호랑이가 있어? 흑호가?’

멸종한 걸로 알려진 맹수다. 타이그란족과 같은 모습이기에, 물론 얼굴만 이라는 전제가 있지만, 어쨌든 안다. 그런데 실물을 보는 건 처음이다.기묘하게도 사자와 호랑이는 멸종했는데, 야수족과의 관련은 모른다.라이피언족과 타이그란족 같은 야수족의 존재 때문에 멸종한 거라는 말, 증명되지 않았고 알 수도 없는 설이 지배적이긴 한데 진실은 모른다.분명한 건 멸종한 맹수종이라는 것, 그런데 지금 눈으로 보고 있단 거다.

‘삼바바 여섯 마리가 호랑이 한 마리를 공격한다?’

지금 보고 있는 광경이 바로 이해가 안 돼 강흑성은 미간을 찌푸렸다.삼바바는 최강괴수다.지구를 덮은 수림 속 괴수들의 상위 일프로다.그런 놈들 여섯 마리가 고작 맹수인 호랑이 한 마리와 대치해 있다.

‘분명히 대치야.’

저게 무슨 상황인지 헤아리려 강흑성은 눈에 힘을 줬다. 중앙의 흑호 한 마리, 포위한 삼바바 여섯 마리, 일촉즉발의 긴장 속에서 으르렁 거린다. 건드리면 쩡하고 깨질 것 같은, 살얼음판 위에 선 것 같은 긴장이다.

‘최강괴수 삼바바가 왜?’

이해할 수 없다, 저렇게 여섯 마리를 한 번에 본다는 것 자체가 그렇다. 최강괴수답게 삼바바들은 각자의 영역을 구축하고 산다. 침범하면 싸운다. 여섯 마리가 한데 모여 있는 걸 본다는 자체가 기이한 알이다.

‘흑호 한 마리를 상대하기 위해서?’

괴이하지만 그렇게 보인다. 저 광경은 그렇게 밖에 판단이 안 된다. 검은 호랑이 한 마리를 포위하고 삼바바 여섯 마리가 적의를 발산하고 있다.도대체 저게 어떻게 가능한지, 흑호의 정체가 뭔지 의문이 치민다.

‘대체 뭐······’

순간 강흑성은 경직했다. 삼바바들이 움직여서다. 거대한 육신을 거짓처럼 빠르게 기동하며 공격한다. 흑호를 향해 두 놈이 꼬리를 후려친다.저 공격의 의도는 흑호의 대응을 예측한 것, 다른 두 놈이 달려든다.예측대로다. 흑호는 좌우의 꼬리 공격을 피해 도약했다.그 순간 흉악하게 큰 입을 벌린 삼바바 두 마리가 흑호의 몸통을 물었다.벼락같은 합격이다.그런데 정말 놀랍다. 흑호가 허공에서 몸을 비틀어 피했다.

‘저놈!’

놀람을 품고 강흑성은 바라봤다.마치 무공고수의 움직임처럼 공격을 피한 흑호가 물려고 덤빈 놈의 머리를 차고 더 빠르게 움직인다.꼬리를 후려친 놈에게 벼락처럼 붙었다 떨어진다.삼바바의 목이 뜯겨나갔다.

콰우우!

괴성을 지르는 삼바바의 몸부림은 수림을 휩쓸었다. 거대수에 부딪친 놈의 목에선 선혈이 뿜어져 나온다. 다른 놈들이 같이 괴성 지르며 분노하는 그때, 흑호는 다시 돌아와 발을 후렸다. 뜯겨나간 목을 강타했다.강흑성은 눈을 부릅떴다. 삼바바의 목이 갈라지는 걸 보고서다.물어뜯어 버린 목을 재차 타격해 끝장을 내는 공격이다.확실하게 적을 처리하는, 숫자를 줄이는 전술이다.삼바바는 요란하게 쓰러져 몸부림친다.

‘대단한 놈이구나······!’

그냥 호랑이가 아니라는 걸 강흑성은 깨달았다.나머지 다섯 마리의 공격 속에서 좌충우돌 움직이는 흑호의 모습은 경탄스럽다.연이어 또 한마리가 눈을 잃은 채 뒷걸음질친다.놈을 노리고 도약한 흑호는 포효한다.삼바바의 목을 물어 숨통을 끊어버리는 흑호를 보며 강흑성은 전율했다.

* * *

‘죽일 놈들이!’

으스러지게 이를 악문 마테오는 어깨의 화끈함에 치를 떨었다. 적호문 놈들은 미친 듯이 빔라이플을 발사하고 있다. 예상치 못한 추격이다.

‘이렇게까지 준비했을 줄은······!’

새삼 적호문의 위세에 마테오는 한기를 삼켰다. 갑자기 송곳처럼 등장한 적호문, 저런 자들이 나타날 거라고 생각 못했다. 사전에 아무런 동정도 없었다. 그런 치밀함으로 신남경의 외곽에까지 포위선을 만들었다.

‘나 같은 존재를 예상한 거야.’

외부에 조력을 청하려 움직일 자, 도주하는 자들을 척살하려는 준비다. 그렇게 대비하던 자들의 이목에 걸렸다. 힘겹게 뚫고 나오긴 했지만 백척간두다. 놈들의 추격은 바로 등 뒤, 이대로 얼마나 갈지 모르겠다.

‘오냐 와라! 절대로 네놈들 손에 안 잡힌다!’

플라잉바이크가 터지도록 마테오는 수림을 질주했다.

* * *

황당무계한 싸움, 흑호와 삼바바 여섯 마리의 생사투는 이제 종국으로 치닫고 있다.흑호의 이빨에 물린 삼바바 네 마리가 뻗어 있다.식어가는 그 사체를 밟고 도약한 흑호는 물러서는 두 놈 중 우측 놈을 덮쳤다.같이 물려는 삼바바의 대응공격, 흑호는 회오리처럼 돌아 목을 문다.그야말로 무인 같은 공격이다.목표를 놓친 삼바바는 턱밑의 목을 물려 휘청거린다.이빨을 박은 흑호는 소용돌이처럼 돈다.삼바바의 목은 터졌다.흑호가 떨어져 나오는 순간 선혈이 폭발하는 것처럼 삼바바의 목줄기가 터졌다. 정확하게 뜯겨졌다. 울음소리도 못내는 삼바바는 휘청거리다 쓰러진다. 그 순간 마지막 남은 삼바바가 돌아선다. 미친 듯이 도망간다.흑호는 도망치는 놈을 응시하지만 쫓지 않는다. 방금 물어버린 놈, 아직도 버르적거리는 삼바바에게로 다가간다. 선혈이 흘러나오는 목에 입을 대고 피를 마신다. 그러더니 가슴을 앞발로 파헤친다. 심장을 꺼낸다.뜨겁게 벌떡거리는 삼바바의 심장, 혀로 핥던 흑호는 먹기 시작한다.우적우적 첩첩하는 소리, 맛있는 식사임을 증명하듯 순식간에 먹어치운다. 그렇게 또 한 마리의 심장을 꺼내 먹는다. 그리곤 배가 부른지 멈춘다.피 묻은 앞발과 몸을 혀로 핥아 닦아 내던 흑호가 느릿하게 시선을 돌렸다.눈길을 받은 강흑성은 수림에서 천천히 걸음을 냈다.그에 반응하며 흑호는 일어섰다. 강흑성을 바라보는 놈의 눈동자가 흑청빛을 냈다.강흑성과 흑호는 서로를 바라보며 수림의 한 부분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 * *

팽이처럼 휘도는 플라잉카이크에서 마테오는 이탈했다.거대수를 들이받고 폭발하는 바이크를 돌아볼 새 없이 달렸다.얼마나 온 건지 모르지만 반나절은 지난 것 같다.여기서 잡힐 수는 없다.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개자식들아! 난 절대로 안 잡힌다!’

분노한 감정으로 외치지만 현실의 암담함을 마테오는 삼켰다.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심중으로만 외친 결의와 함께다. 바이크마저 파괴된 현실이다. 놈들의 추적을 벗어나기란 사실상 어렵다. 그러니 결정해야 한다.

‘한 놈이라도 죽이고!’

움켜쥔 검을 돌리려던 마테오는 그 순간 들리는 소리에 흠칫했다.

* * *

흑호의 울음, 포효를 들으며 강흑성은 내부에서 치밀어 오르는 뭔가를 느꼈다. 뭔지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것, 흑호의 포효에 공명하는 것이다.왜 이런 건지, 이게 뭔지 모른다. 그런데 흑호도 그런 것 같은 눈이다.

‘나에게······’

흑호의 포효, 수림을 울리고 퍼져나간 저 울음은 적의나 분노가 아니다.강흑성 자신에게 전하는 거다.그게 뭔지 모르지만 울림이 일어나고 있다.흑호도 제 행동과 마음을 모르는 것 같다.울림만 아는 거다.

‘우리가 서로를······’

형용하기 어려운, 기이한 울림과 전율 속에서 강흑성은 소름을 삼켰다. 그런데 그 순간 감지되는 기운이 있었다. 그걸 안 찰나 흑호가 움직였다.수림 속으로 바람처럼 사라진 흑호를 보던 강흑성은 거대수 위로 도약했다.

* * *

뭔지 모르지만 위험한 괴수의 포효가 분명했다. 그 소리를 찾아 마테오는 전력으로 경공을 펼쳤다. 위험은 위험으로 상쇄한다는 생각으로다.

‘적호문 놈들을 과수와 싸우게 하면······!’

구명의 기회가 생길 수 있다는 믿음, 가능성으로 마테오는 달렸다. 그 현장을 마침내 찾았다. 수림 속의 공간, 삼바바 다섯 마리가 죽어 있다.

‘뭐?’

황당한 충격으로 멈춘 마테오는 바로 신형을 날렸다. 뒤에서 날아온 빔줄기를 피해 굴렀다. 삼바바 사체에서 흘러나온 피에 젖으며 움직였다.

‘제길!’

더는 도망칠 수 없다는 판단으로 마테오는 정지했다. 삼바바의 사체를 엄폐물 삼아 핸드건을 발사했다. 이제 곧 우회해 오는 놈들과 검을 부딪쳐야 한다. 한 놈이라도 죽이고 죽는 건 당연한데, 안타까움이 밀려든다.

‘문주······!’

사면초가에 빠진 문주 철무진과 철금련 형제들을 생각하며 마테오는 분루를 삼켰다. 그 순간 우회해온 적호문 무인들의 쇄도를 눈으로 확인했다.

‘이!’

검을 움켜잡고 일어서던 마테오는 얼어붙었다. 자신에게 달려들던 적호문 무인들의 최후 때문이다. 허리가 동강나 쓰러지는 괴이한 광경이다.

‘강흑성!’

죽어가는 자들 위에 나타난 인물, 강흑성을 보고 마테오는 전율했다.

* * *

‘놈들의 노리는 건 역시 제강소.’

철무진은 제강소를 새삼 돌아봤다. 용광로의 불길이 만들어낸 연기가 굴뚝으로 쉼 없이 올라가고 있다. 철금련이 신남경을 차지하게 해준 원동력이다. 제강제련을 통해 쌓은 자금력을 기반으로 일궈온 영광이었다.

‘선조의 유진을 찾아 더 강성해지는 일만 남았거늘······!’

치욕과 분노의 감정으로 몸을 떤 철무진은 애병 거성(巨星)을 움켜잡고 몸을 돌렸다. 오착장검이라고 부르기엔 부족한 거검, 이것으로 정말 큰 별과 같은 인물이 되겠다고 결의한 삶이 이제 부서질지도 모른다.

‘무인으로서······!’

승부를 내는 거다. 죽을지언정 하는 거다.

“문주.”

적호문을 향해 걸음을 내던 철무진은 흠칫하며 멈췄다.돌아보니 수하들이 바라보고 있다.오직 자신만을 믿고 따른 수하들, 철극문의 영광을 재현해 함게 하기로 한 동료들이다.저들의 눈은 아직 아니라고 한다.

“그래, 마테오를 기다려 보자.”

검을 움켜잡은 손에서 힘을 푼 철무진은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 * *

날아오는 빔줄기를 표홀히 피하며 강흑성은 검을 휘둘렀다. 흑청의 쇠빛이 이탈해 나간 검의 가름은 공격자들을 갈랐다. 아니 분쇄했다. 철금련의 총관을 추적해온 자들을 도록했다. 그들의 피가 수림을 또 적셨다.

“가라.”

나지막한 한마디를 뱉음과 동시에 강흑성은 손을 떨쳤다.움직이며 훑어낸 솔잎이 환영처럼 퍼져나갔다.만천화우, 모든 형상을 휩쓸었다.철금련 총관을 쫓아온 정체모를 자들 수십, 그들의 형상을 헤집고 나갔다.우수수 쓰러지는 공격자들의 최후를 강흑성은 말없이 바라봤다. 만천화우의 암기술로만 죽는 게 아니라 핏물로 녹아버리는 죽음이다. 강흑성 자신이 만들어낸 최후다. 암기술에 독이 더해진, 이 결과를 음미했다.

“도움을 청하고자 찾아가던 길이었습니다!”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강흑성은 돌아섰다. 철금련 총관, 엘프사내의 이야기를 들었다.

“침공을 받았습니다! 적호문이 철금련을 공격하고 신남경을 차지하려 합니다!”

적호문이란 이름을 듣고 강흑성은 눈썹을 칼날처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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